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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진흙…착한 도공…天命의 환희"

<1인칭 서평> 이주리의 처녀 시집 도공과 막사발

시인 이주리 | 기사입력 2009/10/10 [01:32]

"한낱 진흙…착한 도공…天命의 환희"

<1인칭 서평> 이주리의 처녀 시집 도공과 막사발

시인 이주리 | 입력 : 2009/10/10 [01:32]
▲ "욕망도 아름다울 때가 있어요. 어쩌면 그것은 문학적 성과와 상관없이 시를 쓰는 시인들의 마음일거에요”
 
새벽안개 자욱한 강가로 갔다

언젠가부터 아플 때 시가 한 편 써지고, 작은 것이라도 깨달을 때 수필 한 편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모든 것은 상처였다. 현실과 사람이 주는 상처 뿐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나비의 공허한 날갯짓, 꽃의 안쓰러운 흐드러짐 들이 다 아프게 느껴졌다. 나에게 스스로 물었다. 너의 아픔이 정녕 과장은 아닌 거냐고... 대답할 수 없었다. 설명할 길도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늘 가슴께가 아프다는 것외엔.

다만 이런 아픔의 복판에 뛰어드는 이 있으면 같이 시가 되고 깨달음의 정수리에 함께 하는 이 있으면 같이 수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열망,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 그런 사람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첫 번 째 턱없는 열망이었다.

▲ 시인 이주리
사람을 가지고 싶었지만 사람은 전적으로 내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글을 내편으로 만들고, 글에게 말하고, 글에게 동의를 구하고, 글에게 삐지고, 글에게 나를 받아 달라고 날마다 떼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살다보니 아픔 이란 것도 빠져있으면 밤 새 앓은 치통처럼 지긋지긋하지만 지나고 나면 긍정의 비석 되어 서있을 수 있고, 깨달음 이란 것도 대단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세월 속에 가만히 귀 기울여 되새겨보면 돌에 박혀있는 눈, 나무가 가진 귀, 갈대가 가진 음성들을 내 눈으로 새삼 바라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둑에서 바라보니 저만치 꽃들이 보인다. 난 꽃의 아름다움만을 볼 뿐이지만 그들은 겨울부터 간헐적인 진통을 하고 봄 되면 생살을 찢어 꽃을 피운다. 영혼의 진액...눈물이 난다. 나의 시도 저 꽃들처럼 아픔에서 길어 올린 초록빛 육즙 들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턱없는 두 번째 열망임을 알았다. 시집이라고 묶어보니 그동안 스스로 나를 향해 쏘았던 화살이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폐적 정서가 되어 잡목 숲 수북한 화살더미로 발견될 뿐이다. 부끄럽다.

꽃잎 하나를 따 가만히 들여다본다. 꽃잎 속에 지난날의 내가 보인다. 이렇다할 습작기도 없이 등단을 했다. 집안에 글을 쓰는 이가 여럿이었으나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시의 산맥이었던 나의 외삼촌 미당 서정주 시인이 타개하시고, 그보다 몇 년 전 어느 순간도 나의 진정한 울타리였고 시인이었던 엄마도 귀천하시고, 몇 년 뒤 마침내 현실의 울타리였던 남편도 떠나던 날 눈물도 잊은 채 어린것들 둘과 함께 덩그마니 남았던 나에게 어느 날 참기 어려운 기침처럼 글이 쏟아져 나왔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낸 나는 어찌해야 할지 쩔쩔 매었다. 그것들 중 몇 편을 광고를 보고 두 군데에 응모했다. 며칠 후 두 군데에서 당선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두 군데 중 이름이 예쁜 곳으로 등단을 했다. 그러니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겁이 덜컥 나기 시작 했다.
 
그 후 습작이 시작되었는데 그것도 바쁜 일상과 파도같은 업무 속에서 그저 자폐적 정서로 끄적여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시에게 이렇듯 부족하고 거칠게 대했지만 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을 쓰다듬어 주며, 무엇보다도 성적을 따지지 않고 그렇게 내 편이 되어주었다.

강둑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새들이 막 깨어난 잠자리에서 바람 냄새가 난다. 23.5도로 기울어진 땅에서 23.5도만큼 기울어진 나의 지식과 정확히 23.5킬로가 더 붙은 비대한 나의 감성을 생각 한다 안개 속에서도 각도 저편 66.5도보다 더 기울어진 욕망만이 선명히 보일 뿐.

시집을 묶으며 고마운 몇 분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느 날, 어느 시인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습작기도 없이 등단하다 보니 동인 활동을 하며 시의 합평을 매주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 동인의 고문이었던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시인, 이시인은 이시인 나름의 색깔을 잃어버리면 안되오. 누군가 이 시인의 시에 대해 어드바이스를 한다면 그야말로 충고로 여기고 참고하되 그것으로 시의 색깔을 변질시키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싶은거요. 이시인은 표현에 미숙하지만 표출에 선천적이요. 부디 이시인만의 목소리를 변질시키지 말아줬으면 하오”

시의 초년병이었던 나에게 그렇게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준 고마운 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시를 떠나 시의 실어증에 걸렸을 때 난 그분의 말씀을 떠올렸다. 김병중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또 한분, 어느 지인에게 이 강가에 와서 시에 대한 나의 마음을 최초로 열어 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욕망도 아름다울 때가 있어요. 어쩌면 그것은 문학적 성과와 상관없이 시를 쓰는 시인들의 마음일거에요”라고.

