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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겸 2008/10/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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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릉>위치 추정 가능지역들
    성훈 님, 저는 아직 <용산릉>의 위치를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가능성이 있는 곳이 아래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龍山陵>이 있다는 곳으로 추정이 가능한 곳들은
    (1)<高麗營> 동남방 즉 <순의현> 남린 <龍山장>
    (2)<은산{銀山}>・<석문산{石門山}>간 <명릉{明陵}>또는<13릉{十三陵}>지역
    (3)<창평{昌平}>서쪽 인접 <용호태{龍虎台}>지역.
    (4)<회유{懷柔}>남방 <용두{龍頭}>지역.
    (5)<회래현{懷來縣}>서남남방 25Km지경 <용배산{龍扒山}>.
    (6)<룡산{龍山}>⇔<방산{龐山}>?⇔<방산{房山 또는 方山}>?지역
  • ASDFA 2008/10/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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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북경유리묘하고 유리왕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가요.
    제가 알기로는 아무관계가 없는것으로 나오고 있으며 유리묘의 이름은 황제가 상으로 준 황색유리기와 3개하고 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그리고 유리묘에는 관우상을 모섰다고 합니다.아니다고 생각하시면 근거를 좀 봅시다.
    2. 저 북경대학 교재에 나오는 지도는 전국시대형세도라 나오는고 보이지 않습니까.(눈이 좀 문제가 있나?아니면 글을 모르나.)즉 진시황이 통일을 하고 만든 장성이 아니라 그겁니다.역사상 진장성이란 진시황이 통일을 하고 만든 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저 지도에 나오는 진장성하고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진장성하고 같은 개념이 아니라 그것입니다.

    아에 소설이라고 하면 욕이라도 않먹을 턴더 이건 왜이러는지 몰라.
  • ASDFA 2008/10/1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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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하지만 고구려사초.략 은 누가 언제 쓴 책인지 좀 설명을 해주었스면 합니다.
    아무리 뒤져도 고서에 그런 책이 없은거로 나오기에 그럽니다.
  • 머털도사 2008/10/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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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DFA 보시요....
    "고구려사초"는 박창화라는 분이 일제시대에 일본의 황실도서관에서 근무할때 베꼈다는 책이오.... 지은이가 누군지도 없고... 사람들은 박창화가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하여간, 교보문고에 나와있으니 사서 보시구려...

    진장성은 당신 말이 맞소이다. 글쓴이가 좀 헷갈렸구만... 산해관에서 끝나는 燕장성을 저리 말도안되게 요동반도까지 燕장성이 그려져있는 지도를 올리면서 秦장성은 태행산맥을 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으니... 흐미 한심혀라....

    그리고,
    ASDFA는 유리묘가 황제랑 관계가 있다고 했는데...
    유리묘가 황제헌원이 상으로 준 유리랑 관계있다는 근거좀 봅시다.
    저 부근에는 유리하, 유리묘, 유리창... 유리관계 지명이 많은 이유가 참 궁금하던 참에 잘됐구려...

    저 유리묘를 발굴한 자료가 있다면 공개하시지요. 발굴자료 없이 헌원이 준 황색유리기와 관계있다고 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 근거가 너무 부족하지요.
  • 국편위 2008/10/16 [15:10]

    수정 삭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박창화선생의 사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남당 박창화선생의 유고인 '사료'들을 읽고 싶으시면 국사편찬위원회사이트를 방문하셔서 원문제공서비스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PDF화일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역사학도라면 누구나 다 아는 기본 상식입니다. 다른 자료들도 많이 공개되어 있으니 사료 원문제공서비스 많이 참조하세요.
  • 국편위 2008/10/16 [15:10]

    수정 삭제

    국사편찬위원회 원문공개서비스 주소 알림
    남당 박창화선생이 유고로 남긴 다른 사료도 많지만 일단 이것만 소개드립니다.
    많은 사료들이 인터넷으로 공개되어 있으니 찾는 것은 구하는 자의 몫입니다.
    여기까지만 소개해드리니 나머진 목마른 분이 조금이라도 노력해서 찾아야겠지요.
    다 알려드리면 찾는 재미가 반감됩니다.

    http://mf.history.go.kr/
    국사편찬위원회 마이크로필름 목록원문서비스

    MF0020000 7.高句麗史略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32.pdf
    MF0020000 8.高句麗史略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42.pdf
  • ASDFA 2008/10/16 [17:10]

