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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는 한반도-만주를 '문명시원지'로 공식화해야

서해지역의 마고문명에서 단군조선 낳은 요하지역의 한국.배달문명

윤복현 저널리스트 | 기사입력 2009/10/05 [12:05]

유네스코는 한반도-만주를 '문명시원지'로 공식화해야

서해지역의 마고문명에서 단군조선 낳은 요하지역의 한국.배달문명

윤복현 저널리스트 | 입력 : 2009/10/05 [12:05]

전제:유네스코는 공식적으로 현인류문명의 시원지을 한국으로 인정.발표해야 한다
 
일본왕실의 뿌리는 백제인들임을 주장하는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라는 책의 내용이다. 이 책은 존 카터 코벨과 앨런 코벨이 함께 저술하였으며 여러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단군조선을 인정하고 현인류문명의 기원을 한국이라 말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는 현인류문명의 시원지로써 서해지역까지 추적하지 못한 한계성이 있지만, 만주지역을 현인류의 시원지역으로 유네스코가 인정했다며 다음과 같은 것이 보인다.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 과학 문화기구)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이라 할 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지역에서 대량의 탄미가 발견함으로 시작됩니다. DNA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것이 판명됨으로서 농사기술이 첨단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됩니다.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며,1만 7천년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람의 DNA검사결과 평균 수명이 1000세입니다.고조선 이전의 왕국을 인정합니다. 노예제도가 없었던 유일한 환국의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합니다. 사람이 하늘이라 믿는 신앙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수가 없는 사상입니다."
 
▲  동북아시아 개들의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명견 진돗개. 이러한 사실로 보아 마고성의 중심지는 서해 진도지역이라 추정된다. 진도에 콤파스 꼭지점을 정하고 원을 그리면 원 안에 들어오는 지역이 바로 현인류문명의 시원지역이 되는 동방문명권이라고 볼 수 있다.
태양으로 상징되는 광명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지향한 한국의 강강술래를 인류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유네스코가 "현인류의 기원을 한국으로 인정한다."면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역시 동방(동북아시아 지역)은 현인류문명의 빛이였다는 인류사적 사실로 세계가 인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가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기위해 고고학적 증거들을 제시하기로 한다. 1만년 이전을 기준으로 세계 최초에 해당하는 '대한민국(한국)' 문화유산은 다음과 같다.
 
언어(한국어:세계언어의 조상어는 한반도사투리, 인도유럽어의 기원이 되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는 인도로 들어 온 고대 한국인들의 언어)와 문자(중국의 한자,몽골문자.슈메르 설형문자.인도문자.유대인들의 히브리문자.페니키아인들의 알파벳 문자의 기원이 되는 신시배달국의 녹도문자)의 시원민족이다.
 
1)선박 만들기 세계 최초 8천년 전(경남 창녕군 부곡면 출토) - 고대 한반도인들은 해양족 2)고래잡이 세계 최초 8천년 전(경남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3)쌀농사 세계 최초 1만 5천년 전(충북 청원군 출토) - 중국과 인도의 쌀의 조상은 유전학적으로도 한반도 쌀 4)신석기 세계 최초 2만년 전(전남 장흥군 출토) 5)토기 세계 최초 만 수천년전(제주도 고산리 출토) 6)고인돌 및 천문 세계 최초 8천년 전(전남 화순군) 7)빗살무늬토기 세계 최초 8천년전(강원도 양양군 출토) 8)인류의 인문학의 발전을 가져다 준 세계최초 금속활자 직지심경 개발 9)세계최초 자연화약 및 화포개발(고려 최무선) 10)세계최초 로켓 신기전 개발(조선) 11)세계최초 철갑선 개발(이순신과 호남인들) 12)세계 최초 체세포 줄기세포개발(황우석연구팀) 13)세계최대 규모의 서울 한강지역의 전방후원분 등등
 
계획적인 좌뇌(이성뇌)와 즉홍적이고 감정적인 우뇌(감성뇌)를 조화롭게 사용할 줄 아는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두뇌가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유전학적으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뇌속의 한민족 유전자를 부활시켜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인류사와 접맥시켜 한민족사를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함으로 바로 세움으로써 현인류문명에 크게 공헌해 온 자랑스러운 1만년의 민족임을 선언하고 민족기강과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고 하루에도 수 없이 터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서로가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이념이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을 만들 때이다.
 
서해의 마고문화를 계승하여 유라시아 초원과 만주를 연결하는 요하지역에 꽃핀 배달문명
 
1.현인류의 시원 마고문명의 중심지는 1만년 전 육지였던 서해지역
 
세계 개들의 조상은 유전학적으로 동북아시아 개들이다(미국 생물교과서). 그러면 동북아시아 개들의 조상은 유전학적으로 누구인가? 그건 마고문명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서해지역 진도의 진돗개로, 영리하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대한민국 명견인 진돗개는 동북아시아 개들의 DNA를 모두 가지고 있다. 고대 한국인들의 서쪽으로 이동하여 건설한 이집트(아이집터) 피라미드 벽화에도 개가면 그림이나 개 그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대에 한국인들이 이동하면서 개들을 사육하여 사냥에 이용하고 육식으로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 문명의 특성과 동일한 중국의 요하문명 또한 1만년 전 중국과 한반도 연결되어 육지였던(호주 시드니 대학 지질학과 연구결과 보고서 내용) 서해지역의 마고문명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고는 여성통치자다.황하문명의 뿌리가 되는 요하문명의 특징도 마고를 상징하는 여신을 숭배하는 모계문화다.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고인돌과 지리산에서도 마고전설이 서려 있다.
 

