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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州,계절화 시인의 "울지 않는 새"

계절화 시인 | 기사입력 2006/09/12 [22:09]

光州,계절화 시인의 "울지 않는 새"

계절화 시인 | 입력 : 2006/09/12 [22:09]
 
▲한 아이가 들고 있는 영정 사진을 전두환으로 사진을 바꾸어 봤다     © 플러스코리아


☯ 天節紀 3312년 7월 22일(2006, 8, 15) 光復61週年 光州道廳앞 錦南路 民主廣場에서 吟遊詩人 季節花 읋다.
*
*
울지 않는 새
*
*                              - 계절화 -
*
*
참으로 슬프도다.
참으로도 슬프도다.
緣坐罪의 病名
억울함 
억울함 속에서는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 라야 한다고 하지.
넘들은......... *

丙戌年 한해
閏七月 七月을 뒤로한 채
먼 남쪽 바다에, 하늘에 쪽빛
千年 슬픔의 일렁임
일깨운 南道라
全羅道라 
난벌[曠野]에 鑛山이 光州라
東北亞의 빛이로다.
허나 하나 슬프도다.
밤은 깊어 찾아나와 올거나
한낮의 슬픔
한낱 흩어짐  조각
조각난 빛으로 
쪽빛 하늘을 내다뵈는
먼 옛날.........
死守 
緣坐罪의 病名
빛고을 광주여
*
이름하여............... 
............................. 
때늦은 날의 들녘이라 하지. 

 
                                       *넘들은[묻語 俗言] : 남들은

▲무궁화꽃이 새로피어나고 흐트러지게 피어나고...      ©플러스코리아
 
☯ 詩  評

8.15광복절은 을사늑약으로부터의 광복을 의미하지만 광복 61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광복된 자주적 국가의 국민으로서 민주화의 르네상스(프 Renaissance?)를 맞이하여 각자의 희망을 향해 飛翔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생각하는가?

작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심의 4강(四介國)과 UN을 움직이는 세계열강들의 돌아가는 사정을 살펴 볼 때 인류의 미래는 별로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특히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미국중심의 과도한 패권적 이기주의와 그 전위대 역할을 해온 역대 정권들의 실체적 현주소를 적나라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실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는 김영삼정권의 IMF를 시작으로 미국의 아프간 · 이라크 침공,  NMD체제 구축, 부조리한 대북강경제재 해법, 황우석사태, 불공정한 FTA협상 추진, 작통권 이양문제들의 진행과정 등의 다양한 현안들을 지켜보며 종전의 금기시 되었던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가 북한을 능가하여 이 나라와 국민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일련의 사태들이다.

전라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부터 일천오백여년을  지역차별과 소외핍박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근 현대사에서 동학농민학살(東學農民虐殺) 이후 6·25동란을 전후한 양민학살(대표적 예로 제주 4.3사건)이 있었지만 그러한 패닉(panic)상태의 결정판이 5.18광주 사태였고 이에 대한 정당방위의 항쟁을 빨갱이로 매도하여 살육의 잔악한 잔치를 벌이면서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그 잘못됨을 바로 잡고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삼으며 명예복권을 하였다는 현시점에도 ‘광주’, 그리고 ‘전라도’ 하면 수구보수세력들과 그들의 통치를 정당하게 받아들였던 적지 않은 국민들은 여전히 서슴없이 ‘배신의 땅에 이중인격자들’, ‘ 빨갱이’, ‘북한에 가서 살라’하며 조소하고 가차 없는 매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남북분단도 모자라 동서로 사분오열하며 보이지 않는 차별과 홀대는 육신이 썩어 문드러져 없어진 가냘픈 어린죽음 까지도 ‘빨갱이’라는 ‘連坐制, 緣坐罪’의 고질병명으로 살아서 망령처럼 따라 다닌다.


현대사에서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승격되었지만 그 정신을 승화시켜 실로 상생의 민주화와 성숙된 자유추구, 보다 승화된 세계 평화 질서를 향한 지속적 울음을 울어야 하는데 노 정권하에서 광주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러나 새가 울지 않는다고 해서 비상의 자유마저 영 잃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8.15광복 61주년 기념일을 맞아 5.18 민주화운동의 성역이 된 광주에서 다시한번 나 자신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반문해 본다.


·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주 독립된 주권국가에 살고 있는가?

· 김대중정권을 이은 노무현정권은 진정으로 민주화된 개혁정권이라 단언 할 수 있는가?


