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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언론척결 2009/03/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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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복입은 김수환 적당히 뛰워라!!

    개신교.카톨릭 등 기독교집단은 친일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라!




    [자료출처:네티즌 입장:  김수환 추기경이 과연 민족의 나침반이었는가? ]


     


    천주교의 부일 행위에 대한 비판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열사를 복권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해명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민족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의인을 이제 와서 명예회복을 했으니 지난 날 더럽히고 짓밟은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일제 치하 한국천주교회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받아들였습니다. 신사참배란 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무자비한 탄압이 아니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우린 잘 압니다. 당시 주교였던 노기남은 앞장서서 일제에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국천주교의 역사의식의 한계와 수준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임에 분명합니다. 



    다까끼 마사오(박정희)의 독재가 판을 칠 때 권력을 향해 비판하는 것은 목숨을 내 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함석헌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 같은 분들을 우린 존경합니다. 김수환 서울교구장도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목숨을 건 쓴 소리를 했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 생각합니다. 추기경 건드릴 독재자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쿠데타라는 원죄가 있는 다까끼 마사오에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물러나라”는 말 대신, “우리 강산 구석구석 나무 한 그루까지 애정을 쏟은 분”이라고 하며 “3선 개헌에 대한 욕망을 꺾고 나머지 과제를 후임자에게 넘겼더라면 지금쯤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국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상식 이하의 회고담을 늘어놓았으니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충분히 엿 보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다까끼 마사오 넌 대통령 자격이 없다”면서 끝까지 하야를 외친 장준하 선생님과 너무 비교됩니다.



    1987년 6월 16일 6월 항쟁의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었을 때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청년학생들을 끌어내기 위해 경찰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경찰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본다. 그 다음 같이 농성 중인 사제들을 보고, 그 뒤에는 수녀들이 있고, 연행하려는 청년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다. 나부터 먼저 밟고 지나가라.”고 하셨지요. 실로 고맙기 그지없는 행동이지만 그 정도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천주교회는 신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말았을 겁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사제라면 어려움에 처한 젊은 여성과 함께 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같이 넘어 온 문규현 신부님처럼 행동해야지 권력과 적절히 거래나 하는 것은 모리배들이나 하는 짓거리임에 분명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 한국천주교의 양심은 어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교구장으로 있을 때는 그래도 한국천주교는 체면치레는 했으나 어느 날 이상해졌지요. 노인이 된 추기경이 하도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 “추기경이 언론에 나오고 싶어 안달이 났다.”며 한참 후배인 호인수 신부로부터 호되게 비판받은 적이 있습니다. 2002년 카톨릭중앙의료원 파업 당시 경찰 병력 투입을 요청했을 때 원로인 김수환 추기경이 무엇을 했는지, 이랜드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어 미리 협조 공문까지 보내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피눈물로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운 겨울에 천막을 찢어버리는 폭력을 묵인했는지 냉정하게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천주교서울대교구가 경영하는 가톨릭대학 부설 중앙의료원 산하의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병원 로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신부가 동원한 용역깡패들로부터 폭력도 당하고, 법원으로부터 출입 금지가처분 판결을 받았다. 


     


    중앙집권식의 천주교 권력 구조 상 아무리 은퇴했다 할지라도 그의 말 한 마디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음을 삼척동자도 압니다. “김수환이 한 게 아니고 정진석이 한 걸 왜 그러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안다면 결코 그렇게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어 “추운 겨울에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지 마라”는 한 마디 정도만 했다면 정진석 추기경이나 서울교구의 실세들이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작년에 있었던 강남성모병원에 용역깡패를 동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개 몰듯이 차 버린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떠난 분에게 어떻게 그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느냐’며 책망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 비판 각오하고 제 이름을 걸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도자에 대한 분명한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정의구현 사제단의 신부들이 안팎으로 얼마나 시달리는지 조금은 압니다. 거대 권력인 삼성재벌에 맞서서 싸운 김용철이란 사람의 내부 고발은 사제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 집안 일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그 집의 속은 곪아 썩어 들어가 죽음의 길 말고는 다른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친일파 99인'에서 인용 - 



     


     노기남 천주교 대주교 - 호교(護敎)를 위해 신을 판 성직자

    1) 1936. 5. 18. 로마교황청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사에 참배해도 좋다는 훈령을 내린다. (왜놈들의 로비 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 ) 이에 노기남은 드디어 친일행각의 길로 나선다.

    2) 로마교황청 훈령에 명동성당 보좌신부였던 노기남은 자신은 물론 신자
    들에게도 신사참배를 허락 하였다.

    3) 그리하여 노기남은 천주교 단체의 책임자로서 매월 1일마다 소속 단원을 인솔하여 남산 조선신궁으로 신사참배를 하는 친일 부역행위를자행 하였다.

    4) 경성교구 40여 성당을 순회하며 시국강론시 선동한 중요 친일 내용
    - 매일아침 황실태안, 황군의 무운장구 기도
    - 매일저녁 전쟁에 부상, 전사한 황군 장병을 위하여 기도
    - 매주 황군 무운장구를 위하여 미사 성제 거행
    - 매월 황국신민의 각오를 일층 굳세게 하기 위한 기원제례와 설교
    - 신자의 일상생활 검소화로 저축에 힘써 국방헌금(왜군) 헌납

    5) 일본군용기 헌납운동 주도 - 매월 1인 1전 헌금과 유지의 기부금 선동
    하여 일본전투기 제작대금 1만원을 왜국 천황폐하에게 헌납
    6) 기타 친일행적은 시간과 지면관계상 더 이상 - - -

    - 동아일보 1993. 8. 22.자 기사에서 인용 -


     


    [보도자료]‘천주교의 친일’ 언제 회개하려는가!


