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 인양후 왜 저수심으로 이동했을까?법정증언 - 현장에는 오직 크레인 기사만 남아 있었다
1. 2010. 4. 12 - 함미,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다
[플러스코리아타임즈-진실의길 공유기사=신상철] 2010년 4월 12일 오후 4시경, 천안함 함미가 반파침몰 후 17일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함미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으면 바지선에 싣고 평택항으로 떠나면 될 터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합조단은 인양업체의 반발도 무시한 채, <의문의 저수심 지역 이동>을 결정하고 밀어부칩니다.
그런데, 합조단은 날씨 핑계를 대며 <저수심 이동>을 결정합니다. 기사의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물이 가득차 인양 바로 못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크레인에 매달고 수면위로 천천히 올리면서 중력에 의한 자연배수를 시행하면 함내 물은 자동적으로 모두 다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물과 기상 핑계를 대며 저수심으로 이동합니다. 함미를 저수심으로 4.6km 이동한 후 함미를 다시 물 속으로 가라앉히기 전, 그물을 점검한다는 핑게로 함미를 유가족 몰래 들어올리는 장면이 언론의 적외선 카메라에 잡혔는데 침몰전 수위와 같습니다.
검은 흘수선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들어 올려진 천안함 함미. 물 속에 잠긴 부분은 흘수선 아래 2.9미터 뿐인데, 결국 2가닥으로 배를 완전히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군당국 스스로 입증한 셈입니다. 그 상태로 중력에 의한 자연배수를 시키면 물은 완전히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이 인양업계의 상식이라는 88수중개발의 반발도 무시한 채 결국 함미를 물 속에 가라앉힙니다. 합조단이 함미 인양후 바로 바지선 위로 올리지 않고 저수심 이동을 결정하자 인양업체인 88수중개발 정호원 부사장은 “두 줄이면 충분하다”며 “인양업계의 상식”이라고 반발하지만, 그의 문제제기 역시 국방부의 강요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천안함 함미 인양을 시작한 2010년 4월12일은 월요일입니다. 군 당국은 “기상상태가 좋으면 2~3일 내에 인양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면서도 언론에 대해서는 “주말에나 인양 가능할 것”이라며 1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식화합니다. 도대체 함미를 4.6km나 저수심 지역으로 이동한 후 무슨 작업이 필요하길래 1주일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문제는 이동한 곳이 바로 제3의 부표가 있는 방향이라는 점입니다. 그곳에서 크레인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제3의 부표인근 지역으로 크레인 혼자 움직이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 때문에 함미를 매달고 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크레인의 힘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최소한 제3의 부표아래 가라앉은 물체 인근 지역으로 이동이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함미가 이동한 방향은 제3의 부표가 있는 방향과 일치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현장에서 작업했던 사항에 대해서는 법정에 출석했던 관련 증인의 증언과 함께 별도의 글로 세밀하게 다루도록 하고, 일단 의문의 함미인양 과정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함미 인양 스케줄 가운데 딱 중간의 날짜인 2010년 4월 14일, 한국 인양팀은 기상상태를 핑계로 일체의 인양업무를 중단하고 현장을 떠났으나, 미국 제7함대 구조팀은 천안함 사고 전 과정을 통해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7함대 소속 대부분 함선이 동원되고 헬기가 떴다내리면서 그들만의 '비밀작업'에 정신없었던 하루였습니다.
미7함대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져 있는 그들의 작업내용은 천안함 인양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팀은 천안함 사고 관련 전체일정을 통털어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던 것이지요. 기상을 핑게로 한국 인양팀은 모두 철수한 현장에는 오로지 군인들과 크레인 기사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법정 증언석에 선 88수중개발 현장소장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었지요.
미국팀은 크레인을 이용하여 어떤 작업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제3의 부표 인근에 가라앉은 물체를 해저바닥에서 들어올려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수중에서 외해로 끌고나가는 작업을 하였을 것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그래서 4월 14일을 전후한 토마스에클스의 이메일이 중요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비록 중요한 부분은 모두 빼고 제공한 자료이지만 그 속에서 '어떤 정황'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0년 4월 14일 미국 구조팀의 작업, 그것은 천안함 사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향후 재판에서도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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