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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세대 간 갈등으로…

"우리에게 획일적, 무비판적, 주입식 교육을 시키겠다는 거냐?"

이진우 소장 | 기사입력 2015/10/21 [13:25]

한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세대 간 갈등으로…

"우리에게 획일적, 무비판적, 주입식 교육을 시키겠다는 거냐?"

이진우 소장 | 입력 : 2015/10/21 [13:25]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자칭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민 미술관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국정교과서 논란이 이제 이념과 정치의 영역을 벗어나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10대 중고생과 20대 대학생들은 연이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1인 시위와 촛불 시위로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고, 60대와 70대의 기성세대는 ‘국정화 찬성’맞불집회로 이들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중고생들이 거리 행진을 할 때 현수막과 피켓을 한 어르신이 걷어차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세대 간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획일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세계관과 다원적이면서 개인적인 세계관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대량생산 시대의 하드웨어 중심 사고와 창조경제 시대의 콘텐츠 중심 사고가 부딪히고 있는 것이죠. 보다 값싸게 많은 제품을 빨리 생산해야 했던 시대에는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사고가 적합했지만, 산업 간 융합과 혁신으로 새로운 제품(혹은 서비스)을 만들어 산업 트렌드를 선도해야만 비로소 살아남는 시대에는 다원적이면서도 개인중심 사고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각각 살아남았죠.

 

그러다 보니 지금의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는 서로가 자신만이 옳다며 각각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이처럼 다른 세계관과 사고 패턴을 갖고 있는 세대들을 정치권이 이념과 정당의 동원 대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하나의 역사관과 역사적 사실을 수용하면서 일사불란하게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애국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주장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청년세대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개방성과 수용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들에게 획일적, 무비판적, 주입식 교육을 시키겠다는 거냐?”며 기성세대를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비판하지요.

 

분명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그들이 맞는 것인데, 이것을 그들과 전혀 다른 성장과정과 문화적 체험 속에서 자라온 미래 세대들에게 강요하려는 데에서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에 더 적합한 신체구조와 성향을 가진 선수에게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며 마라톤과 레슬링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격이죠. 그 분들의 시대에는 마라톤과 레슬링 금메달이 최고였지만 지금 세대들에게는 피겨 스케이팅과 리듬 체조 금메달이 더 매력적일 수 있는데 말이죠.

 

옛 말에“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부모가 계속 자식에게 이기고, 자식이 계속 부모에게 져서는 결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효자가 잘 산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살펴보면 도리어 효자보다는 불효자가 더 많습니다. 현대그룹의 설립자인 고 정주영 회장은 소를 훔쳐 고향을 떠나왔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도 부모와 등지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열었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의 대다수는 집안에서 사실상 내놓은 문제아 출신들이죠.

 

왜 “효자가 잘 산다”는 것이 현실에 있어서는 관철되지 않는 것일까? 사회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효자가 잘 산다”는 믿음은 조선왕조 5백 년처럼 사회시스템이 상당히 안정화되고 정체되어 있는 경우에만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신분계급이 매우 오랫동안 유지되고, 웬만해서는 그것이 변하지도 깨지지도 않는 상황에서는, 오래 전에 이미 그 길을 간 부모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요.

 

그러나 1945년 광복 이후 한국 사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부모 혹은 친척 어른의 기대와 조언은 이미 바뀐 세상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자녀 세대에게는 맞지가 않습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가 대중음악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는 전자기타와 키보드를 감추고 빼앗기 바빴지요. 그러나 지금은 도리어 아이 손을 붙잡고 실용음악학원을 함께 찾아가거나 오디션을 적극 응원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부모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으로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인생의 방정식이 자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고, 둘째, 남들이 보기에 무난한 길을 가는 것이 성공과 안정을 보장한다고 주장하고, 셋째, 부모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자녀보다 월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지요.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득권 속에 안주하고 있는 부모와 달리 자녀들은 훨씬 빠르게 시대의 흐름 변화와 사회 시스템의 진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지요. 그들의 판단이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현재의 기성세대들이 모두 끔찍한 효자들이었다면 단언컨대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교사, 공무원,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기대를 뒤로 하고 사업가로 무모한 도전을 한 사람들, 부모 곁에서 농사일을 이어받으라는 기대를 뒤로 하고 서울로 야반도주 한 사람들, 네가 무슨 대학을 가고 유학을 가느냐고 어이없어 하던 부모를 뒤로 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미국의 성공신화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부모들이 일찍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그 추이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무려 400년이 넘도록 역동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겁니다.

 

 

이솝 우화에 개미와 베짱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을 내내 들판에 떨어진 곡식들을 줍고 옮기느라 분주했던 개미들이 저장된 곡식을 먹으며 겨울을 나고 있는데, 여름과 가을 내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가 남은 곡식 들 중 조금만 자신들에게 달라고 부탁하니 부지런한 개미가 게을렀던 그들을 질책하였다는 내용이죠.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기성세대 입장에서의 해석입니다.

 

곡식을 옮기는 것은 어떠한 개미도, 심지어는 개미가 아닌 다른 비슷한 곤충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베짱이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 미래세대 입장에서 이번 우화를 재해석하자면, 베짱이의 멋진 노래를 듣기 위해 개미들이 줄을 서서 곡식을 들고 올 수밖에 없고, 개미들보다 베짱이가 더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하드웨어 중심 기성세대와 콘텐츠 중심 미래세대가 소통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사실, 답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에게 통 크게 져주면 됩니다. “그래. 이제 너희들 세상이고, 너희들이 세상의 중심이니, 너희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정말 멋지게 대한민국을 이끌어보렴!”하면서 말이죠.

 

다소 뜬금없기는 하지만 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실패했는지 아십니까? 하드웨어 중심 사고로 콘텐츠 중심 산업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이른바 사고와 전략의 미스매치(Mismatch) 현상입니다. 영상과 그래픽을 만드는 사람에게 RPG 게임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과, 브라운관과 탁상시계를 만드는 사람에게 게임을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중 어느 쪽이 더 성공 확률이 높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지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콘텐츠를 만들라고 하면 할 수 있어도,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에게 콘텐츠를 만들라고 하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하면서 장관과 차관을 모조리 하드웨어 세대로 임명하고, 그들의 민간 파트너 역시 하드웨어로 성장해온 공기업과 대기업으로 지정하면 과연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하는데도 창조경제 주무부처 장관은 물론, 민간 파트너 기업까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얼마나 허황되고 공허했는지가 한 눈에 다 드러납니다. 획일적인 사고를 통해 융합과 혁신을 이룩하겠다... 이거야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지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기성세대들은 그냥 미래세대에게 져주십시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구요? 그러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은 40대와 50대가 미래세대 편을 들어 강제적으로라도 기성세대들이 지도록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하고 싶습니다. 기성세대의 양보와 관용을 통해 대한민국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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