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합조단이 합숙요구한 이유-이해할 수없는 좌석배치[천안함20차공판②]해군준장의 고백 “잘 들으시라고 그랬다”[민족/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 타임즈-진실의길 공유기사 신상철]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고 합조단이 구성된 것은 사고 나흘 후인 3월 30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군 자체조사만으로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여론에 의하여 희생자 가족을 포함한 민간전문가도 참여하는 ‘민군합동조사단’을 꾸리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4월 중순이 되도록 난항을 거듭합니다.
위 동아닷컴의 기사가 작성된 2010년 4월 14일, 천안함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함미를 인양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날이 4월 12일입니다. 국방부는 인양업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저수심으로의 이동’을 요구했고, 제3의 부표 인근 해역으로 이동한 뒤 다시 물속에 넣었다가 3일이 지난 4월15일 함미를 물속에서 건져 바지선에 올린 후 시신을 인양합니다. 그 다음날인 4월 16일 함미를 평택으로 이송하게 됩니다.
하여 천안함이 평택 2함대 야적장에 거치된 4월 16일 이전까지는 천안함 선체에 대한 조사자체가 이루어질 수도 없었고, 기사에 나와 있듯이 국회추천 민간조사위원의 명단조차도 확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박정수 준장은 다음과 같이 거짓증언을 합니다. “신 위원 합류 이전부터 합조단은 백령도에서 조사를 하고 있었고, 신 위원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해서 조사에 참석하라고 요청했으나 거부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뚜껑이 열리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사실관계를 그렇게 왜곡을 해도 되는 것인지. 법정에서 말이지요.
4월 중순, 합조단의 문병옥 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국회추천위원으로 위촉되었으니 ‘준비를 단단히 해서’평택2함대로 오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일단 합류하면 합숙을 해야 하고, 외출이 금지되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제 머리 속에는 ‘이 양반들이 나를 2함대 내에 묶어두려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 깊이있는 분석을 하고 있었고, 칼럼을 통해 십 수편의 관련글을 발표하였으며, 온라인 상으로 네티즌들과 폭넓은 논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합조단이 그 사실을 모를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나는 합조단에 합류하지 않겠다. 민주당에 얘기해서 조사위원을 반납하겠다”고 하자 문 준장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문병옥 준장은 다시 전화로 “국회에서 이미 위촉을 한 상태라 취소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간조사와 최종조사 두 번만 참석하는 걸로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을 하여 저는 흔쾌히 수락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천안함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발생한 모든 정황을 바탕으로 사고원인의 분석을 통한 결론에 도달해 있었고, 천안함이 인양되어 바지선에 올려지는 과정을 통해 제가 분석한 내용의 상당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확정짓기 위한 ‘단 한번의 조사’가 필요한 상태였기 때문에 두 번의 참석만으로 저는 충분하다 판단하였습니다.
혹자들이 저를 비난하던 내용 중 하나가 <당신 너무 건방진 거 아냐? 한 번만 보면 사고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당신이 신이야?>류의 비난입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쪼개진 생철판 하나를 가져와서 이거 사고 원인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분석하는데 한달이 걸릴지 몰라도, 천안함처럼 사고의 발생부터 실물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존재하는 사고의 경우 이미 그 원인의 체크리스트는 완성되게 됩니다.
현장에서 실물을 보고 체크리스트 가운데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는 과정, 선박전문가라면 그리고 천안함 사고 과정을 면밀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천안함의 선수부터 선미까지, 그리고 내부 전반을 조사하는 Full Survey’한 번만으로 사고의 원인을 확정하는데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좌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폭발이 존재했는지 여부, 충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합조단에서 저에게 ‘평택2함대 독도함에서의 합숙’을 요구한 것이 조사의 편의성 때문인지, 아니면 2함대 내에 묶어두기 위함이었는지 여부는 제가 합조단에 첫 조사를 나갔던 4월 30일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쓴 칼럼 모두를 복사를 하여 칼러펜으로 마킹을 한 자료를 펼쳐놓고 저를 설득하려고 애쓰더군요. 그래서 저는 “나는 조사하려고 왔지 설명들으러 온 게 아니다”며 설득의 노려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번의 재판에서 합조단이 저를 설득, 회유를 위해 애쓴 흔적의 한 단면이 증인심문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해군 준장의 증언을 통해서 말이지요. 변호인이 박정수 준장에게 물었습니다. “증인, 신상철 위원이 2함대에 첫 조사를 갔던 날 회의실의 좌석배치가 사진의 내용과 같지요?”
