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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수 없는 과거청산, 어떻게 해야 하나

"남아공 ‘진실과화해위원회(TRC) 활동’의 성격을 중심으로"

김영수 칼럼 | 기사입력 2008/12/21 [11:29]

미룰수 없는 과거청산, 어떻게 해야 하나

"남아공 ‘진실과화해위원회(TRC) 활동’의 성격을 중심으로"

김영수 칼럼 | 입력 : 2008/12/21 [11:29]
[이 글은 김영수 한신대 대학원 강사가 서해문집 발행 <내일을여는역사> 16호(2004.6) 특집 ‘미룰 수 없는 친일파 청산’에 기고한 것으로 출판사와 내일을여는역사 연구진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문제의식

중남미 대륙의 과테말라, 칠레, 멕시코,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와 아프리카 대륙의 나이지리아, 토고 등은 1980년 초반부터 각종의 ‘진실위원회(Truth Commission)’를 결성하여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려고 하였고, 한국도 국가의 폭력적 만행이나 민족반역자의 행위를 청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4년 4월 현재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국무총리소속 제주4·3사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조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에 ‘일제하 반민족 친일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한다’는 목적의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되었다. 오욕의 역사를 청산함과 동시에 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활동이 준비된 상태이다. 지난 95년 동안 민족을 팔고 민중을 억압하여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했던 친일세력의 가면을 벗기는 마당극이자, 그러한 가면을 제작하여 공급했던 사회구조의 폭력을 규명하는 민족재판이다. 문제는 ‘한 명의 관객조차 없는 마당극’으로 끝나 버리거나 친일세력에게 역사적인 면죄부를 제공하는 ‘정치재판’으로 끝나버리는 경우이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역사적인 활동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을 끝으로 특별법의 시효가 만료될 수 있다. 소위 역사의 범죄자 중에서 ‘몸통은 건드리지 못하고 깃털만 건드리는 활동’으로 끝날 수 있다.

조만간에 반민족행위자들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가 결성될 것이다. ‘마당극’과 ‘민족재판’의 연출자와 재판관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위원회가 어떠한 활동의 원칙과 기조를 가지느냐이다. 남아공의 사례가 그 원칙과 기조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된다.

최근 과거를 청산하는 역사적 활동을 전개한 국가가 남아공이다. 남아공은 지난 300여 년 동안 존재했던 인종학살 및 인권침해의 역사를 바로 잡는 과거청산 활동을 전개하였다. 백인 지배계급은 1948년 이후 총 33개의 인종차별적인 법을 제정하여 흑인 및 타인종을 탄압하였고, 흑인 피지배계급 역시 그러한 법의 정당성에 저항하는 폭력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60년 3월 이후 1994년 5월까지, 백인들은 흑인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백인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약 3백5만여 명이 국가의 폭력으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였다. 남아공의 흑인 정권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진실과화해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의 투쟁’이 전개되는 공간이었다. 남아공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행했던 야만적 행위들을 다시 살려내는 치료, 즉 역사적인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 과정이었다.

남아공에서는 ‘인종통일및화해촉진법(The Promotion of 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Act)’이 1995년 7월 25일에 제정되었고, 1995년 11월 성공회 대주교 투투(Desmond Tutu)를 위원장으로 선임하였다. 이어서 17인으로 구성된 ‘진실과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가 발족되었고, 이 위원회는 1998년까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위원회는 3년 동안 1960년 3월 1일에서 1994년 5월 10일 사이에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위원회 활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몇 가지 원칙들을 고수하였다.

이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화해’는 ‘용서’보다 오히려 ‘존경스러운 기억’을 요구한다는 성격을 유지하였다. 이는 위원회 활동의 원칙과 기조에 반영되었다. 진실만이 용서와 화해로 가는 지름길이고, 야만적인 인류의 역사를 규명하는 작업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간주하였다. 남아공의 ‘진실’에 대한 역사를 새롭게 쓰기 위해서는 역사적 ‘징검다리’가 필요하고, 그러한 징검다리를 이행기 민주화 과정의 주요 수단으로 삼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징검다리 중의 하나가 바로 ‘진실과 화해 위원회’였다.

위원회 활동의 ‘포괄성’

1948년 12월 10일에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류 구성원들은 천부의 존엄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어떠한 종류의 차별을 받지 않으면서 이러한 존엄과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전문에서 밝히고 있다. 모든 인간들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 및 권리,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및 형벌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부의 존엄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란 인간이 자연인으로서 누려야만 하는 총체적 ‘권리’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권리는 법과 제도에 의해 침범되어서도 안 되고 타인에 의해 침범되어서도 안 된다.

