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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신이 된 배달국 태우의 한웅의 딸 '여와'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사상의 근원,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성

윤복현 저널리스트 | 기사입력 2009/10/17 [00:10]

이스라엘 민족신이 된 배달국 태우의 한웅의 딸 '여와'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사상의 근원,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성

윤복현 저널리스트 | 입력 : 2009/10/17 [00:10]
▲ 여와가 들고 있는 콤파스로는 둥근 圓원을 그린다. 천문도상의 적위선분을 그린다는 의미이다. 복희의 곱자는 천문도상의 황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값인 28수의 적경의 수치를 나타낸 것이다.    

 

기독교3위1체 교리의 근원-한민족의 3신1체 광명신 하느님 신앙
 
기독교가 도용한 하느님의 실체는 한민족의 하느님이다(미국 선교사들의 저서에서 고백).한민족의 하느님은 3신1체(물리학적으로는 3가지가 빛으로 합치면 백색이 되고 색으로 합치면 검정색이 되는 빨강.파랑.녹색 3색 쿼크는 오묘한 조화와 냄새로 천.지.인 합일로써의 우주만물을 창조하는 근원=3신1체) 광명신이다.
 

▲ 한민족의 3신1체 광명 하나님 신앙과 우주만물의 생성토대-3색 쿼크(3태극). 우주 탄생에서 0.00001초, 우주의 온도가 1조 K(절대온도)로 내려갔을 때 우주에 다시 상전이가 일어났다. 이것을 '쿼크, 하드론 상전이'라고 한다. 그 때까지 단독으로 날아다니고 있던 쿼크가 3개씩 모여 양성자나 중성자 등의  하드론을 형성하였다.쿼크는 '색(色)'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상전이 전의 각각의 쿼크는 ' 적색' '초록색' '청색'의 어느 상태에 있었다.
 

적색, 초록색, 청색은 빛의 3원색으로 3색을 다 섞으면 백색이 된다. 우주의 온도가 10억  K보다 낮아지면 색 사이의 인력에 의해 적색, 초록색, 청색의 쿼크가 3개씩 모여 전체가 백색인 하드론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또한 우주의 온도가 10억 K까지 내려간 우주 탄생 3분후, 이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여 다양한 원소의 원자핵이 만들어졌다. 이때 우주에는 다행스런 상황이 벌어졌다.

만일 우주가 천천히 식어 갔다면 모든 양성자와 중성자는 가장 안정된 원소인 철(Fe)로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그런데 다행히도 우주는 백뱅이라는 팽창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우주의 온도는 급격히 내려갔다. 그래서 양성자나 중성자로부터 수소와 중수소, 헬륨이라는 가벼운 원소만이 만들어진 것이다. 별들은 현재 이 수소를 원료로 삼아 빛나고 있다. 









신라최고의 지성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서 말한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神史 국유현묘지도 왈풍유 설교지원 비상신사..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현묘한 도-풍류"의 실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진정한 실체라 할 수 있다.

▲  기독교가 한민족의 하느님을 도용했다고 고백하는 미국 선교사들 © 윤복현 저널리스트

이스라엘민족신이 된 신시배달국 태우의 한웅천황의 따님 여와(여호와)
 
세계에서 가장 두뇌가 우수한 민족은 한국민족과 이스라엘민족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한국의 천손의식과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엘민족의 선민의식이 있다. 이러한 한국과 이스라엘민족의 유사성은 우연일까? 아니면 역사성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역사성에서 기인한다고 해야 맞다.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다 보면 한반도와 만주는 종교사상풍습에 있어 유라시아를 넘어 중동까지 연결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 이스라엘의 민족신이 된 배달국 한웅천황의 따님 여와과 이복오빠이자 남편 태호복희(중국 인문학의 시조). 현재 중화민족 인문학의 시조로 숭배되고 있는 태호 복희씨는 염제나 황제보다 빠른 "삼황의 으뜸"이며, 성씨는 풍(風)이다. 전설에 의하면 150년간 재위하였으며 진(陳: 지금의 하남성 회양현<淮陽縣>)에서 살면서 중국지역의 동이족을 다스렸으며, 서방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무덤은 현재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부산(鳧山)의 남쪽에 있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일설에는 용의 몸)을 하고 있었으니, 그가 다스린 부족은 뱀이나 용을 토템으로 삼았을 것이다.  중국의 뱀(용)문화가 동방족의 문화라는 사실은 황하문명의 뿌리가 되는 요하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된 뱀모양의 돌무더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윤복현 저널리스트

