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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터키,중앙아시아 돌궐과 고구려

당나라에 대한 전방위적인 포위.압박으로 자주권 보호한 고구려 외교

윤복현 저널리스트 | 기사입력 2009/10/29 [10:34]

한국과 터키,중앙아시아 돌궐과 고구려

당나라에 대한 전방위적인 포위.압박으로 자주권 보호한 고구려 외교

윤복현 저널리스트 | 입력 : 2009/10/29 [10:34]
고구려와 돌궐, 한국과 터키의 우호적 관계의 역사적 배경

[한단고기]에서는 수유족(21대 소태 단군천황이 일방적으로 소유족 출신의 서우여를 단군에 즉위시키려 하자, 고구려가 시조로 삼는 고등의 손자 색불루가 백악산 아사달에서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22대 단군천황에 오르자, 단군천황즉위에 실패한 수유족은 단군조선의 직접 통치에서 벗어나 초원지역에서 단군조선의 통치구조를 모방하여 거대한 유목세력을 형성하여 서방에서는 스키타이, 동방에서는 흉노라 불리우는 유목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선비.돌궐.거란.몽골제국으로 계승된다. 우리와 피를 나눈 단군의 후예들로서 이들이 분포하며 살고 있는 유라시아와 협력교류해야 하는 외교적 배경이기도 하다)으로 기록된 흉노의 후예 돌궐(투르크)은 6세기 중반부터 8세기 중반까지 유라시아 초원을 장악해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던 단군민족의 후예들로 지금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간지역인 터키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투르크를 한자로 음차한 ‘돌궐’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돌궐은 역사적으로 고구려와는 서로 사신을 보내고 춤사위가 전해질 정도로 정치, 군사, 문화 모든 면에서 활발히 교류하였다.

근대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지금의 터키는 자신들의 기원을 돌궐에서 찾는다. 지나지역의 남북조 시대에 유목국가인 유연이 북조를 위협하였다. 6세기 중반 유연에 속했던 유목부족의 하나였던 투르크 계통의 돌궐이 흥기, 유연을 격파하고(552) 초원의 패자가 되었다.

한자 표기인 돌궐의 정식 명칭은 돌궐 비문에 따르면 '쾩-튀르크(Kok Turk)' 로 하늘(Kok) 에 속한 신성한 투르크란 의미를 가진다. 이로부터 투르크가 정식 종족명으로, 또한 국명으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지구상의 다양한 투르크 계 종족이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있다. 투르크라는 말은 세계 조상어가 한반도어인 만큼 '기운'을 의미하는 한반도어 팃기(남한).티기(북한)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돌궐제국의 창건자는 부민으로 그가 지나사서에 등장하는 시기는 535년이다. 545년 지나지역의 <서위>와 동맹 관계를 맺은 그는 <유연>에 대해 유연의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했다. 이는 유연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의사였다. 유연이 거절하자 부민은 서위의 공주를 맞아들이고 552년초 서위와 연합하여 유연을 멸망시켰다. 이때 부민은 일 카간(Il- Qagan, 伊利可汗) 이란 호칭을 쓰면서 초원의 지배자임을 공언하였다. 유연을 멸망시킨 터키(돌궐)는 유연의 잔존세력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고구려에 참패당했다.  " … 왕년에 이계찰(利稽察)이 고구려·말갈에 크게 격파되고 … 라고 기록한 지나 역사서[隋書, 突厥傳]에서 단편적으로 이러한 모습이 보인다.이계찰(利稽察)에서의 '察'은 돌궐의 관직명 '샤드(Shad)'를 뜻하며 設, 殺, 煞로도 표기된다.고구려가 돌궐의 이계찰을 격파한 것은 돌궐의 동진을 성공적으로 막았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돌궐의 고구려 침공은 처음에는 돌궐이 유연의 잔여 세력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듯 하다. 6세기 말~7세기 초 활동하였던 동로마 역사가 시모카테스(Simokattes)는 돌궐에게 멸망한 <유연>의 잔존세력이 지나지역(북제)으로 도주했고 그 곳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쫓기어 동쪽의 Moukri(고구려)로 갔다고 기록했다.
 
이후 지나지역을 통일한 수.당나라에 맞서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당나라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흉노의 후예나라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 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유럽을 지배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되니 오늘 날 '터키' 국가이다.

