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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명(마 문명)'에서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찾는다(2)

바이칼호수와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무엇을 증명해 주는가?

리복재 역사칼럼 | 기사입력 2009/06/08 [00:54]

'한국문명(마 문명)'에서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찾는다(2)

바이칼호수와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무엇을 증명해 주는가?

리복재 역사칼럼 | 입력 : 2009/06/08 [00:54]
[한국문명(마 문명)2부] 과거 동아시아에는 ‘고(古)아시아족(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 ‘고(古)아시아족’ 중 일부가 빙하기에 바이칼 호수가 고립되면서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생겼고 ‘간빙기(빙하기 중간 중간에 비교적 따뜻해진 때)’에 ‘바이칼리아(밝할인)’들이 바이칼 지역을 탈출하여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고 살기 좋은 황해대평원에 도착해서 당시 원주민들과 화합을 이루었다 본다.

실제로 세계에서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이는 생김새도 그렇고 ‘헬리코박터균(Helicobacter pylori)’으로도 증명된다.
 
흔히 말하는 한민족은 튀어나온 광대뼈, 낮은 코와 둥그런 머리통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둥그런 머리통 (단두형:短頭形)이란 비교적 뒤통수가 덜 튀어나와서 비교적 공모양에 가깝고 이런 둥그런 공모양은 열손실이 적고 부피에 비해서 표면적이 작으므로 둥그런 머리통 (단두형:短頭形)사람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러한 특성들은 극히 혹독하게 추운 지방에서 오래도록 살 때 생기는 특성들로서 튀어나온 광대뼈는 부족한 식량 상황 때문에 질긴 고기나 뼈까지 씹어먹기 위해서 턱 주위근육이 커지면서 공간확보를 위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흔히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말해지지만 사실은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때문인데, 한 때 징기츠칸의 몽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불릴 뿐이다.
 
 바이칼리안(밝할인)은 한국인의 뿌리인가?

 여기서 독자들은 질문 할 것이다. "한국인이 언제 그렇게 혹독한 추위를 그리 오래도록 겪었는가, 언제 그렇게 질긴 고기 등을 그리 씹어먹었단 말인가?"하고...
 
그러나 한국인의 선조가 빙하기때 바이칼호수 주위에 고립되어 살때 생긴 특성이라는 것이 학계의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헬리코박터 균'의 분포로 본 과거의 인류이동과 유전적 분포 지도. 노란색이 동북아시아 고유의 헬리코박터 균. 즉 바이칼리안(밝할인) 또는 전체 고아시아인들의 몸 속에 살던 것.    

 
도표에서 1위가 한국인데, 특히 한국인들에게서는 동북아시아 고유유전자만 나타난다. 이러한 종류의 헬리코박터 균이 한국에 가장 많은 비율로 분포되었다는 도표.   이는 사이언스 2003년 3월 7일자에 실린 연구논문(Traces of Human Migrations in Helicobacter pylori Populations) (논문 저자 - Daniel Falush, Thierry Wirth, Bodo Linz 등)  © 플러스코리아

 
2002년 8월 동아일보 기사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가 쉬울 것으로 본다. 
한민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해답을 한반도 내에서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북방 아시아인과 언어 문화 뿐 아니라 생김새와 유전적 특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국경은 물론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종합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 첫 시도로우리나라의 유전학자, 의사, 지질학자, 고고학자, 민속학자 22명과 러시아 학자 4명이 8월 5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이르쿠츠크대에서 ‘동아시아민족의 뿌리’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시베리아의 성소로 추앙되는 바이칼호를 답사했다.(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0&article_id=0000147945&section_id=105&menu_id=105)》

 한국인의 유전자를 살펴보면 북방계가 약 2/3(바이칼리안(밝할인)과 약간의 유럽인)이며, 남방계가 약 1/3(한반도, 만주 원주민과 약간의 동남아인)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 유전자 중에 이렇게 북방계 유전자가 많은 것은 당시 황해대평원으로 온 바이칼리안(밝할인)의 숫자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이 자식을 많이 낳았기 때문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즉, 혹독하게 추운 환경에 있었던 바이칼리안은 원래 비교적 소수였고, 당연히 황해대평원으로 온 바이칼리안도 당시 황해대평원 원주민보다 훨씬 적었다.

당시에는 모계사회여서 1부1처제가 아니었고 극도의 험한 환경에서 강한 정신력을 키운 바이칼인들이 당시 황해대평원 원주민 남성들보다 더 많이 여성들의 선택을 받아서 남자 1인당 자식을 많이 낳았던 것으로 본다.

