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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단독]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왕능
-경주도읍지는 일제가 조작했다!

박병역 대표 | 기사입력 2007/04/08 [14:26]

[본지 단독]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왕능
-경주도읍지는 일제가 조작했다!

박병역 대표 | 입력 : 2007/04/08 [14:26]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왕능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번지에 있다. 총 2만 705평의 대지 위에 연건평 3,312평, 전시실 면적 1,050평 규모이다. 소장유물은 신라시대 유물을 중심으로 1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경주에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능을 비릇하여 남산에는 왕릉이 13기, 절터가 147곳과 불상 118기, 탑이 96기, 석등이 22기 등 발견된 문화유적의 수가 672개에 달한다. 경주 남산을 유네스코는 2000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는 한 해 500만 명이 넘는 국내외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경주는 신라의 시조 왕능을 비릇하여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적물이 즐비하다. 삼국사기에 신라의 경주는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 계림(鷄林),시림(始林)이라 불렀으며, 전성기의 경주 인구가 백만을 넘었고, 숯으로 밥을 지었으며 초가집이 없었다. 또한 경주에는 대형 국제시장을 3곳이나 두었고, 시장(市場)업무를 관리 감독하는 관청까지 두었던 신라의 왕도(서울)이다. 필자는 경상북도 월성군 경주는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4월 7일 경주를 찾아가 박혁거세왕능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     © 플러스코리아
일제가 가짜로 만든 경주의 5능
일제가 가짜로 만든 경주의 5능한국 정통사서의 [삼국사기]에 박혁거세왕은 사후 담엄사 북쪽 사능 능원 안에 묘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박혁거세(BC 57-AD 3년)왕 알영부인,남해왕(AD4-23년),유리왕(24-56년),파사왕(AD 80-112년)의 5능(五陵)이 있다. 또한 신라의 제6대 지마왕, 7대 일성왕. 8대 아달라왕등 마지막 제 56대 경순왕(AD 935)릉 등 총 36기의 왕능으로 경주 일대는 온통 왕들의 무덤뿐이다.

유구한 신라 1천년 왕도의 비밀을 간직한 5능은  BC 57~AD 3년의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릉이므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2,064년 전의 무덤이 훼손되지 않고 100여년 전의 무덤과 같이 봉분이 깨끗하였다. 

일제가 가짜로 만든 경주의 5능한국 정통사서의 [삼국사기]에 박혁거세왕은 사후 담엄사 북쪽 사능 능원 안에 묘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박혁거세(BC 57-AD 3년)왕 알영부인,남해왕(AD4-23년),유리왕(24-56년),파사왕(AD 80-112년)의 5능(五陵)이 있다. 또한 신라의 제6대 지마왕, 7대 일성왕. 8대 아달라왕등 마지막 제 56대 경순왕(AD 935)릉 등 총 36기의 왕능으로 경주 일대는 온통 왕들의 무덤뿐이다.

유구한 신라 1천년 왕도의 비밀을 간직한 5능은  BC 57~AD 3년의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릉이므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2,064년 전의 무덤이 훼손되지 않고 100여년 전의 무덤과 같이 봉분이 깨끗하였다.

“ 경주 ”는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부터 마지막 56대 경순왕까지 무려 1000년(992년) 동안 신라의 왕도(王都:서울)입니다. 일반적으로 왕도를 중심으로 정치, 군사, 경제, 문화가 발달하므로 경북 월성군 경주가 신라 천년의 왕도라면 그 어느 도시 보다 왕도 경주에 인구가 집중되고 교통시설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입니다. 한반도 속의 경북 경주 지역이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 타당한가? 일반적 상식으로 고찰해 봅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는 성덕왕(702~737)때 극성기를 맞이하여 신라의 수도 경주는 17만 8,936호이고, 1,360방, 55리, 35金入宅(금입택) 4절 유택(四節游宅) 등이 있는 호화로운 도시로서 통일 후 약 100 여년 간 번영을 누렸다. 

신라의 삼국통일 시대의 수도 “ 경주의 호수가 17만 8천호 x 5인=890,000명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지금의 경주시 인구보다 1천300년 전의 인구수가 더 많습니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납득 할 수 없으나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와 식민사학자에 의해 임의대로 지정한 경주를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 세뇌되어 참과 거짓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국사가 왜곡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박혁거세왕의 고찰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1]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赫居世) 거서간(居西干)이다. 시조의 성(姓)은 박씨며 휘(諱)는 혁거세이다. 원년 갑자(BC:57년) 4월 병진일(일설은 정월 15일)날 13세에 즉위하여 호를 거서간(居西干)이라 하고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 먼저 조선의 유민(遺民)들이 산곡(山谷)에 나누어 살던 곳으로 六村(6촌)이 있었다.

첫째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 둘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 취산(嘴山:선도산) 진지촌(珍支村), 넷째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 있었다. 이것을 진한(辰韓)의 6부(六部)라 한다.