▲ 파란색 영역이 돌권제국.돌궐족은 선비족의 수나라때부터 북방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하여 훗날 투르케스탄,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연해주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우게 된다. 돌궐제국은 당제국때부터 시작된 역시 중국의 이간질 정책으로 분할되고 내분이 겹쳐 자멸하였다. 그러나 서돌궐 제국의 일파가 코카서스와 흑해연안으로 이주하여 하자르 한국과 마자르족, 셀주크/오스만 투르크족의 기원이 된다. 돌궐제국의 멸망으로 인하여 고구려도 당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만다.당나라를 견제한 돌궐의 존재감이 고구려에는 컸던 것이다. ⓒ윤복현 저널리스트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을 도와 싸우기도 했던 터키는 한국을 형제국가라고 생각하며, 터키 역사교과서에는 고구려와의 관계까지 언급하며 한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사에 대해 관심이 부재한 한국의 경우는 달랐다. 1988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 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다시 굳건해졌다. 마치 고구려와 돌궐의 관계처럼 말이다.

661년 제 2차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전쟁 중 돌궐이 당나라 본토를 공격했다. 이에 당나라의 일부 군대가 급히 본토로 돌아가고 고구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돌궐의 당나라 공격으로 인하여 고구려는 당나라를 격퇴시킨 것이다. 마치 신라를 이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공멸시키고 신라까지 토사구팽시켜 집어 삼키려 했던 당나라가 티벳지역의 <토번>의 공격으로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킨 것과 동일하다. 이 처럼 지나을 둘러싸고 있던 유목국가들은 지나를 위협하고 지배했던 세력이였다.
 
일제 반도사관에 세뇌된 우리는 흔히 한반도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구도로 당시의 국제정세를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사적 관점으로 지평을 넓힌다면 고구려와 당, 그리고 돌궐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유목국가들이 가장 중요한 주체들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의 국제외교관계는 북방유목국가들과의 연계를 통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당나라를 넘어선 원대한 세계질서 구현에 있어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국제 외교를 수행했던 것이다.

돌궐과 당나라가 대결하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요충지이자 동양과 서양의 관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 지역에 고구려의 흔적이 있다. 바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2명의 고구려 사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벽화는 640년에서 660년 사이 즉 고구려와 당나라의 대립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단순히 고구려와 돌궐의 교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다원적 질서를 추구하는 고구려가 유목국가간의 유대를 강화하며 당나라 중심의 일원적 세계질서를 원하는 당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와 당의 대립은 단순히 두 나라의 싸움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패권을 다투었던 것이다.

당나라에 대한 전방위적인 포위.압박으로 자주권 보호한 고구려 외교
▲ 고구려인의 자취가 선명하게 새겨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벽화ⓒ자료출처:KBS역사스폐셜

1300년 전 중앙 아시아지역의 사마르칸트까지 간 고구려 사신들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아마도 돌궐을 비롯한 북방유목국가들에게 당나라를 공격해 달라는 요구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근거는 661년 제 2차 고당전쟁 중 돌궐이 당나라 본토를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당나라의 일부 군대가 급히 본토로 돌아가고 고구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바로 이러한 돌궐의 움직임 뒤에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의 사신들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당나라의 공격을 무기력하게 만들 목적으로 북방 유목민족들과의 접촉을 위해 밀사 형태로 사신을 파견해야 했다.

▲   6세기 말~7세기 초 활동하였던 동로마 역사가 시모카테스(Simokattes)는  고구려에 대해 "지나에 인접해 있다. 고구려인들은 위험에 대처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매일 신체단련으로 그들의 투지는 매우 높았다" 고 하였다. 동로마 제국은 돌궐과 비단을 매개로 교류하였던 관계로 돌궐을 통해 고구려에 대한 지식이 전해졌고, 이로 인해 동로마 문헌에 이러한 기록이 남았다 (568년 돌궐의 사신이 비잔티움에 도착한 것이 돌궐과 동로마와의 최초 접촉이었다).   '고구려인들은 … 매일매일의 신체단련으로 그들의 투지는 매우 높았다' 라는 동로마의 기록은 지나의 역사서인『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기록과 일치한다.  각 거리마다 큰 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른다. 자제(子弟)들이 결혼할 때까지 밤낮으로 이곳에서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한다. (『구당서舊唐書』「동이 열전」고구려)ⓒ윤복현 저널리스트

단군조선(부여)를 국통을 계승한 정통 천자국 고구려는 신시배달국 천황 치우에게 71번 싸워 모두 패배한 황제헌원처럼 중원지역의 지배하며 천자국을 내세우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불과한 선비족의 나라 당나라을 위협하는 북방 유목민족들(단군조선의 후예들)과의 우호협력관계를 통하여 당나라 주변국들로 하여금 당나라를 공격하거나 위협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구려가 오만한 당나라를 포위하여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다.

