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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6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6

제37대 마물(麻勿)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26 [09:45]

[홍익인간 7만년-16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6

제37대 마물(麻勿)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26 [09:45]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서기전642년 기묘년(己卯年)에 방공전(方孔錢)을 주조(鑄造)하였다.

 

방공전은 네모난 구멍이 뚫린 주화(鑄貨)가 된다. 이전에 주조한 원공패전(圓孔貝錢), 자모전(子母錢), 패엽전(貝葉錢) 등은 모두 구리나 구리합금으로 만든 동전(銅錢)이 될 것인데, 이 방공전은 쇠(鐵)로 만든 것이 된다.

 

특히 자모전(子母錢)의 대표적인 화폐로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이 있다.

 

후대의 소위 엽전(葉錢)은 거의 네모난 구멍이 뚫린 둥근 금속화폐인 원전(圓錢)이 되는데, 이때 주조된 방공전(方孔錢)이 후대에 나타나는 소위 방공전(方孔錢)의 시초가 되는 셈이다.

 

[모문국(毛文國)의 반란]

 

서기전639년 임오년(壬午年)에 모문(毛文)의 제후인 유례(有禮)가 반란을 일으키므로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였다.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모문국(毛文國)이 어디에 소재하였던 것인지 불명이나, 주(周)나라의 북쪽으로서 서기전703년에 번조선(番朝鮮)에 조공한 사실이 있는 흉노(匈奴)의 서쪽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周)나라 공주를 천왕비로 삼다]

 

서기전637년 갑신년(甲申年)에 마물(麻勿) 천왕께서 주(周)나라 공주(公主)를 천왕비로 삼았다.

 

이때 주나라 왕은 제18대 양왕(襄王)으로서 이름이 정(鄭)이며, 서기전652녀부터 서기전619년까지 재위하였다.

 

천왕비가 된 주나라 공주가 마물 천왕의 정비(正妃)인지 아니면 계비(繼妃)나 후비(後妃)인지는 불명이다.

 

[거미와 뱀의 싸움]

 

서기전622년 기해년(己亥年)에 궁궐 동산에 큰 뱀이 들어와 죽었다.

 

궁액기(宮掖記)에 의하면, “궁궐 뜰안에 큰 거미가 있었는데 큰 뱀이 와서 거미를 잡아 먹으려 하자 이에 거미줄 아래 엎드려 위를 향해 입을 열고 독기를 토하였으며, 몇날이 못되어 뱀이 죽고 거미는 여전히 살아 있었는 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뱀의 배를 가르고 검사 해보니, 배 안에 큰 석웅황(石雄黃) 한 뭉치가 있는 것을 보고 거미가 복수하고자 뱀을 죽이는 유일한 독약인 석웅황을 구하여 묘한 계책으로서 먹여 죽인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궁액기라는 기록에 거미와 뱀의 싸움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면,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연못이 만들어 지고 샘이 솟다]

 

서기전609년 임자년(壬子年)에 성(城)의 북쪽 땅이 내려앉아 큰 연못이 되니, 큰 샘이 솟아나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 성(城)은 백악산아사달의 성(城)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다.

 

연못과 샘은 관련성이 많은데, 연못은 물길 따라 내려오는 물로 차기도 하지만 곳곳에 샘이 솟아 올라 연못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연못과 샘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단군조선 시대의 유물이 있는데, 곧 소위 명도전(明刀錢)이다. 즉 명도전에 가림토 글자로서 “ㅁ ㅗ ㅅ" 즉 “못”이라고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있는데, 이를 아래 철자부터 위로 읽으면 그 모습이 위로 샘솟는 모양으로서 “ㅅ ㅐ ㅁ" 즉 “샘”이라고 읽히는 글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ㅁ은 물방울 모양으로서 물을 뜻하며, 맨 아래 ㅅ모양은 샘물의 구멍을 뜻하는 것이 된다.

 

[용사(龍師) 황학노(黃鶴老)]

 

서기전599년 임술년(壬戌年)에 도인(道人) 황학노(黃鶴老)가 신술(神術)이 있어 풍력(風力)으로 40리를 오고가니 용사(龍師)라 하였다.

 

용사(龍師)란 용과 같이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도술(道術)을 부리는 사람을 부르는 것이 된다.

 

황학노(黃鶴老)라는 말은 성씨가 황씨(黃氏)이며 이름이 학노(鶴老)라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으나, 황학(黃鶴)처럼 신선(神仙)같은 늙은이(老)라는 명칭일 수도 있다.

 

풍력(風力)으로 40리를 오고갔다는 것은, 바람을 타고 40리를 다녔다는 것이 되는데, 풍력을 이용하는 비법(秘法)을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신선(神仙) 양선자(養仙子)]

 

서기전597년 갑자년(甲子年)에 장백산(長白山)에 양선자(養仙子)라는 숨어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160살에 이르렀어도 피부가 어린아이와 같았다.

 

장백산은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태백산(太白山), 삼한대백두산(三韓大白頭山)이라 불렸다.

 

160살에 어린아이 피부를 가졌다는 것으로 보아 도(道)를 닦던 신선(神仙)같은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이 된다. 서기199년에 붕하신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은 서기23년생으로서 177세를 살았다고 기록되고 있어 또한 신선(神仙)이라 불릴 만하다.

 

[한웅, 치우, 단군왕검의 삼조(三祖)의 상(像)을 모시게 하다]

 

서기전591년 경오년(庚午年)에 천왕께서 사신(使臣) 고유(高維)를 파견하여 한웅(桓雄), 치우(蚩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삼조(三祖)의 상(像)을 나누어 주어 관가(官家)에서 모시게 하였다.