[삼국유사] 옛 진한(辰韓)에는 6村(촌)이 있었다. 첫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남쪽에 담엄사(曇嚴寺)가 있고 촌장은 알평(閼平)이다. 둘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의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셋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은 구례마(俱禮馬)이다. 넷째 취산진지촌(嘴山珍支村)의 촌장은 지백호(智伯虎)이다. 다섯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의 촌장은 지타(祗陀)이다. 여섯째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의 촌장은 호진(虎珍)이다.

서기전 69년 3월 1일 당시 사로6촌(斯盧六村)의 촌장(村長)들이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서 덕성을 겸한 임금 옹립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할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때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근처에 하늘에서 땅에 닿도록 신기한 빛이 비추고 흰말(白馬)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찾아가보니 말은 하늘로 날아가고, 자주 빛의 큰 알이 하나 있었다. 알을 깨고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찾아와 춤을 추었다. 알이 둥근 박(瓠)과 같다고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고, 몸에는 광채가 나와 그로 인하여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다. 나이 13세에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은 국호를 徐羅伐(서라벌) 또는 徐伐(서벌) 혹은 斯羅(사라) 또는 斯盧(사로)라 하였다.

[환단고기의 고구려 본기 제 6] 사로(斯盧)의 시조 혁거세왕은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 황제 궁실의 娑蘇(사소)라는 여인이 남편 없이 아이를 잉태 하여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만주 흑룡강성)에서 도망하여 東沃沮(동옥저)에 이르고 또 배를 타고 남행하여 진한의 奈乙村(내을촌)에 당도 했을 때 蘇伐都利(소벌도리)가 소문을 듣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길렀는데 나이 13세가 되자 다 숙성하여 聖德(성덕)을 두루 갖추었기에 진한의 6부에서 居世干(거세간:거슬한(居瑟邯)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나벌(徐那伐),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혹은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 BC 37년 경성(京城)에 금성(金城)을 쌓고, BC 32년 금성에 궁궐을 지었다. 서기 4년 봄 3월 왕이 승하하시니 사능(蛇陵)에 장례를 하셨는데 曇巖寺(담암사) 북쪽이다. 본문 끝.

상기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환단고기]의 사서(史書)에 기록된 지명을 살펴보면 첫째 양산(楊山), 둘째 돌산(突山), 셋째 취산(嘴山), 넷째 무산(茂山), 다섯째 금산(金山), 여섯째, 명활산(明活山)이 있었다.

지금의 경주가 신라의 도읍지(都邑地)라는 고증(考證)은 찾아 볼 수가 없어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와 조국을 배신하고 일왕에게 충성하며, 죽을때까지 부귀 영화를 누린 한민족의 반역자이자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만든 현행 국사에서 경주가 신라의 천년 도읍지로 지정돼 있을 뿐입니다.

1905년 국권을 탈취한 일제는 하느님을 숭배한 한국인의 천손사상(天孫思想)과 부모국의 한국 역사를 말살하지 않고, 어찌 식민지로 통치할 수 있겠으며, 전통적 민족문화를 말살하지 않고 어찌 우리나라를 영원히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즉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는 1910년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조선사를 가장 공평하게 저작한다는 미명으로 한국의 국내는 물론 중국 각처에 산재했던 우리나라의 환인, 환웅, 단군관계의 증서 적 고대 사료를 전부 다 색출 수거하여 무려 20만권을 불태워 없애고, 거룩한 성군(聖君)의 역사를 짤라 없애고, 한국의 전통적 고유문화를 철저히 말살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철저히 말살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국사는 현대사를 제외하고, 우리국민의 손으로 만든 국사가 아니고,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식민지시대에 일왕의 칙명을 받고,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켜 대한제국을 일찍 멸망시키기 위한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망국적 국사입니다. 

즉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는 인류의 부모국이며, 4대문명과 종교 원천국의 우리역사를 말살하고, 세계적 대국의 고조선 삼한(진한, 마한, 변한)과 아세아적 대국의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의 4국을 한반도 속으로 축소하여 한반도 속의 소국 적 사대역사관과 철저한 식민지사관의 망국적 치욕과 패배의식의 역사로 구성되어 대한민국의 장래를 망치고 있습니다.

경주는 신라의 도읍지가 아닙니다

경주는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식민지 시대의 1913년 경주고적보존회가 창설되어 1915년부터 옛 객사 건물에 신라 유물을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1926년 9월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되고, 해방과 더불어 1945년 9월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개편되었다. 1975년 7월에 현재의 위치에 본관을 신축하여 이전하고, 8월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실은 제1실이 선사시대실, 제2실이 고신라토기실, 제3·4실이 고신라공예실, 제5실이 와전실(瓦塼室), 제6실이 통일신라토기실, 제7실이 통일신라 금속공예실, 제8실이 조각실로 되어 있다. 별관은 천마총과 제98호 고분 유물실이며, 정원에는 성덕대왕신종 및 석탑·석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에는 안압지관(雁鴨池館)이 개관되어 안압지 출토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월성군·영일군 지표조사 보고서〉·〈경남지역 도요지 조사보고서〉·〈황성동 유적 발굴 조사보고서〉·〈민애왕릉 주변 정리보고서〉 등의 조사보고서를 출간했다.[브리테니카 백과 사전 참조]