그렇다. 이리도 말갛게 지우고 앉아 바람의 맨살을 느끼는 그것이 삶이고 꽃이고 시 였다는 걸. 그것을 말이 아닌 존재로 가르쳐준 분, 그는 온몸이 착한 성장점으로 덮힌 사람 같다.

그의 결심으로 세상에 나오기 부끄러운 시, 스스로도 세상에 나오길 부끄러워 하는 시, 나의 시가 한낱 진흙이었다가 착한 도공의 손길로 세상에 친숙한 하나의 막사발이 되길 기도해준 김용근 선생님께 진실로 감사하다.

또한 여러해 살이 풀 되어 함께 살아온 눈물겨운 내 아들 정훈이와 딸 예원이, 나의 삶을 지켜본 친구들과 지인들 가족들, 그리고 시인이였으면서도 시인으로 살지 못하고 생활인으로 살다 간 내 엄마 서정희 선생님에게 감사하다. 진실로 감사하다.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힌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닳아버린 삶의 깨어나는 의식


김 병 중 (시인, 문학평론가)


아픈 핏빛에서 따뜻한 가을볕으로 우리를 안내


못을 박는다. 한 손으로 못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망치를 든다. 그리고 망치로 조준하여 못대가리를 정통으로 내려 치면 못이 벽을 뚫는다.  하지만 못은 원하는 대로 쉽게 박히지 않으며, 감으로 박는 것이다.

무수한 망치질을 통해 손톱에 핏멍이 드는 아픔 뒤에라야 못박는 일은 숙달 된다. 글 쓰는 일 역시 망치질에 비유된다. 이 시인은 망치질을 무수히 하고 있고, 남달리 감이 빠르고 특별한 파워가 있다. 그래서 그는 손톱에 핏멍 하나가 생길 때마다 한편의 시를 쓴다. 때로는 스스로 망치를 내려놓고 왜 못을 막아야 하는지를 반문하며 힘든 작업을 체념하기도 한다.

그는 피가 다르다. 미당 선생님의 질녀이거나 어머니가 전주여고 국어 선생님이자 시인이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문학을 원죄로 가진, 그래서 그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지고 독자들 앞으로 나아가는 시인의 사명의식은 도도하기만하다.

참솔같은 시인 의식은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 개 못과 단단한 망치를 준비한다. 세상을 향하여 못을 박으며 해와 달과 구름이 흔들리지 않도록 꽝꽝 대못을 박는다.

 

못질에 세상이 견고하게 고정되고, 고정된 세계 위에 시적화자가 늘 꿈꾸어 오던 세계를 차분히 열어가고 있다. 문제를 야기하고 관계를 깨뜨리며 혼란을 야기하는 악마적인 대상과 강건하게 맞서며 조잡한 언어의 유희를 배척하고 자신의 투철한 존재성을 확대시켜 나간다.

긴 머리를 좋아하는 연인과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자신의 머리를 잘랐던 프리다 칼로처럼 그는 세상과 소통이 잘되지 않을 때 어김없이 망치를 들고 움직이는 것들을 향한못질을 시작한다. 분노와 사랑의 고독한 못질 속에 생성되는 리듬과 전율과 견고한 자의식의 혼돈이 새롭게 세상과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화된 영원성과 완전성을 추구한다.

이 시인은 생체학적이고 해부적인 날카로운 직관을 갖고있어 그의 시에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다. 폐, 내장, 젖, 등뼈, 입김, 머리카락, 눈빛, 팔, 늑골, 피, 늑막, 털, 발목등의 육이 등장하여 몸부림과 살풀이와 기침과 구토를 동반하지만 끝내 영의 길을 연다. 영은 영원성과 절대성과 무한성을 갖고 있어 시인의 영은 심장의 동맥과 연결된 채 세상을 도전적으로 응시하고 있다. 때로는 현미경적 위치에서 때로는 망원경으로 세상을 본다.

요즘 유럽풍의 드레스를 입고 설쳐대는 세상과 고려의 전통의상을 입은 온고한 시인과의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약간 작은 키에 이지적인 이목구비, 특히 빛나는 눈빛은 대상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통찰로 이 시인이 극과 극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 춥고 가장 뜨거운 존재가 시인이며 그저 미지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은유니 비유니 하는 것은 그 다음이어도 좋다. 한 시인을 통해 올곧은 정신과 진실의 펜 끝을 보았다면 우리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을 얻은 셈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떨어진 꽃은 줍지 않으며, 이 시인의 시정신은 늘 새로움의 추구이다. 우리가 사람을 본다면 그는 마음을 보고, 다시 마음속 실핏줄과 흐르는 피의 온도까지 체감하는 한 단계 높은 내적인 눈이 있다. 유려하고 도전적인 문장너머에 우뚝 선 현실 초극의 시인이 이제 삶의 고독과 구원의 몸부림으로 쓴 오늘의 시집 출간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닳아버린 삶의 바닥에서 깨어나는 의식을 노래하는 생명주의! 이 시인은 이천구년의 가을, 낙엽 곱게 물들어 가는 세상을 아픈 핏빛에서 따뜻한 가을볕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이주리시인은 9일부터 13일까지 남원문화원 예술지원쎈터에서 개인 시화전을 갖고 있다.첫 시집 도공과 막사발 출판 기념식은 오는 11일(일)  오후 3시 남원문화원 예술지원센터에서 갖는다(문의 017-613-0856)

 
▽ 이주리 프로필


한맥문학 신인상 등단 (시부문)
경남신문 신춘문예당선(수필부문)
뜨락문학 이사
행촌수필문학회 동인
글마루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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