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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축제 - 굿

문화부 | 기사입력 2008/02/06 [00:58]

한민족 축제 - 굿

문화부 | 입력 : 2008/02/06 [00:58]

1. 제천의식과 굿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분산되어 있는 한민족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공통적 요소로써 무당(샤먼.단군=제사장)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할 목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가무와 의식절차를 통해 행하는 제의(祭儀). 굿은 하늘과 인간과 땅이 유기체적으로 하나라는 신인합일 의식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본래 신성(본성)으로 회복시키는 차원이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샤먼(단군=당굴래=제사장=성인)이다.

고대에 샤먼은 단순히 지금의 일반 무당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하늘과 통하는 영적 지도자로 인식되였다. 그래서 신인본주의적인 의식에서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이라는 인본주의적 요소가 개입되면서 제사(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대에는 제정일치 시대였다. 이러한 샤먼을 중심으로 굿은 모든 지역의 한민족을 [무아]의 상태로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매개고리였다.

따라서 외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한민족의 정신적 합일과 단결을 차단하기위해서는 이러한 굿을 폐지하거나, 개념을 왜곡시켜야 했다. 그러나, 사대주의에 의한 왜곡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굿은 민중과 함께 오랜 민족의 시련과 함께 하며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현실을 무시한 내세지향주의적인 종교행태처럼 상업주의와 결합한 지극히 지금의 개인위주의 무당의 굿판은 본래의 민족굿의 전통과 개념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굿이라 할 것이다. 즉,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제사행위(예배)나 굿판이 본래 한민족 전통의 굿판이라 볼 수 없고, 민족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공동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단군조선은 하느님(하늘)을 대리한 제사장인 단군을 중심으로 모든 지역을 대표한 제사장을 중심으로 각 동네의 성황당으로 이어지는 민족공동체 차원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굿판은 춤과 노래를 통하여 모든 사람속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고 맑은 거울과 물과 같은 무아(하느님) 상태로 회복하는 기능을 하였고, 외침에 있어서는 단결의 기능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각 동네의 '성황당'은 침범할 수 없고 빼앗겨서는 안되는 성역이였던 것이다. 일본 침략주의가 그래서 성황당을 두려워 했으며, 미신으로 세뇌주입시킨 것이였으며, 침략주의적인 기독교가 한민족의 전통이자 기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성황당이나 굿을 미신취급한 불경을 저지른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 사상은 본래 한민족의 제천의식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유래

한국무(韓國巫)의 역사는 농경시대였던 당시 제사장(샤먼.당굴래)이신 단군께서 추수 후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신 후에 3-4일을 모든 백성들이 술과 노래와 춤으로 굿판을 벌인데서 유래한 단군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이 있으나, 그러한 굿은 단군시대 이전부터 동이족의 신앙의식이요 전통풍습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무당굿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에서 무(巫)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제천의식을 행하였던 무속신앙은 이후 삼국시대까지 그대로 전승되어 여러 제의가 행해졌는데, 이들 제례의식은 성격상 시조제·농신제로 분류된다. 무속신앙은 삼국시대 초기를 지나면서 유교·도교·불교 등 여러 새로운 종교의 도입으로 적잖은 영향을 받지만 한국무의 기본구조를 바꾸어놓을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종교와 혼합형태를 띠면서 종교의 사상적 배경이 되어 민중들의 삶과 함께 면면히 자리잡아왔다. 오늘날 거의 모든 불교사찰 속에서 볼 수 있는 산신각(山神閣)·삼성각(三聖閣) 등에서 무당신을 불교 사원 속에 받아들임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신라 진흥왕 때 화랑제도·팔관회의 실시, 고려시대 팔관회·연등회의 실시, 도교·풍수지리·도참사상 등과 새로 도입된 종교 속에서도 토속·무속신앙이 맥을 이어옴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의 팔관회와 같은 굿은 나라굿으로, 규모도 전국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공통적인 정서를 형성하였다. 한국무는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나라의 천신제나 시조제와 관련하여 계속 전통적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그 기능이 불교·도교에 의해 분화되기 시작했다. 통일신라 중기(8세기경)부터는 개인기복의 무격신앙이 형성되고 고려 말기에 이르러 더욱 발달하여 현재와 비슷한 굿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오늘날과 비슷한 무속의 제의체제가 갖추어진 것을 짐작케 하는 문헌으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되어 있는 장시 〈노무편 老巫篇〉이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국교화로 불교와 무교가 탄압을 받지만 오히려 고려시대보다 훨씬 더 강하게 민중들에게 무(巫)의식을 갖게 했으며 그로 인해 이 시기에는 다른 나라에서 유입된 유교·불교·도교 등의 종교들이 전래의 무와 융합되었고, 무당의 기능이 더욱 분화되었다.