    수정 삭제

    유리묘 유리하 등에 관하여
    북경지역에 유리(琉璃)묘 유리하등 유리(琉璃)가 들어간 곳이 아주 많습니다.제가 말한 황제가 어느황제인지는 기록에 나오는것이 아니고 그동네 사람들의 전설이다 그겁니다.단 소설(그럿게 밖에 이해할수가 없어서요)쓴 사람이 고려 유리왕하고 그동네 하고 딱 무슨 관계라도 있는것 처럼 쓰길래 한 소리입니다.아시다 싶이 중국에 유리(琉璃)제품이 나온지 2500년 좌우 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과연 저동네 이름하고 유리제품하고 관계가 있을가요 아니면 유리왕 하고 관계가 있을 가요.단 그동네 지명에 유리두글자가 들어가 있다고 그걸 근거로 하면 정말 너무한거 아닙니까.龙---庞----房으로 해석을 하면 천년지나서 후손들이 대한민국을 대한(汉)民国------대한(韩)민국으로 해석을 할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지 모릅니다.아무 근거 없이 저렇게 해석을 하고 그걸 밑으라고 하면 말이 된다고 하는지?
    고구려략초에 대하여 어는정도 믿음성이 있는지는 베낀 사서부터 찾아서 연구를 하든지 하여야 하는것 아닙니까.일단 역사 연구를 할려면 사서와 고대 발군을 결합하여 연구를 시작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해관에 대하여 서는 명나라 장성으로 나오고 있습니다.단 진장성이 산해관에서 끝나다는 말도 있고 요동 지역에서 끝낮다는 말도 있습니다.도대체 어느것이 맞는지는 계속 연구하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글쓴이가 역사학자라는 생각이는데 무책임하게 이런식으로 문장을 발표하면 너무 한심 한거 아닙니까.

  • 머털도사 2008/10/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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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해서 그러는데....
    * ASDFA의 말을 지금 보니,
    黃제가 아니라 皇제가 준 유리기라는 말이군요.
    다음부턴 헷갈리는 것들은 한자로 명시해주시길.



    * 천년뒤 대韓민국을 대漢민국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볼수있다고 했으나...
    유리왕과 유리묘의 관계와는 한참 다르군요.

    발음만 같을 뿐만 아니라 한자도 똑같습니다.

    琉璃明王과 琉璃廟, 琉璃河, 琉璃廠
    琉璃라는 한자가 똑같죠. 그러니 의심될 수 밖에요.

    또한,
    고구려가 일어난 졸본부여는 북부여에서 남쪽이라고 했으니...
    동부여는 만주이고,
    북부여는 몽골과 내몽골의 동쪽이역이므로
    북부여 남쪽 즉 졸본부여가 북경부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자가 같고, 북부여 남쪽지방이 되므로 琉璃廟가 琉璃明王의 무덤으로 의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국사기에 이런 구절이 있죠.
    高句麗始居中國北地則漸東遷于浿水之側

    글자만 같다고 하여 저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생각에 졸본부여는 저 유리하 지역보다는 한참 북쪽이라고 생각되지만..., ASDFA가 이유가 궁금하다기에 한번 써봤소이다.)



    * 그 동네 사람들 전설이라고 하였는데

    직접 들은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서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유리묘 이야기에 대해 출판된 책이라고 본 것인가요?

    만약 출판된 것이 있다면 소개좀 해줄래요?



    아....그리고 성훈은 역사학자 아님. 자기자신의 말로는 다른 사람이 써놓은 것을 짜집기하여 글을 쓴다고 함...
  • 조재범 2008/10/16 [20:10]

    수정 삭제

    솔직히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초기 기록은 좀 이상했는데 속 시원하게 풀렸습니다그려.
    나 또한 태조왕 때부터 신대왕까지의 형제 나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속시원하게 풀렸습니다. 태조왕이 죽을 때 나이가 119세였는데 동생 차대왕이 95세였고 막내 동생인 신대왕이 77세였습니다. 첫째와 둘째의 나이 차이가 24살,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이는 42살인데 이것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再思)는 왕위는 안 물려받고 늙어서까지 자손 번성에만 열을 올렸는가 싶었죠. 그런데 이제 말끔히 해결되었습니다.
  • asdfa 2008/10/17 [00:10]