유대인들이 숭배한 이스라엘민족신으로 숭배한 여호와의 실체는 배달국 태우의 한웅천황의 따님 여와로 태호복희와 함께 중국지역으로 이주하여 중국인들을 교화하면서 혼인제도를 통하여 인간들을 번창케하니 중동지역으로 간 슈메르인들에 의해서 여호와로 발음이 전이되면서 고대 한국인들이 문명을 건설했던 슈메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난 이스라엘 민족시조 아브라함에 의해 이스라엘 민족신이 된 것이다. 여호와가 흙으로 사람을 창조했다는 창세기 설화는 이미 기독경보다 수천 전 오래 된 배달국 태우의 한웅의 따님이신 여와설화의 전승일 뿐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아브라함이 슈메르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영어=조선피플=chosen people)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 또한 한국의 줄기인 셈이다. 지금이야 백인종들과 피가 섞여 혼혈족이 되어 버렸지만, 고대 이스라엘민족의 체형과 풍습이 한국과 동일했다.즉, "검은 머리를 한 사람들이며(민수기 13:32-33) 흰옷입기를 좋아하고, 장례식때 상주들이 베옷을 입고 베로 건을 만들어 쓴 뒤 향을 피우며 대나무를 짚고 곡을 하고 (창세기 37:34, 역대기 상21:16), 곡을 할 때는 ‘아이고 아이고’한다는 점과 제사 지낼때에  돌 제단을 쌓아놓고 제사를 지내며 동지날에 악을 몰아낸다는 한민족풍습으로써 양의 피를 상징하는 팥죽을 대문에 뿌리는 유월절의 문설주 풍습(출애굽기12:6, 23)이 같다는 점이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은 우리와 같은 농경법과 농구(보습, 쟁기, 도리깨 등)로 농사지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부삽, 불집게, 숟가락, 놋그릇을 사용(열왕기 하25:14)하여 매운 음식과 부추 그리고 아주 깊고 맑은 물에서만 사는 향어(일명 이스라엘 잉어) 등을 즐겨 먹었다.여인네들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든가 외출 시에 얼굴을 가리고 다닌 풍습 또한 동일했다.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는다 하여 ‘백의민족’이라 일컫는데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흰 옷은 노동복이 아니라 예복이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예복도 바로 세마포 모시옷(레위기 16:4)이었으니, 예법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 또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흰 두루마기를 입고 예절을 갖추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전통을 잘 지키며 살아 가는 종족은 중동의 사막지대, 특히 아라비아·이라크·시리아·요르단 지역에 살면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목민들인 베두인족이다.
2천 년 전 한민족의 풍습을 간직하고 살았던 이스라엘민족의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베두인족은 고대 유대민족의 전통과 풍습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인류학자들은 주로 그들의 생활과 의식을 통해 유대민족의 전통과 풍습을 고증하고 있다. 베두인족은 결혼할 때 서약식을 한 후, 신부의 부모가 사는 천막 근처에 임시로 초당을 짓고 3일 동안 신방을 꾸민다. 이때 이 초당의 주위에 ‘양의 피’를 뿌려 잡귀를 쫓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신부의 부모가 사는 근처에 양의 피를 뿌릴 수는 없었고, 다만 양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신부의 온 몸을 치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녀 때는 빨간 댕기를 하고 결혼할 때에는 빨간 치마에 빨간 끝동과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입고서 얼굴에 빨갛게 연지곤지까지 찍었던 것도 일종의 사자귀신을 쫓기위한 풍습이라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의 여인들도 즐겨 행했던 것이다. 5?6세기의 쌍기둥 및 수산리 무덤 속 벽화의 여인들 모습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베두인족들은 남녀유별과 남존여비사상이 두드러져서 우리 여인네들처럼 누구나 아들 낳기를 고대하였다. 그래서 아이를 못 낳는 경우나 딸만 낳는 경우 이혼조건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셈이다. 처녀들은 예전의 조선시대 처녀들처럼 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리고 다니는데 그러다가 결혼하면 대개 머리를 틀어 위에 얹었다. 그리고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든가 외출 시에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베두인족에서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 갑골문 금문에서 보여주듯이 활궁(弓)은 활이 아니라 활처럼 휘는 몸을 가진 뱀이다. 한국을 건국한 한인씨의 토템이 태호복희씨와 동일한 뱀이였다고 한다. 뱀은 지혜의 상징이다. 그러나, 기독경 창세기에는 사람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사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권력이 바뀌면 통치구조와 문화가 변하듯이 뱀을 토템으로 삼았던 동방족이 슈메르의 멸망과 함께 기득권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창세기49장에는 '단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내용에서 단지파를 뱀에 비유하여 "독사(뱀)이 말굽을 물어 말탄 자를 떨어 뜨리게 할 것이다."라고 내용이 들어 있다. [한단고기]에 보면 중동지역의  우르인 20여명이 단군조선의 땅으로 투항해 오니 단군천황께서 염수근처에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르는 아브라함이 떠난 나라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단군조선시대의 유물로고대 히브리어문자가 기록된  와당이 출토되어 중동지역에서 단군조선지역으로 이주해 왔다는 [한단고기]의 기록내용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 윤복현 저널리스트