상기 [브리테니카 백과 사전]과 같이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가 거짓 가짜로 지정한 신라 천년의 왕도 경주(慶州)를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신라 1,000년의 왕도(王都)로 인식하고 “아...! 황성 옛터의  신라의 달밤 ” 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켜 대한제국을 일찍 멸망시키기 위해 설치된 조선사편수회의 핵심위원이었던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삼국사기의 중국 지명을 한반도 내의 지명으로 얽어 맞춰 신라, 고구려, 백제, 및 가락국의 4국 영토를 한반도 속으로 축소 변조했던 것이다.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가 거짓 가짜로 만든 국사교육에 무려 61년 동안 세뇌되어 뇌리 깊숙이 각인된 거짓 지식으로 분별력을 상실하여 현행 국사가 “근본적 뒤틀린 실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고증에 의한 역사적 진실”도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습성이 한국인의 고치기 어려운 가장 슬픈 고질적 병폐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당국자는 거짓 가짜로 만든 국사교육에 세뇌되고, 왜독에 중독되어 천인공노할 일제의 만행을 깨닫지 못하고, 경주를 신라천년의 도읍지로 둔갑하여 세계인이 인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포장하고, 7천만 대한민족은 참과 거짓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넋을 잃고 있으니 한국인의 고질적 병폐를 그 누가 치유할 수 있겠는가?

머리는 짤라 버리고 전신이 유린되어 오늘도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으나 이미 눈과 귀가 먹은 대한의 아들딸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하는 장손국의 천손들이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아...! 통한의 한국역사여...! 하늘을 우러러 땅을 치며 통탄할 뿐이다. 

 한국정신문화선양회 대표  박병역(朴炳譯)
천년의고도 07/04/08 [16:20] 수정 삭제  
  잔혹하고 굴곡된 역사가 결국 신라 왕능이나 도읍지까지 왜곡시켜버렸구나.
우리는 이런 사실도모르고 역사를 배워왔네요.
역사학자들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대표님이 진실을 밝혀주세요.
이형만 07/04/09 [01:22] 수정 삭제  
  선생님의 민족의식으로 깨우쳐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한많은 우리 민족 아닙니까? 플코에 가끔 오지만 알찬 기사가 많이 있더군요. 많은 분들이 의식을 가지고 이곳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리...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도대체 07/04/09 [16:13] 수정 삭제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기간은 길어야 고작 50년(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왜변부터 쳐도) 고대사 관련 사료를 말살,조작할수는 있었다해도, 천년 사직의 신라의 도읍지가 경주가 아님에도 경주로 신라역사 전체를 통째로 조작했다는게 말이되나??
우리나라가 인류의 부모국??에다가 4대문명과 종교의 원천국?? 이라고?? 별미친놈들이
유치하고도 치졸,천박하기 짝이 없는 한국판 시오니즘을 마구 퍼뜨리는 구나!!!

그따위 요설은 결코 애국도 아니고 올바른 민족주의도 민족사관도 아닌, 만화영화만도 못한,치졸,천박하기 짝이없는 열등감과컴플렉스의 발로일뿐!

그렇게 따져서 끝없이 올라가면 결국 이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원숭이의 자손아니면 대체 뭐며, 하늘아래 천손민족 아닌 민족이 어디있나??
박병역 07/04/09 [19:14] 수정 삭제  
  제목 : 도대체는 일본 망령에서 벗어나세요

도대체 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부정할 것입니다.
현행 국사는 근현대사를 제외하고 우리국민의 손으로 만든 국사가 아니고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식민지시대에 대한민족 정신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켜 대한제국을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한 계략으로 거짓 가짜로 만든 조선사(현행국사) 교육에 무려 61년 동안 세뇌되어 참과 거짓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기원은 지금부터 약 1만년 경의 빙하기가 끝나고, 기원전 약 9천년 경부터 세계의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문헌상으로 현존 인류의 기원은 불과 8~9천년의 역사를 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가 무려 7,000여년의 역사를 말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인류의 부모”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원숭이류에서 진화되어 사람이 된 것처럼 진화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필명 [도대체] 그대는
원숭이의 자손이요 사람의 자손이요

1만년의 한국 영욕사(榮辱史)를 납득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제의 만행부터 깨닫지 않으면 고증에 의한 필자의 외침도 부정 할 것입니다.