한반도와 연결되는 '발해연안벨트문명'이라고도 불리워지는 홍산배달문명이 존재하는 요하지역은 한인 한국과 한웅 배달국의 문명중심지로 중심산은 천산과 태백산이였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마고성을 중앙 아시아 지역 파미르 고원으로 비정하고 있으나, 이건 잘못된 논리다. 마고성은 서해지역에 존재했으며 마고성에서 북문을 통하여 천산지역으로 간 사람이 한인씨의 조상인 황궁씨임으로 서해지역의 마고성 북쪽이면 정확히 요하지역의 천산이며, 요하문명은 고고학적으로도 이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문명의 생명수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삼족오 설화와 관련한 천제 준이 살았다는 대황지역에 속하는 압록강지역에는 환인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2.고산숭배신앙을 가진 고대 한국인들의 나라 한국과 배달국의 역사활동의 중심지역
▲ 한국.배달국.단군조선 발상지 요하지역 - 중국의 황하.중동지역의 슈메르 문명의 발원지. 

서해 마고지역이 바다가 되면서 마고 대다수는 거리가 가깝고 땅이 비옥한 한반도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여 '한(환)을 의미하는 태양숭배와 모계중심의 마고문화를 그대로 계승하여 정착하였다. 그래서 단군3조선 중에서 한반도지역을 마한.마조선이라고 불리운 것이다.그리고 훗날 부여(고구려.백제),흉노.선비족(신라.가야) 등 기마부대를 통하여 한반도.일본지역의 마한족을 지배하게 되는 북방계 한국인들의 조상이 되는 황궁씨는 북쪽지역으로 계속 이주하여 요하를 거쳐 바이칼호수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온화했던 시베리아 지역의 날씨가 추워지자 다시 남하하여 조상인 황궁.유인씨의 터전인 요하지역으로 이주하여 모계중심의 마고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던 곰족과 융합하여 배달문명을 낳고 단군조선을 낳은 것이다.

▲ 고대 한국인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남미지역에 건설한 아즈텍 피라미드. 이집트,마야,아즈텍 피라미드 건축목적은 고대 한국인들의 광명신앙인 태양(한=칸=안)숭배에 있었다.
고대로부터 한국인들에게 있어 높은 산은 광명의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태양과 비를 내리는 하늘과 통하는 장소로 생각되어 제사를 지내는 지성소였다. 동북아시아인들의 고산숭배가 여기서 나왔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아즈텍 등 사막이나 평지로 이동하여 살게 된 한국인들은 산이 없기 때문에 피라미드나 지구라트를 만들어 제천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단군조선이전에 배달문명이 자리한 요하지역를 역사의 중심무대로 삼고 있었던 배달국과 한국의 중심산은 요하지역의 천산.태백산이었지 백두산은 아니였다.
 
한인씨가 살고 있던 파나루산은 천산(하늘산)으로 지금의 요하지역의 한산(罕山 1929m), 혹은 서한산이라고 부른다. 선비족의 동족인 오한족의 근거지가 되는 오한산(烏桓山)이라고도 했다. 서한산의 정상에는 평지가 있고, 그 중앙에는 홍지수(泓池水)라는 연못이 있는데 천지(天池)라고도 불렀다. 홍지수가 홍익인간의 뿌리라는 의미일까? 태백산에는 조천지(朝天池)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백두산 천지로 생각할 수 없다. 백두산 천지는 기원전 200년의 폭발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이래로 동북방 지역을 역사활동무대로 삼았던 한민족에게 백두산은 민족과 국가의 발상지이며, 생명력있는 산으로서 민족의 성산(聖山)·신산(神山)으로 숭앙되어왔다. 단군조선 이래 요서지역의 번조선이 위만세력과 한나라에게 붕괴되고 진시황의 진나라와 한무제의 한나라의 동방진출로 인하여 요서.요하지역의 단군조선유민들이 백두산과 가까운 동북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부여·고구려·발해 등이 요하지역의 천산과 태백산을 대신하여 백두산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백두산 주변의 숙신족·읍루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 등도 그들 민족의 성산으로 숭앙하여 역사화·전설화·신격화했다. 고려출신의 신라왕족의 후손인 김함보 후예의 나라인 청나라의 번영도 태산(泰山)·장백산(長白山) 지맥설(支脈說)을 통해서 풍수지리상으로 백두산의 정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1000년 전 화산폭발로 지금의 천지가 형성된 백두산. 단군조선 이래 요서지역의 번조선이 위만세력과 한나라에게 붕괴되고 진시황의 진나라와 한무제의 한나라의 동방진출로 인하여 요서.요하지역의 단군조선유민들이 백두산과 가까운 동북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부여·고구려·발해 등이 요하지역의 천산과 태백산을 대신하여 백두산에 기원을 두게 되었으며, 백두산 주변의 숙신족·읍루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 등도 그들 민족의 성산으로 숭앙하여 역사화·전설화·신격화했다. 북한의 경우도 김일성이 항일빨치산투쟁을 벌이고 김정일이 태어난 백두산지역을 신성시 하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뿐만 아니라 북방민족의 정신적 구심점과 활동무대가 되어왔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청나라는 백두산을 장백산신(長白山神)에 봉하고 출입·거주를 제한하는 봉금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개척하자 백두산을 그들의 영토로 귀속시키려고, 1712년 일방적으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백두산정계비). 그 내용 가운데 토문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청나라와의 사이에 영토분쟁이 발생했으며, 간도 및 녹둔도의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1909년 청·일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으로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결정되었으며, 지금 백두산은 천지까지도 분할되어 천지 북쪽 2/5는 중국측에, 남쪽 3/5은 북한측에 속한다.
 
