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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6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9

제39대 두홀(豆忽)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29 [15:22]

[홍익인간 7만년-16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9

제39대 두홀(豆忽)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29 [15:22]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서기전531년 경오년(庚午年)에 진(晋)나라 사절(使節)이 왔다.

 

[진(晉)나라 사절이 오다]

 

진(晋)나라는 주(周)나라 2대 성왕(成王)의 아우인 당숙우(唐叔虞)가 봉해진 곳으로, 황하 중류에서 산서성(山西省) 일대에 걸쳐 위치한다. 즉 진(晋)나라의 중심은 서기전2357년에 천자(天子)가 된 요(堯)임금의 당(唐)이라는 땅이 된다. 당(唐)나라의 수도는 태원(太原)의 남쪽으로 황하 남류(南流)와 동류(東流) 사이에 위치한 평양(平陽)이라 불리던 곳이다.

 

진(晋)나라는 서기전632년에 문공(文公) 중이(重耳)가 패자(覇者)가 되었으나, 서기전453년에 한위조(韓魏趙)의 제후들에게 망하였으며 서기전403년에 결국 한(韓), 위(魏), 조(趙)의 나라로 삼분(三分)되었고, 서기전378년에 완전히 망하였던 것이다.

 

한(韓)나라는 수도가 평양으로 하남성 남부에서 산서성에 걸친 나라이며, 위(魏)나라는 수도가 안읍(安邑)으로 섬서성(陝西省) 동부와 산서성(山西省) 남부와 하북성(河北省) 북부에 걸쳐 천하의 중앙이었으며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하였고, 조(趙)나라는 수도가 중모로서 하북성 남쪽에서 산서성 북쪽에 걸치며 서쪽의 진(秦)나라와 접하였다.

 

진(晋)나라는 그 위치상으로 북동에 위치한 산융(山戎)과 관련이 많은데, 산융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이 되며, 단군조선의 대칭(代稱)이 되기도 한다.

 

[초(楚)나라가 서국(徐國)을 정벌하다]

 

서기전530년 정미년(丁未年)에 초(楚)나라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서국(徐國)을 정벌하였다.

 

서기전668년에 제(齊)나라가 서국(徐國, 徐夷)을 병합(倂合)하였다 하나 이후 역사적으로 서국이 독립(獨立)하여 부흥(復興)한 것이 된다.

 

[제나라가 서국(徐國)을 정벌하다]

 

서기전526년 을해년(乙亥年)에 제(齊)나라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서국(徐國)을 정벌하였다.

 

서국은 서기전1236년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산동지역의 남부에 봉해졌다가 서기전980년경에 서언왕(徐偃王)에 의하여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서기전680년경에 초(楚)나라 문왕(文王)에 의하여 수도를 점령당하여 서산(徐山)으로 옮겨 축소되었으며, 서기전668년에 제(齊)나라에 병합되었다가 이후 독립하여 부흥하였던 것이 되고, 서기전530년에 초(楚)나라가 다시 서국(徐國)을 정벌하였으며, 서기전526년에 제(齊)나라가 다시 서국(徐國)을 정벌하였던 것이 되고, 서기전512년에 결국 오(吳)나라의 합려왕(闔呂王)에게 완전히 망한 것이다.

 

[일식(日蝕)]

 

서기전525년 병자년(丙子年) 가을 8월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를 묻다]

 

서기전518년 계미년(癸未年)에 노나라 사람 공구(孔丘)가 주(周)나라로 가서 노자(老子, 李耳)에게 예(禮)에 대하여 물었다.

 

노자의 아버지는 한건(韓乾)이며 그 선조는 풍인(風人)이라 한다. 풍(風)은 태호복희(太皞伏羲) 후손들이 사는 땅이 된다. 노자는 한씨(韓氏)를 고쳐 목자(木子)로서 즉  동방(東方)의 아들(子)이라는 뜻으로 이씨(李氏)를 사용한 것이 된다.

 

노자는 서기전603년생이며 공자는 서기전551년생으로서 52년의 차이가 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해당하는 것이 되며, 서기전518년에 노자는 86세이며 공자는 34세였던 것이 된다.

 

[진충노(秦忠老)가 치도(治道)를 아뢰다]

 

서기전516년 을유년(乙酉年)에 진충노(秦忠老)가 아뢰기를,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도(道)는 풍속(風俗)을 바르게 하며 어진 인재(人材)를 얻는 데 있사온대, 가장 시급한 일은 각종 학교를 설립하여 영재(英才)를 기르는 일이며, 각 부분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여 그 중에서 뽑아쓰면 천하가 태평하게 될 날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하니, 천왕(天王)께서 그렇다 하고서 각종 학교를 많이 세워 백성을 교육하였으며, 외국인들도 와서 유학하는 자가 많았다.

 

여기서 외국인(外國人)이라 함은 단군조선(檀君朝鮮) 삼한(三韓) 관경에 속하지 아니하는 나라의 백성을 가리키는데, 천하(天下)에 해당하는 주(周)나라와 천하(天下)의 천하(天下)가 되는 주나라의 제후국들도 외국에 해당하게 된다.

 

[서국(徐國)이 오(吳)나라에 망하다]

 

서기전512년 기축년(己丑年)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서국(徐國)이 오(吳)나라 합려왕에게 망하였다.

 

오(吳)나라는 태백(太伯)과 중옹(仲雍)이 봉해진 곳이다. 태백과 중옹은 모두 주문왕(周文王)의 백부(伯父)인데, 아우 계력(季歷)에게 자리를 양보하고서 양자강 남쪽의 형만(荊蠻)으로 피하였던 인물로서 머리를 깎고 문신(文身)을 하여 살았던 인물이며, 이후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태백(太伯)의 자손을 봉한 것이다. 중옹(仲雍)은 우중(虞仲)이라고도 한다.  

 

서기전580년경 태백(太伯)의 19대째인 수몽(壽夢)이 칭왕(稱王)을 하였다. 즉 오나라는 주나라의 제후국 중에서 초(楚)나라 다음으로 칭왕을 한 나라가 된다.

 

서기전515년에 즉위한 합려왕(闔呂王, 또는 闔盧王)이 서기전512년에 서국(徐國)을 멸망시켰으며, 서기전506년에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하기도 하였고, 서기전494년에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사로잡는 등 전성기를 누리다가, 서기전473년에 월(越)나라에 도리어 망하였다.

 

[태자 달음(達音) 즉위]

 

서기전510년 신묘년(辛卯年)에 두홀(豆忽) 천왕께서 붕하시고 태자(太子) 달음(達音)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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