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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39]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2

제19대 구모소(緱牟蘇) 천왕(天王)의 역사, 제19대 구모소(緱牟蘇)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03 [09:17]

[홍익인간 7만년-139]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2

제19대 구모소(緱牟蘇) 천왕(天王)의 역사, 제19대 구모소(緱牟蘇)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03 [09:17]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서기전1435년 병인년(丙寅年)에 아우 종선(縱鮮)을 청아왕(菁芽王)으로 봉하였다. 청아왕의 증손이 서여(西餘)로서 조선기자(朝鮮奇子)의 태조가 되었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제19대 천왕을 구모소(緱牟蘇)라 적고 있으나,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는 종년(縱年)이라 적고 있으면서 아우 종선(縱鮮)을 청아왕으로 봉하였다라고 적고 있는데, 구모(緱牟)와 종년(縱年)은 글자가 엇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운 글자로서 종년(縱年)이 구모(緱牟)의 오기라고 보이고, 종선(縱鮮)은 구선(緱鮮)의 오기가 되는 듯 하다.

 

청아왕은 왕(王)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나 단군조선 시대에 일반적인 제후의 통칭이 되는 한(汗)에 해당되며, 작위로는 천왕의 친(親)아우이므로 군(君)에 해당되어, 지방의 제후국들은 청아왕을 천군(天君)이라 부르게 된다.

 

청아왕의 증손이 서여(西餘)로서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 천왕에 의하여 비왕으로서 번조선(番朝鮮)의 번한(番韓)에 봉해진다. 한편 서기전1120년에 단군조선의 서방변경에 망명하는 은(殷)나라 왕족 기자(箕子)는 서여(胥餘)로서 글자가 다르며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서기전1286년에 제21대 소태(蘇台) 천왕이 종실(宗室)인 상장(上將)이었던 해성(海城)의 욕살(褥薩) 서여(西餘)를 해성(海城)의 남쪽에 위치한 살수(薩水)지역의 기수(奇首)로 봉하면서 천왕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우현왕(右賢王) 색불루와 마한(馬韓) 아라사(阿羅斯)가 만류하였던 것이며, 소태 천왕이 고집을 꺽지 않자 우현왕 색불루가 스스로 천왕의 자리에 오르니, 소태천왕은 색불루 천왕에게 선양하고 서여(西餘, 徐于餘)를 서인(庶人)으로 폐하였다.

 

이때 마한(馬韓) 아라사(阿羅斯)가 해성(海城)으로 군사를 이끌고 갔다가 전사하였다. 마한 아라사는 처음 소태천왕이 서여에게 천왕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반대하였다가 우현왕 색불루가 스스로 천왕으로 즉위하자 군신(君臣)의 도리를 어긴 것이라 하여 군사를 이끌고 해성으로 가서 색불루 천왕의 군사와 전쟁을 하였던 것이 되며, 이때 전사한 것으로 된다. 즉 마한 아라사는 서여(西餘) 편도 아니며 색불루(索弗婁) 편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서여(西餘)가 좌원(坐原)에서 몰래 군사를 일으켰으며, 색불루 천왕의 신하인 여원흥(黎元興)과 개천령(蓋天齡)이 제후들을 설득하였고, 한편으로 서여(西餘)와 전쟁을 하다가 개천령은 전사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색불루 천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서여(西餘)를 토벌하러 가면서 먼저 사람을 보내어 비왕(裨王)에 봉할 것을 약속하니, 이에 서여(西餘)가 응함으로써 전쟁이 끝나게 되고, 색불루 천왕은 약속대로 서여(西黎)를 번한(番韓)에 봉하였던 것이다.

 

한편, 마한(馬韓) 아라사(阿羅斯)가 전쟁 중 사망하여 비왕(裨王)인 마한(馬韓)이 빈자리가 되자, 색불루 천왕은 자신이 천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 공이 큰 여원흥(黎元興)을 마한(馬韓)에 봉하였던 것이 된다. 만약 개천령(蓋天齡)이 살아 있고 서여(西餘)가 제거되었더라면 개천령이 여원흥과 함께 색불루 천왕의 왼팔오른팔로서 번한(番韓)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패엽전(貝葉錢) 주조]

 

서기전1426년 을해년(乙亥年)에 패엽전(貝葉錢)을 주조(鑄造)하였다.

 

패엽전은 조개모양으로 나무 잎사귀처럼 주조한 동전(銅錢)이 된다. 후대에 엽전(葉錢)이라고 불리는 명칭의 원류가 된다. 서기전1680년에 주조된 자모전이 있음을 고려할 때 패엽전에도 문자를 새긴 것이 틀림없다.