지금의 천지를 만든 백두산의 대규모 화산폭발은 지금부터 약 1,000년 전인 고려시대 초기에 일어났을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97년(선조 30) 8월 26일, 1668년(현종 9) 4월, 1702년(숙종 28) 4월 14일의 3번의 분화가 기록되어 있다.천지를 만든 백두산의 화산폭발은 매우 강대하여 화산재가 대류권 상층까지 올려져서 이곳에서 부는 강한 서풍인 제트기류에 의해서 백두산에서 약 1,000㎞ 떨어진 일본의 동북지방 북부에서 홋카이도[北海道] 남부까지 흩어져 있다.
 
이 화산재는 그 성분이 천지 주변의 회백색 부석과 같으며, 가까운 동해 밑바닥에서는 10㎝ 내외의 두께이고 멀리 떨어진 일본 북부에서는 5㎝ 내외로 보다 엷어진다. 일본에서는 이 화산재가 헤이안[平安] 시대 후기의 유물포함층에 존재하여 10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반에 화산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두산 정상부에서 부석으로 덮여 있는 탄화된 나무등걸을 이용한 탄소 동위원소 연대측정값도 1050±70년 B.P.(B.P.는 before present의 약자로 1950년을 기준하여 그 이전의 연대값을 나타냄), 1120±70년 B.P.를 나타낸다.
 
백두산의 화산활동은 천지 밑 62~67㎞ 깊이의 상부 맨틀 암석 중 방사능 원소들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열에 의해 암석들이 부분적으로 녹아서, 지하 3~5㎞ 깊이의 마그마 챔버에 모였다가 자체압력이 증가하면서 지각의 약선대를 따라서 분출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제3기말에서 제4기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지금부터 1,000여 년 전 대규모 화산폭발이 나타나면서 마그마의 저장고였던 마그마 챔버가 함몰되어 천지의 칼데라를 만든 후 화산활동은 차츰 약화되면서 휴화산이 되었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요하지역(흑수.백산)으로 이주해 온 한인씨.한웅씨
 
[한단고기]에 보면 "우리 한(桓)의 건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지금의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 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이 흑수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 왔는데 이에 한님(桓因)은 또한 감군(監郡)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내용의 요지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인씨가 흑수 백산의 땅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다. 한국의 위치에 대해서도 [한단고기]는 "천해 동쪽 파나루산 아래 한국이 있는데, 모두 12나라며, 동서 2만리 남북5만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해는 바이칼 호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바이칼 호수 동쪽에 위치한 한국의 중심지는 파나루산(하늘산=한산)아래 요하지역에 위치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인씨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살다가 기후변화로 인하여 남하하여 요하지역에 중심지을 정하여 마고문명을 계승한 한문명을 일으켰으며 유라시아-아메리카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된다.
 
▲ 한인.한웅족이 시베리아.바이칼호수에서 남하하여 터전을 삼은 역사활동의 중심지 요하지역

계속해서 한웅씨의 이주와 배달국에 대한 [한단고기]의 기록을 보자."뒤에 한웅(桓雄)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한인=광명신을 받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내용을 보면 한웅씨족은 한인씨족임을 알 수 있고 교통의 중심지를 천평으로 정하니 천평이 바로 청구라는 것이며, 신시를 도읍으로 삼고 나라이름을 배달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배달민족이라고 할 때는 한웅의 배달국을 기준으로 삼는 말이며 단군민족이라고 할 때는 단군한국조선을 기준으로 삼는 말이니 한인의 한국민족이나 한웅의 배달민족이나 단군의 단군민족이나 조선민족이나 모두 동일한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한겨레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한단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한인씨의 터전은 바이칼 호수와 몽골초원을 통하여 완만한 홍안령 산맥을 넘어 요하지역으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는 기후가 온화해서 유목생활하기가 좋았던 시베리아 지역이였음을 알 수 있고, 기후가 추워지자 따뜻한 남쪽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종족이 바로 한인씨의 후예 한웅족임을 알 수 있으며, 고고학적으로도 중국 황하문명의 근원이며, 이집트.아즈텍 피라미드 연대보다 1천년이 훨씬 넘는 초기 석석총들이 널려 있고,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는 슈메르문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하문명의 중심지가 되는 요하지역이 한웅족이 정착한 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산은 현재의 백두산이 아닌 요하지역의 태백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천산지역은 서해지역에 위치한 마고성이 점점 바다가 되면서 마고족이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질 때에서 마고의 율려를 반드시 회복하겠다며 북문을 통하여 천산지역으로 이주하여 도를 닦았다는 황궁씨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양심의 자유율법(율려)이 통했던 마고시대의 도맥을 계승한 황궁씨는 유인씨의 조상이고 유인씨는 한인씨의 조상이다. 율려국가란 예컨대 주인없는 가게라도 양심적으로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 가는 사람들의 나라를 의미한다.
 