우리역사를 조금이라도 탐구한 사람은 대한제국을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나라의 역대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 허물을 과장하게 들추어내서 거짓 가짜로 조선사(국사)를 만들었다는 [조선사 편찬지침]이 지금 대한민국 정부문서 보관소에 소장돼 있습니다. 제 정신이 있는 정상적인 한국인은 누구나 일제의 만행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는 세계적 대국의 고조선 삼한과 아세아적 대국의 3국(신라, 백제, 가야국)을 한반도 속으로 축소하여 대한민족의 자긍심을 없애고, 또한 무려 7천년의 고대사를 짤라 없애고, 무려 20만권의 사서(史書)를 불태워 없애고, 인류의 부모국이며, 4대문명과 종교 원천국의 역사적 흔적을 철저히 말살했습니다.

도대체님은 한국정신문화선양회 // 홈=http://www.coreaspirit.com 을 찾아보면
일제가 우리국사를 어떻게 말살, 왜곡, 변조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 제시하여, 제 정신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단 한번만 읽어 봐도 천인공노할 일제의 만행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며, 근본적으로 뒤틀린 현행 국사를 곧 바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님은 아래의 홈을 찾아서
http://www.coreaspirit.com/
우리역사의 실상부터 공부 좀 하세요

1억원 현상금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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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와 본서를 탐독한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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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일제와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의 학설을 제외하고, 경상북도 경주가 신라 천년의 도읍지가 될 수 있는 증서(證書)를 고증서(考證書)로 입증하여 제시한다면 즉시 1억원을 지급할 것을 엄숙히 약속한다.
한국정신문화선양회
대표 박병역
정동진 07/04/10 [15:25] 수정 삭제  
  만일 위 사실이 맞다면 이글을 기고한 박병역 대표님은 2호를 빠른 기일에 발표하십시오.

지금까지의 잘못이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기에 부탁합니다.
고조선부터 1만년에 가까운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지워버리려는 일본과 일본에 빌붙은 친일사학자들을 밝혀내야 합니다.
좀더 명확하게 증거자료를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병역 07/04/10 [17:25] 수정 삭제  
  정동진님...! 넷티즌 여러분...!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지가 아니다
제1 주제 ->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왕능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제2 주제 -> 박혁거세왕과 김유신의 묘는 중국에 있다.
제3 주제 -> 경주의 선도산(仙桃山)은 가짜이고 중국에 있다.
제4 주제 -> 선덕여왕능의 낭산(狼山)은 중국에 있다.

제5 주제 -> 경남 김해의 수로왕능은 가짜무덤이다.
제6 주제 -> 백제는 한반도 속에 없었다.
제7 주제 -> 조선의 한양(漢陽)은 일제가 급조했다.

제8 주제 -> 중국의 3황5제는 한국의 조상이다.
등의 주제로 연재할 것입니다. 넷티즌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한국정신문화선양회
대표 박병역/올림
지켜보는이 07/04/10 [17:48] 수정 삭제  
  제8주제에서 '한국의 조상이다'가 아니라 '조상이 한국이다'로 바뀌어야 되는것아닌가요? 감사합니다. 기대되는 글입니다. 역사 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청산은 병행되어야 하며 플러스코리아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박병역님과 리복재대표님, 금소산 본부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님들은 이시대의 선구자이십니다.
황박사님지지자 07/04/11 [17:49] 수정 삭제  
  선생님들이 애국자이고 민족을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다음 편 기대 됩니다.
강상만 07/04/11 [19:38] 수정 삭제  
  이 기사가 사실이면 우리 역사계가 나서야할 것입니다. 우리민족 우리의 위대성을 널리 알려주십시오. 박병억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님이 우리나라의 애국자이십니다. 다음편을 기대하겠습니다.
박병역 07/04/12 [12:00] 수정 삭제  
 
➤ 넷티즌 힘으로 망국적 국사 반드시 바꿉시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독립국이 되었으면 조국을 영원히 멸망시키려 했던 식민사학자가 만든 망국적 치욕의 국사는 당연히 폐기처분하고, 조국에 목숨을 바친 민족사학자님이 저술한 사료(史料)를 근간으로 반드시 “정통적 국사로 정립”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고 민족정신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국사를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이 우리나라를 찬탈한 침략자와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죽을 때까지 일본왕에게 충성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거짓 가짜로 만든 망국적 치욕의 국사에 대해 해방 62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단 한번의 비평과 검증도 없이 그대로 청년학도들에게 교육하고 있는 민족이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 민족인가? 얼빠진 민족입니까?

넷티즌 여러분...!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왕에게 충성하며, 일본학자들 보다도 더 악질적인 범행을 자행한 민족의 반역자이며,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민족사학을 정립한 선구자로 추종하며, 온갖 궤변(詭辯)으로 망국적 국사를 사수(死守)하고 있는 반민족적 무리들과 일본인들은 본 논설의 연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방해 공작 책동을 서슴치 않을 것입니다.