     


    〈깨물지 못한 혀〉



    김유철 지음/우리신학연구소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4776명의 ‘친일파’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종교단체 인사는 202명이었으며 가톨릭계로 분류된 이가 7명이었다. 이튿날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친일인사로 발표된 가톨릭 인사들이 어떤 해를 끼쳤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가톨릭계 교회신문들은 일제히 성명을 지지하고 명단 공개 과정이 “반쪽자리” “피상적”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교회 쪽의 반발 앞에 불과 8년 전 그들이 내놓은 반성인 ‘쇄신과 화해’의 문장들은 ‘벙어리’가 돼 버린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유감과 반성 사이 깊은 골처럼, 광복 60여년이 지난 오늘도 교회 첨탑에 드리운 ‘친일의 그늘’은 어두운 것이다.


     


    솔직하게, 겸손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무슨 죄인지 명확히 ….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에 대한 교회의 지침이다. 한국 천주교는 자신의 ‘죄과’에 대해 과연 그리했는가. 이 물음을 들고 정면으로 “아니다”라고 말하는, 아니 말해야 하는, 아니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픈 마음으로 아프게 쓴 글’을 내놨다. 부제 ‘한국 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 언론’에서 보이듯, 책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에 눈감고 민중을 욕됨의 자리로 선동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바빴던 천주교 친일인사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천주교 ‘지도부’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교회에서 발간했던 신문·잡지의 부화뇌동 행각을 낱낱이 드러내며 참회를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 그 자신 천주교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지은이는 가톨릭 청년운동에 몰두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글을 여러 매체에 쓰고 있으며, 이 책이 첫 결과물인 셈이다.   
     
    » 〈깨물지 못한 혀〉   
     
    지은이가 꼽은 문제적 인물은 노기남(1902~1984) 대주교이며, 문제적 언론은 천주교의 공식 기관지인 <경향잡지>다.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자 불과 반년에 비율빈(필리핀), 말래반도, 비르마니아지에서 적군의 그림자까지 없애는 동시 태평양 인도양을 제압하고 있는 것은 일찍이 인류의 전쟁역사에 볼 수 없는 위대한 사실 (…) 무엇보다도 당국에서 지도하는 바에 무언 복종할 것이오, 복종할지라도 마지못하여 하거나 겉으로 하는 체만 하거나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하여 나갈지니 …” 1942년 당시 오카모토 경성교구장이 <경향잡지>에 실은 담화문 일부이며, 오카모토는 노기남 대주교의 창씨명이다. 지은이는 묻는다. “경성교구장의 담화문이 ‘추상적이고, 소극적인’ 친일 행각인가?”


     


    책의 2부에서 지은이가 소개하는 <경향잡지>의 ‘받아쓰기’ 사례는 우리 민족의 ‘혼불’을 앗긴 시대에 영합해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이 어떻게 왜곡·굴절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신사참배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종교예식이 아니므로 ‘해도 무방하다’는 궤변, 일본 메이지 천황의 죽음(1912)이 국상이며 주일마다 성경을 암송하고 경문을 외우라는 지시,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뒤 황군의 승전을 위한 기도회를 올리고 위문금을 모아 보냈다는 선전, 국가(일본)를 위해 적군의 손에 죽는 것은 충신이요 ‘순교’라는 설교, 반도청년이 황군에 입대하면 완전한 황국신민의 자격을 갖춘다며 징병을 거들고 …. 이와 같은 일들의 종결점이 1940년 결성된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이었으니, 초대 이사장이 앞서 든 노기남 신부였으며, 그는 2년 뒤 주교로 승품됐다.


     


    지은이는 이렇게 믿는다. “일제 강점기 한국천주교회의 허물은 ‘교회’의 허물이 아니라 ‘사람’의 과오였다.” 역사의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민족에게 사죄하자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그 방법은 이렇다. “한 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 해방절이 올 때마다 … 경술국치일을 맞으면 그때마다 … 사람들이 그만이라고 말해도 재를 쓰고 … ” 책값은 무료이며 우리신학연구소 후원회 카페(cafe.daum.net/wtisarang)에 신청하면 받아 볼 수 있다.


     


    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


     

  • 풍수지리조아 2009/03/15 [00:03]

    수정 삭제

    비판도 하지만
    그렇다고 풍수와 친일과 무슨관계람...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하던데 친일앞잡이들의죄과는 평가되어야하죠~
    하지만 위 댓글은 풍수지리기사와는 좀 벗어나지 싶군요
  • 독자 2009/03/15 [10:03]

    수정 삭제

    김수한 추기경~
    당신은 민족주의자를 암살한 친일파 앞잡이들을 어떠케 생각하시나?
    죽어서도 생각해 보시오
    당신의 종교관을 떠나 어느 민족입니카
    천주교 카톨릭~
    종교의 폐허를 더 잘아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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