3.고고학적 사료(위서로 취급받는 '한단고기'의 기록내용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고학적 자료로는 한인씨의 한국의 중심지역과 관련한 파나루산이 있던 부하진은 인류 최초의 복골(卜骨)이 출현한 유적지가 있다. bc3300년의 유적이라고 밝혀졌으니 은나라의 복골은 이보다 1000년 뒤의 것이다. 또한 주변 고성터의 흔적을 보면 bc3300년 이전의 유물과 유적 발견도 기대된다. 뒤에 흉노에 패망한 동호족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오환산, 혹은 선비산이라고도 하였다. 선비족이 터전으로 삼은 오환산주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작업은 한인씨가 한국의 중심지로 삼았을 지역의 실체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단고기]에 기록된 한인족이 살았다는 파나류산 모습이다. 한인족이 거주했을 파나루산(하늘산=천산)은 지금 한산(罕山 1929m), 혹은 서한산이라고 부른다. 흉노족에게 패망하여 도주한 선비족이 살았던 오환산이라고도 한다. 파나루산 정상에는 평지가 있고, 그 중앙에는 홍지수라는 연못이 있는데 천지(天池)라고도 불렀다. 한웅이 강림한 요하지역의 태백산에는 조천지(朝天池)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백두산 천지로 생각할 수 없다. 백두산 천지는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1000년 전 화산폭발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단고기]에 "세상에서 건국이 가장 오래 된 한국은 동서2만리 남북5만리로 천해 동쪽 파나루산 아래 있는데 모두 12나라의 연방국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천해면 바이칼 호수이고 바이칼 호수 동쪽지역에 한국의 중심지역에 존재하는데 파나루산 아래라고 명기되어 있으니 지금의 요하지역이라 할수 있다. 서해 마고문명을 계승한 요하지역은 1만년이후 한반도문명과 함께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에 문명을 전파하는 문명의 젖줄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환웅이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요하지역으로 들어와서 가장 높은 산 위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 보았을 것이다. 이 홍산문화권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난하灤河와 서요하西遼河의 북쪽 가지가 발원하는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으로서 높이는 2067m다. 이 대광정자산이 태백산 혹은 불함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한검이 나라를 개국한 곳도 바로 불함산이였다. [한단고기]는 그 때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 하였다." 단군한검이 불함산(태백산)에 올라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고 개국을 선포한 낸 후에 첫 도읍지로 삼았다는 아사달 또한 한국과 배달국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요하지역의 조양(아침태양=아사달)이였다. 조양지역은 고고학적으로 단군조선의 상징인 비파청동검이 최대로 발굴되는 지역이다. 따라서 조양은 옛 조선의 도읍지라는 중국문헌의 기록내용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지역이다.
 
▲ 환웅천황의 신시 아사달(백악산 아사달) 위치. 한웅천황이 배달국을 개국한 후에 첫 도읍지로 삼았던 신시 아사달은 색불루가 쿠테타를 일으켜 22대 단군천황에 올랐던 백악산 아사달이라고도 한다. 옆에는 해모수가 부여를 일으킨 웅심산이 있다. 고열가 단군57년, 4월 8일에 해모수(解慕漱)가 웅심산(熊心山)에 내려와 군사를 일으켰는데,그 조상은 고리국(藁離國=句麗國) 사람이다. 해모수는 은밀히 수유족(須臾) 과 내통하여 옛 도읍지 백악산(白岳山) 아사달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스스로 임검이라 칭했다.웅심산(熊心山)은 지금의 서란(舒蘭)으로 길림성 영길현의 서북방향이며, 나목하의 지류인 잡분하의 동쪽지역이다. 

커발한 환웅은 태백산에 내려왔다가 신시 목엽산에서 웅씨족과 결합하고 그 곳에 수도 아사달을 두고 시장을 열어서 문물을 모이게 하였다. 그러나 환웅의 도성은 다시 남쪽 청구, 그의 처음 개척지 천평으로 옮겨갔다. 한웅족과 웅녀족의 피를 직통으로 받은 단군족에게는 태백산(불함산)이 한웅천황이 강림했던 성산이지만 환웅에게는 그가 사냥하고 순수했던 여러 지역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왜냐하면 이 지역의 도자기는 갈도(褐陶)로서 홍산문화의 전형인 채도彩陶가 아니다. 즉 환웅이 강림하여서 마고문화를 유지하는 웅녀족과 결합까지 하였으나 정착하지 않고 돌아간 것이다. 웅녀족도 환웅족을 따라서 남천하여 능원현(凌源縣)의 우하량(牛河梁)에 자리잡고 그 곳에 살던 기존의 호족(예穢족=호랑이 토템족)을 밀어낸 것으로 보인다.
 
▲ 요하지역의 나리사대에서 발굴된 환웅-웅녀,곰 조각상

 
환웅, 웅녀의 만남은 이미 반만년전에 실재로 존재했던 사실이 이 나리사대 돌조각품으로 증거된다. 이 석조물들처럼 곰 부족의 여자가 소원하여 환웅의 씨를 얻어서 득세를 하고 호랑이족 예穢의 영역을 획득해 나간다. 그리고 그 서쪽의 임서현林西縣 쌍정雙井 백음장한白音長汗 유적지에서는 35cm 높이의 임신한 여신상生育女神像이 나왔다.
 
웅녀족이 환웅과 함께 예족의 땅을 빼앗아 옮겨간 곳으로 홍산문화의 정수격인 요녕성 능원시凌源市 우하량牛河梁 유적지가 있다. 유적지 최상단의 여신묘를 중심으로 반경 5km 안에 6개 지점에 걸쳐서 약 20개의 대형 적석총과 제단 등이 있다. 남쪽에 금자탑金字塔이라는 제사 건축지는 3단 원형 제단으로서 아랫단의 직경이 60m, 윗단의 직경이 40m에 이르고 그 위에 봉토를 하였다. 그리고 북쪽에는 200m X 200m 규모의 신석기 석성 터가 남아있다.
 
▲ 모계문화를 대변한 마고를 상징하는 여신상과 곰 턱뼈.
우하량 적석총에서 발굴된 유물은 거의 홍산문화 유물이며 청동기는 일체 없지만 제단의 규모, 왕릉의 규모가 세계적이라서 중국 역사학계에 역사적 쇼크를 주었다. 우하량 적석총 홍산문화는 시기적으로는 약 5,500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왕릉들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중국에서는 이 우하량 지역을 웅산熊山이라고 고려하면서 유웅씨有熊氏와 그 후예인 황제黃帝 헌원公孫軒轅, 그리고 황제의 손자 고양왕 전욱顓頊등의 조상으로 고려한다. 그리고 최상부의 여신묘는 복희와 부부였던 여와신女媧神이라고도 해석한다. 그러나 여와신은 복희와 함께 뱀으로 형상화되기는 했어도 곰은 아니었다. 이곳 여신묘에는 특별하게도 곰의 턱뼈가 부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홍산문화 적석총의 주인은 환웅족과 곰족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홍산문화 특유의 피라미드형의 적석총 묘제는 요동반도와 압록강의 적석총, 서울 송파의 적석총, 경주의 적석총으로 이어진다.
 