 
무속신앙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요소로서 역사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굿문화'는 19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그리스도교의 도입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조선문화와 민족정신 말살정책에 의해 다른 민속문화보다도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특히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마을굿에 대한 탄압은 매우 심했다. 한편 일본 제국주의는 산미증식계획에 따른 농업장려운동의 한 부분으로 두레굿만을 허용했고, 굿패들이 굿을 하는 데 있어 농악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일제의 이러한 탄압은 굿을 농업에 국한된 음악으로 전락시켰다. 이렇듯 그 형성·발전에 관한 역사적인 장애요소들로 인해 해방 이후에도 전통무의 관습이 제대로 전해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3.구조


굿은 준비과정과 거리[景]라고 불리는 본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거리는 춤과 공수라고 하는 2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닌다는 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하나의 거리에서 그 해당된 신령이 불러 모셔지고 춤과 접대 등으로 환대를 받는다. 그리고 무당은 제가집에 신령의 말(공수)을 전한다. 끝으로 무당은 감사의 뜻에서 춤·노래·술 등으로 신령을 기쁘게 한 후 돌려보낸다. 모든 거리는 그 자체에서 완결되고 독립적이며 준비과정은 뒤에 오는 본과정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굿의 끝판에는 종결과정이 진행되어 잡귀·잡신을 위로하게 된다. 마지막과정은 하나의 거리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한 판굿의 대단원이기도 하다. 때문에 마지막 거리인 뒷전거리는 많은 부속거리로 구성되어 있고, 꽤나 오래 걸린다. 따라서 무속제의의 공통적인 진행과정은 청신(請神)-대접·기원-송신(送神)의 3단계 구성을 가진다.

무당의 역할과 종류

무당은 인간과 신의 중재자로서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알리고 신의 결정을 다시 인간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평소의 상태로는 불가능하고, 춤이나 노래를 통해서 몰아의 경지에 빠져 자신을 잊고 신의 대리자가 되어야 가능하다. 무당의 종류는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뉜다. 강신무는 신이 들려서 무당이 된 경우로서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 즉 신계통(神系統)의 굿패를 구성한다. 세습무는 신들림의 경험이 없이 친척·인척으로 굿패가 구성된다. 이러한 2종류의 무당은 최근까지 지역적으로 뚜렷이 나뉘어 분포되어 있다. 강신무는 한강이북 태백산맥 서쪽 지역권, 즉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와 강원도 영서지역에서 활동했고, 세습무는 한강 이남지역, 즉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와 동해안을 낀 강원지역에서 활동했다. 특히 세습무의 경우는 혈연관계에 의해 인위적으로 무당이 되기 때문에 신의 영향력이 강신무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인정되지만, 자신들끼리의 조직인 굿패로서의 결속력이 매우 강해 자신들만이 무업(巫業)을 할 수 있는 지역을 갖는다. 이 지역을 단골판이라고 부르는데, 단골판은 대개 자연부락 단위로 형성되며 단골이 소속된 굿패의 능력에 따라 넓은 지역을 소유하기도 한다. 특히 동해안에서는 수십 명의 세습무들이 경상도·강원도·함경도 지역의 태백산맥 이동(以東)지역 전부를 자신들의 단골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세습무와 강신무가 모두 존재하는데, 점을 치는 무구(巫具)를 중시하여 무당의 조상으로 모신다는 점이 특이하다. 무당은 주로 여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강신무들 사이에서는 지역에 따라 여자무당을 무당 혹은 만신(萬神)이라 하며 남자무당을 박수무당이라고 한다. 세습무들 사이에서는 여자무당을 당골 혹은 단골이라고 부른다.

신의 종류

굿에서 제를 받는 신의 종류는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가신(家神)으로 조왕신·삼신·지신·성주신·조상신·대감신·업신·정신(井神)·우마신(牛馬神)·문신(門神) 등이 속하며 둘째,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동신(洞神)으로 산신·서낭신·부군신·당신(堂神) 등이 속한다. 셋째, 집과 마을 밖의 외부신(外部神)에 속하는 것으로 천신·천왕신·칠성신·시준신·제석신·용신·요왕신·장군신·군웅(軍雄)신·신장(神將)신·손님신·창부(倡夫)신·잡귀 등이 있다.

