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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37]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0

제17대 여을(余乙) 천왕(天王)의 역사, [은(殷)나라가 참성단(塹城壇) 제사를 돕다]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7/12/27 [09:12]

[홍익인간 7만년-137]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0

제17대 여을(余乙) 천왕(天王)의 역사, [은(殷)나라가 참성단(塹城壇) 제사를 돕다]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7/12/27 [09:12]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서기전1549년 임신년(壬申年) 3월 16일에 마한(馬韓) 두막해(豆莫奚)가 몸소 마리산(摩璃山)에 올라 참성단(塹城壇)에서 삼신(三神)께 제(祭)를 올렸는데, 이때 은(殷)나라 왕 외임(外任)이 사신을 파견하여 제사를 도왔다.

 

은(殷)나라 왕 외임(外任)은 제11대 왕으로서 서기전1550년부터 서기전1535년 사이에 재위하였다.

 

은나라 왕은 천자(天子)로서 천왕격(天王格)에 해당하는 번한(番韓)과 마한(馬韓)의 아래 직위에 해당하며 번한과 마한에 수시로 예(禮)를 표한 것이 된다.

 

[흉년 구휼(救恤)]

 

서기전1547년 갑술년(甲戌年)에 흉년이 들어 쌓아두었던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어느 지역에 흉년이나 홍수 등으로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다른 곳의 곡식으로 백성들을 구휼하였던 것이 된다. 참전계경(參佺戒經)에는 천재지변이 순환하는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무극(無極)의 원리이며, 백성의 생명을 책임지는 임금은 이러한 천재지변의 원리를 알고 대처하는 방법을 강구해 놓은 것이 된다.

 

[일식(日蝕)]

 

서기전1533년 무자년(戊子年)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일식(日蝕)은 해(日)가 달(月)에 의하여 가려져 벌레가 갉아먹는 형상의 자연현상을 가리킨다. 태양(太陽)은 무한한 기(氣)의 원천으로서 지구상의 생물체의 생명과 직결되는데, 일식현상은 가끔 일어나는 천문현상으로서 역사기록에서 남겨질 만한 것이 된다. 한편, 월식(月蝕)은 달(月)이 지구(地球)에 의하여 가려져 벌레가 갉아먹는 형상으로 보이는 천문현상이다. 은(殷)나라의 갑골문(甲骨文)에서도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은(殷)나라를 정벌하다]

 

서기전1528년 계사년(癸巳年)에 번한(番韓) 소밀(蘇密)이 은(殷)나라가 조공(朝貢)을 하지 아니하므로 은나라의 북박(北?)을 정벌하니 이에 은나라 왕 하단갑(河亶甲)이 사죄하였다.

 

단군조선의 비왕(裨王)의 나라인 번한(番韓)은 은나라의 상국(上國)이 된다. 은나라 왕 하단갑은 서기전1535년부터 서기전1527년까지 재위한 제12대 왕이며 수도를 상(相)에 두었다. 하단갑이 홍수가 나자 수도를 박(?)에서 상(相)으로 옮겼는데, 이 상(相)이 북박(北?)이 된다.

 

은(殷)나라의 수도는 통상 박(?)이라 하는데 모두 6경(京)이 된다. 즉 서기전1766년경에 성탕(成湯)이 수도로 삼은 박(?)은 중박(中?)이 될 것이며, 서기전1560년경 중정(仲丁)이 수도로 삼은 하남성의 효(?)는 남박(南?)이 될 것이다. 또, 서기전1528년경에 하단갑(河亶甲)이 수도로 삼은 하북성의 상(相)은 북박(北?)이 될 것이며, 조을(祖乙)의 시대인 서기전1520년경 수도로 삼은 하북성의 경(耿)은 산서(山西)지역에 있어 서박(西?)이 될 것이고 산동성 비(庇)는 동박(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서기전1430년경 남경(南庚)이 수도로 삼은 엄(奄)도 동박(東?)에 해당된다. 이들 수도는 모두 홍수로 옮긴 것이 된다.

 

서기전1402년경 은나라 후기를 시작한 반경(盤慶)이 박(?)을 다시 수도로 삼았는데, 이때의 박(?)이 은(殷)이라는 국명(國名)이 나오는 땅으로서 지금의 안양(安陽)의 서쪽이 되는 은(殷)이라는 땅이다. 박(?)은 서기전2436년경 은나라의 선조인 제곡고신씨(帝?高辛氏)가 도읍한 곳이기도 하다.