동양 최고의 창조여신 - 여와(여호와)
 
배달국 태우의 한웅천황 따님 여와도 중국인들이 만든 설화에 따르면 흙으로 수 많은 사람을 만들어서 전쟁에 내 보낸 창조신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 명 재상 을파소가 작성한 [참전계경]서문에도 여와는 흙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만들어 전쟁터로 내 보낸 창조여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양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의 여신은 배달국 태우의 한웅천황의 따님 여와다. 고대 중국인들에 의해 신격화된 여와는 하늘과 땅만 있고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와는 정월 초하루에 닭을 만들었고, 이틀째 되는 날에 개를, 사흘째 되는 날에 양을, 나흘째 되는 날에 돼지를 만들었으며, 닷새째 되는 날에 소를, 엿새째 되는 날에 말을, 이레째 되는 날에 사람을 만들었다. 여와의 창조는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여와는 다시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일반 곡식을, 아흐레째 되는 날에는 조를, 열흘째 되는 날에는 보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독경>을 보면 하나님이 곡식과 날짐승, 길짐승을 닷새에 걸쳐 미리 만들어 놓고 엿새째 되는 날에 사람을 만든 뒤 이레째 되는 날 쉬게 되는데 두 신화의 내용이 비슷해 흥미롭다. 이것은 신화와 설화를 만든 주역들의 거주지역과 문화에 따라 달리 표현된 것이지 그 대상은 창조신 여와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와는 이처럼 창조만 주관한 것이 아니었다. 파괴된 것을 고치고 약한 것을 보듬는 치유의 여신이기도 했다. 아득한 태고 시절 하늘과 땅에 큰 재난이 닥쳐온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만 것이다. 자비로운 여신 여와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의 고통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여와는 즉시 오색의 큰 돌을 다듬어 구멍 난 하늘을 기웠고, 거대한 자라 한 마리를 잡아 네 발로 지구의 네 귀퉁이를 떠받치도록 했다. 그랬더니 하늘과 땅이 곧 안정을 되찾았고 세상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여와는 또한 인간이 영원히 번성할 수 있도록 결혼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에 여와는 고매신(高媒神)이라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고매신이란 신성한 결혼의 신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고매신인 여와의 사당에 가서 빌면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식도 낳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와숭배신앙은 바로 마고라는 여성통치자가 다스리던 마고성 시대의 모계사회문화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민족신 여호와도 이스라엘민족을 자신의 자식들이라는 생각으로 이민족을 멸족시켜서라도 자기 자식들을 지키겠다는 전쟁신이고, 이스라엘민족이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않고 타락의 길로 나가면 호통치고 이민족을 움직여 고통을 가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과 같이 자식들을 엄하게 키우는 모성의 속성이 신학적으로 이스라엘민족신 여호와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마고로 대변되는 현인류의 초창기는 여성 중심의 사회, 곧 모계사회였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생산해 내고, 만물을 자라게 하는 대지를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신으로 숭배했다. 이러한 신을 대지모신(大地母神) 또는 지모신이라고 한다. 여와는 동양의 대지모신인 셈이다. 대지모신은 여와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남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었다. 현대의 여성학자들은 이 때문에 신화 속의 여신에 주목한다. 즉 여신들은 의존적이지 않은 주체적인 여성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 기독경에 기록된 바벨탑  설화의 배경이 되는 슈메르인들의 제천단(지구라트). 높은 산위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고대 한국인들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서 사막지대로  이주해 오니 하늘에 제사지낼 높은 산이 없어 벽돌로 건설한 제천단이다.© 윤복현 저널리스트
기독교사상의 뿌리:한국=>슈메르=>이스라엘  
 