본 플러스코리아 넷은 망국적 국사철폐와 친일청산과 관련하여 어떠한 권력, 정치세력과 야합하지 않을 것을 넷티즌 여러분 앞에 엄숙히 선언합니다. 그리고 한,중,일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고증서로 명확히 입증하여,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력화시키고, 현행 국사를 사수(死守)하는 무리들을 척결하고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철폐하는 그날까지 정부당국자와 투쟁하여 기필코 승리할 것입니다. 넷티즌 여러분의 적극적 성원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근본적으로 뒤틀린 국사 개편”은 오직 정부당국자(대통령,교육인적자원부, 국사편찬위원회)가 진실로 각성하고 반드시 개편하겠다는 결단에 의해 국책으로 삼았을 때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가장 중대하고 제일 먼저 시급히 척결해야할 일제 청산 제1호입니다. 대한민국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하여 이 보다 더 시급한 국책은 없을 것입니다.

얼빠진 당국자를 각성시켜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반드시 철폐하고, 올바른 국사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7천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넷티즌 여러분의 전폭적 지지가 절대적 요건입니다. 넷티즌 여러분과 동심 일체로 굳게 뭉쳐서 구국적 운동에 적극 동참하시어 일제가 만들어 준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반드시 바꿉시다! 바꿉시다...! 감사합니다.
한국정신문화선양회
대표 박병역(朴炳譯)/올림
천지 07/04/13 [16:12] 수정 삭제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도 신라의 금성이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하였으며 다만 마지막 임금 경술왕이 고려태조왕건에게 항복을할때에 마지막 남은 신라땅을 경주라 하였다고만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신라의 수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모르고(?) 있었다고 추측하거니와 그후 800 여년이 지난 지금 김부식이도 모른다고 한 신라의 수도를 경주라고 단정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보아도 신라의 수도가 경주라고 단정할수 없는 것임을 통찰 바랍니다.-도데체 님에게-
후후 07/04/16 [08:27] 수정 삭제  
  그래 위대한 신라다,,,
니미럴,,,

신라가 경상도 촌구석에 있다는 것이 억울하지?
사소 07/04/20 [13:33] 수정 삭제  
 

역사기록의 의미는 개인이 쓴 일기보다 더 엉터리인가? 조회(12)

배달민족필독조항 | 2007/04/15 (일) 13:26 공감(0) | 스크랩(0)



(트랙백 : 역사기록의 의미 )

역사기록의 의미는 개인이 쓴 일기보다 더 엉터리인가?

한 사람의 일기는 민족과 나라는 물론 세계도 바꾼다.


많은 이들은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 가끔은 과소평가할 때가 많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역전을 보면서 진솔된 인간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고 들을 당시에는 감동한다.

자기도 그렇게 살겠노라 다짐하면서 몇일을 노력한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면 또다시 보통의 사람으로 돌아와 있는 자기의 일상을

되돌아보곤 남모르게 허탈해 한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의 아주 정상적인 흐름이다.

모두가 다 성공하고 싶고 돈많이 벌어 풍족한 생활을 하고싶어 하리라.

세상사의 흐름은 시류라는 것이 있다.

오늘날 이 시류는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있는지 없는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대다수이리라.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우주의 흐름에 따른 일정한 룰과 주기가 존재한다.

우주의 섭리는 인간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지만

정작 우리 인간은 직관력의 퇴화와 문명이기의 폐해로 인해

하물며 우리가 가장 업수여기는 개, 돼지보다도 뒤떨어진다고 한다면

필자를 욕하리라.

그러나 참이니 어쩌랴!


오늘날 현대인들의 의식은 말초신경만 발전하여 외모나 향(체취), 습식의 정도와

같은 아주 형이하학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는 곧 인류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고
,
차후에는 환경파괴와 생태계변화를 유발하여 우주공멸의 단초를 제공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개인의식의 퇴화현상은 곧 인류역사의 퇴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인류애가 살아있고 도덕과 양심, 민족과 타인을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인간성이 확립되어야 우리사회는 더 선진화된 국가로의 진입이

앞당겨질 것이다. 우리민족만이 아닌 다른 모든 민족도 ................

인간성이 있는 민족들로 지구가 형성된다면 인류의 역사는

시원의 역사대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두뇌속에는 인류시원의 유전인자가 프로그램화 되어있지만

아직 인류사회의 환경자체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시원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제프로그램처럼.....


더 쉽게 설명드려 윈도우시스템의 프로그램을 맥시스템의 컴퓨터에서

사용하려는 경우와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국가의 정치시스템도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국민의 사고와 행동은 21세기를 가고 있지만 국가의 운영시스템이 20세기시스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작동불가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개인, 가정, 단체사회, 국가단체, 국제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되는 역사의 되물림시스템인 것이다.


우리정부는 우리의 한단역사를 지금까지 무시해오다

올해부터 단군왕검의 조선시대를 역사로 인정한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요란하기만 했지 중,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보면

우리정부 부서인 교육인적자원부가 얼마나 국민을 농락했는지

아시게 될 것이다.

가까운 대형서점에 가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국가는 우리국민을 이렇게 무시하는가?


