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돈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뼈저리게 마음 아팠던 적이 없었습니다. 학창시절 무척 가난하였지만 독학으로 대학원까지 나왔고 이제까지 밥을 굶은 적도 없었습니다. 많은 황교수님 지지자들이 서명이나 전단지 작업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플러스코리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플러스코리아는 그런 서명 작업이나 전단지 홍보 하나 하지 않으면서 말만 많으냐 라는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황우석교수 사태를 모태로 생겨난 플러스코리아는 그동안 서명운동을 하고자 무척 노력하였으나 자금난에 시달리느라 전혀 하지 못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국민의 소리에서 서명운동을 하게 되었고 60만이라는 엄청난 사람들로부터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서명이 "한시적 연구재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황우석교수님의 연구재개를 원하는 거의 모든 국민들은 체세포배아복제줄기세포 발명자에 대한 영구적인 연구를 원하였습니다. 서명을 하면서도 사실 당연히 영구적인 연구재개라고 생각하고 하였을 것입니다. 저 자신도 일일이 읽어보지 않고 서명을 하였기 때문에 "한시적 연구재개"인지 모르고 서명을 하였습니다. 지난해 플러스코리아 개소식 때 130명 정도가 다녀갔는데 식이 진행되는 중 60-70명 정도가 자리 잡은 가운데 리복재 대표기자는 황우석 교수님을 살리고 특허수호를 하기 위해서는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명운동이 최고라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서명 작업도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플러스코리아가 만들어진 바로 얼마 후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운영위원회가 해체되었고 운영진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엄청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리복재 대표기자가 플러스코리아의 직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서명 작업할 것을 말하였으나 사실 다들 돈이 없어서 추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돈을 주고 주민등록번호 확인도 하여야하고 행사 비용과 그에 따른 웹진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웹진 만들고자 했을때도 지지자 모씨가 3백만원을 후원해 줄 것처럼 말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후원(이 부분은 누구인지 밝혀주지 않음)을 못하겠더랍니다. 그 뒤에 다시 서명 작업을 위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15명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를 비롯한 몇 명 지지자에게도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였지만 저도 제 아주 가까운 친척이 파산을 맞아 생계의 위협에 처한 상태여서 한 푼도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상황을 알면서도 거절해야 했을 때 아픈 마음이야 오죽하였겠습니까? 그동안 리복재 대표기자는 신문사 운영비와 기자 월급 등을 친척과 지인등에게 빌려서 주었으며 12월 부터는 도저히 돈이 없어서 정상화 될 때까지 순수하게 돈 안 받고도 할 수 있는 기자만 남도록 조치하고 모두 내보냈습니다. 그러자니 리복재 대표기자는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할 정도의 강행군을 하면서 플러스코리아을 이끌어 오고 있었습니다. 리복재 기자는 기자이기 이전에 경영자로서 플러스코리아의 파산을 막기 위해 계속 돈 빌리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엄청난 음해 때문인지 지지자들이 보내주던 푼돈마저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현재 거처하는 곳도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불편한 열악한 환경의 낡고도 햇볓도 들어오지 않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구가옥의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플러스코리아에서 서명 작업을 하고 싶은 분야는 특허수호를 위한 1번 줄기세포 재검증을 위한 서명, 추적60분 방영을 위한 서명, 황우석 교수님의 완전한 연구재개를 위한 서명, 체세포배아복제줄기세포 발명자를 합법적으로 연구하게 하는 생명공학법 추진을 위한 서명입니다. 십시일반이라도 여러 지지자들의 관심만이 줄기세포특허 사수와 진실규명 및 황교수님의 연구재개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이 사태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저는 너무나 슬픈 마음으로 하루빨리 서명 작업에 돌입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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