▲ 우하량에서 발굴된 옥기들 © 윤복현 저널리스트

 
우하량에서는 홍산문화의 최정수라고 할수 있는 각종 옥기들이 최다량으로 발굴되었다. 옥조룡(玉彫龍)이 대표적으로 많고, 구름무늬 옥패(玉牌), 옥벽(玉璧), 쌍련옥벽(雙聯玉璧), 삼련옥벽(三聯玉璧), 옥종형기(玉琮形器), 옥탁(玉鐸), 옥완(玉瑗), 옥비식(玉臂飾), 옥고(玉[]), 옥고형기(玉[]形器), 옥거북이, 새조각, 수면형(獸面形) 옥패식 등이다.우하량의 도기는 용린문(龍鱗文) 흑도(黑陶), 홍도(紅陶), 자도(紫陶) 등 채도가 많이 나오는데 종합하면 매우 강력한 신권 국가 체제라고 할 수 있다.

5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이 복희伏犧인데, 점복술로 인하여 여와복희의 전설을 남겼다. 그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 낙랑을 거쳐 진陳으로 갔는데 산서성을 다스리다가 산동성으로 갔다.

내몽고 오이길목륜하烏爾吉沐淪河 유역 파림좌기巴林左旗 부하구문화富河溝文化는 약 5300년전에 시작되었는데, 촌락의 방이 원형인 것이 추가되고有方形、圓形兩種 방 중앙에 화로 구덩이有灶坑가 나타나고 불을 피워서 추위를 막고 음식을 끓여 먹었고, 그외 뼈를 불에 구워서 점을 치는 복골卜骨이 나왔다. 이는 중국 최초의 복골이며 은허의 복골 문화가 본래 홍산문화 신시의 복희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즉 은나라 은허 문명은 바로 홍산 문화와 용산문화의 후손이다. 동시에 은나라 갑골 상형 문자도 여기서 발생하여 전래된 것이다. 배달국의 녹도문자에서 유래한 한자漢字도 중국인들의 독자적인 문화가 아니라 한국민족이 홍산문화에서 개발한 기호로서 만들어진 양의 문자이다.

요하지역의 홍산배달문화의 특징

1) 홍산문화의 첫 번째 특징은 한반도지역을 기원으로 두어야 하는 유물로써 한반도를 출발점으로 유라시아 지역에 분포된 빗살무늬토기를 들 수 있다.

2) 홍산문화의 두 번째 특징은 역시 한반도 마한인들의 특징으로써 다양하고 정교한 옥기다. 용, 돼지용, 물고기, 거북이, 매미, 부엉이 등과 같은 다양한 토템, 그리고 옥벽玉壁、옥환玉環、구름무늬장식勾云纹佩飾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3) 홍산문화의 세 번째 특징은 역시 한반도 마한인들의 고인돌양식과 동일한 돌무덤이다. 돌을 쌓은 적석총積石冢도 나타나고 석곽石槨 무덤과 석관石棺 무덤도 나타난다. 석관무덤은 요녕성 우하량牛河梁, 하북성 평천平泉 위장圍場 당산唐山 적봉시 홍산紅山과 하가점夏家店, 영성寧城 등에 존재한다.

4)네번째 특징인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한국인들의 특징인 화로를 이용한 난방과 역시 불을 이용한 복골의 출현이다.

5) 다섯번째 또한 한반도지역에 분포한 암각화의 기록이다. 태백산이었던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서요하의 지류인 케스케덴克什克騰旗 백분하百岔河 계곡를 따라서 신석기 시대부터 암각화가 발달해 있다. 강안을 따라서 100리에 걸쳐서 약 140개의 암벽에 가지가지 주제로 벽화가 남아있다. 바로 바다와 강에서 고기를 잡던 1만년이전의 마고족들이 한반도와 요하지역으로 이동하여 어로활동을 바위에 그린 것이다.

그런데 요하지역의 암각화는 여러곳의 암화와 비교하여 암각화 주제 중에 사슴이 유독하게 많다.사슴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요하지역으로 이주해 내려오기 전 시베리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한인.한웅족의 먹이의 상징이다. 부여가 원래 사슴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반면에 부루는 늑대를 가리킨다는데 단군 부루가 산동에 세운 낭사군 낭사대琅邪臺도 늑대의 낭狼이다.
 
▲ 케스케덴克什克騰旗 백분하 암각화 모음 


백분하 암각화에는 수렵화, 부엉이형 인물화, 군무화群舞畵, 생식화生殖畵, 천체성수화星宿畵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토성자에서도 사냥 기마도 같은 암화가 보인다. 대부분은 청동기 시대 예술로 추정하지만 일부는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현되어 신석기에 암각화가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암각화 주제가 주로 사냥과 목축이므로 유목민족의 생활이기에 환웅족이 마고족에 해당하는 곰족의 요하지역으로 유입되었다는 증거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요하지역의 홍산배달문화의 범위는 동쪽으로 요하(遼河) 유역, 서쪽으로 하북성 장가구시張家口 남쪽으로 북경北京과 천진天津 북으로는 서요하(西遼河) 북쪽까지 광할한 지역이다. 홍산문화는 대략 bc4800년에서 bc2200년까지인데 [한단고기韓檀古記-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기록상의 환웅시대인 bc3898년에서 bc2333년까지와는 하한(下限)이 거의 일치한다. 웅녀족과 같은 곰 토템을 현재도 가진 에벤키(鄂溫克, ewenki)족은 퉁구스tungus, 또는 색륜索倫, solong 등으로 불려왔는데, 그들은 지금 내몽고의 흑룡강 가까운 최북부 하이라얼시와 몽고, 소련 바이칼호변, 그리고 예르니아강 퉁구스카, 사하공화국 야쿠트공화국까지 퍼져 사는 겨우 수만명의 희소 종족이다. 이들은 아직도 사슴을 키우고, 곰, 멧돼지를 사냥하는 유목민이며, 지야지신(치우기?)을 경배하고 또 산신과 불의 신, 그리고 곰을 숭상한다. 또한 그들 사회에서 무당은 신분이 높은데 이들로 인해 샤만 연구가 생겨났다. 아무튼 이들의 유목 생활 풍습이 백분하 계곡의 암각화이기도 하다.
 