 

한웅천왕과 치우천왕과 단군왕검을 삼조(三祖)로 모시고 이 삼조의 상(像)을 관가(官家) 즉 관공서(官公署)에 나누어 주어 모시게 하였는데, 아마도 마물 천왕께서 남쪽 순시를 하기 이전에 고유(高維)를 사자(使者)로 삼아 명령으로 시행한 것이 될 것이다.

 

다만, 번조선(番朝鮮)의 번한(番韓) 아갑(阿甲) 때의 일로서 아갑의 재위 기간이 서기전613년부터 서기전589년까지로 추정되나 정확하지는 아니한 바, 갑자(甲子)로 계산하면 60년 이전이 되는 서기전641년으로 제36대 매륵 천왕 때의 역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서기전641년 때의 일이라면 번한 아갑은 서기전663년부터 서기전649년까지 재위한 것이 된다.

 

한웅천왕은 서기전3897년 갑자년에 배달나라(檀國)를 세워 개국시조가 되며, 치우천왕은 서기전2706년에 배달나라 제14대 천왕으로 즉위하여 청구(靑邱)로 수도를 옮기고 12제후국을 평정함으로써 청구시대를 열었고, 단군왕검은 서기전2333년에 조선(朝鮮)을 세웠던 개국시조가 된다.

 

한인, 한웅, 단군왕검 또는 한웅, 치우, 단군왕검의 삼성(三聖) 상(像)을 모신 관가(官家)의 누각(樓閣)을 절(寺)이라 하는데, 원래 절(寺)은 공무(公務)를 보던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기도를 올리는 기도처(祈禱處)가 된다.  후대에 이 절(寺)에 불가(佛家)가 들어서서 본전(本殿)인 대웅전(大雄殿)에 석가부처를 모시고 삼성(三聖) 또는 산신(山神)을 대웅전의 윗자리인 북쪽이나 뒷 자리가 되는 곳에 따로이 삼성각(三聖閣), 산신각(山神閣)을 모신 것이 된다.

 

소위 명도전에 "절(寺)"이라는 소리로 읽히는 문자가 누각모양의 상형문자로 새겨진 것이 발견 되었는데, 원래는 "뎔" 또는 "델"이라는 소리로 읽은 것이 되며, 후대에 "뎔"은 구개음화되어 "절"이라 발음되고 "델"은 "데라"로서 지금의 일본식 발음으로 변한 것으로 된다.

 

[천왕께서 남쪽을 순수하다 기수(淇水)에서 붕하시다]

 

서기전591년 경오년(庚午年)에 마물(麻勿) 천왕께서 남쪽을 돌아보시다가 기수(淇水)에 이르러 붕하시니 태자(太子) 다물(多勿)이 즉위하였다.

 

마물 천왕은 남쪽과 관련된 시호로 보이는데, 즉 마물의 마가 남(南)을 가리키는 말로서, 마물은 남쪽에 머물다는 뜻을 지닌 말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때 마물 천왕께서 순수하신 곳이 남쪽 지역이라 하였는데, 기수(淇水)가 어디에 위치하였던 강인지 불명이라 단정하기 곤란하나, 당시 단군조선의 수도이던 백악산아사달인 상춘(常春, 지금의 長春)의 남쪽이라면 지금의 요동반도와 압록강 유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단군조선의 영역에서 동서의 중앙지역인 구려국(句麗國)을 기준으로 하면 그 남쪽은 바로 번조선의 서쪽에 위치한 고죽국(孤竹國) 땅이나 번조선의 남쪽으로서 산동지역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고죽국은 서기전651년경에 제(齊)나라의 침공으로 망한 것이 되어, 서기전567년에 제(齊)나라에 망한 래이(萊夷)라는 나라가 즉묵(卽墨)의 후예국(後裔國)으로서 고죽국(孤竹國)의 잔존세력이 되는 바, 결국 마물 천왕이 순시(巡視)한 남쪽지역은 산동지역이 될 것인데, 발해만 서쪽의 고죽국 땅을 이미 잃은 것이 되어 진조선(眞朝鮮)의 남해안(南海岸)인 지금의 요동반도 남단에서 배(舟)를 타고 래이(萊夷)나 그 주변 땅을 순수한 것이 될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당시 기수(淇水)가 산동지역에 있었다라고 단정하기 곤란한 점이 있어 상춘의 남쪽이 되는 지금의 요동반도와 압록강 유역에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 된다.

 

한편, 여기에서 적은 기수(淇水)가 하남성(河南省)에 걸친 강이라면, 이때는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서기전632년 초(楚)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패자(覇者) 노릇을 하던 시기가 되는데, 거(莒)나라나 주(邾)나라 등이 존속하고 있던 때로서 주(周)나라 제후국이 아닌 단군조선의 직할 제후국으로서 소위 동이족(東夷族)의 나라에 있던 강이 될 것이다.

 

 

[다물(多勿)은 태자(太子)인가? 태제(太弟)인가?]

 

다물(多勿)은 마물(麻勿) 천왕의 태자(太子)로 기록되고 있기는 하나, 88년 재위한 제25대 솔나(率那) 천왕은 11년 재위한 제24대 연나(延那) 천왕의 아우로서 태제(太弟)가 되며, 30년 재위한 제30대 내휴(奈休) 천왕은 34년 재위한 제29대 마휴(摩休) 천왕의 태제(太弟)가 되는 것으로 보아, 그 시호(諡號)에서 마물(麻勿) 천왕의 아우가 되는 태제(太弟)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마물 천왕의 56년 재위기간과 다물 천왕의 45년 재위기간을 고려하면, 다물이 마물 천왕의 태자(太子)였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 된다. 다만,  마물 천왕이나 다물 천왕의 재위기간이 더 짧다라면 태제(太弟)였을 가능성이 더 농후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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