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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발견하는 기쁨

최분임 기자 | 기사입력 2008/05/02 [17:04]

시를 발견하는 기쁨

최분임 기자 | 입력 : 2008/05/02 [17:04]
2008년 4월 14일 봄기운이 온몸으로 감겨드는 저녁, 시흥문인협회 주최로 정호승 시인의 문학 강연이 농협중앙회 3층에서 있었다. 그의 대중 친화적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한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학생들도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시인의 첫인상은 꼬장꼬장한 선비를 떠올렸다. 젊었을 때 부드러운 외모의 사진으로만 기억되어서일까. 생각보다 딱딱한 인상이었다. 흑백사진의 힘이 세다는 걸 느꼈다.

그의 강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마추어들을 안다는 것, 이었다. 장황한 이론을 들이대며 기를 죽이는 문학 강연이 아니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머리에 먹물 담아 와서 주위에 검정물 뿌리는 강연이 아니어서 좋았다. 유머가 없어서 좀 건조하긴 했다. 

 “시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음악이 없으면 인생이 삭막하고 쓸쓸하듯이, 또한 꽃이 없으면 삶의 신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삶은 절망감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붕어빵 속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들어 있습니다. 실제는 붕어빵이 들어있지 않지만, 붕어빵이 들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상상력이 커지고 시를 발견할 수 있는 겁니다.”

시인은 부천역 근처를 배회하다 발견한 붕어빵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의 문을 열었다. 그가 연 문 안으로 쭈뼛거리던 마음을 감추고 들어섰다.

“언젠가 아내가 시장에서 무지개떡을 사왔습니다. 그 떡을 먹으면서 단순히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무지개를 먹고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으로 무지개떡, 이란 동시를 하나 썼습니다. 무지개떡 속에는 무지개가 없지만 무지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무지개를 먹었다고 썼습니다. 또한 아내가 사온 떡을 먹었다고 하는 것보단 엄마가 사온 떡, 이라고 하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 엄마를 집어넣었습니다.” 

       무지개떡

엄마가 사 오신 무지개떡을 먹었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 놓았다

북한산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시인은 무지개떡을 먹으면서 시를 썼다. 시를 쉽게 생각하고 발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일상 속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들이 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 말 한 마디 한 마디, 꽃이 피는 현상이며 사물들의 신비와 기쁨이 모두 시, 라고 했다.

“지금 피고 있는 목련을 보고 기분 나빠할 사람 있습니까? 그 검은 가지에 잎도 없이 작은 것도 아니고 손 같은 것을 매다는 거 정말 신비하지 않습니까?”

시인이 말하는 목련을 두고 어느 시인은 허공에 주먹을 올려놓았다고 했고, 어느 시인은 사기종지 안에서 피는 바람떡, 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의 시적 대상을 놓고도 자신만의 어조와 화법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이가 바로 시인이리라. 

            혀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

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

병약하게 태어나 젖도 먹지 못하고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죽은 줄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

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손바닥만한 언 땅에 묻어주었으나

어미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

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시인의 집에는 15년 된, 지금은 당뇨와 전립선 등 잔병을 달고 사는 ‘바둑이’라는 개 한 마리가 있다고 한다. 그 바둑이를 장가보내야 한다며 아내가 치와와 한 마리를 집에 들였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을 하려면 자신의 허락을 받으라, 며 감시를 하고 거처도 따로 떼어 놓았다고 했다. (무릇 사랑이란 장애물이 있을수록 더 애틋하고 불타오르는 법이거늘...)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전화를 했단다. 들인 ‘아지’(암컷, 치와와)가 새끼를 낳았다고. 시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고 집으로 왔더니 정말 고 조막만한 것이 새끼손가락 같은 새끼를 한 마리 낳았더란다. 시인의 집으로 온 후 고 작은 것이 걸구가 들었는지 어찌나 먹어대던지 먹는 걸 줄였었는데 이럴 수가! 

결국 영양상태가 나빴었는지 새끼는 죽었다. 그 병약한 어린 것을 떠나보낸 어미의 마음을, 조건 없는 모성을 시로 썼다고 했다. 물론 밤새도록 혀를 뽑지도, 다 닳아 없어지지도 않았지만 시인은 그렇게 마음으로 본 것이다. 인간의 따뜻한 체취가 배어있는, 성실한 관찰이 낳은 시였다. 이런 것이 시다! 


