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사라리 박종규
강 씨 실종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양식장으로부터 뱃길로 10킬로 떨어진 무인도 모래톱에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옷이 다 벗겨져 있었고, 퉁퉁 불은 몸은 물고기에 뜯겨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강 씨였다.
그러나 그 시신이 타살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몸을 푼 딸 대신 사위만 데리고 내려온 강 씨 부인은 냉가슴을 앓으며 장례를 치러야 했다.
창유지서의 김 경사는 양식장 주변을 면밀히 조사하다가 부표에 청색 노끈이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배를 묶었던 노끈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보니 사건의 실마리를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등산복 바람막이에 있는 노끈이었다. 김 경사는 병석을 지서로 불러들인다. 두 사람은 지서의 네모진 별실에 마주 앉았다.
조병석은 이목구비가 정연하나 헝클어진 머리칼에 묻혔고, 턱받이라도 달아주어야 할 정도로 목 언저리가 때에 절어 꾀죄죄했다. 그는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늘 그랬듯이 시선을 한곳에 두질 못하는 그는 살인 용의자라기보다는 떠돌이 바보 그대로였다.
“강 씨를 왜 죽여부렀는가?”
오십 줄을 넘긴 김 경사는 어촌에서는 어부요, 밭에서 만나면 영락없는 농부 소릴 들을 인상이었다. 그러나 오랜 경찰생활에도 허릅숭이 취급만 당해 예까지 내려온 사람이었다. 말년에 일 없는 섬마을에서 큰 사건 없이 지내던 그에게 조병석은 눈엣가시였다.
“지가요? 아, 아안 죽였어라. 난 아니어라.”
“증거가 이쓴께. 자네가 아무리 발뺌해도 증거가 있으면 죄를 피하지 못하는 거여. 내 말을 건덕꿀로 듣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더라고.”
“증거가 뭔 증거요? 난 안 죽였다니께요. 울 엄메한테 물어보세요.”
“자네 엄메가 안다고야? 쓸데없이 엄메 끌어들이지 마라. 요거, 자네 파카에 달린 끈 맞지야?”
김 경사는 비닐봉지를 경석 앞에 던졌다. 그는 조병석이 목소리를 높여도 잔잔한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
“이거, 내 잠바에 있는 건디. 누가 이걸 가져왔능가요?”
조병석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표정에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김 경사는 난감했다. 안 그래도 상부에서는 조병석의 사생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올리라 했고, 다시 잡아들일 묘안을 짜라고 수차례 독촉이 왔던 터였다. 조병석은 정말 바보 같았다.
왜 이런 폐인에게 상부에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민주화 바람이 부는 것도 육지 일이었다. 병석이 한때 데모대에 가담한 사실이 있다고 해도 지금은 병신 다 되어서 이 외진 고향에 내려왔고, 그나마 사람 구실도 못하는 반병신이었다.
“증거가 있으면 꼼짝 못하는 게 법이어야. 멋 땜시 죽였지? 사람을 죽였으면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녀. 더 잡아떼지 말고, 어디 연유나 들어 보잔께.”
“안 죽였당께요. 내가 그 아잡씰 왜 죽여라?”
김 경사의 강다짐에도 무표정하던 병석은 나중에는 목청까지 뽑아 올렸다. 이 인간이 안 죽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행색이 비록 흐트러져도 표정은 속일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꼭 죽여야 죽는가. 실수로 바다에 밀려들어 갈 수도 있는 일이다. 강씨는 본인 실수로 바다에 빠져 죽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이려면 살해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얽혀드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김 경사는 우정 병석을 몰아세웠다.
“이봐, 이거 배 묶었던 노끈이여. 병석이 잠바 노끈이란 것은 느그 엄매가 인정해부렀어야. 왜 거그 있었지? 이 노끈 앞에서는 변명이 안 통한 당께. 뭣 하라 배는 같이 탔는가? 그거만 말해보게. 아니면 배에서 자네가 술 지랄하다가 강 씨가 바다에 빠져부렀지, 그렇지?”
“예끼 여보시오! 그 아잡씨 빠지면 내가 안 건져 줬겄소? 사람을 고케 보요?”
병석이 이젠 정색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끈은 병석의 노란색 파카에서 풀려나온 것이었다. 그의 집에 파카는 없었다. 병석이가 옷이 없어진 이유를 대지 못하여 증거물의 덫에 걸려들긴 했으나 김 경사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살인자라니, 병석은 도저히 살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강 씨의 실족사로 종결지음이 옳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불거져 나왔다.
“그라고 말이세, 우리 남자덜까장 터놓고 말해 봄세. 병석이 자네가 남 여인과 좋은 사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자네만 쏙 빼놓고 둘이 사라져 버리면, 누굴 의심하겠는가? 암 소리 말고, 여그 있는 증거물도 보았응께 내가 그랬소 하면 되아야! 사람이 죽여야만 죽는가? 실수라는 것도 있고 그란 거제. 실수는 죄도 한결 가벼워야! 내 말 알것쟈?”
병석은 멀거니 김 경사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곤 갑자기 웃음이 걸린 투로 말을 받았다.
“그라요, 그래! 내가 그랬소! 인자 되얏소?”
병석은 범행을 인정하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백을 하고 서류에 도장을 찍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오올치! 어차피 알게 될 일잉께 잘했구먼!”
“그람 나, 인자 가것소.”
병석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김 경사는 어이가 없었다. 멀쩡한 녀석이 나이 든 사람 갖고 노는 것 같기도 했다.
“여그가 어딘지 아냐? 쓰잘 데 없는 짓거리 하면 죄만 더 무거워져야. 내가 조서는 쓸 텐게 거그 앉아 기둘려라.”
“뭐시오? 그람 내가 참말로 강 씨 아잡씰 죽였다고 생각하요? 경찰을 할라믄 똑바로 하쇼. 엄한 사람 잡아들이지 말고요.”
병석의 목소리가 찌렁찌렁 지서를 울렸다.
“내 생각이 아니라 여그 있는 증거가 고걸 말하는 거제. 자네 나쁘닥에도 고케 쓰여 있고! 지금이 뭔 시상인지 아냐? 증거가 없어도 잡아 가두는 시상이여, 인자 알것능가?”
병석한테 살해 동기가 없더라도 녀석이 증거물의 덫에서 빠져나오진 못하고 있었다. 김 경사는 조병석을 본섬의 경찰서에 이송시키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것은 상부의 처리방침이기도 하고, 더구나 경찰이 보호하는 이상, 앞으로는 병석에게 특별히 신경 쓸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조사를 마칠 때 강렬한 안광으로 쏘아보는 병석의 눈초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다. 김 경사는 녀석을 다시 앉혀 놓고 다그쳐 볼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 전 문학동인 글마루회 회장 /전 에세이스트문학회 회장 / 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현 한국문인협회 문협진흥재단설립위원 / 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수필집<바다칸타타),<꽃섬> /소설집 <그날> / 장편소설<주앙마잘>,<파란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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