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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혁명, 부산 임목사 죽음과 개신교계의 전두환 조찬예배

국민 죽인 내란-살인 범죄자를 ‘의인’에 빗댄 ‘대형교회 목사들’

오주르디 칼럼 | 기사입력 2015/05/19 [09:14]

5.18혁명, 부산 임목사 죽음과 개신교계의 전두환 조찬예배

국민 죽인 내란-살인 범죄자를 ‘의인’에 빗댄 ‘대형교회 목사들’

오주르디 칼럼 | 입력 : 2015/05/19 [09:14]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오주르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 도를 넘는다. 희생자 유족과 피해자들을 향해 망발을 서슴지 않는 이들 중에는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목사들도 있다.

 

서울교회 이종윤 원로목사는 ‘신군부 공수부대가 아니라 북한의 특수부대가 시민에게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고 우긴다.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는 ‘5.18을 계기로 친북 좌파가 확산됐으며 주사파가 운동원의 주류가 됐다’고 강변한다.

5.18직후 열린 ‘전두환 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


언제부터 대형교회 목사들이 5.18 정신을 왜곡하기 시작한 걸까. 그 뿌리는 깊다. 35년 전인5.18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주를 유혈 진압한 전두환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겁박해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기구인 국보위를 출범시키고 자신이 상임위원장이 된다. 이때부터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가 속도를 낸다.

8월 6일. 전두환이 최규하의 손을 빌어 스스로 대장 계급장을 단 바로 다음날이다. 이날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 교단의 총회장급 목사 23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조찬예배가 열렸고, 방송사들도 현장 중계에 나섰다. 제목은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 청와대 입성의 길목에서 대민선전을 목적으로 준비한 일종의 ‘기획행사’였던 것이다.

참석한 목사들은 전두환을 위해 기도했다. 유대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최선봉에 섰던 “여호수아 같은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또 전두환을 향해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란과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사회악 제거하는 의인’이라고 추켜세우다니.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원로들이 내란죄의 수괴에게 보란 듯이 ‘면죄부’를 준 셈이다.


기도에 힘을 입었는지 신군부는 신속히 ‘청와대 접수’에 들어간다. 8월15일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를 받아냈고, 27일에는 대통령 후보자에 단독 출마했다.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당일(2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거수기 선거(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간접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사흘 뒤인 9월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민죽이라고 명령한 내란-살인 범죄자를 ‘의인’에 빗댄 ‘대형교회 목사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과 단체들은 23명의 원로들과 달랐다. 광주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끝까지 5.18 현장을 지키며 부상자을 돌봤다. 전남 도청을 사수하고, 신군부의 악행을 외부에 알리는데 헌신했다. 시민군을 도우며 함께 기도했던 평신도들과 신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기독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희생적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시신을 수습하는데 앞장섰다. 명노근, 조아라 교수 등이 주축이 된 기독교수협의회는 수습대책위를 만들어 계엄군과 중재에 나섰으며, 교수 수십 명이 광주의 진상을 알리다 투옥되거나 해직을 당했다.

신군부에게 ‘면죄부’를 준 원로들을 규탄하는 교계의 움직임도 있었다. 1993년 8월 기독교성결교회 이선교 목사는 ‘롯데호텔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을 ‘반란방조죄’ 등으로 고발하며 “쿠데타군의 만행을 고무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기도회를 개최해 전두환의 정권 찬탈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비난했다.

기도회에 참석했던 23명 가운데 신현균, 지원상 목사 등은 16년이 지난 1996년 참회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나머지 21명은 참회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하면서도 ‘교단 사정’ 등 모호한 이유를 내세워 참회성명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5.18진상 밝히다가 보안사 끌려간 임 목사


▲ 5.18 진실을 말하다 보안사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부산제일교회 고 임기윤 목사. 자료사진     © 오주르디 칼럼니스트
원로와 대형교회 목사들이 전두환을 여호수아에 빗대며 찬양하는 동안, 부산의 한 목사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전두환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하며 정의의 편에 섰던 의롭고 정의로운 목회자였다. 교회강단에서 5.18의 진상을 말하다가 보안사에 연행돼 싸늘한 주검이 된 부산제일교회 고 임기윤 목사가 바로 그다. 5.18로 인해 순교한 유일한 목회자이기도 하다. 

1980년 7월19일 토요일 새벽. 임 목사는 삼일공사(당시 국군보안사령부 부산분실)로 끌려간다. 이틀 뒤 임 목사 가족은 보안사로부터 “임 목사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임 목사는 이미 무의식 상태였고, 5일 뒤인 26일 부산대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나이 58세. 삼일공사(보안사) 측과 담당의사는 “고혈압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했다. 거짓말이다. 임 목사는 평소 약 한 번 먹지 않았던 사람이었고, 그의 혈압은 정상이었다. 사망하기 직전 그의 몸을 살폈던 가족들은 “왼쪽 뒤통수가 심상치 않다는 걸 발견하고 머리카락을 들춰보니 3cm 정도 찢어져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며 맞아서 쓰러진 것임을 확신했다.

임목사는 1957년 목사가 된 이후 줄곧 부산제일교회를 담임하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투쟁했다. 수십 명의 목회자들을 모아 ‘사회정의구현 부산기독인회’를 결성하는 등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5.18 순교자와 역사의 물줄기


일화 하나 소개한다. 교인 심방 갈 때도 형사들이 따라 붙을 때였다. 한 번은 경찰이 들이닥쳐 임 목사에게 “다른 건 좋으니 ‘정의구현’ 이런 설교만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임목사가 “너희가 뭔데 설교 운운하냐”고 호통을 치자 경찰은 “이렇게 안 하면 밥줄 끊어지니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임 목사는 “경찰 그만두고 와라, 내가 다 취직시켜 줄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9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임기윤 목사는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해 사망한 경우로 인정된다”며 그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했다. 작고한 지 20년 만에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밝혀진 것이다.

전두환에게 면죄부 줬던 대형교회 목사들과 원로들과 신군부를 규탄하며 맞섰던 임 목사. 찬양했던 이들은 잘 나갔지만 임 목사는 억울한 죽음을 맞아야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반면 임 목사의 민주화운동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새겨지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물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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