 

서기전1430년경 은나라의 제17대 왕 남경(南庚)이 수도로 삼은 엄(奄)이라는 땅은 서기전1266년 산동지역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남국(藍國)이 차지하였던 엄독홀(奄瀆忽)과 서기전1236년에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인 남국(藍國), 청구(靑邱), 구려(句麗), 몽고리(蒙古里)의 군사들이 합공으로 회대(淮岱)지역을 평정하여 제후국으로 봉한 엄(淹)이라는 명칭과 같은 것이 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수도이던 한단(邯鄲)의 남쪽에 소재한 지금의 안양(安陽)은 하북(河北)지역에 있는 소위 은허(殷墟)이기도 하며, 중앙에 둔 수도(首都) 즉 중경(北京)에 해당하는 중박(中?)이 되는 것이다.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북쪽 국경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國)의 남쪽 변경이 되고, 동쪽 국경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청구국(靑邱國)과 남국(藍國)의 서쪽 변경이 된다. 주(周)나라도 이에 준하게 되는데, 다만 연(燕)나라가 처음 황하(黃河)유역에 있던 은나라의 제후국 연(燕) 땅에서 소공 희석(召公 姬碩)에 의하여 북쪽으로 이동하여 안(安)으로 옮기고 후대에 다시 북쪽의 이(易)로 옮겼던 것이 된다. 안(安)은 지금의 안국시(安國市)가 되고 이(易)는 지금의 이현(易縣)이 된다.

 

산동지역에 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청구국(靑邱國)과 남국(藍國)과 서기전1236년에 봉해진 엄국(淹國), 서국(徐國), 회수(淮水)지역에 봉해진 회국(淮國)은, 주(周)나라가 봉한 제후국인 제(齊)나라가 청구국과 남국의 일부를 차지한 것이 되고, 청구국과 남국과 엄국이 언제까지 존속하였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최소한 서기전909년경까지 청구국과 엄국은 존속한 것이 되며, 서국은 오(吳) 합려왕에게 망한 서기전512년까지 존속하였고, 회국은 진시황(秦始皇) 시대가 막 시작되는 서기전221년경까지 존속한 것이 된다. 

 

서기전650년경 고죽국(孤竹國)이 소위 기자국(箕子國)인 수유국(須臾國)과 함께 망한 이후에는 연나라가 수도를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서쪽이자 남쪽이 되는 요서(遼西)지역의 계(?)인 지금의 탁수(?水)지역에 두었던 것이 되며, 진시황(秦始皇)이 된 정(政)의 진(秦)나라가 득세하던 서기전226년경에는 진(秦)나라에 쫓기어 요동(遼東)인 계(?) 즉 지금의 북경(北京)으로 옮겼다가 서기전222년에 진(秦)나라에 항복한 것이 된다.

 

[청포노인(靑袍老人)의 하례(賀禮)]

 

서기전1501년 경신년(庚申年)에 천왕께서 오가(五加)와 더불어 나라 안을 순행하여 개사성(蓋斯城)의 변경에 이르르니, 청포노인(靑袍老人)이 있어 하례(賀禮)를 드리며 아뢰되, “장생선인(長生仙人)의 나라에 선인(仙人)의 백성이 되어 즐기며, 임금의 덕은 어그러짐이 없고 왕도(王道)는 치우침이 없으니, 백성과 이웃은 근심과 고통을 보지 아니하며, 책화(責禍)로써 믿으며 관경(管境)에 은혜가 넘치고, 성(城)과 제후국(國)들의 전쟁정벌(戰爭征伐)을 보지 아니하도다” 하니, 천왕께서 이르되 “그쁘도다, 기쁘도다, 짐이 덕을 닦은지 오래지 않아 백성들의 바람에 보답하지 못할까 두려우노라” 하셨다.

 

개사성(蓋斯城)은 개사원(蓋斯原)의 성(城)으로서 장당경(藏唐京)이 있던 곳이고 개원(開原)이라고도 불렸는데, 지금의 요동반도에 있는 심양(審陽)이다. 개사성은 부여국(扶餘國)에 속하는 성(城)이 된다.

 

위 청포노인의 하례 말씀에서 보듯이, 단군조선은 신선불사(神仙不死)의 나라로서 왕도정치(王道政治)가 행해져 백성들이 아무 근심이 없으며, 예의(禮義)를 지켜 서로 전쟁(戰爭)을 하는 일 없는 태평천국(太平天國)임을 알 수 있다.

 

[태자 동엄(冬奄) 즉위]

 

서기전1485년 병자년(丙子年)에 천왕께서 붕(崩)하시고 태자(太子) 동엄(冬奄)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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