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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애국적무관 김응서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5/26 [12:18]

[조선력사 인물] 애국적무관 김응서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5/26 [12:18]

▲ 김응서 장군 초상화. 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조선의 력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일제가 조작해 만든 조선사35권의 식민사관과 이병도일당이 조작해 만든 대국사관의 반도사관을 중심으로 한국사와 국사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반면, 북은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을 탈피한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남과 북은 역사의 특징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지에서 "조선을 바로 알아야 통일이 가까워 집니다"라는 신념으로 북조선이 알리는 '조선력사'를 인터넷매체 조선의 오늘이 공개한 게시물을 여과없이 게재한다.[편집자 주]  

 

애국적무관 김응서

 

김응서(1564-1624년)는 임진조국전쟁시기의 애국적무관이다.

평안도 룡강지방의 토호집안에서 출생한 그는 20살에 무과에 합격하여 고산진병마첨절제사 등 벼슬을 지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김응서는 별장, 방어사, 병마절도사로 활동하면서 일본침략자들을 쳐물리치기 위한 싸움을 조직지휘하였다. 1592년 6월중순에 적들이 평양성을 일시 강점하자 그는 룡강, 강서를 비롯한 평양일대에서 떨쳐 일어난 인민들을 모아 전투부대를 편성하고 평양성을 서쪽에서 지키였다. 그는 평양성안에 남아있던 애국녀성인 계월향을 통하여 적정을 탐지하였으며 또 그의 도움을 받아 적장 소서비놈을 처단함으로써 적들을 혼란속에 빠뜨렸다.

1593년 평양성안의 적들에 대한 전면적인 반공격이 개시되였을 때 그는 서쪽에서 평양성해방전투에 참가하여 선봉장으로서 함구문으로부터 성안으로 쳐들어가 왜적을 쳐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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