통일한국을 우리 스스로의 자주적 결정과 노력에 의해 추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수레의 양 바퀴와도 같은 위 두 문제에 대한 본질적 인식의 접근과 새로운 시각전환정립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작품해제((作品解題)

새의 속성은 한마디로 지저귐과 자유로운 비상을 들 수 있다.
민주화의 성역인 광주는 노무현 정권하에서도 계속 울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울음을 멈추었다. 노무현 정권은 지역차별의 역사적, 정치적 연원의 깊은 고뇌와 성찰 없이 현재와 같은 내 식구 우선 챙기기의 코드인사를 통한 단말마적개혁(斷末魔的改革) 마인드(mind)로는 더 이상의 성숙된 민주화의 지속발전가능성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하겠다.

全羅道는 역사적으로 일천오백여년동안 괄씨와 멸시로 차별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

‘緣坐罪의 病名’ 이란,
소위 통일신라 이후로 모반(謀叛)의 땅, 유배의 땅으로 괴리된 채 현재까지 ‘전라도’의 ‘全’자만 나와도, 전라도와 緣만 닿아도 소외시키고 배타해온 고질적 지역분열의 역사적 비극을 표현함이다. 이런 연유로 連坐制를 패러디(paradox)해 이을‘連’이 아닌 인연‘緣’을, 규정 ‘制’ 대신에 허물‘罪’로 표기했다.
 
‘丙戌年’은 60갑가의 스물셋째 天干 地支 3번째와 9번째(男자는 寅부터, 女는 子부터 시작 하여 열한 번째)로 현세와 내세를 상징하며 ‘윤칠월 7월’이란 범 우주의 신질서를 상징하는 절대적 존재의 뜻, 전통신앙에서 이별의 숫자이지만 이별을 비워 놓았고 이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린다는 의미다.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는 삼국시대 백제에 의해 토착종교인 六斗七星信仰에 의해 조성된 국조사당(國朝祠堂) 이었는데 훗날 불교에 흡수되며 고려시대의 사찰(寺刹)로 기록하고 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본 딴 가람배치와 999개의 탑신 형상은  百濟史의 천년혼(千年魂)이 天上의 형상을 본받아 地上에 ‘인류애의 실현’이라는, 천상과 지상의 합일된 이상세계를 현현(顯現)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이를 못다 푼 恨으로 현존함을 말해준다.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탑신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곧 세계 平穩과 平和를 指向하는 人類愛的 人間本然(本然之性)의 모습들을 닮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먼 남쪽 바다에 쪽빛 ’은
향토적 색채감과 정감의 거리의 시적형상화(詩的形象化)이다. 정서적으로 흘러간 역사적 향수와 그 처절하고도 애틋한 사연을 말해 준다.

‘ 千年 슬픔의 일렁임 ’
‘ 일깨운 南道라 ’ 는
古 백제(百濟)가 무너지고 난 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처절한 역사적 슬픔의 파장이 연이어 밀려오듯 이제 다시금 1980년대 신군부에 맞서 5.18민주화운동이 전개 될 수밖에 없었던 ‘連坐制, 緣坐罪’라는 역사적 원죄의식(原罪意識)의 연원(淵遠)을 일깨우고 있음을 말해준다.

‘ 全羅道라 ’
전라도는 원래 반역의 땅, 유배의 땅이 아니다. 예로부터 타 지역 못지않게 충신, 열녀, 지·열사가 유별나게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특히 國難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국운동에 주저하지 않고 동참해 왔음을 근·현대사(東學農民革命)만을 살펴보더라도 그 명백한 증거와 인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긍정적 역량을 더 이상 인지적으로 성숙 승화시키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안주하거나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여 大國的, 大道的 기량을 소진(消盡)시켜감에 대한 시인의 안타까움과 그 독려함의 점층적 강조라 할 수 있다.

‘ 난벌에 鑛山이 光州라 ’
넓고 넓은 벌판에 鑛山이란 모든 물질을 생산하며 갈무리하는 원천지(源泉地)를 뜻한다. 이런 형상을 담은 광주이기에 이름하여 빛고을 光州라 하며 이는 곧 東北亞(東北亞世亞)의 빛으로서 아세아와 세계평화를 향한 인류의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허나 하나 슬프다’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썩음으로서(5.18을 기점으로 8·90년대 민주화운동) 어린 싹은 틔었지만(金大中政權의 對北햇볕政策) 세상밖에 나온 어린 싹에 세상바람은 매서운 혹한풍(酷寒風→掝寒風)으로 몰아치고 있다. 이로 인해 동북아의 정세(政勢)가 불안해지면서 세계평화 역시 요원해저만 가는 현재의 상황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함을 말한다.