         허물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시인은 앞의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를 통해 모성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죽어있는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즉 죽어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몸에 힘을 주는 것, 그것을 읽어내어 표현하는 것, 그것을 다시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짚어봄으로써 생명의 근원인 조건 없는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모두 내주고 이젠 텅 빈 허물인 어머니,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된 어머니와 그 허물을 벗어나 다시 허물이 될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빨아먹고 던진 허물은 바로 내 모습이다.
 
시적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담백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시인이 부러운 이유다. 


                산낙지를 위하여

신촌 뒷골목에서 술을 먹더라도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를 먹지 말자

낡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산낙지의 잘려진 발들이 꿈틀대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서러웠겠니

우리가 산낙지의 다리 하나를 입에 넣어

우물 우물거리며 씹는 동안

바다는 또 얼마나 많은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겠니

산낙지는 죽어가면서도 바다를 그리워한다

온몸이 토막토막 난 채로

산낙지가 있는 힘을 다해 꿈틀대는 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바다의 어머니를 보려는 것이다.

(지하철 신촌역 어느 기둥에 이 시가 쓰여 있다고 한다. 시인의 시를 여러 군데서 뒤지다가 발견.)
20년 전, 친구가 맛있는 게 있다며 데려간 음식점에서 조우한 산낙지를 늘 가슴에 담아뒀다가 20년 후에 쓴 시, 라고 했다. 그러니까 시도 된장이나 간장처럼 묵혔다고 꺼낼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시는 과학이 아니라 비과학, 이라고 했다. ( 시인은 아마도 바다가 서러웠다는,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는, (사람이나 낙지가 아니라) 말이 걸렸었나보다. 시가 과학이었다면 벌써 우주선에 실렸겠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사물에게도 죽을 때 품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은 산낙지가 도마 위에서 토막 쳐지던 텔레비전의 음식 프로를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지 느꼈다고 했다. 그걸 그렇게 자세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며······.
 
산낙지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죽을 때를 포함한 전 생애에 걸쳐 품위가 필요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의 품위를 결정하는 건 외적 조건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당당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통제력, 타인에 대한 정직함과 배려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죽을 때 품위가 필요하다면 살았을 때의 품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어쩌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고.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챙기고 시 앞에 나서라고! 인간을, 사물을 이해하고 껴안지도 못하면서 감히 시를 안다고 너풀거리지 말라고······.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시인에게는 여든아홉의 아버지가 계신다. 7~8년 전 한쪽 시력을 잃어 눈이 나쁘시다. 시인은 친구한테 받은 나팔꽃 씨를 심었다가 실패를 했다. 땅을 너무 깊게 판 탓이었다. (씨앗이라고 흙에 묻기만 하면 다 싹을 내는 것이 아님을 시인은 몰랐나보다. 씨앗에게도 생각이 있다. 자기에게 맞는 깊이와 자리가 아니면 앉지를 않을 뿐 아니라 자기를 내보이지 않는다!) 다시 친구에게 나팔꽃 씨를 얻어다가 무심코 식탁 위에 뒀는데 시력이 나쁜 아버지가 환약인 줄 알고 드시려고 했다. 시인이 말려서 드시진 않았지만 시인은 드신 걸로 표현했다. 

노인의 삶은 비감 그 자체이지만, 이 시에서는 따뜻하게 삶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삶이 비록 비루하지만 또한 다르게 생각해보면 삶이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것인가, 라고 생각한다고······. 마음의 눈으로 발견한 시, 라고 했다.

비루하고 하찮은 삶을 둥글고 따뜻하게 감싸 안는 작업이야말로 시 본래의 역할일지 모른다.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비로소 하나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존재론적 사유를 보여주는 게 시, 의 존재이유가 아닐까? 

나팔꽃으로 피어나는 노인이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곁에 있다면 불경스럽게도 ~씨라고 말붙이고 싶다. 그리고 따뜻한 창가에 앉아 햇볕을 서로 나눠먹으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재작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떠올랐다. 마치 어제 일처럼, 햇빛 좋은 거실에서 주고받았던, 대화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못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 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간 시인 앞에서 부끄러워 선뜻 속옷을 못 벗으시는 아버지 팬티를 확. 한꺼번에 벗겼다는 시인. 그제야 편안해진 아버지의 알몸, 보리새우 같았단다. 비참한 노인의 알몸, 보리새우는 곧 못이 되어 시인의 시에 등장한다.