이를 정리하면 한국인의 뿌리는 크게 ▲바이칼리안(밝할인) ▲한반도-만주 원주민 ▲약간의 동남아 등 남방인 ▲약간의 유럽인(백인)으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 바이칼호수 알혼섬 붉한(BULKHAN) 바위.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곳이 알혼섬이고 알혼섬에서도 가장 신성하다는 곳이 바로 이 붉한(BULKHAN) 바위. 징기스칸도 알혼섬에 묻혔다고 추정되고 있다.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7번째지만, 담수량을 기준으로 볼 때는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최대 수심 1642m인 이 호수에는 전세계 민물의 5분의 1이 담겨 있다.

초승달처럼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뻗은 바이칼호는 길이 640km, 평균 너비는 48km로,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이나 된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 여기까지 물밑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맑아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1급수)

주변의 숲과 초원에서 365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오직 하나 북극해와 연결된 앙가라강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주용 박사는 “바이칼호는 3000만년 전부터 호수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면서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매년 3천번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

바이칼호에는 2500종의 동식물이 산다. 이 중 상당수가 바이칼호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을 비롯해 철갑상어, 오물, 하리우스 등 어종이 이곳의 명물이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바이칼이 생성된 지 오래된 호수이고, 일반적인 호수와 달리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90년 미·소 합동조사단은 잠수함을 타고 수심 420m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하기도 했다.

맑은 물, 높은 생물 다양성, 많은 온천은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아시아인에게 좋은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동아사이언스 기사 참조)
 
오키나와 해저고성은 한민족의 역사인가?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역사학적으로 인류의 문명발생을 4대 강을 유역을 중심으로 또한 성경기록이 쓰여진 기원전 4000년경으로 알고 있었다.그러나 과학자나 세계 석학들이 주장하는(종교사관에 미친?) 인류 역사와 문명에 대해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류 근본문명을 찾기 위해서 아니 한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먼저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1만년전 피라미드부터 보자. 오키나와는 일본과 대만 중간 정도 지역에 있는 섬들로 일본이 오키나와를 완전 합병한 것은 19세기의 일로서 그 전에 오키나와는 독립국으로서 조선에 조공(조선왕조실록 참조)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 오키나와(류큐 열도) 중에서도 남서쪽 끝에서 해저 고성과 석상이 발견된 지도    

 
 바다속에 잠겨 있는 오키나와 피라미드(수심 약 20~25m 지점에 위치)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외국의 다큐멘타리에서 이미 많이 다루어졌다. 위의 사진들도 외국 다큐멘타리의 캡처 사진.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1만년 이상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성들로서 즉, 땅위에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서 바다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바다 속에 있게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잇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당시는 일본도 중국도 석기시대였다.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원조 한문명’ 즉 ‘고대 황해대평원 문명’ 사람들이 건너가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는 과거 빙하기 때는 북극, 남극 등에 얼음(빙하)이 많으므로 바다물이 적어지고 바다가 얕아진다. 황해(서해)는 평균 수심이 44m로 세계적으로 얕은 바다로 유명한 곳이다.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 위 그림은 2004년 호주 시드니대학 고고학센터 연구보고서에 나오는 그림.  위 지도에서 일본해를 동해(EAST SEA)로 수정해 놓았다.   © 플러스코리아

위 지도는  2만~1만2천년전 고대 한반도 주위를 대강 그린 것으로, 그런데 당시에는 현 서해(황해)지역이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으며, 현재의 해안선은 약 8천년전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즉 ,지금의 서해(황해)지역에는 말하자면 '고대 황해대평원'이라는 거대한 평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평야의 가운데를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황하]+ [요하] + [한반도 서부의 모든 강들]이 합해지는 실로 거대한 큰강인 대강(大江)이었다. 지금의 황하보다는 엄청나게 큰 강이었다.

당시 황해평야는 강동(江東: 대강(大江)의 동쪽)과 강서(江西: 대강의 서쪽)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강동(江東) 즉 한반도 쪽만 해도 거대하게 넓었다.

그런데 이 고대 황해평야는 강동(한반도쪽)이 강서보다 살기 좋았을 것이다. 진흙탕물인 황하같은 강이 흐르는 강서 (중국쪽) 보다 모든 맑은물이 흐르는 강동(한반도쪽)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한반도의 강들은 인간이 오염시키지 않는 이상 흐린 강이 없다. 이런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독일과 프랑스가 맥주와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가 물이 맑지 않아서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다.
 