단군조선에서 고추모의 고구려까지를 [한단고기]는 이렇게 전한다.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요하지역 태백산=한웅천황이 강림한 산)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 하였다. 팽우에게 명하시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로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회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에겐 군대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병진(B.C.425)년, 주나라 고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바꾸고 백악으로부터 또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에 8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 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고 죄를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힘을 합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하였다.

 단군왕검은 무진(B.C.2333)년부터 나라를 다스려서 47세를 전하니 그 햇수가 2096년을 헤아렸다. 임술(B.C.239)년 진나라 시황B.C.246~206)때 신인이신 대해 모수께서 웅심산에서 일어났다. 정미(B.C.194)년 한나라 혜제때 연나라 추장이였던 위만이 기자조선을 강탈하자 기준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다길을 택해서 멀리 망명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의 무리는 거의 한수의 남쪽으로 옮겨 갔으나 한떼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하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년(BC108년) 한나라의 무제때에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위만조선의 왕 우거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 했다. 을미(B.C.86)년 한나라 소제(B.C.87~74)때, 부여의 옛 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흉노.선비.부여.진조선유민의 나라)의 옛 땅이다. 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하니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 황하.슈메르.이집트.그리스 등 유라시아 문명과 마야.잉카.아즈텍 등 아메리카 문명의 양식이 같고 그 주역이 지금의 한반도인들과 사용한 언어와 풍습이 동일한 고대 한국인들로 입증된 이상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지역의 문명들을 낳은 땅은 머리와 중심이 되는, 고대 한국인들의 역사활동의 중심무대인 동북아시아 지역(한반도.만주)외에는 없다.

따라서 세계 각지에 현인류문명을 낳은 부모민족답게 인류중심국가로 우뚝 서야 할 대한민국 국통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만년 이전의 마고문명(중심지:1만년이전에 중국과 한반도가 연결되어 육지였던 서해지역)=>황궁.유인씨(중심지:만주 천산지역)=>한인씨 한국(중심지:바이칼호수.시베리아)/시베리아 기후변화로 인하여 많은 한국인들 유라시아.아메리카로 이동하여 배달.요하.황하.슈메르.인더스.이집트.그리스.마야.잉카.아즈텍 등 현인류문명 건설 =>한웅씨 신시배달국(중심지:요하.만주)=>한검씨 한국=고씨 조선(중심지:요하.만주)=>해모수 부여(중심지:만주) =>고추모 고고리(중심지:만주)=>대진국(중심지:만주)/거란에게 멸망 후 황족들 고려로 망명  =>왕건의 고려(중심지:한반도) *일제에 국권을 상실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정신상태를 썩게 만든 500년의 얼빠진 소중화 사대주의 조선(중심지:한반도)=>순환론에 따라 민족사와 민족정신회복을 통하여 원시반본으로 부활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연방국가 09/10/05 [19:42] 수정 삭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만년전 서해지역의  마고문명을 계승한 한인의 나라 한국에서 온 말이다.[한단고기]에 기록되기를.."우리 한국의 건국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이후 곰족을 융합하여 요하지역 백악산지역에 신시(도읍)을 정한  한웅천황이 배달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니 배달민족이라고 한 것이요,18대 한웅천황과 단허국 공주 웅녀사이에서 낳은 단군한검이  조양(아침태양=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니 조선민족이라 한 것이요,단군조선과 부여를 계승한 고추모가 선조들이 고리국에서 나왔다 하여 고고리(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니 고구려를 포함하여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대진국.고려 사람들을 고려(고리=korea)민족이라 한 것이다..고로 한국.배달.조선.고려민족은 모두 한민족을 의미하는 말이다고로 민족사적인 뿌리로 올라가면 한인.한웅.한검의 후예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남북한 지역과 만주,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을 포함하여한국이 우리 민족의 뿌리에 맞는 나라이름이며  한민족이 우리 민족에 적합한 이름인 것이요..남북한 사학계가 토론하고 합의해서  민족사를 정립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윤복현)

