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단편소설] 잃어버린 이야기 5회
4. 일주일이 지나서 진설은 그녀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선생님, 책은 잘 읽었습니다. 그 책 속의 주인공에 비하면 전 참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께서 책을 주신 이유를 알았답니다. 출판사를 통해서 선생님 주소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편안하게 살고 있답니다.
그동안 제 남편은 많이 변했고,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물론 여자 문제 때문에 무척 힘든 일이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제 남편은 어머니만큼은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제비족이 된 것까지도 어머니 핑계를 댈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하는데 자기가 쉽게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은 그 방법뿐이라고요.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남편에게 맘 잡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답니다. 시어머니도 제 병시중을 받으면서 제게 대하시던 모습이 많이 변하셨던 것이지요. 선생님 오셨던 날 남편을 소개해 드리려 했답니다. 먼 길 오셨는데……. 너무 죄송했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들리십시오. 제가 이렇게 가정을 되찾은 것이 선생님께 더 좋은 글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그 사내가 제비족 남편이었다니!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도 있을까? 아무리 주변의 환경이 작용했다고 해도 단물을 빨아 먹던 나비가 그 꿀을 쉬 포기할 수 있었을까? 여자는 언제 다시 품을 떠날지 모르는 철새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혹시 다시 날아가 버릴 철새라도 좋으니, 제발 다시 돌아만 와 달라고 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철새의 날개가 부러진 것인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는지 자문하던 곽진설은 깜짝 놀란다. 가슴 속 깊은데 숨어 있던 그녀에 대한 자기의 연민이 그를 부정하도록 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설은 애써 감정을 추스른 다음, 그가 정말 날개를 접고, 영원히 그녀의 품속에서 안주 해 주기를 기원했다.
곽진설이 다시 정선을 찾은 것은 태백에 관광단지가 들어선 해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이다. 콧등치기 국수라는 것이 정선의 명물로 알려졌지만, 진설한테는 황기족발이라는 메뉴가 더 식욕을 돋웠던 기억이다. 그는 우정 예전의 그 가건물에 들려 부담 없이 커피 한잔 하고 갈 생각으로 차 머리를 돌린다. 외관상으로는 전과 다름없으나 이제는 어엿한 가게로 변모된 느낌인데 그것은 ‘골짜기 휴게소’라는 제법 돈을 들인 것 같은 간판 때문이다. 앞뜰에는 레저용 차 두 대가 주차해 있다.
“안녕하세요?”
진설은 아내를 앞세우고 유리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동그란 눈동자가 반가움에 깜짝 놀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50대 여인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로 두 사람을 맞는다. 안에는 다른 두 쌍이 난로 옆으로 자리를 잡고 빈대떡과 묵을 시켜먹던 참이다. 진설은 그들의 반대편 통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으면서 의아한 눈길로 주변을 살핀다. 처음 그들을 맞이한 여자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려니 했는데 그런 사람은 따로 없고, 주인이 아주 바뀐 모양이었다.
그 여인은 옛 주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매가 돌부처처럼 우람해서 한때 잘나가던 마나님이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했고, 짙은 화장으로 미루어 여염집 여인의 탕 끼가 서려 보이는 것이 옛 주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렇다고 형제간도 아닌 것 같다. 진설의 아내는 팔을 잡아끌면서 의미 있는 눈짓을 보낸다. 여자가 바뀌지 않았느냐고. 그냥 나가자고.
“뭘 드릴까요?”
“아, 예. 그 좀 기다리세요.”
“우리, 커피 주세요. 당신 황기 족발 먹는다며? 여기서 배 채우면 안 되잖아요.”
진설은 아내의 주문대로 따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종이컵 커피 두 잔을 잡은 그녀의 도톰한 손가락에는 굵은 금가락지가 반들거린다. 진설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싶었다.
“전에 여기서 장사하던 아주머니는 고만두었나요?”
“그 왜, 얼굴 예쁘장하고 눈 큰.”
진설의 아내도 거든다.
“예, 그, 그 여자. 그 사모님, 그래요.”
여인은 조금 허둥대고 있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을 들먹인 것인지, 그녀는 얼굴에 무엇인지 모를 두려움까지 내비치고 있어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이 가게를 인수하셨나 보군요. 언제요?”
아내가 묻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퉁명스럽게 입을 연다.
“좀 되었어요. 그런데 왜 그러는데요? 이 가게는 인수한 것이 아니고, 그 사모님께서 저희 먹고살라고…….”
“예, 그분 참 친절했었는데, 기억이 나서요. 서울로 갔나요?”
“어디서 오셨는지, 하여튼 저희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랍니다.”