    수정 삭제

    중국말에 琉璃가 뭔지 좀 공부하시요.
    머털도사//
    1.유리묘 유리하 이름의 출처에 대하여서 북경시 정부 유관부문에 부탁을 하면 답이 어느정도 나올거라 생각을 합니다.아니면 북경TV에 "여기는 북경이다"라는 프로가있는데 거기에 부탁을 해도 될것입니다.유리창은 유리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말인데 유리명왕하고 아무관계가 없는거 아니겄습니까.
    2.유리모가 유리명왕의 무덤이라고 합시다.그럼 유리명왕이 죽을때 까지는 북경지역이 고구려 땅이라고 봐야 정상이지요.유리명왕이 기원 28년에 죽었습니다.근데 삼국사기도 좋고 고루려초.략도 좋고 기원 49년 한나라의 북경지역을 공격한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그럼 고구려땅인 북경지역이 무슨 원인으로 한나라 땅이 되였을가요.그리고 한나라가 고구려에 조공을 할정도로 고구려가 강하다면 자기땅인 북경지역을 달라고 해야 하는 기록이 남아있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3.고구려시초에 현 길림성 지역을 벗어 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며 주몽의 무덤도 길림성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훈님이 역사자 많든 아니든 간에 다른사람을 글을 짜집기하여 글을 쓰드래도 짜집는 글이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생각을 좀 하시고 발표를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아무리 짜집기 한다고 해도 저런식으로 하면 너무 무책임 한거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영어 일어 한국어가 동시에 발표되는 데서 짜집기 한다는 한가지 이유로 책임감 없이 문장을 발표하면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
    저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역사에 별로 관심도 없는 상인입니다.제가 봐도 저렇게 문제가 많은데 학자들이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가요?
  • 머털도사 2008/10/17 [01:10]

    수정 삭제

    뭐 고구려 초기부터 영토가 길림성지역이라고?? 하하 지나가던 개가 웃습니다.
    1. 결국 유리하와 유리묘의 지명의 출처는 자신도 모르면서 지어낸 것이구만요... 내가 어디서 들었냐고 물어왔는데 그 대답은 안하고 북경시에 물어보라고 하면 어찌해야하는거요? 아무런 근거없이 황제의 황색유리기 이야기를 꺼냈구만요.....

    나야 유리하에 관심이 없으니, 반론을 제기하려는 당신이 북경시 정부에 물어봐서 반론을 하시오....



    2. 난 고구려 졸본부여가 유리하 지역보다 한참 북쪽이라고 저 위에 말했소이다.
    그러니 모본왕때에 북평과 어양을 공격하는 기록이 나오는 것이지요.



    3. 고구려가 어찌 길림이요? 하하. 길림지역은 동부여땅이오. 역사공부를 다시해야겠구만요.

    내가 삼국사기에 "고구려는 초기에 중국 북쪽에 있었고 점차 동으로 이동하여 패수에 머물렀다"는 것을 보여줘도 고구려가 초기부터 길림지역이라고 하면 어쩌자는것이요?
    길림지역 영토는 고구려 초기영토가 아니오.... 알겠소?
    고구려가 동부여를 멸망시키고, 관구검에 공격당하여 불내성 환도성이 허물어지고, 도읍을 동쪽으로 옮겼을때에 비로소 길림지역에 고구려 도읍이 있게되는 것이외다.

    길림성에 길림시 서쪽에 "부여"라는 지명이 남아있고, 齊齊哈爾 근처에 역시 "부유"라는 지명이 남아있소.
  • ASDFA 2008/10/17 [14:10]

    수정 삭제

    제가 고구려초기가 길림성 지역이라고 해서 개가 웃는다????
    예 정답입니다.개가 웃습니다.그러면 고구려 주몽 유리왕북경지역에서 활동을 하였다고 개가 지나가다가 정답이라고 합니까?웃지 않고 ?아무리 봐도 똑같이 무식한 놈인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증명을 하여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을 하여야 하는거 아님니까.유리묘에 대한 얘기는 인터넜이서 검색한 자료이니 신임성이 떨어지니 관심이 있으면 그렇게 하라 그겁니다.
    저도 아무 근거 없이 말을 좀 해봅시다.얼마나 말도안되는 소리가 나오는지.
    서울이 고서에 한(汉)성이라고 하였은니 한(汉)나라 땅이 였다。서울이란 대한민국이 그걸 감추기 위하여 조작한거다. 이소리 들으면 개가 지나가다 미칠것 같으데.


  • mimesis 2008/10/18 [05:10]

    수정 삭제

    조금씩 지나치고 근거없이 단정하는 부분들만 줄어든다면
    좋은 토론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아쉽군요.
    실상 써놓고도 과했음을 스스로 아실 듯이 보여지네요. 근거가 확실치 않으면 질문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 같습니다. 그리고...일단 지나 측의 주장과 같은 궤도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릇된 파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닌가 합니다.
  • 머털도사 2008/10/18 [13:10]

    수정 삭제

    난 유리묘에 관심없다고 했을텐데요...
    난 글쓴이와 고구려 초기 위치의 입장이 다르며,
    고구려 졸본부여의 위치가 북경에서 한참 떨어진 북쪽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유리묘가 유리왕의 묘인지, 아니면 유리기가 있는 묘인지 ASDFA가 알아보셔요.
    상식적으로 유리묘라고 하면 유리라는 사람의 묘이지... 유리기를 줬다고 하여 유리묘라고 하지 않습니다.
    명일통지를 보니 룡산이 순천부에 있더군요. 명국의 순천부는 북경지방이죠. 따라서 북경의 유리묘는 유리왕의 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반론은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반론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확실하지도 않은 유리묘 이야기를 꺼내서 반론을 합니까?

