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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위한 선거, ‘지역감정’ 사라진다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정치가 된다-선거만 잘하면

김영수 칼럼 | 기사입력 2010/07/13 [09:13]

서민위한 선거, ‘지역감정’ 사라진다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정치가 된다-선거만 잘하면

김영수 칼럼 | 입력 : 2010/07/13 [09:13]
대의 민주주의는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정치여야 한다. 국민 다수가 서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립된 3권-입법, 행정, 사법까지도 비서민들이 운용한다. 서민 출신이라도 결정, 결재할 자리에 가면 이미 서민이 아니다(서민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유유상종, 서민은 그들과 자리를 같이 하기도 어려워진다. 선출직도 선거 때 아니면 보기도 어렵다.
▲ 2004년 시민단체 서민의힘 출정식    © 서민의 힘


그 어려운 시기에 부자 감세를 서둘렀고, “기업에 감세하면 고용이 는다.” ‘의료보험민영화’에 대해서 서민들은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나마 서민의 꿈 밭이었던 용 나올 개천은 복개돼 가는데 자립형사립고니 기여입학제니 한다. 유권자가 돈 받으면 기표에 관계없이 50배 배상하는데 의원이 받은 돈은 대가성을 따진다. 차대차 사고손해산정기준은 부자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한다, 거액의 외제차가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접근해도 국산 소형차는 벌벌 떤다. 피하기 어려운 10% 책임(?)에도 90% 위반한 사람보다 10배, 20배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세상인가? 법을 만드는 사람부터 집행하고 판결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미 서민이 아니요 눈도 귀도 만나는 사람도 권력층(서민이 보기에)이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든 것도 서민이다. 선거 때면 법을 만들 사람들이 서민을 찾고 손을 내민다. 이때 잘 뽑으면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정치가 된다.

그런데 서민의 혼을 빼는 마술이 있다. 선거에서 “지역감정”이다. 가장 망국적인 요인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사건, 얻건 어느 당의 옷만 입어도 당선된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내두르는 정치인들의 혀의 마술에 서민의 주권을 던져버리기 반백년이다. 던져버린 정치가 모든 영역-국민의 삶-을 지배한다. 이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최고 발명품”인 “지역감정”의 마술에서 깨어나 서민주권을 찾아야 한다. 서민을 위한 사람을 선출하면 선거에서 ‘지역감정’도 저절로 사라지고 정책선거가 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인가? 가능할까?
 
그렇다. 어렵지만 미뤄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가를 봐야 한다. 만취해서도 집을 찾아가는 귀소본능처럼 사고나 판단도 모름지기 그 사람의 의식체계에 따르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인데도 다투다 싸우는 어린이와 사이좋게 이야기하며 해결하는 어린이가 있다. 생각하는 틀의 차이다. 성장부터 잘 살펴 생각의 틀과 그릇의 크기를 가늠해야 한다. “앞으로 어찌하겠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방과 납세의무는 성실히 이행했는가? 와 기부나 봉사활동은 확연히 나타나는 평가항목이다. 자신의 안일보다 민주화투쟁, 시민운동, 민권운동 등 다수 타인을 위한 기부나 봉사 같은 홍익인간의 자취-서민을 위한 활동을 무엇보다 높이 사야한다.  

업적 있는 경륜은 중요하나 지명도만 높거나 해온 일에 대해 재산이 많은 사람도 가려내야 한다. 권력이 없을 때도 치부한 사람에게 권력까지 주면 이권이나 넘볼 것이 뻔하다.

정치력이나 스타일은 매우 중요하다. 큰일 할 사람일수록 지식보다 지혜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아우르는 통찰력과 판단력(정치적 덕성)이 필요하다. 권력의 속성상 독선을 부추기는 자들이 주변에 모여든다. 그래서 청빈하고 경청하든 이도 흔들리기 쉽다. 하물며 독선적인 사람에게 큰 권력이 주어지면 엄청난 위험이 따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지금까지 어떤 지도노선을 걸어 왔는가? 억누르며 끌고 왔는가, 손잡고 함께 왔는가? 면밀히 살펴야 한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책임은 국민의 다수인 서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선거만 잘하면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정치가 실현될 수밖에 없다.
 