▲ 전북 무주 금강의 가창오리떼    


그래서 매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날아오는 가창오리(바이칼 오리)도 중국쪽으로는 거의 안가고 대부분 한국쪽으로 날아온다. 그만큼 한국땅이 살기 좋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대 황해대평원]도 강동이 강서보다 더 살기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살기 좋은 강동(한반도 쪽)에 사람들이 몰리고 문명이 발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내려온 바이칼리안(밝할인)도 지금의 중국쪽보다는 한반도쪽으로 왔을 게 아닌가. 살기 좋은 한국으로 날아 오는 대부분의 가창오리(바이칼오리)처럼...


['한국문명(마 문명)' 2부는 한국고대사연구회의 자료을 중심으로 밝혔습니다.]
KOREA 09/06/08 [02:08] 수정 삭제  
  성스러운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 등 세계열방은 신발을 벗으라!

21세기는 환태평양 시대라고 토인비 등 인류의 석학들은 오래 전에 전망했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인류문명사적으로도 1-2만년전을 기준으로 현 인류문명의 시원지가 한반도라는 인식을 할 때가 되었다.

나무는 뿌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뿌리를 찾아야 현인류사라는 나무의 가지와 잎들과 열매들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70만년 전의 한반도 구석기유적지부터 세계최초 최고규모의 유적유물들로 넘쳐나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지역인 것이다. 1만년을 전후로 유라시아문명의 중심지 12한국.서양문명의 시원문명이라는 슈메르.아메리카 인디언 문명이 모두 한반도지역의 한국문명에서 기원했음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중심지역에 해당하는 한반도는 북한산에 솟아난 화강암(지하층의 암반)이 증명하듯이 가장 오래된 땅으로 공룡화석과 고인돌로 넘쳐나는 땅이다. 그 만큼 동식물과 인간들이 살기 좋은 비옥한 땅이였음이 증명된다. 하늘(우주)과 통하는 문명은 인구밀도가 높고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지역에서 일찍 발달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온 독자 09/06/08 [11:00] 수정 삭제  
  위 기사에서 보면 한반도로 지칭되지 않고 황하대강 서쪽과 동족으로 되있는데,
위 댓글은 한반도로만 지칭하고 성스러운따응로 표기하면 안되지 않나요?

엄청나게 큰 강 사이로 동쪽의 땅도 지금의 한반도 보다는 수십배 더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가지 좋은 정보가 많군요.
잘 보고갑니다
박민창 09/06/08 [19:13] 수정 삭제  
  민족의 뿌리를 발췌해서 알리고 자부심을 불어 넣으시고
대단한 노력을 하시고 계시네요. 좋은 정보에 늘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연방 09/06/09 [03:13] 수정 삭제  
  현재를 사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미래을 여는 역사는 왜곡조작에 단호하게 비판하고 사실대로 기술정리하고, 한국.중국.일본이 협력하여 아시아 지역이 공생공존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한민족 09/06/09 [11:33] 수정 삭제  
  마고의 후예들 고대 유라시아.아메리카를 경영하다

마고=>황궁씨=>유인씨=>한인씨=>한웅족=>고리(골.코리)족


마고의 후예 한반도인들(마한)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고인돌문화를 피라미드(적석총)문화로 발전시키다.


마한의 후예들이 유라시아-아메리카을 지배하다!


서방을 지배한 마한인들의 후예가 북방 유목민(흉노.훈)이고,


동방을 지배한 마한인들의 후예가 바로 고리(골)족이다.


흉노.슈메르(소호족).고리족은 모두 곰을 토템으로 삼았다.


맥족이 곰을 토템으로 삼았다.


서방을 지배한 북방유목민들이


마고(막=맥)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고인들은 고인돌에 북두칠성을 새겼다.


마고는 태초의 하늘에서는 직녀성이고,
북두칠성에 좌정하여 곰으로 불렸다.


한웅천왕의 시대엔 북극오성을 작은 곰으로,
북두칠성을 큰 곰이라고 하였다.

마고-마고리(마곡)-마골-모골-몽골


대홍안령 내몽골(요서지역)=고리족의 홍산문명


고리(맥.막-마고-마곡)=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일본)

유라시아 한국연방시대






징기스칸이 말하길,나는 내 백성이 부드러운고기와 따뜻한 잠자리를 갖기를 원한다.징기스칸의 성공은 전술과 전략 병력 사기 군대의 훈련도 아닌, 공정한 인사와 배분을 하였고 부하,친구,가족(친형제)가 자신을 배반하더라도 자신은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부하와 백성에게 항상 정직하게 행동하고 공정할려고 노력했다. 정직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는 비양심적인 통치자들은 백성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어 있다.



