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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20차 공판③] 호주와 스웨덴은 왜 발표하지 않았나?

명패만 있고 역할은 없는 해외조사단, 그들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

신상철 칼럼 | 기사입력 2014/01/21 [12:36]

[천안함 20차 공판③] 호주와 스웨덴은 왜 발표하지 않았나?

명패만 있고 역할은 없는 해외조사단, 그들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

신상철 칼럼 | 입력 : 2014/01/21 [12:36]
▲ 한미훈련으로 인한 이명박 정권때 일어난 천안함 사건, 미국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풀 것인가?     © 편집부

[민톡/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 타임즈-진실의길 공유기사 신상철] 필자가 평택2함대에 조사를 위해 갔던 2010년 4월 30일 합조단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저를 헤드테이블로 안내하더니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브리핑을 시작하였는데 해외조사단 가운데 미국, 영국팀은 브리핑을 하였는데 호주와 스웨덴 팀은 브리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하여 호주팀을 개인적으로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제가 2012년 12월 출간한 졸저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천안함 첫 조사 그리고 자격논란

안내장교는 나를 테이블의 상석으로 안내를 하였다

문 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간검사와 최종검사 두 번만 참석키로 하였던 나는 2010년 4월 30일 아침 9시 평택 2함대에 도착하여 안내장교가 나를 합조단 회의실로 안내를 하였다. 그런데 ‘ㄷ’자 형태로 셋팅된 테이블의 상석으로 나를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브리핑이 막 시작하기 직전이라 얼떨결에 앉고 보니 그 자리가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상석에 의자가 넷 있는데 나를 제일 왼쪽에 앉혔다. 그러니 내 오른쪽으로 박정이 중장(군합조단장), 윤덕용(민간합조단장), 토마스에클스(미국대표)가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내가 뭐라고.

 

앞으로는 테이블이 두 줄로 놓여져 있고 그 테이블에는 군 장성을 포함 군측 합조단 조사위원들과 민간조사위원들이 모두 나란히 앉아 있었고, 한나라당 추천 민간위원들 역시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군대의 특성이 계급과 서열이고, 그것은 자리배치로 구체화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계급으로는 기껏 예비역 중위인 내가 나이로 보나, 학위로 보나, 덩치로 보나 그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는데 앞 테이블 상석에 앉혔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요리하고 싶어 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라 하겠다. 그들 입장에서는 중간조사에 처음 참석한 조사위원에 대한 예우로 호의를 베푼 것인데 이렇게 말한다고 섭섭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권위를 이용한 매수행위와 다르지 않았다고 나는 판단했다. 


 

회의가 아닌 일방적 브리핑

 

나는 그날 중간조사 결과를 두고 토론을 하는 회이인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선체검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앉아 있으니 일방적인 브리핑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팀이 브리핑을하고, 미국팀이 브리핑을 하고 마지막으로 영국팀이 브리핑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모두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결론을 어뢰폭발이다’라는 것이었다. 듣다 못해 나는 손을 번쩍들고 일어서서 질문을 던졌다.

Q : 왜 좌초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가.
A : 좌초는 없다. 이미 끝난 얘기다.
Q : 무슨 얘기냐. 선체인양시 외판하부에 보였던 깊은 스크랫치는 명백히 좌초의 증거가 아닌가?

 

그러자 해군 준장이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이며 나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좌초이야기 하지 마시오. 좌초는 검토대상이 아니란 말이오”

 

그가 외치가 내가 따지는 가운데 상황이 아수라장 비슷하게 흐르자, 다른 장성 한 분이 나서서 장내를 안정시키고 자분자분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회의가 끝난 다음에 몇몇 전문위원 분들이 신 위원에게 폭발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폭발에 대해 설명이라뇨. 저는 조사하러 왔지 강의 받으러 온 것 아닙니다. 차라리 선체로 갑시다. 가서 선체를 보면서 함께 조사를 합시다”

 

그래서 점심 식사 후 국방부 조사위원, 미국 및 영국 조사위원 등 십오명이 함께 천안함으로 가서 선체를 조사하기로 하고 오전 회의를 마쳤다.