[백동 김영수 동화작가]


독립 10/07/13 [15:41] 수정 삭제  
  조선말기 고종임기때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간신모리배의 매국행위로 조선은 미개국으로 낙후하였고
일본은 외국과 무역을 확대해 신기술과 무기제조등 엄청난 발전을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등 다른나라침략 도둑근성의 일본이 주변 조선부터 중국까지 한반도를 침략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미국외무장관과 일본외무대신이 1905년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각자 식민지로 만들자고 비밀협정을 맺었으며


이미 조선에 군대파견 강제점령한 이등박문을 조선총독으로 않히려고 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을사늑약을 맺었으니
바로 이완용등 5명 을사5적이 고종을 배제한채 조선을 팔아먹는 협정에 일본편을들어 도장을찍었고
일본은 을사늑약을 핑계로 조선을 차지하며 전권을 행사할때 고종은 을사늑약은 자기가 배제된 무효협정이라 반발하였고
충신들도 을사늑약에 항의 자살까지하였으니 늑약이란 뜻도 강제로 맺은협정을 늑약이라한것이며


이등박문은 을사늑약 매국노 5인을 일본괴뢰정부인 대한제국의 간부로 채용하고 매국상금도 주는둥
이완용등 을사오적등 친일매국노 후손들 재산이 이런 매국행위 댓가로 조선땅과 약탈한 보물로 엄청난것이며

이에 반대하는 고종과 애국자들이 일본의 강제합병에 반대하는 항의서를 미국등 외국에돌렸으나
이미 일본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에 협력하기로한 미국은 스티븐스란 미국인을 일본통해 대한제국의 간부로 임명후

미국과 일본의 비밀협정을 지키기위해 일본의 조선통치를 정당화하기위해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등 외국돌아다니며
조선은 미개한나라라 일본이 통치해야한다고 일본식민지를 만들기위한 미국입장을 표명하고다닌 조선을망친 미국인으로서


1876년 3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장인환 선생은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학업을 중단하고 상점 점원 등을 하며 어렵게 지내다가 1904년 하와이 노동이민으로 도미했다. 2년 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1907년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1908년 3월, 당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휴가차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망언을 하자 한인 대표들이 그를 찾아가 정정 보도와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가 사과는커녕 무례한 태도로 ‘이완용 같은 충신과 이등박문 같은 통감이 있음은 한국의 행복이요 동양의 행복이다’ ‘한국의 인민은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등 궤변을 서슴지 않자 장인환 선생은 스티븐스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3월 23일,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역에 도착하는 것을 본 선생이 거사를 벌이려는 순간 또 다른 한국인 청년 전명운(田明雲)이 먼저 스티븐스를 저격했고 이것이 불발되자 스티븐스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선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발을 쏘아 그 중 스티븐스의 등에 두발을 명중시켰다.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이틀 뒤 탄환제거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선생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불길을 당겨
이후 이등박문을 처형한 안중근, 이완용을 응징한 이재명, 윤봉길 ,이봉창등등 의사들의 거사와 독립군 항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선생은 미국법정에서 280일간의 치열한 공판투쟁 끝에 2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범적인 수형생활과 동포사회의 끈질긴 석방운동으로 10년만인 1919년 1월 가석방되었다.

1927년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뒤 1930년 5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병원에서 55세로 생을 마쳤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1975년에 유해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여기서 중요한건 당시 미국서 유명대학을 다닌 이승만이 미국말이 거창해 스티븐스사건통역으로
장인환측에서 정당한 애국운동이며 스티븐스의 매국행위를 알려달라고 요청받았으나
친미파인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재판에 협조하지말라는 부탁받았는지 거절하였고


이후 이승만은 만주서 피흘리는 독립운동보다는 미국여자끼고 미국사교계다니며
자기가 조선왕조 친족도 아니면서 조선왕조의 핏줄이라속이며
또 당시 중국서 김구선생님이 임시정부 주석을 맡었는데도 자기가 임시정부 책임자라고 공갈치고 다녔다고 도산 안창호선생께서 증언하셨고


해방후 미국은 반성없이 일본서 조선에게 약탈한 금괴와 731부대무기정보받고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가르기로 또 일본과
정치 10/07/13 [19:01] 수정 삭제  
  국민 대다수가 서민대중이다. 정치의 기본은 서민대중을 위한 복지실현이다.정치권은 서민을 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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