평소에 늘 다리를 꼬고 앉아서 척추측만증으로 등이 굽어버린 아버지, 한 번 구부러지면 절대 허리를 펴지 않는 못을 연상해서 썼다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자신과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는 시인은 구부러진 못에게 옷을 입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쓰다듬어 세상에 내보였다.

그 구부러진 못이 될 날이 내게도 멀지 않았다. 더 녹이 슬기 전에, 더 구부러지기 전에 기름칠한 헝겊으로 잘 닦아야 할 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버려진 못처럼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쯤 구부러지고 얼마쯤 녹이 슬었다. 앞으로 더 누렇고 볼품없게 녹이 슬어 못은 굴러다닐 것이다. 

           포옹

뼈로 만든 낚시 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어느 날 신문 기사를 보고 쓴 씨다. 5~6000년 전 신석기시대 부부로 추정되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알몸의 뼈들에게 시인은 인간의 본능인 수치감을 불어 넣고 조가비 장신구까지 일어나게 해서 오래된 잠을 깨웠다. 그리고 그들을 찍어냈다.

이렇게 시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해주는 힘을 가졌다. 시인은 시가 미사여구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낭만적 언어로 이뤄진 모자이크나 퍼즐 조립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써야 하는 것이 시, 라고.

시인은 시는 자신의 경험과 자기의 생각, 자신만의 언어로 선택해 쓰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남과 다른 것을 써야 하며, 공허하지 않은, 관념이 배제된, 삶을 담아내는 시를 쓰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잔뜩 멋만 들어간, 묘사만 늘어놓는 사춘기를 벗어나라는 주문 같아서 주눅이 들었다.

시인의 시들은 거의 모두가 차분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 시선에 성찰의 시간이 얹힌다. 감정이 넘치지 않아 감상주의 시들을 부끄럽게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이 시는 고등학교 책에도 실린 시, 라고 했다. 시인은 자신의 그늘과 눈물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늘을 사랑하고 다른 이의 눈물마저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삶이란 햇빛과 그늘이 공존한다는 것, 비바람도 만나고 폭풍우도 만나는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시나 인생이나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역설과 반어로 이뤄진 길고 긴 여행길. 그 길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이 빚어내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이 시를 노래로 들었다. 소리가 작아서 조금 아쉬움이 따랐다. 


       이별 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20대 후반에 쓴 시라고 했다. 젊음의 절정에서, 연애의 본질처럼 느껴지는 만나고 헤어짐의 한 복판에서 쓴 시에 울컥했다. 노래로 알려져 익숙한 시가 뒤늦게 뒤통수를 쳤다. 시인은 지금껏 시를 쓰면서 단숨에 쓴 시가 3편 있는데 이 시도 그 중의 하나라고 했다. 80년대 초반, 20대의 청년이 이렇게 쉬운 단어들로 이렇듯 인생을 관통하는 시를 썼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청춘에게 부끄러워서, 시인이 부러워서······.

상상했다. 연인들의 그 간당간당한 감정의 줄타기를······그 격정적인 시간을 이렇게 내려놓고 차분하게 자신을 추스르는 청춘이 있을 줄이야!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20대에 연애를 하면서, 그 공중곡예를 넘나들면서 이런 시를 남기다니!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인간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시인의 말을 듣고 있는데 그 말이 불쑥 내 머릿속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이별의 노래이면서도 삶을 따뜻하게 담아낸 시다. 감상을 절제한 시는 세계를 객관의 눈으로 젊음의 시간을 위로하고 있다.

84년 이동원씨가 찾아와 이 시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그러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이 백만 장 넘게 팔렸단다. 작사료를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며 서운해(?)하는 시인, 은근히 귀여웠다. 


 수선화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시인은 주변의 지인들이 모두 외롭다고 말해서 외로운 건 당연하다며 이 시를 썼다고 했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므로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또한 견디는 것이라고. 산그늘도 종소리도, 휴대폰도 다 외롭다는 것, 그렇지만 인간처럼 외롭다고 하진 않는다는 것. 제목이 수선화에게, 라고 했지만 그 무엇으로 바꿔도 된다고 말했다. 은유니까.

이 시는 모든 이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친구 같다. 등을 토닥이며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손자국 같은······. 


      소년 부처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어느 날 책을 보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라는 글을 읽고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는 시인. 여행지 경주 박물관 앞마당에서 마주친 부처들, 목이 없더란다. 일제 때 훼손된 그 부처에 초등학생들이 달려가서는 자기 머리를 얹어 보더란다. 그 광경을 보고 쓴 씨란다. 물론 시인도 잠시 부처가 되었더란다.

