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명(마 문명)'에서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찾는다(2)바이칼호수와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무엇을 증명해 주는가?
실제로 세계에서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이는 생김새도 그렇고 ‘헬리코박터균(Helicobacter pylori)’으로도 증명된다. 흔히 말하는 한민족은 튀어나온 광대뼈, 낮은 코와 둥그런 머리통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둥그런 머리통 (단두형:短頭形)이란 비교적 뒤통수가 덜 튀어나와서 비교적 공모양에 가깝고 이런 둥그런 공모양은 열손실이 적고 부피에 비해서 표면적이 작으므로 둥그런 머리통 (단두형:短頭形)사람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러한 특성들은 극히 혹독하게 추운 지방에서 오래도록 살 때 생기는 특성들로서 튀어나온 광대뼈는 부족한 식량 상황 때문에 질긴 고기나 뼈까지 씹어먹기 위해서 턱 주위근육이 커지면서 공간확보를 위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흔히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말해지지만 사실은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때문인데, 한 때 징기츠칸의 몽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불릴 뿐이다. 바이칼리안(밝할인)은 한국인의 뿌리인가? 여기서 독자들은 질문 할 것이다. "한국인이 언제 그렇게 혹독한 추위를 그리 오래도록 겪었는가, 언제 그렇게 질긴 고기 등을 그리 씹어먹었단 말인가?"하고... 그러나 한국인의 선조가 빙하기때 바이칼호수 주위에 고립되어 살때 생긴 특성이라는 것이 학계의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2002년 8월 동아일보 기사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가 쉬울 것으로 본다. 《한민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해답을 한반도 내에서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북방 아시아인과 언어 문화 뿐 아니라 생김새와 유전적 특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국경은 물론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종합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 첫 시도로우리나라의 유전학자, 의사, 지질학자, 고고학자, 민속학자 22명과 러시아 학자 4명이 8월 5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이르쿠츠크대에서 ‘동아시아민족의 뿌리’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시베리아의 성소로 추앙되는 바이칼호를 답사했다.(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0&article_id=0000147945§ion_id=105&menu_id=105)》 한국인의 유전자를 살펴보면 북방계가 약 2/3(바이칼리안(밝할인)과 약간의 유럽인)이며, 남방계가 약 1/3(한반도, 만주 원주민과 약간의 동남아인)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 유전자 중에 이렇게 북방계 유전자가 많은 것은 당시 황해대평원으로 온 바이칼리안(밝할인)의 숫자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이 자식을 많이 낳았기 때문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즉, 혹독하게 추운 환경에 있었던 바이칼리안은 원래 비교적 소수였고, 당연히 황해대평원으로 온 바이칼리안도 당시 황해대평원 원주민보다 훨씬 적었다. 당시에는 모계사회여서 1부1처제가 아니었고 극도의 험한 환경에서 강한 정신력을 키운 바이칼인들이 당시 황해대평원 원주민 남성들보다 더 많이 여성들의 선택을 받아서 남자 1인당 자식을 많이 낳았던 것으로 본다. 이를 정리하면 한국인의 뿌리는 크게 ▲바이칼리안(밝할인) ▲한반도-만주 원주민 ▲약간의 동남아 등 남방인 ▲약간의 유럽인(백인)으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7번째지만, 담수량을 기준으로 볼 때는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최대 수심 1642m인 이 호수에는 전세계 민물의 5분의 1이 담겨 있다. 초승달처럼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은 바이칼호는 길이 640km, 평균 너비는 48km로,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이나 된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 여기까지 물밑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맑아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1급수) 주변의 숲과 초원에서 365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오직 하나 북극해와 연결된 앙가라강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주용 박사는 “바이칼호는 3000만년 전부터 호수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면서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매년 3천번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 바이칼호에는 2500종의 동식물이 산다. 이 중 상당수가 바이칼호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을 비롯해 철갑상어, 오물, 하리우스 등 어종이 이곳의 명물이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바이칼이 생성된 지 오래된 호수이고, 일반적인 호수와 달리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90년 미·소 합동조사단은 잠수함을 타고 수심 420m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하기도 했다. 맑은 물, 높은 생물 다양성, 많은 온천은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아시아인에게 좋은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동아사이언스 기사 참조)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한민족의 역사인가?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역사학적으로 인류의 문명발생을 4대 강을 유역을 중심으로 또한 성경기록이 쓰여진 기원전 4000년경으로 알고 있었다.그러나 과학자나 세계 석학들이 주장하는(종교사관에 미친?) 인류 역사와 문명에 대해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류 근본문명을 찾기 위해서 아니 한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먼저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1만년전 피라미드부터 보자. 오키나와는 일본과 대만 중간 정도 지역에 있는 섬들로 일본이 오키나와를 완전 합병한 것은 19세기의 일로서 그 전에 오키나와는 독립국으로서 조선에 조공(조선왕조실록 참조)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당시는 일본도 중국도 석기시대였다.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원조 한문명’ 즉 ‘고대 황해대평원 문명’ 사람들이 건너가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는 과거 빙하기 때는 북극, 남극 등에 얼음(빙하)이 많으므로 바다물이 적어지고 바다가 얕아진다. 황해(서해)는 평균 수심이 44m로 세계적으로 얕은 바다로 유명한 곳이다.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위 지도는 2만~1만2천년전 고대 한반도 주위를 대강 그린 것으로, 그런데 당시에는 현 서해(황해)지역이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으며, 현재의 해안선은 약 8천년전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즉 ,지금의 서해(황해)지역에는 말하자면 '고대 황해대평원'이라는 거대한 평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평야의 가운데를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황하]+ [요하] + [한반도 서부의 모든 강들]이 합해지는 실로 거대한 큰강인 대강(大江)이었다. 지금의 황하보다는 엄청나게 큰 강이었다. 당시 황해평야는 강동(江東: 대강(大江)의 동쪽)과 강서(江西: 대강의 서쪽)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강동(江東) 즉 한반도 쪽만 해도 거대하게 넓었다. 그런데 이 고대 황해평야는 강동(한반도쪽)이 강서보다 살기 좋았을 것이다. 진흙탕물인 황하같은 강이 흐르는 강서 (중국쪽) 보다 모든 맑은물이 흐르는 강동(한반도쪽)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한반도의 강들은 인간이 오염시키지 않는 이상 흐린 강이 없다. 이런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독일과 프랑스가 맥주와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가 물이 맑지 않아서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다.
그래서 매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날아오는 가창오리(바이칼 오리)도 중국쪽으로는 거의 안가고 대부분 한국쪽으로 날아온다. 그만큼 한국땅이 살기 좋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대 황해대평원]도 강동이 강서보다 더 살기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살기 좋은 강동(한반도 쪽)에 사람들이 몰리고 문명이 발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내려온 바이칼리안(밝할인)도 지금의 중국쪽보다는 한반도쪽으로 왔을 게 아닌가. 살기 좋은 한국으로 날아 오는 대부분의 가창오리(바이칼오리)처럼... ['한국문명(마 문명)' 2부는 한국고대사연구회의 자료을 중심으로 밝혔습니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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