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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42]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5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03 [23:09]

[홍익인간 7만년-142]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5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03 [23:09]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서기전1337년 갑진년(甲辰年)에 은나라 왕 소을(小乙)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을 하였다.

 

소을(小乙)은 은나라 제21대 왕으로 서기전1353년부터 서기전1325년까지 재위하였는데,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의 천왕이 즉위하니 지방 천하의 제후인 왕(王) 즉 천자(天子)로서 조공을 바쳐 예(禮)를 갖춘 것이 된다.

 

[우사(雨師) 소정(小丁)이 번한(番韓)에 봉해지다]

 

서기전1333년 무신년(戊申年)에 우사(雨師) 소정(小丁)을 번한에 보(補)하였다.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이 우사(雨師)의 직을 수행하던 소정(小丁)을 번한(番韓)에 봉하도록 소태 천왕께 임명하도록 권한 데에 따른 것이 된다. 

 

즉, 서기전1333년에 번한(番韓) 해모라(奚牟羅)가 죽자 그 아들을 세습하게 하지 않고, 지모(智謀)가 뛰어났던 고등(高登)이 단군조선 조정(朝廷)의 우사(雨師)이던 소정(小丁)을 번한(番韓)에 봉하도록 소태 천왕께 청을 올려 이룬 것이 된다.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귀방(鬼方) 등 단군조선 땅을 침범하다]

 

서기전1291년 경인년(庚寅年)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귀방(鬼方)을 쳐 이기더니 또 대군을 이끌고 색도(索度), 영지(永支) 등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고 조공(朝貢)을 바쳤다.

 

무정(武丁)은 은나라 제22대 왕으로서 서기전1325년부터 서기전1266년까지 재위하였으며, 무정은 무(武)라는 이름 글자에서 보듯이 전쟁을 일삼은 왕이 된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단군조선이 은나라 무정 8년에 해당하는 서기전1286년경에 아사달(阿斯達)을 수도로 한 단군조선이 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이때는 단군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라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索弗婁) 천왕이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서 즉위하여 후기 단군조선을 시작한 것이 된다.

 

제왕운기에서 말하는 은나라 무정 8년은 연대기적으로 맞지 아니하며 오히려 3년상을 치른 것을 고려하면 무정 38년이 된다. 즉 서기전1325년에 은나라 왕 소을(小乙)이 죽고 무정이 3년상을 치르고 서기전1323년에 정식 즉위하여 38년째인 해가 서기전1286년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왕운기에서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에 의하여 조선(朝鮮)에 봉해진 해가 되는 서기전1122년은 단군조선 1212년이 된다.

 

또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나이가 1908세라 적은 것은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로서 아사달시대와 백악산아사달 시대를 합한 기간이 되며, 서기전425년부터 시작된 장당경(藏唐京) 시대 이전이 되는 것이다.

 

귀방(鬼方)은 서남방(西南方)이나 북방(北方)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방향으로 보면 서남방이 되고, 은(殷)나라의 방향으로 보면 북방이 된다. 즉  여기서 귀방은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서남방이 되는 태원(太原) 북쪽 지역이 된다.

 

귀방 부근에 색도와 영지가 위치하는 것이 되는데, 태원의 북쪽에 색도(索度)가 위치하고 태원의 동쪽 넘어 즉 태항산(太行山) 동쪽이자 고죽국의 수도인 고죽성(孤竹城)의 서북쪽에 영지(永支)가 위치하는 것이 된다. 특히 영지(永支)는 단군조선 번한(番韓)의 요중(遼中) 12성(城)의 하나이기도 하며, 춘추시대에 이지(離支)라고도 기록되는 곳이다. 고죽국의 수도였던 고죽성은 춘추시대에 무체성(無棣城)이라고도 기록되고 있다.

 

[개사원 욕살 고등(高登)의 은나라 정벌 등 군사적 행동]

 

서기전1291년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병사를 일으켜 귀방(鬼方)을 정복하고 대군을 이끌고 색도(索度), 영지(永支) 등의 나라를 침범하니, 서기전1289년 임진년(壬辰年)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이 상장(上將) 서여(西余)와 함께 몰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귀방(鬼方)을 습격하여 멸망시켰으며, 은나라 무정의 군사를 격파하고 추격하여 색도(索度)에 이르러 병사를 보내어 불지르고 약탈한 뒤 돌아왔다.

 

이때 고등이 많은 군대를 손에 넣고 서북(西北)의 땅을 공격하여 차지하게 되니 그 세력이 매우 강해졌다. 이에 여러차례 소태 천왕께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右賢王)으로 봉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소태 천왕이 이를 위태롭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서 서북의 땅은 귀방, 색도, 영지 등의 서북의 땅을 가리키며, 태원(太原)의 북쪽에 위치한 구려(句麗)의 서부지역과 몽고리(蒙古里)와 선비(鮮卑) 등의 땅이 된다.

 

[상장(上將) 서여(西余)가 은나라의 북박(北亳)을 습격하다]

 

서기전1289년경 상장(上將) 서여(西余)가 고등(高登)과 함께 은(殷)나라가 정벌하였던 색도(索度)를 역공하여 정벌한 뒤, 이어서 몸소 은나라의 북박(北亳)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여기의 북박(北亳)은 박(亳)의 북쪽에 있는 곳으로 은나라 제12대 왕인 하단갑(河亶甲)이 수도를 정하였던 상(相)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은나라의 수도는 서기전1402년경 후기 은나라를 시작한 반경(盤庚)이 수도로 삼은 박(亳)이며 지금의 안양(安陽) 서쪽에 위치한 은(殷)이라는 땅으로서 소위 은허(殷墟)라고 불리는 곳으로 중박(中亳)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의 조공]

 

서기전1289년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 두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다.

 

일군국(一群國)은 숙신(肅愼)의 땅 수밀이국(須密爾國)에서 서쪽 또는 서북으로 5만리나 떨어진 나라인데, 직선 거리로 따지면 일군국은 지금의 북유럽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된다.

 

양운국(養雲國)은 바이칼호의 서쪽이자 알타이산 북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일군국과 양운국은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 시대의 12한국에 속하는 나라로서 자치세습국이 되어 대를 이어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을 섬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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