문화적 사실은 부처님이 자기 목을 자르지 않았지만 시인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이렇게 일상에 숨은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정제된 언어로 그려내는 것, 그것이 시고 시인임을 조근조근 들려줬다. 


    산산조각

룸바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시는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시인도 시를 통해서 위안을 받는단다. 2001년 친구들과 북인도 쪽을 여행을 다녀왔단다.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과 똑같은 곳. 그곳에서 흙으로 찍은 부처님을 사왔단다. (시인은 카톨릭 신자다.) 그 전에 부주의하여 성모상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냈던 경험과 부처님이 합쳐지면서 이 시가 탄생했다. 그러니까 산산조각난 부처님은 생각 속 부처님인 셈. 멀쩡한 부처님을 시인은 산산조각 내면서 위안을 받는다. (산산조각을 내서 산산조각을 얻고 산산조각난 삶을 산산조각으로 사는 것, 맞다. 맞긴 맞는데 말이 좋아 그렇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씀이다. 그래서 시는 따지지 않는 것이다!)

시인은 다시 보신각종 얘기를 했다. 보신각종이 금이 가서 새로 교체를 했다. 깨어진 종을 종매로 치면 깨어진 소리가 나는데 산산조각난 조각의 종을 치면 맑은 종소리가 난단다. 그처럼 인생은 누구나 산산조각날 수 있고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할 때 위안을 얻는다, 라고 했다. 또한 인생은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으므로 위안이 된다고. (아마도 시인은 산산조각난 삶을 살아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산산조각난 삶에서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산산조각난 삶을 쥐고 위안을 얻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앞에 놓인 시간을 절망으로 보는 이가 더 많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시는 시일뿐, 소설은 소설일뿐, 이라고.)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 합니다

어느 날 방 안을 깊게 찌르고 들어오는 햇살에 떠오른 먼지를 보고 일어난 생각을 쓴 시다. 인간의 삶이 불행하다, 행복하다, 라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사람들은 말한다. 왜 하필 나냐고. 그런데 그 생각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거다. 누구나 먼지에 불과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생각을 바꾸면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며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며, 아픈 것도 감사해야 한다고.

(시는 인간을 순하게 만든다. 고로 이빨은 무뎌진다.)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을 걸어가는 시인 자신을 떠올려 쓴 시다. 인생의 길은 끝나면 다시 시작되며 그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시인은 그 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절망의 상태에서도 사랑스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가는·······.

이 시를 노래로 들었다. 그런데 봄길의 분위기보다 마지막 가는 망자의 길 같은 분위기가 났다. 처음 들어봐서일까? 우울함과 쓸쓸함이 지배적이었다. 내 해석이 분명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그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여러 곳을 찾아보니 ‘김희갑’씨가 작곡을 하고 ‘이동원’씨가 노래를 한 걸로 돼 있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시의 독자인 동시에 시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으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시인이 여러 번 강조했듯 시는 삶을 어루만져 주는 위안이므로.

시를 한동안 버렸었고 지금은 그 시가 자신을 버릴까봐 열심히 쓴다는 시인, 남이 안 쓰니까 시를 쓴다는 시인, 시를 발견하는 기쁨과 시를 쓰는 기쁨으로 산다는 시인이 참 소박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력을 들었다. 내가 글로 옮기는 것보다 여기저기 그의 시를 찾다보니 그가 쓴 글이 있어 그대로 옮긴다. 같은 내용이므로.


도합 15년의 外道…결국은 詩뿐이었다

나는 스스로 시를 버린 적이 세 번이나 있다. 1982년에 시집 ‘서울의 예수’가 나오고 87년 ‘새벽편지’가 나올 때까지 5년 동안, 90년에 ‘별들은 따뜻하다’가 나오고 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나올 때까지 7년 동안, 그리고 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가 나오고 지금까지 3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시를 버리고 살아왔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등단한 지 30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도합 15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아왔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둔 아버지처럼, 내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 따뜻하게 맞이하고 돼지를 잡고 잔치를 벌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제는 시가 나를 버려도 내가 시를 열심히 찾아가 효도할 생각이다. 이제 느린 것은 두렵지 않으나 멈추어 서는 것은 두렵다.


시흥시민뉴스[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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