에덴동산설화.노아홍수설화.바벨탑(슈메르 지구라트)설화 등 기독경의 창세기 설화들과 시편.잠언.옵기 등 구약기독경의 문학서들은 바벨론 포로기때 끌려간 이스라엘 사가들이 가져와서 구약기독경를 이스라엘민족사관으로 편집하면서 사용된 원형자료로써 길가메쉬 서사시 등 슈메르인들의 전승 문학서들이다. 기독교사상의 뿌리는 슈메르인들의 초기 유적지에 해당하는 아모르에서 발견된 유물(편두형의 몽골리언 유골.개순장.10진법.봉황숭배.씨름석상.태음력 사용.한국인들의 언어사용 등)로도 증명되었듯이 동북 아시아에서 중동지역으로 이주해 온 고대 한국인들의 하느님 신앙과 제천문화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경만 붙들고 주여!만 외치지 말고 역사부터 바르게 알자!!
 
321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황제를 비롯한 로마교부들이 참여한 나케아종교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학파의 예수의 신성론을 중심으로 결정된 3위1체 교리(하나님=예수=성령/인간 예수가 절대신의 자리에 좌정한 배타주의 교리=기독교의 폐쇄성과 침략성이 배경이 되는 교리)는 기독교의 정통교리로 결정된다. 이에 반해 예수는 하나님과 유사한 본질을 지닌 피조물이지 동일한 본질을 지닌 피조물이 아니라고 극히 이성적으로 주장한 아리우스주의 학파는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성과 양심이 반이성과 기득권에 짓밟힌 뒤틀린 기독교 역사인 것이다.
 








▲ 태양=한(칸.안.간)님=광명의 상징. 태양은 값없이 소리없이 언제나  태양계(만물)를 비추고 생명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광명)다. © 윤복현 저널리스트
 
그리고 현대신학의 흐름은 태양계의 중심이 태양이듯이 한민족의 하느님 신앙으로 복원되는 차원에서 '하나님중심신앙'이라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대세다.  
▲  다석 유영모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의 선구자 또한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 되는 한국인 다석 유영모 선생이시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예수를 인간으로 보지 절대신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인류를 포함한 유불선 종교교주들인 예수.공자.석가모니.마호메트는 한얼님(하느님)의 자식들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평등한 것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상적인 신학사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기독교인을 떠나서 한국땅에 태어난 사실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어서 빨리 한민족사를 바로 인식하여 우리 민족의 하느님을 바로 알고 섬기고 제사지내기를 바라는 바이다. 

한민족의 3대 경전(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중 하나인 [삼일신고]에 이미 말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오로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통해 하느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너의 머리 속에 이미 내려와 계시니라!"  


 
[자료]갓=GOD
 
갓머리. 하나님이 계시는 궁(집)이다.

((GOD부)+ (집부)
를 합성하면

(궁부)갓(GOD)머리다.)




하나님이 머무는집은 궁이다.

 
한국의 갓(GOD)


본자 이체자속자 이체자이체자 [고]



교회   
  이체자  

   
천단. 원구단.고高자의 갑골문을 통해 볼때 원구단이나 천단.
사원,교회건물구조는 제천단의 모형을 본뜬 것으로도 볼 수있다.


우주의식(하느님)과 우주선:고대인들은 인간들이였던 우주인들을 신으로 숭배했다.

기독교사 09/10/17 [12:22] 수정 삭제  
  한민족사에 등장하는 여와








지나의 인류창조신 여와
우리나라 배달국에 있어서 여와(女媧)는 소호김천씨의 할머니이며, 중국의 3황에 해당하는 태호복희씨와는 남매지간으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또한 태호복희씨는 환웅 5세 태우의의 12자녀 중 막내아들이다.

지나국의 인류창조신 여와

중국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 여와라는 여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후한(後漢) 시대에 응소(應邵)가 지은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 사람은 없었다. 이때 여신 여와가 황토를 뭉쳐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 하나 만들다 보니 나중에는 힘이 들어 많이 만들어 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끈을 진흙탕 속에 담갔다가 꺼내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랬더니 흩어진 진흙이 모두 사람으로 변하였다."

원용국 씨는 그의 저서 <구약사>에서 모세연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렁이가 팀나의 성전에서 발굴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인두사신이 교미(상기 그림)하는 복희와 여와씨의 그림과 대조적이다.

[자료]로마제국에 의해 하나님이 되어버린 예수

1차 니케아종교회의-하느님이 되어버린 예수






기독교의 모든 핵심 교리가 만들어진 종교회의에 관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연재합니다.