위원회의 목표는 세계인권선언에서 기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과 총체적 권리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반인권적 폭력의 원인, 성격, 정도 등, 즉 총체적인 인권침해를 희생자의 관점뿐만 아니라 폭력행사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동기와 관점, 그리고 폭력의 전례, 정황, 요인 등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가능한 한 완전하게 밝혀서, 희생자의 운명과 행방을 알리고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 및 명예회복, 그리고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인간이 생활하면서 타인이나 공권력에 의해 침범될 수 있는 제반 영역을 상정하였다. 인권침해의 성격, 원인, 규모 등에 대한 연구과정에서 전례연구, 정황파악, 요인, 내용, 동기 등을 포함시켰다. 그래서 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하는 방식도 총체적이었다.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사실 및 법의학적 진실, 관련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한 진실, 인권침해의 사회적 기제에 대한 규명의 진실, 치료 및 회복을 통한 진실” 등이 총체적으로 조사되고 평가되었다. 조사내용은 “총체적인 인권침해에 있어서 개인·정부당국·제도 및 기관의 일치성 여부,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국가나 국가기관에 의한 의도적 계획의 여부, 총체적인 인권침해의 체계적인 패턴의 여부, 권고안 및 법·제도적 보완장치의 제시” 등이었다.

또한 위원회는 인권침해를 은폐하기 위한 각종의 자료와 논문(article)에 대해서도 조사하였다. 해바라기 지식인들은 아파르타이드 체제 하에서 지배세력의 폭력에 대해서는 ‘곡필의 폭력’, ‘침묵의 폭력’, ‘방관의 폭력’ 등을 행사하였고, 인종차별주의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직필의 폭력’을 행사하였다.

보상 및 권고안의 내용 역시 위원회의 총체성이 드러나게 한다. 위원회는 직접적인 사망 이외에도 심리적 폭력, 가족폭력, 공동체 폭력 등의 피해를 조사하여, 그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보상의 원칙도 마찬가지였다. 즉 “민주주의 발전의 원칙, 단순함과 효율성의 원칙, 문화적 접근의 원칙, 공동체에 기반하는 원칙, 발전능력을 제고시키는 원칙, 치료와 화해를 증진시키는 원칙” 등이 반영되었다. 사회체제의 총체적인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보상의 방안도 이러한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개별적인 경제적 보상, 사회적 상징의식 구축, 공동체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의 구축 등의 방안들이 권고안으로 제출되었다. 이는 인권침해에 대한 사회적 방어 시스템의 구축, 인권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고양을 추구하는 것이다.

위원회 활동의 ‘개혁성’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된 남아공 사회의 핵심적 과제는 정치영역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역의 민주화였다. 흑인들은 정치적 참정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법·제도의 민주적 개혁과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역의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영역의 민주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아공의 사회적 하부구조(social infra-structure)는 흑인들을 실질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배장치였기 때문이다.

사회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사회체제의 하부구조는 민주적 변화에 적응·동참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체제의 민주적 발전과 개혁적인 사회통합이 가속화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인종 간·계급 간의 갈등이 사회적으로 현실화된다.

아파르타이드 체제의 직·간접적인 지배장치에 대한 개혁정책은 남아공의 사회적 하부구조, 즉 지배장치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억압적 지배장치들은 인권침해의 직접적인 가해자라 한다면,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들은 간접적인 가해자들이었다. 사회적 이데올로기 양성의 역할을 하는 지식인, 언론기관, 자본진영의 기구 등이 간접적인 가해자들이었고, 감옥이나 사법기구 등은 직접적인 가해자들이었다.

위원회는 이러한 지배장치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개최하였고, 지배장치가 개혁되어야 할 필요성과 정당성을 제시하였다. 아파르타이드 체제의 정당성을 옹호하거나 그러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집행했던 언론, 자본진영, 감옥, 사법기구 등에 대한 ‘기관청문회’였다. ‘지배장치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문회는 과거의 인권침해기구들을 사회개혁의 주체로 변화시키는 과정이자, 새로운 사회에서의 인권문화의식의 강화, 인권침해에 대한 자체분석, 자기반성 등을 유도하는 몸짓’이었다.