마치 미국의 대북압박에 대응하여 중국을 경제지원국으로 삼고, 미국주변국들이나 반미국가들과 우호협력관계를 가지며 미국을 압박하는 동족 북한의 국제외교전과 매치된다.그리고 남한의 경우는 마치 사대주의외교노선으로 당나라에 협조한 신라처럼 미국의 군사지휘권에 놓인 나라로서 미국의 전략전술에 협조하며 그대로 따라 가고 있는 셈이다. 평등한 한미협정개정을 통하여 조속히 자주주권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사대매국적인 권력집단에게는 수단에 불과한 국민과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법이다.
 
▲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복원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자료출처:KBS역사스폐셜

현재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자주주권적인 국제외교노선
은 고부가 가치로서의 특허 등 우리의 국익사수을 최우선하는 것을 전제로 미국의 경우 대중국 견제차원으로 정치.군사적 차원에서 자주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중국과 일본과는 100년 전 안중근 장군의 동양평화론에 입각하여 정치.경제.문화적인 협력교류로 아시아연합이라는 협력공동체를 구성하고, 북한과는 민족자주.민족대단결.화해협력교류.연방제통일추진이라는 6.15/10.4남북합의정신에 따라 화해협력교류을 통하여 민족통일로 나가야 하며, 흑룡강 지역까지 우리 말과 풍습을 그대로 잇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인 조선족이 살고 있는 만주지역까지 회복하고 유라시아지역과 폭넓게 교류하기 위해서는 100년 전 대한민국 영토였던 간도지역에 대한 정부의 반환소송이 필요하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인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한다.  
고구려와 터키 09/10/30 [22:29] 수정 삭제  
  돌궐은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고구려의 遺民(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부분의 서민들은 초기엔 唐(당),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요서,한반도에서 살아갔으나,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唐에 포로로 잡혀갔으며, 일부는 몽골, 글안, 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 동돌궐이 올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2제국」을 수립할 때, 여기에 참여했다.

그 숫자는 전 인구의 절반인 20만명이 넘었다는 설도 있다. 돌궐의 왕은 「單于(선우)」 또는 「可汗(가한)」이라고 불리며 그 아래에 左賢王(좌현왕), 右賢王(우현왕)이 있었다. 돌궐 제2제국의 單于는 고구려 遺民을 우대하여, 고구려 왕족의 일원이며 遺民의 수장인 高文簡(고문간)을 高麗王(고려왕)으로 봉했다. 왕은 둘 밖에 없는 것이 돌궐의 전통이었으나, 고구려 유민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이들을 통치하기 쉽도록 王을 한명 더 늘려 고구려인을 앉힌 것이다. 돌궐은 특히 고구려 遺民 가운데 여성을 뽑아 종교의 首長(수장)인 제사장에 임명했다. 이를 탕구르, 또는 탱글리라고 했다고 한다.
돌궐비문 09/10/31 [19:32] 수정 삭제  
  천제국 단군조선을 계승한 고구려의 속민이였으며 고구려멸망 후
20여만의 고구려유민을 받아들여 고구려왕을 세우기도 했던 돌궐족은
근대까지 지중해지역을 지배한 오스만투르크로 현재 터키의 조상들이다.
20여만의 고구려유민은 이러한 현재 터키형성의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와 대결해도 패배하지 않았을 무적 고구려인들이
멸망 후에 돌궐인들과 함께 용병생활을 하며 초원을떠돌아 다니면서
수 많은 전공을 세우며 지금의 터키를 건설하는데 앞장섰다고 볼 수 있다.
당나라와 손잡고 고구려.백제를 공멸시키고 당나라의 토사구팽 대상이 되버린
신라의 반민족적인 죄업이라면 한민족을 상처와 고통으로 분열시켜 버린 점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일본의 조선침략도 역사의 뿌리로 올라가면 백제후예 천무천황떄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일본열도중심의 '일본서기'편찬 등을 통하여
백제와의 인연을 끊고 신라에 대한 적개심을 후대로 계승시켰기 때문이다.

