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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6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21

제43대 물리(勿理)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30 [16:25]

[홍익인간 7만년-16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21

제43대 물리(勿理)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30 [16:25]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서기전461년 경진년(庚辰年)에 제(齊)나라 대부(大夫) 전굉(田宏)이 망명하여 입국하였다.

 

[제나라 전굉의 망명]

 

대부(大夫)는 제후(諸侯) 아래의 직책으로 춘추시대에 제나라 대부인 전굉이 단군조선에 망명하였다는 것은 제나라 조정(朝廷)의 권력 다툼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망명한 땅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불명이나, 번조선이나 진조선 땅으로 들어온 것이 될 것이다.

 

제(齊)나라는 처음 강태공(姜太公)이 봉해진 나라이나, 한때 쇠퇴하였다가 서기전 680년경 환공(桓公) 때 관중(管仲)의 보필로 춘추오패(春秋五霸)의 첫 패자가 되었으며, 그러다가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서기전386년에는 전씨(田氏)인 전화(田和)가 군주(君主)가 되었고, 서기전334년에 선왕(宣王)이 왕을 칭하였으며, 서기전286년에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와 합공으로 송(宋)나라를 멸망시켰고, 서기전221년에 진시황(秦始皇)에게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에서 마지막으로 멸망하여 진(秦)나라의 천하(天下)가 되었다.

 

[북적(北狄)이 입조하다]

 

서기전447년 북적(北狄)의 사자가 입조하였다.

 

북적(北狄)은 북이(北夷)로서 주(周)나라의 북쪽에 살던 황족(黃族)의 일파가 되는데, 지리적으로 주나라의 북쪽에는 흉노, 선비, 몽골, 구려가 위치하는데, 이때의 북적은 흉노가 팽창하던 시기로서 흉노가 주축이 되어 선비, 몽골이 섞이어 활동하였던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다.

 

[우화충(于和冲)의 반란(叛亂)]

 

서기전426년 을묘년(乙卯年)에 융안(隆安)의 사냥꾼(獵戶) 우화충(于和冲)이 장군(將軍)을 자칭하고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군(郡)을 함락시켰는데, 천왕께서는 병력을 파견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으며, 겨울이 되자 도적들은 도성(都城)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하였다. 천왕께서는 좌우의 궁인(宮人)들과 함께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신주(神主)들을 받들어 모시고 배를 타고 피난하여 해두(海頭)로 나가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 해에 백민성(白民城)의 욕살(褥薩) 구물(丘勿)이 어명(御命)을 가지고 군대를 일으켜 먼저 장당경(藏唐京)을 점령하니 구지(九地)의 군사들이 이에 따라서 동서(東西)의 압록(鴨綠)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여 왔다.

 

서기전426년에 마조선(馬朝鮮)의 제32대 마한(馬韓) 가리(加利)가 융안의 우화충의 반란(叛亂)을 토벌(討伐)하러 출전(出戰)하였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서기전426년에 마한(馬韓) 가리(加利)의 손자인 전나(典奈)가 가리의 대를 이어 제33대 마한(馬韓)으로 즉위하였다.

 

융안(隆安)은 단군조선에서 보면 서쪽 지역에 위치한 것이 될 것이며, 시대상의 흐름으로 볼 때 흉노(匈奴)의 근거지인 것으로 보인다.

 

흉노는 서기전2177년 약수(弱水)지역에 종신금고형(終身禁錮刑)으로 처벌받은 욕살(褥薩) 색정(索靖)이 뒤에 사면(赦免)되어 봉해짐으로써 시작되었는데, 남쪽으로는 하은주(夏殷周)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선비(鮮卑)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견족(畎族, 犬夷, 畎戎)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구려(句麗)와 기후국(箕侯國, 須臾國)과 접하였다.

 

흉노의 세력이 서기전10세기경부터 팽창하기 시작하여 그 세력이 동서(東西)로  확장되었는데, 동으로 팽창한 세력이 단군조선 삼한관경(三韓管境)의 본국(本國)을 위협하였던 것이며, 남으로는 서기전90년경까지 고대중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되었는데, 서기전121년에는 한무제(漢武帝) 때 혼사왕(渾邪王)이 항복하고, 서기전110년에는 김씨(金氏) 휴도왕(休屠王)이 항복하는 등 하였으나 이후에도 흉노는 지속적으로 한나라의 골칫거리였던 것이 된다.