마고-마고리(마곡)-마골-모골-몽골



징기즈칸의 리더쉽과


몽골제국의 유라시아 경영


몽고의 기원은 작은 몽고리 마을에서 기원한다.[한단고기]에 보면 몽고리는 단군조선시대부터 존재했으며, 4대 오사구 단군의 동생 오사달이 몽고리 칸으로 임명됐다.







몽골족은 자신들을 코리족으로 불렀다.코리족은 요서지역 내몽골지역에서 갈라져 나간 부여족의 갈래다.코리는 발음상 고리이며 구리이며 구려다.코리는 쇠를 잘 다루며 전투에 능한 무사들이였다.유명한 코리족 출신은 해모수와 고두막과 고추모가 있다.코리족은 부여-고구려-백제-일본-불가리아-한반도 남부의 박혁거세의 진한를 개국했다.중국문헌에는 치우천황은 고리족 황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웅의 신시배달국의 중심종족이 고리족임을 알 수 있다.


치우족(코리족)은 중국 한족의 우두머리가 된 동방족 출신의 황제헌원과의 전쟁에서승리한 후 서진하여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고 유럽과 중동의 전설이 되었다. 최초 철기를 개발했다는 히티히트족도 코리족이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한 왕조도 티우(치우)왕조다.이집트 티우왕조는 동방족이다. 번개와 바람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는 치우천황이다.치우천황은 유럽역사에서 신화가 되었고, 산타크로스의 원형이 되었다.12환국(광명의 나라)의 영역은 유라시아 전역이였다.

따라서 배달국과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다물정신은 12환국의 회복을 통한 환인족의 대통합이였다.이러한 꿈을 실현한 인물이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몽골족의 징기즈칸이다.몽골비사에서 몽골시조의 코리족장의 딸 알랑고아다.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을 잘 키워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몽골에서는 유득히 어머니에 관한 노래가 많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활을 잘 쏘는 사람(고추모?)"이라는 의미의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였다.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리 부족의 귀족인 코릴라르타이-메르겐, 어머니는 바르코진-고아(예씨 부인?)였다. 코리 라르타이-메르겐 가족이 살던 곳은 사냥감이 많은 축복받은 땅. 그러던 어느날 이 곳에서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코리 라르타이-메르겐은 사냥을 못하게 만든 코리-투메트 부족과 사이가 아주 나빠졌다. 결국 그는 그들과 결별하고는 코리 라르라는 새로운 씨족을 만들었다. 코리 라르타이-메르겐이란 코리-라르의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메르겐이란 말은 보통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이미 코리-투메트 부족과는 결별했지 않은가. 이제 그들은 남이다. 보르칸칼돈이란 산에는 큰 사냥감이 아주 많다.


알랑-고아는 도본-메르겐과 결혼해서 두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도본-메르겐은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고 알랑-고아는 아들 셋을 더 낳았다. 집에는 알랑-고아와 아들 오형제 밖에 없다. 다섯 형제를 제외하고 남자라고는 오직 도본-메르겐이 주워 온 노예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장남과 차남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저 노예 놈의 후레자식이다!"

알랑-고아는 오형제를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장남과 차남에게 세 아우가 아비 없이 태어난 출생의 비밀에 관해 설명했다.

"날마다 밝은 금빛색을 띤 사람이

겔의 천장에 난 창문을 통해

빛처럼 들어와

내 배를 비볐다.

빛이 나의 배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해가 뜨고 달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금빛 사람은 노란 개처럼 서둘러 나갔다.

아버지 없이 낳았다는 이 아들들은

하늘의 아들들

너희들은 어떻게

이 세 아이를 평민들과 비교하는가.

나중에 이들 가운데 칸(Khan)이 나오면

그 때야 너희들은 이들의 내력을 알게 되리라."

알랑-고아의 다섯 아들 가운데 막내가 보돈차르-몽카크이다. 그의 후손 가운데 칸 중의 칸 테무진, 곧 칭기스칸이 나왔다. 그리하여 칭기스카간은 위 하늘에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갖고 있었다고 기억된다. 몽골인들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은 알랑-고아를 잊지 않았고 알랑-고아는 몽골인들의 시왕모(始王母)가 되었다.







1-대몽골의 말발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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