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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계몽1] 단군의 역사와 사상

단군의 철학이 담긴 글은, 천부경 삼일신교 참전계경(팔리훈) 등

편집부 | 기사입력 2010/08/28 [12:46]

[국민계몽1] 단군의 역사와 사상

단군의 철학이 담긴 글은, 천부경 삼일신교 참전계경(팔리훈) 등

편집부 | 입력 : 2010/08/28 [12:46]
한민족이 스스로를 일컫는 '배달의 자손"이라는 말은 바로 옛 한국의 주민들을 낙토로 이끈 첫번째 환웅이신 '배달환웅'님의 존호에서 나온 명칭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 민족의 유래에 대해서는 깜깜한 채로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다.

따라서 꾸며낸 이야기이며 거짓말이다.'라고 이유없는 거부를 하기 일쑤이다. 다른 나라나 다른 민족의 역사나 이야기, 전설 중에서 왜 우리나라의 옛 역사적 사실이 나와야 한단 말인가? 만일 자기의 족보가 다른 나라의 족보나 다른 가족의 족보에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족보'에 있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옛일들을 밝혀 보기로 하자.
 
1. 역사

옛 한국에 닥친 추위는 상상을 못할 정도의 엄청난 것이어서, 몸집이 무거운 동물이나 행동이 느려서 이동에 실패한 동물들은 그대로 선 채로 얼어 죽어가는 정도였다. 저 북극해에 면한 지구의 북쪽 땅 끝에서 발견되는 수 천 년 전 내지는 만여 년 전의 거대 동물들의 산더미 같은 잔해(뼈)들은 바로, 대한파가 닥치기 전에 수천 년 간 지속된 온난한 기후에 따른 생물들의 번성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쳤던 추위를 말해주듯이, 아열대성 식물을 먹고 있다가 실족사한 상태에서 통째로 얼어붙은 코끼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3,301년 동안  새로운 문명생활을 익혀 온 사람들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추위와 굶주림은 마찬가지로 닥쳐왔다. 그래서 환국의 마지막 환인이던 지위리환인께서 영특한 인물들에게 명을 내리시어, 사람들이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는 땅을 찾아보도록 하셨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출한 인재가 바로 환웅(배달환웅)님과 반고라는 인물이었다. 반고는 서남쪽으로, 배달 환웅님은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각각 많은 개척단을 이끌고 새 터전을 찾아서 떠났는데, 배달환웅님과 함께 떠난 사람들은 3,000여에 달하는 부락들의 대표격인 사람들이었다.

아직 길도 나지 않은 울창한 열대지방이었던 지금의 흑룡강일대와 만주 지방을 두루 돌아 다니시며 인간생활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던 환웅님의 일행은 가는 곳마다  원시적인 생활을 하던 그 당시의 야만족들을 만나게 되었다. 말하자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뉴우기니아의 원시종족들이 사는 거주지로 탐사를 떠난 셈이었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하는 점도 상상하기에  어렵지는 않다.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낯설기는 서로 마찬가지였겠지만, 자신들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있는 문명인들을 처음 보게  된 원시족 즉, 호족(虎族, 호랑이를 부족신으로 삼는 야만족)들은 환웅님의 무리에 존경하는 마음과 부러워하는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환웅님은 이들을 잘 달래어 가면서 여행했으므로 별다른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환웅님은 마침내 산중의 산인 넓은 백두산(일설에는 황하 중, 하류에 위치한 태백산이었다고도 한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펼쳐가기로 마음 먹고 정착하기로 했던 것이다.

환웅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환국의 백성들(즉 신성족=검족=곰족熊族)은 물밀듯이 넓은 만주와 하북 벌판으로 물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땅이라고는 하지만 한정된 개척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원주민들과 이주해 온 사람들 사이에서 반목이 생기게 되었는데, 환웅님은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하여 두 집단을 잘 타일렀으나 그래도 다툼은 그치질 않았다. 환웅님께서는 이러한 불화를 없애려고 마침내 한 가지 제안을 하시게 되었다.

"어차피 두 부족 가운데 한 부족이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 간에 다툼이 그칠 것 같지가 않으니, 두 부족의 대표자들을 뽑아서 누가 더 우두머리 노릇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인내력을 시험해서 가려 내기로 하는 게 좋겠소. 그래서 보다 더 인내력이 강한 쪽에게 모두가 따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 제안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가 없었으므로 한민족의 역사서인 삼국유사 첫 머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쑥과 마늘만 먹고 버티는 동굴의 고행이 시작되게 되었다. 여기에서 결국 참을성이 보다 강했던 환국의 이주민들이 승리하여 원주민들은 환웅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의 민족으로 동화되었다. 실로 이로부터 한민족의 역사는 그 찬란한 빛을 인류사회에 남기게 되었다(그 이전의 훌륭한 옛 환국의 문명은 시베리아의 얼어 붙은 땅 밑으로 사라져 갔으므로).