 

흉노가 그 근거지였던 오르도스 지역에서 동진(東進)하여 태항산(太行山) 서쪽의 옛 기후국(箕侯國) 땅과 선비(鮮卑) 동쪽의 구려국(句麗國) 땅의 일부를 차지하여 번조선(番朝鮮)에 접하기도 하였는데, 서기전195년에 한(漢)나라의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흉노(匈奴)로 망명할 때 노관의 신하였던 위만(衛滿)은 번조선에 망명하였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전국시대 이후 번조선(番朝鮮)을 그냥 조선(朝鮮)이라 적고 있다.

 

우화충의 군사가 함락시킨 서북 36군(郡)은 상춘의 백악산아사달의 서쪽에 있는 땅으로서 구려국(句麗國)과 진번국(眞番國)과 부여국(扶餘國)의 군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백악산아사달은 부여 땅 중에서 북부여에 위치하고, 진번국은 부여의 서쪽에 있는 서압록인 지금의 요하 서편으로 대릉하 유역에 걸치며, 구려국은 선비와 흉노의 동쪽으로 진번국의 서쪽이자 번조선의 북쪽에 걸치는 땅으로 내몽골 지역이 된다.

 

물리(勿理) 천왕이 반란군을 피하여 배를 타고 해두(海頭)로 나갔다는 그 해두(海頭)는 바닷가의 나루(津)가 되는데, 상춘의 백악산아사달의 궁을 빠져나와 강을 따라 배를 타고 바닷가까지 나온 것이며, 이곳은 아마도 위치상으로 지금의 요동반도 동서 또는 지금의 압록강 지류가 되는 어느 강의 하구(河口)가 될 것이다. 

 

물리 천왕이 전쟁 중에 붕하시어 경황이 없어 태자(太子) 등이 대를 잇지 못하고 어명(御命)을 받아 전공(戰功)을 세운 욕살(褥薩) 구물(丘勿)이 여러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한 것이 되는데, 서기전295년에 단군조선의 마지막 제47대 천왕(天王)에 오른 고열가(古列加)는 물리 천왕의 현손(玄孫)이라고 전해진다.

 

백민성(白民城)의 욕살(褥薩) 구물(丘勿)이 어명(御命)을 가지고 군대를 일으켰다는 것은, 구물은 당시 상장(上將)으로 욕살이었는데, 물리 천왕의 최측근으로서 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이 되며, 종실(宗室)이 분명하다.

 

장당경(藏唐京)은 단군조선 시대에 전기와 후기에 이궁이었으며 서기전425년부터 서기전232년까지 단군조선 말기에 수도로 삼은 곳이다.

 

동서(東西)의 압록(鴨綠) 18성은, 동압록은 지금의 압록강이며 서압록은 지금의 요하인 바, 이 동압록과 서압록에 걸치는 지역에 있던 18성(城)이 되며, 물리 천왕의 명을 받은 역살 구물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러한 사정을 듣고 18성의 욕살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구원한 것이 된다.

 

이때 마조선(馬朝鮮)의 제32대 마한(馬韓) 가리(加利)가 우화충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전(出戰)하였다가 날아오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는데, 당시 마조선(馬朝鮮)의 수도는 지금의 대동강 평양(平壤)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줄곧 마한(馬韓) 땅의 수도였다.

 

마한(馬韓) 가리(加利)가 전사하자 가리의 손자인 전나(典奈)가 대를 이어 제33대 마한(馬韓)으로 즉위하였던 것이 된다.

 

[상장(上將)인 백민성 욕살(褥薩) 구물(丘勿)이 우화충의 반란을 진압하다]

 

서기전425년 병진년(丙辰年) 3월에 큰물이 도성(都城)을 휩쓸어 버리니 적병들이 큰 혼란에 빠졌으며, 이에 상장(上將) 구물(丘勿)이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우화충의 무리를 정벌하니 적군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절로 괴멸되니 마침내 우화충(于和冲)의 머리를 베었다.

 

서기전425년 병진년(丙辰年) 3월에 큰물이 도성을 휩쓸어 버리니 적병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는 것에서, 단순한 홍수가 아니라 수공(水攻) 작전을 펼친 것이 된다. 상장 구물이 백악산아사달 부근의 강을 이용하여 수공작전으로 궁궐에 홍수가 나게 만들어 반란군을 혼란에 빠뜨려 승전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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