 

점심을 앞 두고 잠시 쉬는 시간, 나는 미국과 영국의 브리핑만 했는데 호주와 스웨덴의 대표단은 브리핑을 하지 않았던 이유와 오전 회의 끝무렵에 “오늘 호주와 스웨덴의 발표까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아쉽다”고 말한 부분이 궁금해 졌다. 그래서 호주 대표단을 몰래 만나 볼 요량으로 둘러 보았더니 보이질 않았다.

 

안내장교에게 슬쩍 물어보니 호주대표단은 아래층에 사무실이 있단다. 그래서 눈치를 보다가 내려가려고 하니 옆에 섰던 중령이 나를 잡는다. “아, 같이 계시다가 점심 드시러 가셔야 합니다.”

 

말이 조사위원이지 이건 감시와 다를 바 없다. 오전에 회의를 시작하면서 좌석만 상석을 주었지 내 테이블에만 유독 브리핑자료(파워포인트 인쇄물)가 놓여져 있지 않았고, 내 옆에 서있던 중령에게 자료를 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나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회의 끝나고 해군 준장에게 자료를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나에게는 어떤 자료도 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회의 끝나고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 조차 못하도록 내 손을 잡아 끌만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자유롭지 못한 꼴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아무리 회의가 끝난 휴식시간이라고는 하지만 회의실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려고 하니 이번에는 중령이 “여기서는 담배 피시면 안됩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어디서 피면 되오?” 하니 “아래층에 내려가셔야 합니다”하길래 내려갔더니 그때는 잡지 않았다. 역시 한국사람들은 담배에 관대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던 호주와 스웨덴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담배를 집어넣고 방들을 둘러보니 좌우로 방문들이 도열해 있었다. 하나씩 디다보니 방마다 전문 요원들이 앉아서 일에 열중이었다. 세 번째 방인가 호주 해군대표단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짜고짜 들어가서 인사부터 하고 보니 호주 뿐만아니라 스웨덴 대표단도 함께 쓰는 방이었다. (濠: 호주대표단)


 

신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의 민간조사위원인데 잠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濠 : 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신 :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濠 : 네, 얼마든지..
신 :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濠 : 네, 그러세요.
신 : 왜 오늘 호주팀과 스웨덴팀은 중간 브리핑을 하지 않았나요?
濠 : 에... 저희는 아직까지 유의미한 결론(Meaningful Conclusion)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신 : 폭발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신가요?
濠 : 네, 그렇습니다.
신 : 스웨덴팀도 같은 입장인가요?
濠 :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 : 놀랍군요. 그런데 왜 미국과 영국은 ‘폭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濠 : (잘 모르겠다는 제스쳐)
신 : 그러면 한 가지 여쭙겠는데, 혹시 이 배가 사고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濠 : 모릅니다.
신 : 스피드가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濠 : 모릅니다.
신 : 항로와 엔진상황에 대해 아십니까?
濠 : 모릅니다.  
신 : 선박사고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말하지 않고 사고 원인을 밝히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濠 : 그렇군요. Mr. Shin은 아시나요?
신 : 아뇨. 말하지 않으니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천안함이 최초에 좌초했을 가능성에 대해 아십니까?
濠 : 그렇습니까?
신 : 네, 저는 천안함이 좌초를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濠 : 그에대한 정보를 주실 수 있습니까?
신 : 네, 제가 가진 정보들을 메일로 드릴테니 님께서도 저에게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서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시지요.
濠 : 좋습니다.


그렇게 서로 명함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인사하고 나왔는데 미국과 영국이 우리 국방부와 함께 ‘어뢰에 의한 폭발’로 몰아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호주와 스웨덴은 어뢰폭발 결론을 유보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게 확인한 셈이었다.