그리고 환웅의 아들 단군으로부터 고조선의 역사가 시작되었고(47대 단군), 보통 국조 단군은 첫 단군인 단군왕검을 말한다.


<인용> 안재세,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도서출판 터울림.
 
 2. 철학

우리 배달 겨레의 나라가 본디 환(桓 = 밝음 = 鮮)한 나라로서 환나라(桓國)요, 또 이 환(한)나라의 땅(池,달)이 밝음으로써 밝달나라(檀國)다. 우선 말할 것은 밝달의 "밝"의 음이 구을러 "배"가 됨으로, 밝달 나라가 곧 배달 나라요, 배달 겨레는 밝달 겨레요, 또 단군(檀君)은 배달 임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배달 나라의 종교가 배달교요, 또 배달교는 배달 임금께서 세우신 종교인 까닭에, 그것은 곧 배달 임금의 교다.

우리 배달 겨레의 나라가 본래 환(桓, 밝음 鮮)한 나라로서 환 나라(桓國)요, 또 이 환 나라의 땅(池, 달)이 밝음으로써 밝달 나라(檀國)요 배달 겨레는 곧 밝달 겨레요, 또 단군(檀君)은 배달 임금이다. 그리고 배달 나라의 종교가 배달교도, 또 배달교는 배달 임금께서 세우셨다.

우리가 배달 겨레의 정통적(正統的) 종교와 철학적 대상인 한얼의 3신(三神)과 또 3시대 3개 왕조(王朝)의 3시조 임금들의 칭호(稱號)를 구별하여야 한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구별하지 않고 씀이 보통이다. 한얼의 3신은 한임(桓仁)과 한웅(桓雄)과 한검(桓劍)인데, 이 3신(검)은 절대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한얼의 3계기들이다.

옛 책들에서나 또는 현재 여러 사람들이 배달 겨레의 선사 시대의 시조를 한임(桓因)이라, 한옛 시대의 시조를 한웅(桓雄)이라, 또 상고시대의 시조를 한검(桓儉, 王儉)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너무나 잘못된 말이다. 한얼은 3신인데, 이 3신인 한얼을 본뜨고 닮은 사람 한얼사람인 한배(倧)라 한다. 그러므로 옛 책들에선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시조를 한배임 또는 배달임(檀因)이라, 한옛 시대(太古時代)의 시조를 한배웅 또는 배달웅(檀雄)이라, 또 상고 시대(上古時代)의 시조를 한배검 또는 배달검(檀儉, 王儉)이라 하였다.(桓檀古記 三聖紀全, 6-7쪽/ 桓檀古記 檀君紀, 13쪽 ; 金敎獻, 神檀實記, 三神上帝)

3신. 한얼 자신이 만들어 사는 나라가 '참나라'인 한얼 나라로서 환한(밝은) 환나라(桓國)이다. 이 환 나라를 본떠서 땅 위에 세운 나라가 우리의 (韓 ,桓)나라로서, 곧 배달 나라(倍達國, 檀國)요, 또 이 나라의 백성들이 한얼 3신의 자손으로서 아홉 갈래로 나눠져 9환 겨레(九桓族)들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배달 나라의 선사시대의 맨첫째 대 임금은 한나라(桓國, 韓國) 한배임 또는 배달 한배임이 9형제 분인데. 이 분들이 9환 겨레들인 우리 배달 겨레를 다스렸다.

그 3신 사상에 따라 우리 배달 겨레의 옛 역사를 한배임 시대와 한배웅 시대와 또 한배검 시대 등 3시대들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여러 옛 歷史책들에서도 알아 볼 수 있다.

 
특히 [환단고기(桓檀古記)]와 최치원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인[조선사략 (朝鮮史略(朝鮮史略)]에선 한배임 시대와 한배웅 시대와 또 단군 한배검 시대라고 똑똑히 말하였다. 3국유사와 제왕운기의 풀이 글에서도 있스려니와, 북애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선 이 3시대를 ①조판기(肇判紀) ②태시기(太始紀) ③단군기(檀君紀) 라 하였다.

단군의 철학이 담긴 글이 있는데, ①천부경 ②삼일신교 ③참전계경(팔리훈) 등이 있다.


<인용> 안호상, 민족 사상과 정통 종교의 연구, 민족문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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