현재 터키는 역사교과서를 통하여 고구려를 형제국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소련의 승인을 받고 북한이 도발한 동족상잔인 한국전쟁당시 홍익인간이념을
국가이념으로 삼은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아래 내용은 돌궐비문에
새겨진 예언내용인데, 자뭇 흥미롭다.
비문은 7세기 돌궐 제 2가한국(칸국)의 비문이며
탈랴트 테킨 교수가 번역했다.

1)

이방(異邦)이 동방을 짓밟으니 삶의 쇠락함은 가을날의 잎사귀와 같았다.
당골 올칸은 핍박을 피해 아사달로 들어 갔으나
마침내 잔인한 폭풍의 날이 있어 키즈의 무리에게 잡힌바 되었다.
사슬에 묶인 당골 올칸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 말라. 당골의 백성들이여. 신들은 다시 오리라.
세상에 이길수 없는 자가 하나 있나니 지혜롭게 사랑하는 자이니라.
저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재물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무정하며,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언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친구를 팔며 조급하며 죽이는도다.
너희는 남을 사랑하며 베풂을 사랑하며 생각하며
겸허하며 관용하며 부모께 순종하며 다정하며,
원한을 잊으며 나쁜말을 하지 말며 참으며 순하며 악한것을 미워하며
깨끗하며 신실하며 실다우며 살림을 사랑 할지라.
용기를 가지고 참고 견디라. 당골(단군한검)께서 다시 오시리라.
착한 자식들을 낳고 서로를 아끼며 진심으로 당골을 경배하라.
당골께서 너희에게 불멸을 주시고 시간의 모래밭에서 구하시리라.

이말을 마친 당골 올칸께서는 목이 베여 죽었다.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쓰여진 "당골 올칸(단군왕검)"중에서-

2)

이 예언을 기억하라. 당골의 백성들이여.
멸망의 날에 태평의 왕이 있어 너희를 어둠으로부터 끌어내리라.
비탄과 재앙의 땅에서 당골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 하리라.
너희는 그 땅에서 잡신과 잡귀를 섬기는 모든 무리를 멸하라.
이것은 당골께서 정하신 운명이니 망각하지 말라.
불은 공기의 죽음으로 살고 공기는 불의 죽음으로 사나니.
죽지않는 신은 죽어가는 신들과 함께 살수 없나니.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쓰여진 "해모수칸인 카인릭-해모수칸의 예언"중

마지막 부분

성스러운 추모께서는 하늘나라에서 해모수님과 아란두님을 모시고
동방의 신령 107위와 함께 고구려의 역대 군주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푸셨다.


만월의 어머니 아란두께서 연회장 입구에 큰 거울을 두시어 군주들이
통과할때마다 그들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범했던 악덕과 결점과
어리석음 들이 나타나게 하셨다.


해애루 칸(解愛婁可汗:모본왕)이 거울에 떠오른 자신의 폭정들을
다시보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돌아갔다.사브시루 칸(揷矢婁可汗:봉상왕)과
또 다른 몇몇 군주도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뒷걸음질 쳐 돌아갔다.


연회장으로 들어온 군주들은 즐겁게 먹고 마시면서 생전에 각자가 이룩했던
위업과 영광을 이야기 했다. 특히 타이가주루 칸(大解朱留可汗:대무신왕)과
탐덕 칸(談德可汗:광개토대왕)이 높은 존경과 흠모를 받았다. 그러나 신령들은
시종일관 한구석에서 얌전하게 침묵을 지킨 우르부르 칸(乙弗可汗:미천왕)의
이름을 불렀고 발언을 청했다.


우르부르 칸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신들의 덕성을 본받기에 힘썼으나 인간으로서도
매우 불완전했던 사람 입니다. 소년에 불우하여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고
남의 집 머슴살이,소금장수,거지노릇을 하기도 했읍니다. 가난 했을때나
옥좌에 있을때나 항상 남에게 죄를 짓지 않고 살다가 삶을 마치기를 원했읍니다.

오늘 이곳에 들어 올때에 저의 일생이 청백 했음을 돌아보고 그것을
한없는 기쁨으로 생각하며 조상들과 신령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찍이
신들께서는 부패와 폭정, 대국의 전제(專制)를 타기하시고 백성들을 널리
행복으로 세울 율법을 세우셨읍니다. 저는 지고한 신들의 향기가 아직도
저희의 손에 순결하게 쥐여져 있음을 확신 합니다.