    漢城이란 "흰성"을 말하는 것이지, 漢國의 城을 말하는게 아니네요.
    계림유사에 白을 漢이라고 한다고 했네요.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쯧쯧.
  • ASDFA 2008/10/18 [15:10]

    수정 삭제

    유리묘에 대하여 제가 알아볼일이 아는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글쓴사람이 알아봐야 하는거 아닙니까.
    순천부 룡산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그 룡산하고 2000년전 룡산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 가요.아무리봐도 아무관계가 없을것 같습니다.룡산에 대하여 좀 조사를 해보시지요.흑룡강성 길림성 료녕성 북경시 하북성 호남성 광동성 해남도 신강자치구 등등 지역에 모두 용산이란 곳이 있습니다.그걸 근거로 북경 유리묘 하고 유리왕 하고 연계를 하면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자 그리고 중국이나 조선 역사에서 어느 황제나 왕의 묘가 있었는지 좀 조사 해보시지요.별로 없을 겁니다.
    저도 제가 무식한건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역사에 대하여 소설식으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근데 왜 유식하도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런 소설도 아닌 글을 쓰고 난리를 피움니까.
    무식하면 저처럼 댙글이나 달면서 살지.왜 무식하다는거 전선을 하면서 삶니까.중국말로 못생긴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못생겨가지고 나와서 사람놀라게하느것은 당신잘못이라고 합니다.
    한성에 대하여서는 제가 이미 말은 했는데.아무근거 없이 좀 쓴다고.그래서 지나가던 개가 듣고 기가막혀 미친다고.
  • 머털도사 2008/10/18 [18:10]

    수정 삭제

    난 글쓴 사람 아니라고 몇번을 말합니까?
    난 졸본부여가 북경보다 훨씬 북쪽이라고 생각한다고 몇번을 말해야 합니까?



    그리고 글쓴이는 룡산이 북경근방에 있고, 유리묘라는 지명과 유리하라는 지명이 그곳에 있으니...
    유리묘는 유리왕의 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에게 반론을 하려거든 당신이 찾아서 하시오...
    반론의 근거도 없으면서 딴지 걸지 마시고...
    당신이 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나지 않소이다.
    유리묘가 유리왕의 묘가 아닌 근거가 무엇이오? 아무것도 없잖소?
  • ASDFA 2008/10/18 [19:10]

    수정 삭제

    미치겄네.
    글쓴사람이 근거를 내놓튼지 해야 반론을 하든지 말든지 할거 아닙니까?
    당신도 저글은 못밎으시는거 아닙니까.
    인터넛에서 검색하면 제가 쓴 내용이 나온다 그겁니다.글쓴사람이 나와야 토론을 하든지 말든지 할거 아닙니까.
    자기주장을 할려면 근거 내놓고 하든지 해야지 글자가 같다고 저렇게 글을 써도 된다는 겁니까?글중에 룡산을 방산이라 중국에서 은페시컸다고 하는데 좀 무식합니다.북경지역에 아직 룡산이란 곳이 남아 있습니다.(이거 가지고 다시우기는지 모르겄네).그건 왜 은페를 안하였을까요?
    그냥 답이다라고 우기면 다되는가 합니까?
    전국시대 지도 놓고 진장성 얘기할 정도로 무식한 글에 내가 왜 자꾸이러는지 몰라.
    한국사람이 저걸 밎든지 말든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참 저글 중국 싸이트에 퍼가면 또 중국에서 날조 했다고 중앙일보나 조선일보가 보도를 할라나?
  • 1 2008/10/18 [20:10]

    수정 삭제

    공부할 거면 체계적으로 제대로 좀 하자
    정신병동같다
  • 머털도사 2008/10/20 [10:10]

    수정 삭제

    반론을 하려거든 제대로 해라 ASDFA야~~
    근거도 없으면서 아니라고 하면 반대를 하기 위한 반대인거다.
    알겠냐?
    유리묘라고 하면 유리라는 사람의 묘인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너는 유리기라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알겠냐?
    중공인이 하는 짓이라곤 말도안되는거 만들어서 진짜인냥 만들어내는 것이지...
    네가 바로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 2008/10/20 [12:10]

    수정 삭제

    傻B
    傻B一群
  • ASDFA 2008/10/22 [18:10]

    수정 삭제

    당신 말대로 하면.
    무이산 백운묘(白云庙)가 백운이란 사람의 묘인것이고
    서울동묘는 동이라는 사람의 묘로 해석해야 합니다.
    제가 한말인 중공인이라서라면 당신이 한말은 자본인이라서 입니까?
    누가 근거 없이 우기고 않아 있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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