‘ 밤은 깊어 찾아나와 올거나 ’
이토록 암울한 세상 세계에 어둠 거친 밝고 깨끗한 희망찬 내일의 새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한 낮의 슬픔’
열강들과 당대집권위정자(當代執權爲政者)들의 패권적 질서 결과물인 현세의 모든 現象文物(유무형의 물질문명, 그 이론적 틀과 각종 제도 및 개혁 등)들은 그 실상이 진정한 인류의 평화나 복지안위적(福祉安慰的) 삶과는 무관하다. 즉 기존의 부조리한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나 저항 없이 그 專有物을 즐거이 향유함을 ‘한 낮’에 비유하였고 그것은 실체가 아닌 왜곡된 사실로서 곧 ‘슬픔’이라는 것이다.

‘ 한 낱 흩어진 조각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남은 희망마저도 아무런 의미없는 흩어진 조각으로 남았다는 뜻이다. 이는 민의와는 관계없이 위정자들의 지배논리에 의해 진행되는 개혁이니 평화통일이니 사회복지증진이니 세계평화니 하는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채 다만 국민들 각자의 염원일 뿐이다. 

‘ 조각난 빛으로 ’
爲政者들의 실정(失政)과 분열조장으로 사분오열 조각난 염원들이지만 희미하나마 연민의 정(情)인양 국민들 저저마다의 가슴속에 어렴풋이 희망의 빛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말한다.

‘쪽빛 하늘을 내다뵈는’, ‘먼  옛날.......’, ‘死守’
동학 농민항쟁에 이어 80년대 불의한 군부 독재정권의 폭압에 죽음으로서 항거했던 그 민주화 항쟁이 사실은 더 오래전 일천오백여년동안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온 ‘緣坐罪’의 病名에 緣由된 바임을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 빛고을 광주여 ’
그 긴 긴 어둠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을 잃지 아니하고 희망의 연대를 이끌 빛이 되리니

‘ 이름하여.................
때 늦은 날의 들녘이라 하지. ’


그러나 광주는 더 이상 민주화 운동의 성역이 아니다. 광주 시민들과 광주는 80년대를 비롯, 90년대를 거치며 그와 같은 민주화 운동에 따른 명예회복과 함께 광주(망월동묘역)를 민주화의 성지로 그 위상을 정립시켰지만 이에 안주하여 향후 이를 토대로 남북통일을 향한 좀 더 성숙된 민주화 사회 개혁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과 운동 전개에 거의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나오고 광주 시민들의 명예가 회복되며 망월동이 성지가 되었다고 해서 이 나라에 민주화운동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회는 아직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다.
 
민주화사회를 논함에 앞서 이 나라는 아직 완전 독립된 자주 국가가 아님을 통찰하여야 한다. 때문에 독일과 달리 통일이 지척임에도 통일을 향한 진통이 난산이다.
 
어둠속에 새벽 동이 텄지만 아직은 밤이며 갈 길이 멀다. 더 이상 울지 않는 새로 묶여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울지 않는 새에게서 어찌 성역(聖域)을 지키고 재도약을 향한 비상(飛翔)의 上昇氣流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곧 잠정적 패배를 의미한다.
 
이는 또 다시 제2 제3의 不義와 억울한 희생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점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망월동 즉 광주의 희생을 승화시켜 이 나라에 이 세계에 팽배해 있는 부조리와 부패에 맞서 지속적인 사회개혁운동과 본질적 주권회복운동, 통일한국, 더 나아가 세계평화와 평온(平穩)을 위한 인류애의 실현운동에 적극 동참해야함에도 소명을 잠시 잊은 듯 퇴색되어 가는 빛에 시인은 그 안타까움을 시적표현상 ‘때 늦은 날의 들녘’이라 하여 빛 고을 광주의 또 다른 음영적(陰影的) 측면을 반추(反芻)시키는 지적을 하고 있음이다.

덧붙여 전라도는, 광주는 이제 더 이상 과거 정치적 탄압에서 시작되어 관습적으로 행해 졌던 지역차별과 악의적 모함 등의 그 어떤 구속들에도 연연하지 말고 과감히 떨쳐 일어나 철저히 객관화된 독립적 자세를 취하여 자유로이 보편타당한 자기 목소리로 힘껏 울어 飛上해야함을 강조함이다. 잠시 울음은 멈추었어도 비상(飛翔)의 자유마저 빼앗긴 것은 아니다. 그간 너덜대며 행해졌던 온갖 악의적 돌팔매질, 삽질들이 飛翔하여 활공(滑空)하는 새의 족쇄를 채우는 구실로 이제는 더 이상 작용될 수 없다.


天節紀 : 3312년 7월 22일
檀  紀 : 4339년 
西  紀 : 2006년 8월 15일
海東聖國 方外人 七燕仙女
                       근서(謹書)
                 處士  金  無 窮


“草家堂 季節花는 韓國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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