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단편소설> 잃어버린 이야기 2회
“이 친구야, 소설은 언제 나오는 거야? 쓰고는 있어?”
“소설 깜이 안 되든지, 능력이 달리는 걸 거여.”
“맞아! 소설이 그렇게 쉽게 써지면 누군들 못 쓰겠어? 아무래도 난 능력 부족이야. 소설가는 조물주처럼 창조주의 능력으로 한 사람의 그럴싸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야 하거든. 다 된 밥도 못 차려 먹는 격이지!”
친구들은 소설 안 나온다 성화지만 곽진설은 그곳에 다시 가보지도 못했다. 벌써 2년이 지났으니, 혹시 세월이 그녀를 그냥 놔두었을지, 아니면 그녀가 팔자를 고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했다. 그녀는 팔자를 고쳐 살아야 할 여인이었다. 그 산골에서 커피 장사나 할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 느낌은 일행 모두가 한결같았다.
2년 전. 곽진설은 두 친구와 동부인하여 여름 휴가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강릉에서 정선으로 빗겨 내리는 국도를 따라 정선읍에 다다르기 전, 일행은 길이 굽어지는 코너에서 라면 파는 가건물이 보이자 화장실도 갈 겸, 커피라도 한잔 하자며 차를 세웠다.
나무를 깎아 만든 오래된 장승이 서 있고, 물 마른 물레방아가 시간을 잃어버린 듯 멈춰 있고, 바위며 나무뿌리로 만들어진 장식물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임시건물이었다. 키 작은 싸리 울타리가 널브러진 쪽으로 검은색 세단이 한 대 주차해 있을 뿐, 다른 손님은 없는 듯싶었다.
유리문 하나가 반쯤 열려 있는 사이로, 단정한 차림의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일행을 맞았다. 누군가가 장사 한 번 제대로 할 생각으로 꾸며놓았던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은 세월만 까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은데, 왼쪽 코너에 40대 중반의 정장을 한 두 사람이 어둑한 조명 아래서 서류뭉치 같은 것을 살피고 있었다. 행색으로는 회사원들이거나 공무원들이 출장을 다녀가는 길로 보였다. 그들 옆에는 묵이 한 사발 놓여 있으나 젓가락도 아직 안 잡은 듯 서류에 몰두해 있었다.
곽진설 일행은 막걸리 한 되와 도토리묵을 시켰는데, 음식을 나르는 주인 여인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서 서로 눈엣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귀티 나는 예쁜 얼굴이 이 집 분위기에는 도무지 맞지 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운 살결에 눈매까지 크고 시원했다. 동부인이 아니라면 벌써 진한 농담 몇 마디는 던졌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중 입담 좋은 친구가 일갈을 하고 나섰다.
“아주머니라 해야 하나……. 참 예쁘시네요!”
“그러게요. 이런 곳에 있을 사람 같지 않네요.”
앞서서 맞장구를 친 사람은 뜻밖에 곽진설의 아내였다. 그녀는 평소 말이 적어서 꼭 할 말만 하는 여자였다. 친구 부인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알고 보니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그녀의 미모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라면 여섯 개와 안주 제일 비싼 것으로 더 준비해 주세요. 말로만 말고 라면 하나라도 더 팔아줘야 하지! 안 그러우? 아줌마.”
“아저씬 무얼 하세요?”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제 남편 하는 일을 묻는 말에는 멈칫하는 표정이었다.
“혼자세요?”
성미 급한 친구가 말을 앞세웠다.
“남편이 있어요. 지금 서울에 가서…….”
“아주머니가 미인이라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이 있나 봅니다. 공연히 우리 질문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무슨 사연이 있는 여인인 듯싶었다. 더 그녀의 용모를 화재에 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전혀 싫은 내색 없이 일행의 이러 저러한 말을 잘도 받아넘겼다. 하지만 그녀의 큼직한 눈은 속된 끼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일행의 관심이 온통 자기한테 쏠리는 것을 마다치 않은 눈치였고, 급기야는 같이 일하는 아줌마에게 일을 맡기더니 부인들이 권하는 대로 같이 합석해서 이야기를 섞기 시작했다. 몇 해째 이런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 대하는 요령도 나름대로 터득했겠구나 싶었고, 미리 와 있던 안쪽 좌석의 두 사람에게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소위 되바라져서 낯짝 값이나 하는 그런 여인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다.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대로 그녀는 차분하게 그들과의 대화에 어울려 스스럼없이 응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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