 

단군조선 시대에 화폐를 주조한 역사는, 대표적으로 서기전2133년에 둥근 구멍이 뚫린 조개모양의 주조(鑄造) 화폐인 원공패전(圓孔貝錢)이 있으며, 서기전1680년에 가림토의 자음과 모음을 새긴 주조 화폐로서 소위 첨수도(尖首刀)나 명도전(明刀錢)이라 불리는 인 자모전(子母錢)이 있고, 서기전1426년에 주조된 패엽전이 있으며, 서기전642년에 철전(鐵錢)이 되는 주조 화폐인 방공전(方孔錢)이 있다. 

 

단군조선의 화폐주조의 역사는 서기전2133년부터 서기전240년경 단군조선 종기(終期)까지 줄곧 이어진 것이 되는데, 위 화폐 외에도 많은 형태의 주조화폐가 있었다고 보인다. 처음에는 동전(銅錢)을 주조하다가 나중에는 철전(鐵錢)을 시도한 것이 되는데, 방공전은 주로 철전이 되며 그 이전의 화폐와 이후에 지속적으로 발행된 소위 명도전(明刀錢)은 동전(銅錢)이 된다.

 

시기적으로 보아 첨수도(尖首刀)는 명도전(明刀錢)이 주조발행되기 이전의 화폐로서 가림토의 자음과 모음이 혼잡된 자모전(子母錢)의 원형(原型)이 되고, 이후 첨수도에 새겨진 글자의 모양이 가림토의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해독 가능한 명도전(明刀錢)이 발행되다가, 서기전924년 왕문(王文)이 부예(符隸)와 이두문(吏讀文)을 만든 때부터는 사전식(辭典式) 자모전(子母錢)과 가림토의 자음과 모음을 상형(象形)에 맞추어 새긴 명도전(明刀錢)이 발행된 것으로 된다. 또 그 이후에는 순수한 가림토 글자를 자음과 모음으로 나열한 명도전을 주조발행하기도 하였던 것이 된다.

 

문자의 발전은 일반적으로 처음 상형문자에서 시작하여 그 형태가 상징적으로 간편하게 변형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서기전2181년에 정리된 가림토(加臨土)라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표음문자도 처음에는 배달나라 시대의 상형문자에서 이어져 오다가 서기전2181년에 정선(精選)되어 정리된 글자가 된다.

 

이 가림토는 후대 세종대왕이 정리한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의 근원(根源)이 되는데,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깁시습 선생은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 징심록(澄心錄)에서 그 근본을 취하였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징심록은 서기400년경 신라 사람인 박제상이 지은 것으로, 여기에 음신지(音信誌)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음신지에 문자에 관한 내용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현재 한글이라 불리는 글자의 원조인 훈민정음 28자는, 원래 상형문자의 소리부분이 되는 글자에서 정선된 가림토 글자에서 그 근본을 취한 것이므로, 당연히 그 자음과 모음이 모두 상형문자로서 또는 회의문자로서 뜻글자이며 글자대로 바로 읽을 수 있는 소리글자인 것이다.

 

[닥종이(韓紙)와 칡옷(葛衣)를 만들다]

 

서기전1420년 신사년(辛巳年)에 공창(工廠)을 세워 닥나무 껍질로 종이(韓紙)를 만들고, 칡 껍질로 베를 짜서 옷감을 생산하였다.

 

한지(韓紙) 제조의 역사가 최소한 3,400년을 넘는다. 닥나무의 껍질로 종이를 만들었으므로 종이에 붓으로 글을 쓴 것이 되어 이때 이미 먹과 붓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

 

먹이 있었다는 것은 서기전1766년경 고죽국의 임금이 묵태(墨胎)로서 먹 묵(墨)자를 쓰고 있어 먹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에 이르러 먹으로 글씨를 쉽게 슬 수 있는 한지를 생산한 것이 된다. 실제로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도 닥종이라고 한 글자가 있기도 한 바, 단군조선 시대에 한지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된다.

 

칡 껍질로 베를 짜서 옷감을 생산하였는데, 아마도 여름철 옷으로 입은 것이 아닌가 한다.

 

겨울철에는 누에실로 만든 비단옷이나 털옷(毛衣)이나 깃털옷(羽衣)을 주로 입었던 것으로 되는데, 여름철에는 삼베옷(麻衣)이나 칡옷(葛衣)을 입은 것이 된다. 

 

중국의 역사에서는 후한(後漢) 시대인 서105년에 채륜(蔡倫)이 처음 종이를 만들었다라고 하나, 단군조선의 종이제조 역사와 비교하면 1,300년 뒤이며 그 기술이 극히 일천한 것이 되는데, 채륜이 단군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종이제조 기술을 접하여 세상에 공개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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