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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수성한 기업가 유리왕.임동주 서울대 초빙교수

플러스코리아 | 기사입력 2009/02/13 [09:50]

고구려를 수성한 기업가 유리왕.임동주 서울대 초빙교수

플러스코리아 | 입력 : 2009/02/13 [09:50]
 
고구려의 수성- 유리왕

주몽이 고구려를 창업했다면 유리는 수성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유리는 위대한 왕이건만 가업을 손쉽게 물려받은 2세 경영인쯤으로 낮추어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2세 경영인은 두 종류가 있다. IMF 사태를 거치면서 의욕만 앞세우다가 기업을 도산에 이르게 한 2세들과 MBA에서 실력을 쌓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으면서 기업 혁신의 돌파구를 찾는 2세들. 유리는 후자를 떠올리게 하는 후계자였다.

유리는 아버지의 부재와 핍박 속에서 자랐다는 점에서 주몽의 어린 시절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대소 태자에게 위협을 느낀 주몽이 급히 부여를 탈출할 때 출산일이 임박한 예씨 부인을 데리고 가지 못했다. 예씨 부인은 혼자 유리를 낳아 아비 없는 아이로 키웠다. 유화 부인은 주몽에게 천리마를 차지하는 법을 알려준 멘토였다. 그에 비한다면 예씨 부인의 영웅 키우기에는 유별난 점이 없다고 보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예씨 부인의 지상 목표는 유리를 주몽의 후계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소 태자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 유리의 잘난 점이 튀기라도 한다면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활을 쏘아 아낙네의 물 항아리를 깨어 후레자식이라 욕이나 먹는 천덕꾸러기로 자라도록 내버려둔 것은 어쩌면 예씨 부인의 눈가림이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예씨 부인은 유리의 망나니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한다. 그것은 유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고 주몽이 부여를 탈출하면서 낸 문제를 풀게 한 것이었다. ‘왕자 고시’에 출제된 문제는 간단했다.

“일곱 모난 돌 위에, 소나무 아래에서 동강난 칼을 찾아라.”

유리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온 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신체가 단련되었고 수수께끼를 풀려고 머리를 싸매다보니 두뇌 훈련도 되었다. 결국 유리는 일곱 모난 주춧돌과 소나무 기둥 사이에 있는 칼을 찾게 되고 주몽을 찾아가 아들임을 입증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몽이 어려운 문제를 낸 것은 유리를 경쟁력 있는 왕자로 키우기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주몽은 후계자를 어떻게 훈련시키고 결정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던 CEO였다.

주몽이 유리를 태자로 책봉하는 과정도 공평무사하게 치러졌다. 유리가 주몽을 찾아왔을 때는 소서노 사이에서 난 비류와 온조가 있었다. 주몽은 고민에 빠졌다. 아비 없이 고생을 한 장자에게 물려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비류와 온조도 태자감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황도 좋지 않았다. 고구려 창업 과정에서 소서노 세력에게 빚을 진 주몽으로서는 그들의 반발을 샀다가는 왕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때 신하 묵거가 아뢰었다.

“폐하, 왕은 하늘이 점지하는 것이옵니다. 무예시합으로 태자를 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묵거의 말은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무예시합을 치러보면 천기를 알 수 있을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태자를 무예시합으로 결정하는 것이 가벼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늘의 뜻만큼 공명정대한 것도 없었다. 결국 유리가 승리하여 태자가 되었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소서노 세력이 고구려를 떠나 남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를 앞세워 주몽을 압박했을 수도 있고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몽과 소서노는 합심하여 고구려를 창업할 때와 같이 분란 없이 헤어졌다. 소서노 세력은 고구려를 물려받지 못했지만 주몽으로부터 백제를 창업하는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주몽과 소서노의 커넥션은 고구려를 건국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창업에도 기여했다.

주몽과 소서노의 대타협은 경영의 관점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메리 파커 폴릿이란 미국의 경영학자는 “기업 내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가장 창조적인 해결법은 쌍방의 이익을 결합해 내어 모두 만족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몽은 실력 있고 명분도 있는 왕자로 하여금 고구려를 잇게 하는 이익을 얻었다면 소서노 세력은 백제를 건국하는 이익을 얻었다. 주몽은 소서노를 따르는 백성들이 함께 떠날 수 있게 배려를 했을 것이며, 소서노는 군사를 움직이자는 추종자들의 반발을 잘 무마했을 것이다.

소서노가 떠난 뒤에 졸본에 남아 있던 토착세력은 왕이 된 유리에게 몽니를 부렸다. 유리왕은 부분노의 의견을 따라 집안의 국내성으로 천도를 한다. 천도에 반대하던 신하들은 좌천되었다. 유리왕과 토착세력 간의 ‘이익의 결합’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유리왕도 후계자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해명 태자는 힘이 세고 담력이 뛰어났지만 불같은 성격이 늘 화근이었다. 황룡국왕이 선물로 보낸 활을 고구려의 기를 보인답시고 부러뜨려 외교적인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일로 유리왕의 진노를 사고 해명 태자는 자결하기에 이른다. 유리왕은 10살짜리인 무휼 왕자를 전쟁터에 내보내기도 했다. 군왕의 자질이 있는지 시험해본 것이다. 결국 무휼은 학반령 전투에서 대승을 올리고 태자로 책봉된다. 고구려의 2세 경영인들은 이처럼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CEO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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