굿의 종류

굿은 섬기는 신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종류도 많은데, 굿의 규모·지방·목적·성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뉜다.■ 규모에 따른 굿의 종류

가장 간단한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소원을 비는 일)과 이보다 규모가 조금 큰 의례인 '고사'·'푸닥거리' 그리고 규모가 가장 크고 중요한 '굿'이 있다. 비손은 무당 혼자서 축원을 위주로 하는 약식굿이고, 고사는 대개 10월 상달에 추수를 기뻐하면서 하는 것이다. 푸닥거리는 잡귀를 쫓아내는 약식 의례로서 2~3명의 무당이 장구나 제금 같은 악기를 올리고 간간이 춤도 추면서 하는데, 길어야 3~4시간을 넘지 않는다. 규모가 가장 큰 굿은 신에게 바치는 음식·술·옷·지전(紙錢)장식 따위를 벌여놓고 수명의 무당과 무악(巫樂) 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잡이가 합동이 되어 춤·노래·축원·촌극·묘기·재담 등이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의례이다. 

▲ 동해안별신굿 /동해안 별신굿 중 세존굿(시준굿)
지방에 따른 굿의 종류


서울·경기도·충청도·함경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호남·영남·제주도 등지의 굿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여러 종류의 굿이 있다. 서울지방의 굿으로는 재수굿·병굿·진오기·성주맞이·내림굿·당굿·진적 등이 있으며, 비손으로는 겜심바침·여람·푸닥거리·영장치기·집가심·액맥이 등이 있다. 경기도지방의 굿으로는 당굿·재수굿·병굿·천근새남(진오기새남)·성주맞이가 있고, 비손으로는 삼신받이(삼신맞이)·씨앗고시·푸닥거리·진오기가 있다. 경기도 지방 굿은 명칭이나 목적이 대체로 서울지방의 굿과 같은데 다만 천근새남이 서울지방의 진오기에 해당하고 진오기가 서울지방의 집가심에 해당한다. 충청도지방에는 성주굿·모기굿·당산굿 등의 굿과 삼신축원·삼신풀이·객귀물림·안택(安宅) 고사 등의 비손이 있다. 함경도지방에는 재수굿과 망무기굿(망묵이굿)이 주종을 이루는데, 재수굿은 다른 지방의 재수굿과 그 목적이 같은 것이고 수왕굿은 명부(冥府)의 시왕[十王]에게 망자의 천도를 비는 굿이다. 황해도지방에는 재수굿·산거리·수왕굿·진오기·삼신받이·대택굿 등이 있다. 호남지방의 굿으로는 성주굿·영화굿·도산굿·축원굿·성주맞이·병굿·환자굿·중천굿·명두굿·곽머리·씻김굿·혼굿·연신굿·신굿 등이 있고, 비손으로는 지앙맞이·삼신받이·근원손·고사·액맥이·사제맥이가 있다. 영남지방의 굿으로는 논부굿·도신굿·치방굿·삼제왕굿·별상굿·맹인거리·광인굿·오구굿(오귀굿)·해원굿·수망굿·물굿·별신굿·풍어제가 있고, 비손으로는 삼신풀이·손풀이·댓머리가 있다. 제주도지방의 굿으로는 불도(佛道)맞이·칠성제·맹감풀이·일월맞이·성주풀이·서낭풀이·산신풀이·시왕[十王]맞이·귀양풀이·큰굿·하직굿·연신·요왕맞이·당굿·뒷맞이가 있고, 비념(비손)으로는 푸다시·비념굿·마누라배송(拜送)이 있다. 이렇듯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  걸립굿
■ 목적에 따른 굿의 종류