지금 서울거리나 지하도 곳곳에는 춥고 배고픈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대도 앞 정부의 실책만을 호도하고, 과거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우선 그들에게 삶의 본질을 심어줄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 주는 정부가

되고 난 다음에, 북한에게 줘야할 것이고, 아프리카 기아해방에도

참여해야할 것이다.

자기백성도 못 먹여살리면서 뭔 남의 백성을 살리려고 하는가?


북한은 우리의 한민족 이기 이전에 엄연히 분리된 하나의 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햇볕정책도 좋고 지원도 좋다. 하지만 우리가 준 것에 대한 결재권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정부는 그것조차 북한정권에 일임해버렸다.

개인의 상식으로도 남을 도와주면 모든 권한이 도와주는 사람의 명의로

채권이나 요구사항이 있기마련인데 말이다.


우리정부는 구렁이 담넘어가는 정치를 하고 있다.


특히 역사부분에서 보면, 미국정부에서 한국상고사에 대한 채택자료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자국역사를 무시하고 채택하지않는

이런 엉터리국가정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미국과 서양은 우리의 상고사를 인정하고 있는데 인정치 않고있는

교육인적자원부나 국사편찬위원회는 아직도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못한

식민사학자들이나 이 밑에서 배워온 재식민사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때문이며,

차기정부의 리-더는 이들부터 정리할 수 있는

역사관이 똑바로 서있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중국은 우리의 치우천왕도 자기들의 시조로 가져갔는데

우리의 정부와 역사학자들은 도대체 뭣들하고 있는지....................

백두산에 이어 만주땅도 영원히 자기들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수년간 수작을 벌이고 있는데 왜 우리정부와 역사학자들은

찍소리도 못하는지..................

하긴, 이불속에서 만세야 잘 부르지만.....


가장 만만한게 홍어(*)이라 했던가?

재야사학자들에게는 그리도 군림하려드는 자들이



중국역사학자나 일본역사학자들에게는 입만 다물고 있는가?


나가서 싸워라

싸울 수 있는 능력이나 학술적인 대안이 없으면

우리 정통역사학자들에게 넘겨라
.
수많은 민족이 갈구하는데 그냥 이대로 있을 수 없지않겠는가?

사소200704151450
사소재기200704192345

박병역 07/04/26 [11:44] 수정 삭제  
  회원 여러분
아래의 글을 탐독하시면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는
중국 대륙에서 건국된 신라를 한반도 속으로 얽어 맞추어 놓고

한국인들이 경주를 신라 천년의 고도로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도록
의 관광안내도까지 만든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얼마나 치밀한 계획으로 신라 천년의 고도로 조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36년 고도 경주
----------------------

...경주가 관광도시로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이지만 지금 당시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지난 2004년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를 발굴조사한 경주대학교 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건립된 불국사 철도관광호텔터를 확인하였고 건물의 규모를 밝히고 각종 생활유물을 수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호텔은 불국사 복원정비사업에 의해서 1973년에 철거되었지만 지난날 경주지역의 관광사업과 관련된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경주지역을 회고하는 여러 글을 읽다보면 시바타 여관(柴田旅館), 다나카 사진관(田中寫眞館)과 같은 이름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현재의 경주시가지 안에서 그 옛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는 없다. 필자는 작년 우리 연구소를 방문한 사이토 타다시 선생을 안내하였다.

...당시 사이토 선생은 청년기에 근무했던 구 경주박물관 건물(현재 경주문화원)을 둘러보고 자신이 살았던 여관의 흔적을 찾으면서 당시 경주박물관 주변 풍경에 대해서 여러 가지 모습을 설명해주었다.

...그 내용을 들으면서 일제강점기 경주시가지 풍경에 대해서 다시금 돌이켜볼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다시보는 경주와 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 1993)과 『경주의 옛 사진집』(경주문화원, 1994)이 있지만, 당시 경주읍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한일문화유적답사연구소의 故박정호 선생이 소장한 라는 관광지도를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지도는 1936년 12월 1일 경주읍 서부리 124번지에 소재한 다나카 동양헌 사진관에서 발행한 관광지도로 당시 경주시가지의 옛 모습과 관광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려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장자의 양해를 구한 후 본 지면을 빌려서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관광안내도인 는 두터운 표지 안쪽에 양쪽으로 인쇄된 지도를 삽입하여 붙인 형태로 전체크기는 가로 10.8㎝, 세로 23.4㎝이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61.7㎝, 세로 46.0㎝이다. 지도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앞면에는 주요 관광지를 그림과 설명문으로 나타낸 지도가 칼라로 인쇄되어있고, 뒷면에는 가 단색(갈색)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시내 주요 건물들의 위치와 관광기념인을 날인할 수 있는 담뱃가게와 여러 가게들의 위치가 표시되어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당시 경주읍의 여러 가지 현황들이 게재되어 있는 점이다. 먼저 경주읍의 전체 인구를 살펴보면 한국인(조선인)은 18,846명으로
남자 9,300명, 여자 9,545명에 호구 수는 3,827호이며, 일본인(내지인)은 1,008명으로 남자 513명, 여자 495명에 호구 수는 252호이다.외국인은 국적이 표시되지 않았지만 총 36명으로 남자 28명, 여자 8명에 11호였다. 따라서 당시 경주읍의 인구는 19,748명임을 알 수 있는데, 일본인이 차치하는 비율은 전체 가구 수의 6.58%였다.