[보도자료]대만 강진ㆍ뉴질랜드 폭설…지구촌 ‘자연재해 공포’ 확산태평양 지역에서 최근 며칠 새 자연재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공포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에서는 규모 8.0의 강진이 발생, 이에 따른 쓰나미로 1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튿날인 지난달 30일에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파당 시 인근에서 7.6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같은 날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가까운 페루의 남동 지역에서도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다. 4일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서남쪽 100㎞ 해저에서 규모 6.6의 강진이 발생했다. 중추절(추석) 연휴였던 이날 대만에서도 밤 10시2분(한국시간 밤 11시2분) 동부 이란(宜蘭)현에서 리히터 규모 5.0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날 새벽 1시36분에도 화롄(花蓮)시 남쪽 29㎞ 지점에서도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 대만 전 지역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오후 늦게까지 15차례의 여진이 계속됐으나 인명과 재산 피해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 8월 태풍 모라꼿으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만은 이번에 지진이 발생하자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홍콩 싱다오르바오에 따르면 중추절 연휴를 맞이해 대만으로 관광 온 중국 본토 관광객은 호텔방에서 맨발로 뛰쳐나와 건물 밖에서 밤을 지샜으며, 공항은 일정을 취소하고 본토로 돌아가려는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태풍까지 몰아쳐 대만 중앙기상대는 이날 쓰나미 경보는 내리지 않았지만 해안 주민에게 해일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런가 하면 인도 남부에서는 막바지 몬순 폭우 때문에 4일 현재까지 227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평양 지역에서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여름 문턱에 들어선 뉴질랜드에서는 100㎝ 정도의 때아닌 폭설로 도로를 달리던 많은 차의 발이 묶이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뉴질랜드 경찰과 민방위 관계자는 뉴질랜드 북섬의 타우포와 네이피어 사이 산간 지역 5번 국도를 달리던 차가 4일 쏟아진 폭설로 발이 묶이면서 이 지역에 민간비상사태가 선포됐다며 5일 오전까지도 80여명이 고립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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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바는 핵없는 세상을 선언했고,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비핵화문제에 대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면서 북미양자.다자간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겠다고 밝혔는데, 환영한다. 핵무기는 인류평화를 망치는 수단으로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세계평화를 위하여 세계핵무기 폐기의 주도권을 가지고 북한의 체제보장을 전제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핵폐기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윤복현]


간도는 대한민국 영토다!
[보도자료]북한을 공식 방문 중인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 북핵 문제 등 양국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원 총리는 이날 김 위원장과 만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등을 촉구하고 경제ㆍ사회ㆍ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강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원 총리와의 회동에서 핵 폐기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이른바 '중대 발표'를 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면담 때 '양자 및 다자 대화를 통한 해결'을 언급했는데 더 진전된 입장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외교소식통은 관측하고 있다. 앞서 북한의 김영일 총리는 지난 4일 원 총리와의 회담에서 "비핵화 실현은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북한은 다자 및 양자 대화를 통해 비핵화 목표를 실현한다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해 다자 및 양자 협상 참여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원 총리는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한다는 북한의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유관 당사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고 중국의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가 전했다.
강성대국 고구려 09/10/06 [08:37] 수정 삭제  
 
21세기는 문화시대
  
한국 영화계에 바란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을 그린 'mbc태왕사신기'에서 어린 담덕(유승호)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무역독점을 통하여 유라시아 강성대국 고구려을 건설했던 한민족의 위대한 영웅 광개토태왕을 많은 제작비를 통하여 박치감넘치고 스케일있는 영화로 담아 내지 못하는 대한민국 영화계는 각성하고 소중화시대의 500년 이씨조선이나 당나라에 대한 사대주의 노선으로 한반도외부의 중국지역의 고구려.백제영토는 당나라에게 다 넘겨 주면서 3국을 통일했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신라사는 이제 그만 다루고 한유라시아 한민족 시대를 맞이하여 세밀한 역사고증과 탄탄한 인물설정으로 제작에 있어서도 스케일 있고 민족통합적인 차원의 당당했던 한국.배달국.단군조선.부여.고구려의 수 많은 민족영웅들을 배경으로 민족의 대서사시를 영화화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민적이고 민족적인 기업들은 민족영화제작에 공익적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 줘야 한다. 또한 민족적인 기업들의 투자를 통하여 우리의 민족사를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와의 결합을 통하여 사실적으로 다루는 케이블 방송도 존재해야 한다.대한민국은 고대 인류문명을 선도한 부모민족이다. 부모민족답게 이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역사를 통하여 세계에 보여 줘야 한다.[윤복현]
 



고구려의 무덤 벽화, 광명신 해의 신과 달의 신
 
MBC 태왕사신기 화면자료
 

 

 

 

 

 

 

 

 

 

 

 

 


 

 

 

 

 

 

 

 

 
관련자료 : MBC
 




유네스코는 한반도-만주를 '문명시원지'로 공식화해야!(클릭)
 
단군조선에서 고추모의 고구려까지를 [한단고기]는 이렇게 전한다.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요하지역 태백산=한웅천황이 강림한 산)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 하였다. 팽우에게 명하시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로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회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에겐 군대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병진(B.C.425)년, 주나라 고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바꾸고 백악으로부터 또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에 8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 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고 죄를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힘을 합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하였다.  단군왕검은 무진(B.C.2333)년부터 나라를 다스려서 47세를 전하니 그 햇수가 2096년을 헤아렸다. 임술(B.C.239)년 진나라 시황B.C.246~206)때 신인이신 대해 모수께서 웅심산에서 일어났다. 정미(B.C.194)년 한나라 혜제때 연나라 추장이였던 위만이 기자조선을 강탈하자 기준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다길을 택해서 멀리 망명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의 무리는 거의 한수의 남쪽으로 옮겨 갔으나 한떼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하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년(BC108년) 한나라의 무제때에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위만조선의 왕 우거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 했다. 을미(B.C.86)년 한나라 소제(B.C.87~74)때, 부여의 옛 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흉노.선비.부여.진조선유민의 나라)의 옛 땅이다. 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하니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 황하.슈메르.이집트.그리스 등 유라시아 문명과 마야.잉카.아즈텍 등 아메리카 문명의 양식이 같고 그 주역이 지금의 한반도인들과 사용한 언어와 풍습이 동일한 고대 한국인들로 입증된 이상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지역의 문명들을 낳은 땅은 머리와 중심이 되는, 고대 한국인들의 역사활동의 중심무대인 동북아시아 지역(한반도.만주)외에는 없다. [윤복현]
현인류문명을 낳은 부모민족답게 인류중심국가로
우뚝 서야 할 대한민국 국통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만년 이전의 마고문명(중심지:1만년이전에 중국과 한반도가 연결되어 육지였던 서해지역)=>황궁.유인씨(중심지:만주 천산지역)=>한인씨 한국(중심지:바이칼호수.시베리아)/시베리아 기후변화로 인하여 많은 한국인들 유라시아.아메리카로 이동하여 배달.요하.황하.슈메르.인더스.이집트.그리스.마야.잉카.아즈텍 등 현인류문명 건설 =>한웅씨 신시배달국(중심지:요하.만주)=>한검씨 한국=고씨 조선(중심지:요하.만주)=>해모수 부여(중심지:만주) =>고추모 고고리(중심지:만주)=>대진국(중심지:만주)/거란에게 멸망 후 황족들 고려로 망명  =>왕건의 고려(중심지:한반도) *일제에 국권을 상실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정신상태를 썩게 만든 500년의 얼빠진 소중화 사대주의 조선(중심지:한반도)=>순환론에 따라 민족사와 민족정신회복을 통하여 원시반본으로 부활하는 대한민국. 
 