 

이후 모두 함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천안함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함수에서부터 함미 끝까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 몇 토막. (國 : 국방부위원, 美 : 미국위원, 英 : 영국위원)


 

신 : 선체하부의 스크랫치는 전형적인 좌초의 증거다.
國 : 아니다. 좌초는 없다. 배가 가라앉아 생긴거다.
신 :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날 정도의 폭발이 있었다면 인근 수km 이내의 물고기듥은 모두 떼죽음을 당했어야 할텐데 그런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폭발이 없었다는 증거다.
英 : 죽은 물고기들이 모두 조류에 떠내려 갔을거다. 
신 : 그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英 : 당시 조류가 셌었다.
신 : 프로펠러가 휜 것은 이 배가 좌초를 했다가 빠져나온 증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나?
美 ; 아니다. 천안함이 가라앉았을 때 바닥에 부딪쳐서 생긴 손상이다.
신 : 무슨 소리. 함미가 가라앉을 때 앞 부분이 먼저 가라앉는데?
美 : (손짓을 하며) 앞에서 쿵, 뒤에서 쿵, 그렇게 해저에 닿았다.
신 : 그러면 닿은 부분만 손상이 되지 왜 다섯 블레이드가 모두 휘었겠나?
美 :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해저에 닿았기 때문이다.
신 : 허허, 엔진이 부서져서 동력을 상실했는데?
美 : ... Anyway..
신 : (웃으며) 이 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넷티즌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어뢰를 Environment Friendly Green Torpedo(친환경녹색어뢰)라고 부르며 놀리고 있다구.. 허 참..
美 : (자기도 씁쓸한지 웃는다)


 

천안함 선체조사를 하는 동안 나는 좌초의 증거와 함께 충돌의 증거 그리고 폭발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증거들을 확인하고 사실상의 천안함 육안 검사를 마무리 하였다. (중략)


 

천안함 사고 원인의 조작과 은폐를 국민이 알게 해야 한다

 

천안함 선체조사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중대한 조작과 은폐의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야 하는지의 문제를 잠시 고민하였지만 결론을 얻는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만약 이 사실을 덮어 둔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였고, 나는 그 다음 날 바로 컬럼으로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의 조작과 은폐사실을 온 세상에 알렸다. 그러자 바로 국방부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 평택으로부터 전화콜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 불편한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딱딱함과 부드러움 모두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합조단은 공식적으로 나에 대한 자격(資格)과 자질(資質)을 문제삼으며 국회에 민간조사요원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민주당에서는 그 문제가 최고위원 회의 테이블에 까지 올랐다.

 

후에 들은 얘기로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니 조사위원을 교체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나의 경력에 대해 잘 알고 계셨던 윤덕홍 전 부총리께서 “신상철이를 내가 아는데, 그만한 전문가가 드물다”고 변론을 하셨고, 작고하신 김근태 전 의장께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추천한 위원을 저들의 요구에 의해 교체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강력한 반대로 국방부의 교체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고 들었다.

 

다소 섭섭함은 있지만 나의 경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분들의 의견에 대해 딱히 원망할 생각은 없으나 적극 변론해 주셨던 윤덕홍 최고위원님과 고 김근태 의장님께는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역시 사람의 깊이를 들여다 보시는 분들의 혜안은 남다른 법인가 보다. 큭큭.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민간조사위원의 지위는 잃지 않았지만 이후 국방부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민주당이 자격도 없는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보냈다’는 식의 비난을 그치지 않았으니 조사위원으로서 나의 공적인 역할은 사실상 그것으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처지가 되어 버렸다.