...이외에도 여러 기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표시되어 있는데, 관공서는 경주군청, 경주세무서, 경주읍사무소,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 대구전매국 경주판매소, 경상북도 경주사방(砂防)사업소, 경주경찰서, 경주우체국, 경주역(機關區, 保線區), 곡물검사소 부산지소 경주출장소,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등 모두 11곳이 있고, 주요 단체로는 제국재향군인회 경주분회, 국방의회, 경주 소방조, 경주 청년단, 경주(조선인) 부인회, 경주군 체육협회, 경주 번영회, 경주 상공회, 경주고적보존회, 적십자사 경주위원회, 애국부인회 경주분회, 경주 불교부인회 등 12곳과 경주군 농회(農會), 경주학교조합, 경주금융조합, 경주동부금융조합, 경주산업조합, 보문수리조합 등 6개 조합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주주재소, 경상합동은행 경주지점, 경주전기주식회사, 경주양조주식회사, 경주국자(子-누룩)주식회사 등 5개 회사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내에 소재한 가게들은 업종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데, 토산물 가게로는 골동품 가게와 사진관, 과자가게가 등재되어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나카 동양헌(유적 그림엽서, 관광품, 기념사진 등), 구리하라 상점(각종 골동품), 부인상회·신라당(각종 관광 기념품 일체), 후지이 상점(鈞鐘煎餠-종 모양의 과자, 기념품 과자류), 나카무라 상점(기념품, 일본·서양그릇 등)과 같은 상점이 6곳과 여관 7곳(시바타, 아사히, 마쓰야, 慶州, 安東, 京城, 月城여관), 일본인이 운영하던 잡화점 7곳(木下, 村上, 松嘉, 松瀨, 阪本, 中島, 藤戶상점), 과자가게 2곳(木浦상점, 東光상점), 철물점 3곳(小森, 竹內, 古村상점)과 가와히양조소, 가와히약국, 築城상회, 福助요리집, 미우라양복점, 하시모토정미소, 하시모토약국, 文進堂인쇄소, 博文堂인쇄소, 龍野자동차, 彦陽자동차, 李反물점, 나가노공무소, 우에노재목점, 야마모토재목점 등이 등록되어 있다.

...이러한 현황으로 볼 때 당시 경주읍내에 거주한 일본인들은 전체 인구의 6.58%에 지나지 않지만, 경주읍 안에 소재한 여러 상점들을 대부분 소유함으로써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인보다 훨씬 좋은 여건 아래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주주재소, 경상합동은행 경주지점과 같은 식민지지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업들의 존재로 볼 때, 일본인들은 경주읍에 거주하면서 조선총독부와 관련 기관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관광 부분에 있어서 경주박물관 소장품 현황이 소개되어 있는데 석기시대 100점, 신라시대 400점, 고려시대 50점, 조선시대 30점, 석조물 100점 등 모두 680점의 유물이 소장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세한 내용이 들어있는 경주관광 안내도가 만들어진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지도 앞에 적힌 글 내용처럼 경주의 고적을 빠른 시간 안에 둘러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관광유람차의 존재를 홍보할 목적과 함께 시내 여러 곳에 소재한 상점의 이용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주읍내에 소재한 여러 고적들을 자동차로 관람할 수 있는 관광유람차는 적어도 1곳 이상의 업체에서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지도에는 중앙로에 위치했던 오카모토유람자동차에 대한 내용만을 소개하고 있는데, 고시된 를 살펴보면 이용요금은 구간별 정액제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광지도에 게재된 관광구간을 살펴보면 먼저 시내구간과 서악동·동천동구간 그리고 불국사·괘릉구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동차의 특성상 기본 탑승인원인 4명을 기준으로 요금이 책정되어 있는데, 인원이 늘어나면 추가분에 대한 요금이 증액되고 있다. 이 경우 별도의 차량이 운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관광지 요금 특기사항

1. 분황사, 석빙고, 포석정, 오릉(황룡사, 첨성대, 안압지, 계림서행)개개 관람시간 약 5분 4명 - 金 2원50전
1명이 늘어나면 매 사람마다 25전이 증액됨. 소요시간
약 1시간 - 임대요금은 滿員의 요금임

- 4인 미만의 경우에는 4인 요금을 받음
2. 무열왕릉 및 사면석불 안내 4명 - 金 1원20전
1명이 늘어나면 매 사람마다 20전이 증액됨 소요시간
30분
3. 경주~불국사간 편도 도로 직통안내 4명 - 金 2원50전
1명이 늘어나면 매 사람마다 50전이 증액됨
상기 코스에 포함된 괘릉순회 안내 4명 - 金 1원20전
1명이 늘어나면 매 사람마다 20전이 증액됨
4. 역에서 맞이하는 경우 1명 20전
1명이 늘어나면 매 사람마다 20전이 증액됨