괴이한 일이다. 대답을 하는 모양새가 너무 허둥댄다. 지금 이 여자는 외모에서 풍겨오는 느낌과는 정반대로 누군가에게 주눅이 든 사람처럼, 예전의 그 여인을 두려워하는 기색이니, 아무리 돌려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아주머니가 얘기하는 사람이, 그 왜 키는 작은 편이고, 갸름한데 눈 크고, 맞죠?”
다른 사람 이야기인 것 같아 진설이 다시 묻는다.
“그 이야기는 더 못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을 이으려 할 때, 유리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낚시 복장을 한 건장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고, 그녀는 표정을 바꾸며 얼른 그 남자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남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진설에게는 안면이 있는 얼굴이다.
“자기, 벌써 낚시 끝났어?”
“응, 얼른 정리하고 가요. 형님들이 기다려. 찬거리 챙겼지요?” “알았어. 곧 돼.”
남자는 말을 높였는데, 여자는 내린다.
사내는 다리에 문제가 있는지 걸을 때마다 몸이 윈 쪽으로 기우뚱거린다. 그는 실내에 있는 손님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표정 없는 얼굴로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 사람은 예전의 그 사내였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은 세월 탓일 것이다. 안주인만 바뀐 꼴이다. 전 주인 내외가 이 여자에게 가게를 물려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설은 마시던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아내와 끄덕끄덕 눈길을 주고받은 그는 서둘러 커피값을 내고 밖으로 나가 차에 오른다. 여인으로부터 안녕히 가라는 통상적인 인사도 못 들은 채 . “여보! 도대체 말예요.”
진설의 아내는 잔머리를 굴리면서 남편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어떻게 된 일이죠?”
남편도 대답이 쉬 나올 리 없다. 먼저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녀는 남편이 새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고 저들에게 그 여자에 대해서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녀가 주인 여자에게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 사람들, 부부가 맞겠지요?”
진설의 아내는 집히는 구석을 자꾸 확인하려 든다.
“나이 차이가 십 년은 돼 보이던데……. 말투가 부부는 확실했어요."
“…….”
“그 착한 마누라 내 쫓고 저런 돼지 같은 여자가 어디가 좋아서. 남자들이란 정말 모르겠어.” 그의 아내는 분을 삭이지 못한다.
“당신은 그 여자 잘산다고 했잖아요.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셨죠? 사람이 쉽게 변하지 못해요. 누가 알아요? 전에 그 여자, 지금 팔자 고쳐서 잘살고 있는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아요, 우리.”
단순하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니, 팔자를 제대로 고쳤겠지. 그래서 어떤 힘이 생겨 곽진설이 상상 못 하는 모종의 복수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여자가 그렇게 모진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스스로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숨긴 채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내는 무슨 답변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일까. 진설은 차가 정선 시내로 접어들 때까지 한 마디도 대꾸를 못 하고 그 여인의 정체를 쫓고 있었다. 그들이 콧등치기 국숫집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메뉴를 확인할 때 진설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곽진설입니다.”
전화를 받는 진설의 표정은 차츰 놀라움으로 가득 채워진다.
“아, 예 안녕하세요?”
진설은 매우 놀라며 아내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안 그래도……. 그렇지요.”
진설의 표정이 묘하게 어두워진다. 그의 아내는 진설의 표정 읽기에 여념이 없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예, 안녕히…….”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던 곽진설은 통화가 끝났는데도 전화기 홀더를 덮지 않고 망연자실하여 전화기 회면 만 바라보고 있다.
“무슨, 여자 목소리네요! 그 여자?”
진설의 아내가 눈치를 살핀다. 진설은 아내의 눈길을 피해 출구 쪽 유리창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아니, 뭐예요? 당신. 누구 전화예요?”
“……!” “무슨 일이에요? 당신.”
“그 여자 맞아! 전에 그 여자 전화였어.”
진설의 입가에 실소가 돈다.
“예? 아니 당신, 언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었어요?”
“아니야, 그런 일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래서 뭐래요?”
“자기, 잘살고 있다고. 그 얘기 쓰지 말아 달라고.”
“오라! 이제 살 만해지니까 부끄럽다는 말이겠군요? 사람 일이란! 거 봐요, 팔자 고쳤다고 내가 그랬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야. 남자 다리를 자기가 부러뜨려 놓았다는 거야.”
“……?”
진설의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가 사람을 잘 못 봤어. 내가 소설화시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투였어. 내 다리도 부러뜨릴 기세였어. 당신 이해가 가?”
진설은 표정이 파랗게 질리는 아내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지금 콧등치기고 뭐고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강가를 거닐면서 물 마른 강바닥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나마 그들이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아우라지’에 서린 애틋한 사랑의 전설 때문이었다.
<끝>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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