무신제(巫神祭)·가제(家祭)·동제(洞祭)로 나뉜다. 무신제는 다시 강신제(降神祭)와 축신제(祝神祭)로 나뉘는데, 강신제는 신이 내린 사람이 무당이 되기 위한 성무제의(成巫祭儀)이고, 지역에 따라서 내림굿·신굿·명두굿·하직굿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축신제는 해가 바뀔 때마다 신의 영험을 주기적으로 재생시켜 무당의 영력(靈力)을 강화하는 제의로 지역에 따라 꽃맞이굿·단풍맞이굿·진적·대택굿으로 불린다. 가제는 산 사람을 위한 생전제의(生前祭儀)와 죽은 사람을 위한 사후제의(死後祭儀)로 나눌 수 있다. 생전제의는 그 목적에 따라 6가지로 나뉜다. ① 기자육아기원제의(祈子育兒祈願祭儀):아이의 탄생을 기원하거나 새로 출생한 아이의 무병장수를 비는 것으로 삼신받이·겜심받이·삼제왕풀이·삼신풀이·불도맞이·칠성제(七星祭) 등이 있다. ② 치병기원제의(治病祈願祭儀):치병을 목적으로 하는 제의로는 병굿이나 푸닥거리가 일반적이고 여기에 영장치기·산거리·주천굿·명두굿 등이 있다. 특정한 병을 치료하기 위한 굿으로는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한 별삼굿·손풀이·마누라배송, 눈병을 예방·치료하기 위한 맹인굿, 미친 병을 치료하는 광인굿·두린굿 등이 있다. ③ 가옥신축(또는 이사)제의:새 집을 짓거나 이사를 가면 성주맞이 또는 성주풀이를 한다. ④ 혼인축원제의:결혼 전날 아침에 조상에게 혼사를 알리고 성혼(成婚) 후의 행복을 기원하는 굿으로, 서울지역의 여탐과 호남지역의 근원손이 있다. ⑤ 제액(除厄)·행운기원 및 기풍제의(祈豊祭儀):행운이나 풍요를 빌고 액을 물리는 굿으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행해지는 주기제이다. 재수굿·영화굿·축원굿·성주굿·도신굿·논부굿·치방굿·씨앗고사·맹감풀이·일월맞이·안택굿·큰굿·산신풀이·고사·액맥이 등이 있다. ⑥ 해상안전·풍어기원제의:해상의 안전이나 풍어를 비는 굿으로 연신굿·용왕굿·요왕맞이 등이 있다.

사후제의도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① 상가정화(喪家淨化) 및 망인(亡人) 천도제의:상가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 사람을 극락세계로 가게 하는 소규모의 굿으로, 자리걷이·집가심·곽머리(씻김)·댓머리·귀양풀이 등이 있다. ② 익사자(溺死者) 천도제의: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을 건져 올리는 굿으로, 물굿·수망굿·혼굿·혼건지기굿 등이 있다. ③ 망인 천도제의:사망 후 본격적인 망인 천도를 위한 굿으로, 진오기굿·천근새남·오구굿·망무기굿·수왕굿·해원굿·씻김굿·시왕맞이굿·다리굿 등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행해진다.

동제는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洞神)에게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드리는 제의로서, 봄·가을에 주기적으로 행해진다. 농촌 마을의 동제와 어촌마을의 동제로 구분할 수 있다. 농촌마을의 동제는 제액(祭厄)풍농제의로서 액을 막고 풍농을 기원하는 굿인데 당굿·도당굿·서낭굿·부군당굿·별신굿 등이 이에 속한다. 어촌마을의 동제는 제액풍어제의로서 액을 막고 풍어를 비는 굿인데, 풍어굿·용신굿·연신굿·서낭[船王]풀이·별신굿 등이 있다.

성격에 따른 굿의 종류

여기에는 축제굿·어업굿·연극굿·음악굿·가정굿·모금굿·액맥이굿·놀이굿 등이 있다. 축제굿에는 별신굿·판굿·잠희굿·난장굿·단오굿이 속하며, 어업굿에는 선창굿·배따라기·재굿·띠벳굿·풍어제·술비굿이 해당된다. 연극굿에는 산대놀이·오광대·도둑재비·양반포수·파계승·일광놀이·탈춤 등이 있고, 음악굿에는 소리굿·시나위·농부가·사당굿·오화굿·신청·걸립굿·나례굿 등이 속한다. 이밖에도 가정굿에는 우물굿·성주굿·도와굿·청룡굿·대문굿·고간굿·지신밟기가 속하며, 모금굿에는 구걸굿·걸립굿·걸량굿(동양굿)·굿중패가 해당된다. 액맥이굿에는 이사굿·거북놀이·사자놀이·황소굿이 속하고, 놀이굿에는 석전굿·고싸움굿·차전놀이·수박치기·횃불싸움굿·기와밟기굿·농사놀이굿이 포함된다.굿에는 음악이 따르는데 이를 무악이라고 하며 무가(巫歌)의 선율과 반주음악, 무무(巫舞)의 반주음악, 기타 의식의 반주음악을 포함한다. 각 지역마다 악기편성, 무가의 형식, 장단·선율 그리고 무무의 반주음악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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