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1회

박종규 소설가 | 기사입력 2015/11/24 [13:10]

<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1회

박종규 소설가 | 입력 : 2015/11/24 [13:10]

 

 

 

 

 

<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1. 파노라마의 시작

 

2001년 9월 11일 뉴욕.

 

파란 하늘로 불쑥불쑥 솟구친 빌딩들 사이에 하얀 구름 몇 점이 한가롭다.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서니 창틀 액자 속으로 뉴욕의 빌딩 숲이 갇혀 든다. 트윈빌딩 84층 사무실. 현지인 직원들은 바이어들이 작성해 놓은 설문지를 분석 중이고, 나는 화상미팅을 위해 자리에 반듯이 앉는다. 1번 모니터 화면이 밝아지면서 서울의 김 사장이 슬며시 나타난다. 백발이 성성하나 붉은 기운이 도는 김사장의 팽팽한 피부는 50대 초반의 젊음으로 보기 십상이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니 흡사 달항아리다.

 

“나와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그래, 한 이사. 수고했어. 프레젠테이션 잘 치렀다는 소식은 들었네.”

 

“이제 시작일 뿐,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습니다. 이 사람들 보기보다 까다로운 면도 있거든요. 그나마 사장님께서 정지작업을 잘해놓으신 덕이죠.”

 

김 사장의 목소리는 모래가 섞인 듯 서걱거리면서도 정겨운 구석이 있다. 그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는 버릇이 있다.

 

“그렇지? 한 이사 생각은 늘 나랑 같단 말이야. 그럼 프레젠테이션 분위기 좀 볼까?”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등받이가 높은 소파에 몸을 푹 파묻는다. 보고서의 첫 화면을 대하는 김 사장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그때다! 내 몸은 무엇인가의 기운에 밀려 와락 뒤로 젖혀진다.

쿠웅, 쿠르르……‬



 

뒤이은 엄청난 진동과 함께 마주 대했던 대형 모니터와 그 속의 김 사장도, 바삐 움직이던 사무실의 모습도, 직원들도, 눈앞에 보이던 모든 것들이 벼락같은 열기, 파열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세상이 온통 붉었다가 급격히 어둠에 묻힌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있다.

 

언제부털까? 나는 거무스레한 연기가 속 공중에 떠 있다. 공중이나 허방 집는 느낌이 없다. 나를 떠받치기라도 하듯 두 줄기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발밑에 상처투성이로 서 있는데 가슴께에서는 선혈 빛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고, 까마득히 아래 자욱한 먼지 구름 틈새로는 미물들이 이리저리 쏠리고 있는데, 놀람과 두려움에 떠는 그 미물들은 사람들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천연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다! 존재하면서도 실체가 없는 듯한 느낌! 이런 것을 공(空)의 실재라 해야 하나? 나는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존재감은 그러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기묘한 틀을 만들어간다.

 

틀과 틀 사이는 강렬한 빛이 새어나오고, 그 빛이 3차원 영상을 만들더니 나를 가두었던 모든 세상을 파노라마로 펼쳐 보인다. 이것은 나의 일생력(一生歷)이다! 내가 살아온 38년 세월을 찰나에 온전히 재생해내고 있는 것이다.

 

 

재생 1.

 

여의도에 있는 쌍둥이 빌딩 28층. 나는 심부름 갈 때마다 그 빌딩을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나의 계단 오르기가 시작된 곳이다.

 

처음은 걸어 오르고, 그다음에는 15층까지 뛰어올랐다. 오르는 계단이 높아질 때마다 야릇한 흥분으로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내 몸이 차츰 계단과 동화되어 내 발로 땅을 누르고 오르는 느낌이랄까? 오르고자 마음먹은 층에 올라 내려다보는 것을 즐긴다.

 

두 달에 한 번은 그 높은 빌딩을 뛰어올랐고, 언젠가는 40층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쌍둥이 빌딩을 그렇게 오른 다음에는 더 높은 빌딩을 찾아 오를 것이다. 발아래 놓인 세상! 나는 언젠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심부름의 내용은 모른다.

 

잘 봉인된, 도톰하고 누런 봉투를 전달할 뿐이다. 늘 머리가 훌쩍 벗겨진 머리가 큰 어른한테 봉투를 갖다 주었고, 그 어른도 도톰한 봉투를 내게 준다. 민머리 어른은 넓은 방에 홀로 있다가 나를 맞곤 하는데, 내겐 단 한마디도 건넨 적이 없다.

 

보육원의 원장 어머니는 나를 잘 챙겨주지만 내가 정작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심부름이고, 혹 다른 형제에게 그 일을 빼앗길까 늘 걱정이다. 그런데 우리 형제 중 종현이가 사라져 버린다. 얼마 뒤 광영이도 사라진다. 석 달에 한 명씩은 누군가가 종적을 감춘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사람도 없다. 그저 좋은 곳으로 뽑혀 가서 잘 살 거라고들 생각하고 만다. 원장이 먼저 아무개 없어진 것을 이야기했고, 원장 어머니는 그때마다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고등학교에 다닌다. 원장이 내게 베푸는 특별한 대우다. 그녀가 말하는 똑똑이… 누구나 나처럼 똑똑이가 되면 학교에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똑똑이는 원장 혼자 나를 부르는 호칭일 뿐, 다른 형제들이 나를 똑똑이라 불러 준 적은 없다. 원장은 늘 말한다.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이 지배한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똑똑해진다, 똑똑한 사람은 머리가 크다고. 그러고 보니 원장도 머리가 큰 편이었다. 내 머리는 언제나 커질까? 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

 

고교 2학년 시절. 나는 그날도 여의도에 있는 쌍둥이 빌딩에 갔다. 계단으로 뛰어오르다가 20층에서 숨이 턱에 차 호흡이 가퍼지면서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하얀 천장에 형광등이 가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 수아 라고 해. 장, 수, 아.”