신들께서는 저희에게 대지와 창공에 가득한 큰 생명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롭게 살라고 하셨읍니다. 누구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하셨읍니다.
이 가슴에 타는 생명의 불꽃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더 큰 생명의 불꽃과
똑같다고 하셨읍니다. 저는 신들의 가르침에 감사의 공물을 바치고 싶읍니다."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씌여진 외경(外經)"탱그리닌 지야펫(하늘나라의 잔치)중에서-

아란두님의 혼은 하늘로 올라가 만월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 모습 만만리 강에 비취나니 우리를 낳는 생명의 젖줄이시다.
당신의 아들과 딸을 깃들게 하는 밤의 기쁨이시다.
해모수님의 혼은 하늘로 올라가 태양의 아버지가 되셨다.
그 모습 산을 깨우고 땅을 떨게 하시니 우리를 키우는 빛의 권세이시다.


모든 더러움을 정화하는 아황천 불길 같은 힘이시다.
박달, 밝으신 신명께서 이렇게 정하시었다.
아란두님은 두손으로 달을 머리 위에 받쳐들고 동쪽으로 가신다.
해모수님은 두손으로 해를 머리 위에 받쳐들고 서쪽으로 가신다.
박달, 밝으신 신명께서 이렇게 정하시었다.


나무는 이파리 하나하나로 아버지 해모수를 향해 타오른다.
불은 나무의 깊은곳에서 잠자다가 문득 깨어 아버지께로 일어선다.
물은 어머니의 눈물로 불을 재우고 땅으로 뻗어간다.
흙은 물을 감싸며 어머니 품으로 생명을 이끈다.
쇠는 어머니의 정을 머금어 흙이 감춘 은밀한 힘을 드러낸다.
박달, 밝으신 신명께서 이렇게 정하셨다.


마음은 변하고 세월은 흘러가며 목숨의 모래는 쉬이 없어진다.
오직 두분의 사랑만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얼음의 바다에서 카르디한 이쉬까지 두분이 영원히 우리를 지키신다.

-돌궐의 투르크룬 문자로 번역된 이문진(李文眞)의"예니덴 봇자(新集)"중에서..-

해모수는 말을 타고 어떤 인간도 가보지 못한 길을 따라
오랬동안 버려진 잿빛 광야를 건너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광야가 끝나는 곳에 황색의 바다가 있었다.


그는 흰 거품의 파도가 이는 해변을 따라 다시 동쪽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생명과 기쁨을 주는 강 푸른야루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버드나무 보다 더 날씬하고 수련꽃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아란두가 살고 있었다.
아란두는 푸른야루를 다스리는 요정왕의 첫째딸이었다.
해모수는 아란두에게 첫눈에 반햇다.


그는 나는듯이 달려가 평화로운 풀밭에 아란두를 쓰러 뜨렸다.
여인이여 겁먹지마오.
나는 탱그리의 아들 해모수.
아리따운 당신에게 혼을 빼앗겼소.
내 당신의 수레를 끄는 말이 되리니 나의 곁에 있어 주시오.
송백나무처럼 훤칠한 님이여. 만인의 위에 뛰어난 님이여.


아란두의 가슴은 타올라요. 당신을 따라가고 싶어요.
당신의 팔에 내 머리를 얹어 주세요.
그러나 몇달이 지나지 않아 해부루의 군대가 뒤쫒아 왔다.
해모수는 탱그리에게 기도 하기 위해 높은산에 올라 갔다가 그들에게 사로 잡혔다.

해모수는 말하였다.
어둠의 권세여. 하늘의 주인 탱그리의 이름으로 말하노라.
지금은 너희의 때이나 사람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을 찾아 헤메이리라.


다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사람이 있어 세상의 마음에 깃든 비밀한 불꽃을 얻게 되리라.
나보다 더 훌륭한 왕이 내뒤에 오리라.
그 왕은 흩어졌던 당골의 신성왕국을 다시 세우고 신의 화살로 너희를 멸하리라.

해부루의 군대는 해모수를 죽였다.
그리고 다시는 환생하지 못하도록 몸을 다섯으로 토막내어 사방에 흩어 버렸다.


- 돌궐의 투르크 룬 문자로 쓰여진 "해모수칸인 카인릭(해모수 칸의 예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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