자본진영에 대한 청문회에서 다룬 주요 의제는 노사관계를 개혁하는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노동현장에서의 성희롱, 억압적 노무관리, 산업재해, 기아임금, 노동복지, 사회적 서비스의 문제, 실업문제, 노동조합운동 탄압 등”을 다루었는데, 이는 사회경제적인 화해와 평등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법 기관에 대한 청문회에서는 “법과 정의의 관계, 법 체계를 평가하는 원칙과 기준, 사법부의 독립성과 판결의 관계, 사법부와 행정부와의 관계, 사법부 관료를 지명하는 문제, 보안법을 적용하는 문제, 법조인을 배출하는 문제, 인종차별법이 집행되었던 체계의 문제, 법 체계의 개선과제 권고” 등이 제기되었다.

위원회 활동의 ‘투명성’

남아공의 위원회는 출발부터 위원회의 관료화를 배제하려 하였다. 투투(Tutu) 위원장은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공언하였다. “위원회는 언론에 대해 자유롭게 공개할 것이다. 비공개적인 운영으로 의문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남아공의 위원회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 사면을 결정하는 과정, 다양한 보상대책과 권고안을 마련하는 과정,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투명한 공개성의 원칙’을 유지하였다. 정당, 사회단체, 운동단체 등에 대한 조사청문회는 필요에 따라 비공개적으로 개최되기도 했지만, 대중청문회는 ‘대중의 참여, 대중의 토론, 대중의 비판’ 등을 보장하면서 공개적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위원회에 수집·정리되는 자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먼저 위원들이 몇 단계의 공개적인 과정을 거쳐 지명되었다. ANC정권은 위원회의 위원들을 선발하기 위해 ‘정치활동의 경험이 거의 없는 인권운동가’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모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297명의 후보자들이 지명되었다. 그리고 국회는 297명의 후보자들을 공개적인 검토과정을 거쳐 45명의 후보를 선발하였다. 이들은 또다시 공개적인 인터뷰를 거쳤고, 이 과정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후보자 25명이 최종적으로 선발되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만델라 대통령은 25명의 후보자 중에서 마지막으로 17명의 위원들을 지명하였다.

둘째로는 인권침해위원회나 사면위원회 모두 공개적인 청문회를 개최해야만 했다. 인권침해위원회의 청문회는 1996년 4월 15일부터 시작하여 1997년 8월 15일까지 총 76회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청문회는 1회 평균 3∼4일 동안 진행되었다. 반면에 2000년 11월 1일 현재, 사면청문회는 사면신청자 7천112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셋째로는 인권침해 청문회는 피해자들이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과정이었으며, 여기에서 밝혀진 내용들을 조사평가의 자료로 활용하는 과정이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청문회는 생방송되었고, 7개의 언어로 방송되었다. 피해자들의 발언 내용들은 위원회의 기본적인 자료로 정리되어 조사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또한 공개청문회를 위한 다양한 목격자들이 선발되기도 했다. 남아공의 인권침해가 ‘집단적이고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수의 목격자들이 인권침해의 사실들을 사회적으로 공개하고 객관화시키는 주요 동력이었다. 사면위원회의 청문회 역시 사면 신청자들의 구체적인 폭력행위를 밝히는 과정이자 그 내용들을 조사평가의 자료로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대중들에게 정보를 공개(public information)하는 것이었고, 각 지역에서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공개적인 ‘진실규명작업’(public meeting, public workshop)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공개적인 포럼을 개최하였고, 그 결과를 위원회의 운영에 반영시켰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공개성의 원칙은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관철되었다. 보고서의 체계를 공식적으로 기획하기 이전에 ‘기획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가 공식적으로 진행되거나 그 기획초안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연구부(research department)에 참여한 사람들은 매우 자주 세미나를 개최하여 진행현황에 대한 평가를 공개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각 장의 제목들이 신문에 공개되고, 그러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하였다.

위원회 활동의 ‘객관성’