김정일위원장,북미적대관계가 평화적 관계로 바꿔야 한다!
 
김 위원장은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북미의 적대관계가 반드시 평화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의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우리 조선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에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오마바는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위원장과 만나 북미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대북지원과 함께 북미수교를 통하여 북한을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는 아군으로 끌어 안기 바란다. 북한 김정일위원장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오마바의 적극적인 평화대북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남북분단의 주범국가의 하나인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일본의 협력을 통하여 남북의 평화적 통일실현에도 적극적인 국제적 협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인 핵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북한을 무시하는 대북자세와 개념없는 이명박정부가 적극 남북화해협력교류와 통일에 나서는 길이기도 하다. [윤복현]
 
[국제]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5일 평양 방문 이틀째를 맞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6자회담에 조건부로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이날 저녁 원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의 양자회담 진전에 따라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6일 보도했다.






중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원 총리 방북의 중대 업적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지난 8월부터 미국과 한국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자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고위 당국자들을 평양으로 파견해왔다. 김 위원장은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북미의 적대관계가 반드시 평화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의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우리 조선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에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6자회담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북한은 5월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9월4일에는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등 미국의 대북정책에 맞서 핵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원 총리는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있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의 틀 안에서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북한의 발전에 적극 공헌하기 위해 다른 각 분야에서도 북한과 공동 노력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 위원장과 원 총리 등 양국 지도부는 이날 저녁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북중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북중 우호의 해' 폐막식에 참석해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15만여명의 북한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으며 5.1경기장에 입장한 원 총리는 폐막식 연설에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총리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이제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점에 섰다"면서 "우리는 북한과 함께 중북 전통 우의를 공고히 발전시키고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영일 북한 총리도 연설을 통해 "북중 우의를 공고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북한 당과 정부의 확고한 의지"라면서 "북한은 중국과 우호협력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이날 오전 평남 회창군에 위치한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참배한 뒤 오후에는 동평양대극장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양국 관계 발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한편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와 주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지난 4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에 도착한 원 총리는 2박3일간의 북한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6일 귀국길에 오른다. [기사 끝]
 
[자료]6.15공동선언, 10.4선언 고수 실천 해외동포대회》연대사2000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6.15공동선언과 이어 7년 후 2차 북남정상회담에서 나온10.4선언은 우리조국 코리아 반도 5000여년 역사상 가장 눈물겹고 감격스러운 우리민족끼리 이루어 낸 감동의 역사적산물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우리민족사의 3대 승전이라 한다면 6.15선언과 10.4선언은 전쟁을 하지 않고 거둔 더욱 값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코리아 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다. 평화통일만이 있을 뿐이다. 공동선언이 나오기까지 반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 여름에도 한기가 서리는 콩크리트 지하실 바닥에 발가벗긴 채로 처절한고문을 받다 신체와 정신적 장애를 얻어 투옥되고, 간첩으로 몰려 대를 잇는 패가망신을 했으며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 얼마인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고는 하지만 고구려 땅을 잃은 쭉정이 반쪽짜리 통일이요 고려와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 진정한 독립국가가아니요 지금의 남쪽 코리아 반쪽은 미국의 식민지와 다를 바 없지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진정한 독립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에 6.15선언과 10.4선언이야 말로 진정한 자주독립국가로 가는 강성대국의 초석을 만들었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우리나라가 약소국으로써의 서러움을 겪으며 살아온 수 천 년의 세월에 이토록 희망을 가져 본적이 있던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시대의 영광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남의 땅이 되었고 3대 대첩의 승전이 있었지만 외세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강토가 초토화된이름만의 승리요 그 많은 청사에 길이 남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어도 6.15/10.4 양 대 선언이 갖는 감격과 감동에비길 수 는 없을 것이다. 양 대 선언은 우리민족끼리 이루었기에 더욱 값지고 뜻 깊은 것이요 미군을 조국땅에서 몰아내고 통일 강성대국으로 우뚝 세워세계만방에 떨칠 1등 복지사회국가 코리아가 되어 진정한 독립 국가로써 민족의 자긍심을 한없이 드높이는 영광이 될 것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백두에서 한라까지 온 민족이 열광하여 외치는 6.15/10.4선언은 우뢰와 같은 함성으로 메아리쳐 전 세계로 퍼져 나아가리라! 만세! 만세! 통일 코리아 만세! 피어린 투쟁과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을 딛고 열어 가는 평화통일의 길을 다지기 위해 우리는 2009년 10월 16일 도꾜에 모여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고수 실천 해외동포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를 준비하며 벌리고 있는 통일기 연서운동에서 또 한번 온 겨레가 염원하는 이 뜨거운 통일의 열기를 미국 시카고에서도 함께하며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중부위원회 회원들과 함께열열한 지지를 보낸다. 2009년 10월 1일 6.15북남공동선언실천 미국중부위원회 위원장 오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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