제1차 종교회의 (니케아) : 하느님이 되어 버린 예수 제2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삼위일체를 결의 제3차 종교회의(에페소스) : 마리아를 하나님(신)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 제4차 종교회의(칼케돈) : 예수의 이중성에 대한 신조 도입 제5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인류의 타락 누구의 죄인가?

■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그리스도교를 이용하고자 소집.

속셈은 한창 번창 중에 있는 그리스도교를 업고 로마제국을 굳혀놓기 위해서였다. 콘스탄티누스가 318명의 주교들을 선발, 소집했던 배후에는 이빨을 드러낸 파워폴리틱스(Power Politics)에서였고, 종교야 어찌되건 관심밖의 일이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 점에 대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던 주교들도 짐작 못한 바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황제는 ①회의를 사회했고 ②내 뜻은 바로 교회의 법률이라는 성명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세례도 받지 않은 황제를 <세계의 주교>격으로 영입시켜 속세의 왕으로서 교리에 관한 투표에 참가시켰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의 가르침이니 뭐니 전혀 아는 바 없었다. 그는 미트라의 태양숭배를 받들었었고 기독교세상이 된 뒤에도 그가 발행한 화폐에는 미트라神의 초상을 조각, "무적의 태양, 나의 보호자"라고 써놓고 있다.

희랍에 옛날부터 있어 오는 비잔틴에 자기 이름을 붙여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고쳤는가 하면, 여기를 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했을 때에도 역시 기독교적인 겸허따위는 오불관언, 기념축전에서는 거대한 기둥탑을 세워, 미트라신과 자신의 모습을 조각케 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노예를 폐지하려는 생각은 커녕 오히려 음식물을 도둑질한 노예의 입에 납을 녹여 붓는 형벌과 가난한 자는 자식을 팔아도 된다는 법을 정하기까지 하였다.

■ 교회정책의 어떤 결정에 참여했던 것일까?
당시에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동등하다고 하는 아타나시우스의 설과 신은 오직 하나뿐이므로 그리스도는 신을 닮아 있을 뿐이라는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의 설이 대립되어 있었다. 이것이 많은 사제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파급되어 대립이 심각해지자,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 고문관인 오시우스를 보내어 진상을 조사케 했다. 오시우스는 돌아가서 황제에게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라고 했다. 그는 만일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기독교 교리가 허물어지고 믿음에 혼돈이 생겨 교회의 권위가 파괴되어 분열을 일으킬 것이며, 결국 로마제국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당시는 유럽, 이집트, 서남아시아의 전지역에 퍼져있던 미트라 신앙이 쇠퇴하고 그 대신 기독교가 국교(313)화된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기독교 교리의 절대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는 로마제국을 강력하게 통치할 수 없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속적, 정치적 속셈도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친히 회의를 주도하고 토론에도 참석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 대부분은 극단의 양 견해를 피하고 중간자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채택되도록 주교들에게 압력을 가해 아버지격이 되는 하느님과 예수그리스도는 동등하다고 결의케 했다. 결국 단 두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참석자가 아타나시우스에게 표를 던졌다.

■ 황제와 그의 결정이 교회의 핵심교리가 됨.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니케아회의의 결정이 신의 감화에 의한 것이라고 자랑했고, 대부분의 순진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본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은, 신학적 논리에는 어두운 인물이었다.

비기독교인인 콘스탄티누스는 또 그 이상의 공적도 교회에 기여했다. 예수의 무덤을 사상 처음 발견하여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그 해에 그는 근친 몇몇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들 그리스프스, 처 파우스타를 끓는 열탕 속에 처넣어 죽였고, 장인 마키시미안을 체포하여 자결시켰다.

<니케아의 신앙 선언>을 주재하여 회의를 끝낸 뒤, 318명 주교들의 합의야말로 하느님의 결정이라는 것을 기독교 교단에 회람을 돌린 인물은 대주교격인 황제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르메니아, 그리이스, 러시아 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받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 미트라(Mithras) 신앙이 그대로 기독교로 옮겨짐








미트라 신전의 내부조각
흔히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이들이 미트라 신앙을 고대의 잡신 신앙이나 원시신앙으로 매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미트라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뿌리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태양신으로 널리 알려진 미트라에 대한 신앙은 약 사천년 전,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다. 미트라 신앙은 동으로는 인도에서 중국까지 서로는 로마국경의 전 범위, 즉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 사막, 스페인에서 흑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미트라 신앙은 로마제국에서 로마 군인들의 종교가 되었고, 제국 전역에 사원과 성전이 세워진다. 그들은 미트라에움이라는 자연적인 동굴모양을 모방해서 만든 사원에서 의식을 행했는데, 황소를 제물로 바쳤다.