위원회 활동은 객관적으로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그 활동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를 위한 기초적인 전제 조건은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투투 주교는 위원장직을 수용하면서 “위원회의 활동은 완전하게 독립적이다”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는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법36조는 “위원회나 위원들은 그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독립적이거나 무정파적이어야 한다. 위원회에 속한 사람들은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기능을 발휘할 것이고, 정당, 정부, 행정으로부터 독립, 위원들의 제반 활동이 위원회 개인들에 의해 위협받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위원회는 흑인정권이나 백인들의 정치적 영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활동하였고, 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규명하려 하였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원칙은 조사 지침과 구체적인 조사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다. 피해자들이나 가해자들의 개별적인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정책이나 국가기구 등도 조사하였다. 진상을 조사하는 ‘지침’에 명시되어 있다. “정부 수준의 정책, 특수기관 및 특수조직, 권력남용의 체계적 형태, 국제적 요인, 조직적 저항의 가능성”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위원회는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 저항운동의 주체들도 조사하였다. 백인과 백인을 지지하는 흑인들은 인권침해의 주요 가해자들이지만, 흑인 정치조직에 의해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백인을 지지하지 않은 흑인들은 주요 피해자들이었지만, 백인 및 백인을 지지하는 흑인들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위원회는 인종을 구별하지 않고 접수된 모든 가해자들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를 중심으로 한다”는 원칙이 유지되었다. “희생자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조사, 희생자들을 차별 없이 조사, 희생자들에 대한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지원·소명과정, 희생자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책 마련, 희생자의 언어 선택의 자유 보장, 비공식적인 해명 기회 제공” 등이 그것이었다. 증언자들 역시 이러한 원칙에서 적극적으로 보호되었으며, 증언자들과 가해자들과의 상호주의도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위원회 활동의 이러한 성격은 인권침해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만을 체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위원회는 인권침해의 자료들을 구축하였다. 그것은 “피해자의 진정 내용, 7천여 명에 달하는 사면 요청자의 제출자료, 백인 정권이 인멸한 자료의 복원, 방대한 구술자료, 증언자료, 신문자료, 비디오자료, 수백 개의 제출자료” 등의 축적이었다. 위원회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판단하였으며, 그러한 판단 내용을 보고서에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위원회는 조사의 객관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진술을 대할 때마다 모든 증거를 참조한 후에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그럴듯한 쪽의 진술을 채택하였다.”

남아공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는 인종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통합’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과거의 상처를 형식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치유하려 한 것이다.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역사의 징검다리(historic bridge)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원회의 활동은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의 징검다리, 현재와 미래의 징검다리인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역사적 결정체”였다.

남아공 진실과화해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의의를 집약하여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위원회의 활동은 남아공의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 공동 구성원들의 알 권리와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통제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둘째, 위원회의 활동은 ‘인권사회의 정체성(identity)’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단순하게 과거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상과 그 보상대책을 마련하는 데 머무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통합의 디딤돌을 형성하려 하였다. 셋째, 위원회의 활동은 남아공 사회의 재건과 사회구성원들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과거의 인종차별주의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철폐된 민주주의 사회로 건너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넷째, 국가의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위원회는 개별적, 시민운동, 민주화운동 단체, 정당 등의 기구를 중심으로 자료를 조사·수집하여 정리하였고, 피해자들의 진정서와 가해자들의 사면신청서에 제시된 내용들을 국가기록의 차원으로 복원시켰다.

그러나 완전한 진실과 정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의 진실이 왜곡될 수 있듯이, 현실의 진실도 왜곡될 수 있다. 한편 과거의 정의가 현실의 부정의가 될 수 있고, 현실의 정의가 미래의 부정의로 변할 수도 있다.

인종차별주의체제가 남아공 사회에서 철폐되었다 하더라도, 흑인들은 현실적으로 ‘새로운 인종차별의 진실과 정의’에 직면해 있다. 인종차별주의 체제의 모순이 형식적 수준에서만 해결된다면, 이는 역사의 또 다른 퇴행이다. 남아공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종화해와 민주주의’는 인종 간의 ‘사회경제적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남아공 사회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인종차별체제를 다른 각도에서 규명할 수 있다. “노동착취, 문화의 부패, 관습과 사고방식 등의 문제, 영국 식민주의 체제의 유산인 연방주의의 문제,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문제, 흑인들의 가난 문제, 아파르타이드 체제 하에서 정착된 법적 구조의 문제, 그리고 홈랜드(homeland) 내 전통적인 갈등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남아공 사회체제의 변혁적 과제들이 현실의 진실과 정의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하부구조의 민주적 개혁, 흑인공동체에 존재하는 생활문제의 개선, 그리고 민주적인 인권국가의 토대를 강화하는 것 등이다. 남아공에서는 미래에 청산해야만 할 새로운 과거가 시작되고 있다.

과거청산은 일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가 추구했던 원칙과 기조를 반영한 성격, 즉 ‘포괄성, 개혁성, 투명성, 객관성’ 등이 과거청산을 위한 활동에 반영되어야 한다.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안’으로 구성되는 위원회도 최소한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가 추구했던 활동의 원칙과 기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청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역사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수 선생은 한신대학교 대학원 강사로 「화해는 용서보다 진실을 요구한다-남아공 민주주의의 역사 현재 미래」, 「국가 노동조합 노동자 정치 남아공의 변혁운동과 노동조합(편저)」,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의 역사적 재조명과 현재적 의의」, 「남아공 진실과화해위원회의 활동과 성격」 등 많은 논저를 저술했다. 현재 남아공과 한국의 노동자 문제에 대한 역사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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