박정수 준장은 “맞다”고 하였습니다. 합조단의 모든 분과가 참여했던 그날 회의실에는 합조단 수뇌부와 군조사위원은 물론 민간조사위원 거의 대부분이 참석하여 4~50명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상석으로 안내해서 앉게 하였던 것이지요. 저는 순간‘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앉자마자 브리핑이 시작되어 그냥 앉게 되었습니다.
브리핑이 시작되고 옆을 둘러보니 제 오른편에 박정이 군합조단장, 그 옆에 윤덕용 민간합조단장, 그 옆에 토머스에클스 미대표단장이 앉아 있더군요. 앞에 두 줄로 나열된 테이블에는 군 장성들, 교수들, 과학자들, 한나라당 추천 조사위원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군대는 계급이고, 계급은 자리배치로 나타납니다. 생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가 왜 높으 자리에 앉아야 하는 걸까요? 변호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증인, 신상철 위원의 자리를 상석에 배치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씩씩한 군인 박정수 준장은 굳이 답변을 애둘러가지 않더군요. 사나이 다웠습니다.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입가에 머문 채 그는 나즈막히 대답하였습니다. “에… 신 위원이 처음 참석했고, 군 발표에 가장 반대가 심해서… 잘 들으시라고 그렇게 배치했다.”
박 준장은 ‘처음 참석한 위원 좋은 자리를 배치했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그들은 사전에 민간위원이 썼던 칼럼까지도 모두 복사하여 마킹해가며 분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견주어 볼 때 그것이 ‘회유’의 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결과에 다름아닙니다.
4월 30일 조사가 끝나고, 평택2함대를 출발하여 여의도로 돌아오던 중 저는 이해찬 전 총리께 전화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총리님, 이 친구들 천안함 사고원인을 ‘폭발’로 몰아가며 조작하고 있습니다. 내일 상세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심각한 문제를 언론에 알렸습니다. 칼럼을 쓰고, 인터뷰를 하며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만약 그 시기를 놓치고 머뭇거리면 저에게 어떤 회유와 압박이 오게 될 지 불 보듯 했습니다. 국방부의 조작과 거짓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 그 고민을 두고 무엇보다도 제게 두려움으로 다가 왔던 것은, 만약 내가 알게 된 그 진실을 묻어버린다면 제 남은 평생 내내 후회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제가 언론에 국방부의 거짓과 조작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자 국방부와 합조단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조사요원을 교체해 달라고 국회에 공문을 보낸 것이지요.
진실은 마치‘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언젠가는 바지를 뚫고 나와 허벅지를 찌르게 된다고 하지요. 여기저기 뚫린 구멍이 숭숭한데도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국방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더 버티게 될지 지켜 볼 일입니다.
박정수 준장, 그는 참 씩씩한 군인입니다. 군 복무하는 동안 평판도 좋았습니다. 군 서열로 따지자면 저보다 몇 해 선배뻘이기도 합니다. 만약 천안함이 아닌 다른 일로 인연이 만들어졌더라면 두주불사하며 친하게 지냈을 분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친화력과 사나이다움이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그 분은 본인 스스로 ‘국방부가 자신에게 부여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자부심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양심의 가책을 억누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국민 모두가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적 가치 외에 ‘그것으로부터 교훈과 지혜를 얻어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고 방지하는 것’의 의미가 크다 할 것입니다. 더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통사고’를 ‘살인사건’으로 조작하는 행위는 인륜적으로도 해서는 안될 일이지요. 우리 해군, 이순신 장군의 후예로서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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