“……”

 

눈만 멀뚱멀뚱 뜬 나를 예쁜 여학생이 침대 머리맡에서 내려다본다. 그녀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하다. 내 팔뚝에는 링거가 꽂혀 있고, 환자복을 입고 있으나 어디 아픈 곳은 없다. 그런데 웬 병원일까?

 

“너. 곧 날 거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데. 빈혈이래. 운동 무리하면 그냥 가버리는 수가 있단 걸 몰랐어?”

 

“……?”

 

“괜찮아! 별일 없데. 앞으로 우리 친구 하자. 응?”

 

처음 보는 내가 어색하지도 않은지 계집애는 잘도 재잘거린다. 싫지 않은 어투에 인상도 좋았지만 나는 그 애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참 묘하다. 여자는 다 싫었는데, 이 아이는 싫은 구석이라고는 없다. 특히 동그란 눈과 말할 때마다 귀엽게 열리는 입술이 예쁘다. 정말 천사가 있다면 얠 닮았을 것이다.

 

“너 밥을 잘 안 먹는 모양이네. 나는 너무 잘 먹어 살찔까 걱정인데. 이렇게 몸이 약해가지고 밥은 왜 안 먹니? 빈혈은 밥을 안 먹으면 생기는 거야. 앞으론 밥 꼬박꼬박 챙겨 먹어. 알았지?”

 

수아는 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살며시 웃는데 살짝 볼우물이 팬다. 나를 원래 잘 아는 것처럼 아주 상냥스러운 모습이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계단에 있었니? 1층부터 계단으로 올랐지? 몸이 약하면 엘리베이터를 타야지 왜 그랬어? 난, 이해가 안 가.”

 

“…….”

 

“너, 말 못하니?”

 

수아는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묻는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수아의 눈빛에 눌려 억지로 입을 뗀다.

 

“그냥, 운동 삼아서 뛰어올랐는데…….”

 

“운동? 계단 오르기를 자주 했었구나! 이번에는 너무 높았던 거야? 너, 마라톤 선수 되려고?”

“창피해. 자꾸 묻지 마.”

 

여자 앞에서 쓰러지다니! 나는 부끄러워 죽겠는데 수아는 안타까운 눈빛이다. 첨보는 내게 왜 이러는 걸까?

 

“내가 어떻게 여길……?”

 

“넌 계단에 쓰러져 있었어. 여긴 시립병원이야. 내가 널 이리 데려왔어."

 

“……!”

 

“퇴원하는 날, 한턱낼게. 우리 동네에 아주 멋진 빵집이 있어. 너도 좋아할 거야.”

 

빵을 들먹이니 군침이 돌았으나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

 

“너, 혹시 빵 같은 거 싫어하니? 딴 거 먹을까?”

 

“아- 아니야, 괜찮아. 고마워.”

 

퇴원하는 날, 수아는 나를 자기네 동네의 제과점에 데려갔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오로지 공부였다. 다른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내게도 허전한 구석이 있었나 보다. 수아가 내게 오면서 그걸 느낀다.

 

수아는 천사이고, 내 생명의 은인이다. 수아는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와 오늘 내게 한 약속을 지키고 있다.

 

“넌 내가 구해 주었으니까 이제부턴 내 말을 꼭 들어야 해.”

 

엉뚱한 말이지만 싫지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얘기해 봐.”

 

“넌 공부를 잘하잖아! 나도 공부를 잘하게 해 줘.”

 

언제 내 성적을 알아보았을까?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수아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씩- 웃더니 스스로 대답했다.

 

“넌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고, 대신 난 맛있는 빵 사 줄 거야. 그리고 네가 다시는 길바닥에 쓰러지지 않게 할 거야. 높은 곳에 올라갈 때는 든든하게 먹어야 해. 알지?”

 

그동안 이성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내 어머니가 그 이유였는지 모른다. 어머니고, 할머니고, 여학생이고, 여자는 다 싫었다. 예쁜 여자일수록 더 미웠다. 길가에 나붙은 영화 포스터를 눈여겨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있는 포즈는 건방져 보였고, 예쁜 얼굴은 쌍스러워 보였다. 보육원 어머니만 예외였다. 그런데 수아는 달랐다.

 

병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난생처음 여자 앞에서 가슴이 콩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단정한 단발머리부터 하얗게 말아 올린 양말 목에 이르기까지 수아는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녀의 말 마디마디가, 내게 던지는 눈길마다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젠 나를 챙겨주고 있다. 수아는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 가족이란 게 이런 것일까?.

 

“넌, 나 아니면 어떻게… 죽었을까? 내가 널 살렸으니까 너도 날 끝까지 책임져야 해! 알았지?”

수아는 걸핏하면 자길 책임지라고 했다. 책임이라는 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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