"미트라" 동굴에서 꼭 발견되는 하나의 그림이 있는데, 한 인물이 황소의 목을 따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황소를 제압하는 인물이 "미트라"로써 태양신의 아들이다. "세상의 빛"으로 불리워졌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 성 삼위 일체의 두 번째, 즉 아들의 존재로써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생일은 12 월 25 일로 경축되었다. 만인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었다가 3 일만에 부활하였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의 부활절 주기와 일치하며 12제자를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예수의 가르침이 국교화되는 과정에서 이 미트라 신앙의 의식이나,제도,관습,교리 등이 없어지지 않고 초기 기독교에 의해 대부분 수용된다. 즉, "미트라" 숭배자들이 믿었던 천국과 지옥, 죽은 자가 부활하는 심판의 마지막날,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위해 현존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최후의 전쟁, 구세주의 고통과 형벌이 신자를 구원하게 되리라는 교리, 영을 통해 거듭 태어난다는 것, 구원, 부활, 재림 등의 교리, 최후의 만찬 이야기 등등 너무도 흡사하다.

또 미트라신은 처녀한테서 태어났는데 예수도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또 미트라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제가 12월 25일에 열렸는데 이를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하여 예수의 생일로 쓰게 되었다. 그리고 두 종교 모두 세례의식과 피와 포도주에 의한 성화의례가 있다.

기독교 사제의 명칭인 파더(Father)는 미트라교 사제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며 미트라교의 주교는 자신들 직책의 상징으로 미트라 또는 미테르(주교관)을 썼는데 기독교의 주교들 또한 이러한 미테르를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카톨릭의 성직자 계급 제도나 예배 형식 및 예배 시 쓰이는 도구들 즉 향불, 예배 의복 등등 모두 미트라와 흡사하다. 십자가 목걸이, 염주알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와같은 연유로 라즈니쉬는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라 콘스탄틴 황제라고 선언한 것이다.

■ "기독교의 창시자는 콘스탄틴 황제이다." -라즈니쉬-
" 믿기지 않겠지만 기독교의 창시자는 콘스탄틴 황제이다. 기독교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중들이 그 사실을 알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니케아 종교회의를 주도했던 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인으로 죽었지만, 임종직전에 세례만 받았을 뿐이다.

그는 평생동안 태양신 종교의 고위성직자로 있었다. 바로 이런 관계로 예수의 안식일인 토요일을 일요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예수 역시 토요일을 안식일로 믿고 평생 살았다..

태양의 숭배자들은 항상 태양의 날이 신성한 날이라고 믿어왔다. 실제 기독교의 창시자는 콘스탄틴이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로마의 황제였기 때문에 그의 압력하에 성직자들은 예수의 신성에 찬성하게 된 것이다. 바로 콘스탄틴이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다. 예수의 신격화는 콘스탄틴의 착안이다.

또 콘스탄틴은 예수의 생일을 1월 6일에서 태양의 재생일인 12월 25일로 바꾸었다. 12월 25일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전세계적으로 경축해온 태양신의 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발상 전체는 꾸며진 것이다.

예수는 1월 6일에 태어났다. 그런데 콘스탄틴의 영향력에 의해 예수의 생일은 태양의 재생일인 12월 25일로 둔갑된 것이다. 태양숭배자들은, 태양이 12월 25일에 탄생했다고 생각해 왔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완전한 무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크리스마스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는 채..... 교회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철저히 감추고 있다. 이것이 진리의 수호인가? 거짓의 방어일 뿐이다.

콘스탄틴은 예수를 실패한 메시아로 보고, 그 자신을 진정한 메시아로 생각했다. 그의 이런 견해는 유명한 주교인 케자리아의 유세비우스의 다음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종교는 마침내 예수가 아닌 콘스탄틴에게서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콘스탄틴은 그 자신을 유대인들이 기다려온 마지막 예언자로 만들었다. 물론 유대인들은 로마의 황제를 십자가에 매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왕권의 원조를 원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곳곳에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있었다. 그들은 콘스탄틴의 보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순전히 협상,비지니스에 불과하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실패한 메시아이고 콘스탄틴이 참메시아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런 사실은 대중들에게 공표된 바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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