새삼 말하는 것조차 우습지만, 언론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자격도 없는 사람’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씻기우지 않고 망령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으니 그것은 역시 언론이 나서서 씻어주기 전에는 만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격지심에 빠지거나 열등감에 젖어 하던 일 포기하는 일을 없겠지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쯤은 ‘내가 걸었던 길’가운데 한 단락을 진지하게 펼쳐 놓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하략)



호주팀은 해군, 스웨덴팀은 민간인

 

당시 제가 만났던 호주팀 두 위원 모두 해군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이 준 명함에는 대영제국에 속해있다는 뜻을 담아 Australia Royal Navy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두 위원 가운데 한 명은 해군본부 소속이고 다른 한명은 Port Captain(해군항만관리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사무실에는 호주와 함께 스웨덴팀도 쓰고 있었는데 제가 그 방에 들어서서 제 소개를 하자 호주팀은 반기며 테이블로 저를 안내하였지만 스웨덴팀은 자신들의 책상에 앉아 미소만 머금은채 목인사만 간단히 하였습니다. 하여 스웨덴팀과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었지요.

 

지나놓고 보니 당시 스웨덴팀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던 것이 후회가 되었는데, 만약 당시 제가 스웨덴팀에게 대화를 제안하였다고 해도 그들은 예를 갖추어 사절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의 재판과정에서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스웨덴팀은 선체의 손상원인에 대한 분석과는 거리가 먼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스웨덴팀은 프로펠러 제조회사인 가메와 소속일 가능성

 

이번 재판에서 프로펠러 손상원인과 관련, 박정수 준장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박 준장은 <프로펠러가 관성력에 의해 손상되었다>는 합조단의 고전적 주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 논리를 펼친 노인식 교수조차도 언론노조 노종면 전 위원장이 밝히 <관성으로 휘어졌다는 프로펠러의 휘어진 방향이 관성력과 반대방향이다>는 검증에 의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한 마당인데 말이지요.

그리고 변호인과의 질의응답과정에서 박 준장은 매우 중요한 증언을 합니다. 

“스웨덴팀이 보다 상세한 (프로펠러 손상원인에 대한) 조사를 위해 비용이 든다고 했고, 대략 5,000달러 정도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국방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이 다시 질문을 통해 “스웨덴팀이 가메와사 소속이냐?”라고 묻자 박 준장은 “그건 잘 모르겠다”고 하였으며, 다시 변호인이 “스웨덴팀은 군인이냐, 민간인이냐?”라고 묻자 “민간인이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스웨덴팀은 프로펠러 제조회사인 가메와사 혹은 그와 관련된 군수업체 소속의 민간인으로 판단되며, 그것은 소위 천안함 사고를 조사하기 위한 다국적 조사단이라는 '합동조사단(해외조사단)'의 취지와는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해외조사단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

 

평택2함대에서 천안함 조사 당시 박정수 준장과 2함대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영국팀이 식당에 들어오자 박 준장은 그쪽을 슬쩍 쳐다보더니 나즈막히 혼잣말처럼 그러더군요. “저 놈들은 장비 팔아먹으려고 혈안이다..”


 

영국팀 역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날 오전 브리핑에서 영국팀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분석 보다는 '폭발에 대한 측정'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 브리핑하였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본다면, 박 준장 역시 '(폭발측정과 관련된)장비를 팔아먹기 위해 혈안인 영국팀'에 대해 못마땅한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유추해 봅니다.


 

이번 재판에서 변호인이 박 준장에게 당시 점심을 먹으며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사실 없다'고 부인하였지만, 당시 박 준장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던 저 말고 또 다른 두 명의 민간조사위원도 함께 그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저도 알고 그도 아는 사실입니다.

잠수함 전문가인 토머스에클스가 이끌고 온 미국팀은 폭발물과 잠수 전문가들입니다. 그 분들이 과연 천안함 조사에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제3의 부표 아래에 가라앉은 물체의 처리문제가 더 시급했는지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폭발측정장치 군수업체 대표인 영국팀, 프로펠러제조회사와 관련된 스웨덴팀, 그 분들이 만약 천안함 조사의 한 부분을 맡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생산한 보고서로 기록이 남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박 준장은 여러차례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레포트가 없다”고 증언합니다.

명패만 있고 역할은 없는 해외조사단, 그들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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