...고도유람 자동차로 읍내 여러 유적을 모두 둘러본다고 가정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4인 기준으로 7원40전이다. 이 금액을 당시 쌀 가격을 기준으로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해서 살펴보면, 1935년 쌀 80㎏의 가격은 17.8원(1936년 경성상공회의소에서 소비자물가지수를 조사하였을 때 쌀 80㎏의 가격은 17.8원이었다)이므로 2006년도 정부추곡수매가인 118,460원(80㎏)과 비교하면, 당시 1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약 6,655원이 된다.

...따라서 경주읍내의 여러 유적들에 대한 관광을 자동차를 빌려서 할 경우 소요되는 전체 비용은 약49,247원이 된다. 그런데 이 당시 물가를 쌀 가격이 아닌 금(金)의 가격으로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연방준비은행의 금 매입가격으로 정한 1온스당 35$였던 금의 가격은 지금 현재 672.2$이므로 전체 물가는 19.21배가 올랐다. 그러므로 현재 화폐개혁을 통해서 평가절하된 화폐가치를 반영시킨 비용은 341,760원이 된다. 2007년 현재 경주에서 택시를 하루 임대해서 관광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이 19만원(평일)인 점으로 본다면 당시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매우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유적관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에 게재된 시가지 약도를 살펴보면 현재 모습으로 정비된 경주시가지 이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현 대릉원 북쪽을 지나가는 부산-대구 철도선로의 존재와 경주읍성 안쪽에 위치한 여러 관공서 건물의 존재이다. 대부분 지금 시가지 안에 위치한 관공서의 위치와 동일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재판소는 경찰서 서쪽으로 이전하기 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지금은 없지만 대구로타리에서 동서방향으로 가설된 철도는 앞으로 이루어질 발굴조사를 통해서 그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이 1936년에 제작된 경주관광지도를 살펴본 결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경주시가지의 옛 풍경을 조금이나마 되짚어 볼 수 있었고, 당시에 이루어진 관광사업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 경주지역의 관광산업은 위기라고 이야기되고 있고 시민들의 걱정도 많다. 그러나 지난날 경주를 찾았던 사람들이 바라보던 풍경과 오늘의 경관 사이에서 무엇이 바뀌고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관광도시 경주의 풍경은 지난 과거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올해 3월 1일 자료제공자였던 한일문화유적답사연구소의 박정호 선생님이 갑자기 타계하였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이 글을 마친다.


작성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차순철

약..력

현. 경북 경주 소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 위덕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실 전임연구원
- 영남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과 연구원 등 근무


연락처 054-777-8841.. csc@ocp.go.kr

참고= 신라사학회에서 복사했습니다.
홈=> http://cafe.daum.net/sillasa
고민중 07/05/03 [22:26] 수정 삭제  
  그럼 신라의 수도는 어디란 말이요? 글이 뭔가 이상하잔소?낚시글도 아니고 ...신라의 수도가 어디란 말이요??
다물흥반 07/07/05 [13:21] 수정 삭제  
  재등실 : (일어로)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반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1922년 조선총독 재등실.

まず!... ちょせんじ たちが じぶんの こと, れきし, こん`とうも しらずに しろ. みんぞんこん, みんぞしぶんかを そうしつしこ かれらの, そせんと せんじん たちの, むのう, あっこうを, さがしだして それを こちょうして. ちょせじん こうそん だちに おしえれ. せいそうねんだちが かれの ふちょろを けいしして, づっしする かんじょろを つくりだしこ ーつの きふうに しろ. そうしたら ちょせんじん せいそろねん だちが 自國の すべての じんふ゛つと しせきに ついて. ひてい てきな ちしきを まなぶから かならず しつぼうと きょむかんに おぼれるだ. その時 日本の しせき, 日本の ぶんか, 日本の いだいな じんぶつを, しょうかい したら どうかの こうかが うまれる のだ. これが 日本が ちょせじんを 日本人化にして つくるのが もんだいだ.
실체를보자 07/07/08 [22:49] 수정 삭제  
  네티즌들도 한국 네티즌들만 잇는게 아닙니다. 한국인 행세하며, 자기역사를 부정하듯
얼굴에 침뱉는 말을 서슴치 않는 중공인(화겨,쪼선족,한족),섬나라 네티즌들이 한국말
써가면서 박병역님을 음해할겁니다. 지금 한국 포털은 한국인 행세하면
중공인들이 설치고 이간질,분란 일으키고, 네이버,중소포털 이런데는 얼빠진 쪼선족들이
한국(인)음해하고 이간질,분란일으키는데 아주 앞잡이 노릇하고 잇죠. 건전한 비판을
넘어서 자학수준의 한국(인),역사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을 한번 저들이라고 생각해
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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