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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우리 國祖는 신화로 만들고, 중국 始祖는 역사상 인물로 만든다?

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7/11/17 [15:29]

[충격]우리 國祖는 신화로 만들고, 중국 始祖는 역사상 인물로 만든다?

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07/11/17 [15:29]

중국과 한국이 다르게 하고 있는 역사의 시조관리 

얼마 전 중국 후난성 주저우시에 있는 염제릉에서 중국 정부는 난데없는‘시조공정(始祖工程)’을 벌렸다. “염제의 정신을 널리 펴서 중화민족의 정신을 단결시키자.” “염황(炎帝와 黃帝)의 자손들은 시조를 잊지 않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우리 시조를 높이 받드는 길이 우리 중화를 사랑하는 길” “염제릉이 있는 곳은 중화민족의 성지이며 중화 민족정신의 고향”“우리는 염황지손(炎黃之孫)이다”이라며 시조를 추켜세웠다.
 

▲  중국정부에서 만든 높이 106m인 염제와 황제의 조각상 (코 크기만 8m)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5제부터 오제본기로 적어 역사로 인정했고, 삼황은 선사시대의 신화의 인물로 기술하였다.

삼황(三皇)이란 태호복희, 여와, 염제신농을 이르는 말이며, 오제(五帝)는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을 말한다. (3황에 여와 대신에 황제헌원을 넣고, 5제에 신라 김유신의 조상인 소호금천을 넣은 기록도 있다.)

최근에는 삼조상(三祖上) 또는 삼성상(三星像)이라 하여 염제신농, 황제헌원, 그리고 우리에게 친근한 치우천황를 자기네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

족보를 따져 본다면, 삼황의 태호복희는 배달국의 5대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며, 여와는 복희와 남매/부부이며, 염제신농은 8대 안부련 환웅이 파견한 지방행정관 소전의 아들이다.

5제의 황제헌원은 소전의 또다른 후손이며, 소호금천은 황제헌원의 아들이며, 전욱고양은 소호금천의 아들이며, 제곡고신은 소호금천의 손자이며, 요임금은 제곡고신의 아들이며, 순임금은 단군조선의 신하 유호의 아들이다. 이는 <환단고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다.

▲  중국에서 만든 치우천황의 동상

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환웅이‘치우천황’이라고 <환단고기>에서 밝히고 있다.

즉 중국의 3황 5제가 전부가 배달동이족이다. 실제로 1958년 대약진운동 때 황제헌원과 소호금천의 묘가 동이족이라는 이유로 파헤쳐지기도 한 예가 이를 증명해 준다. (당시 같은 지역에 있었던 한족인 공자의 묘는 멀쩡했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신화 속의 인물에서 역사상의 실존 인물로 만들어 고위관료들이 몰려가 제사를 올리며 중화민족주의(中華民族主義)를 부르짖고 있다.

우리 사학계가 치우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넣지 않자 중국은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켜, 우리는 가장 확실한 우리 조상인 치우천왕을 중국에게 거의 빼앗겼다고 봐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삼황오제라는 모든 우리 조상을 다 중국에 빼앗긴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워 국민들에게 중화의 깃발아래로의 대단합을 호소하고,‘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이 갖도록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번의 이‘시조공정’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국조를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  붉은 악마의 상징 치우천황

치우천황은 그림책의 신화와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단인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치우천자는 실존 인물로 능이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에서 발견되었다.

중국 사서에도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 “천자의 호칭은 동이족에서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고, 불패의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져 한고조 유방이 사당을 세워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항상 치우사당에 제사를 올렸다.

아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부가 만든 기구인 동북아역사재단의 홈피에 있는 글로서, 우리 국조인 단군 신화에 관한 내용이다.
(인용)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로서 (중략) 단군조선을 신석기시대, 예맥조선(기자조선)을 청동기시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략)
환웅이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부르고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중략)

이 때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먹되 햇볕을 100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먹으면서 스무 하루 동안 금기하였는데,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된 웅녀가 이번엔 신단수 아래에서 결혼할 상대를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고조선의 건국자인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즉위하였는데, 백악산 아사달 등에 도읍하였다가,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 향년 1,908세에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인용 끝) 

▲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

 
위에서 보다시피 우리 강단사학계는 국조 단군을 신화로 보고 있으며, 고조선의 건국 시대를 신석기세대로 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생물학적으로 미련한 곰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인간이 1,908세까지 살았다는 의학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군신화 다음에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이민족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교과서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이는 전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일제가 저지른 역사 위조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신화창조와 식민지배의 의문은 민족의 성서인 <환단고기>가 발견됨으로서 다 풀리게 되었다. 단군조선은 B.C2333년 건국되어 47분의 단군에 의해 다스려졌으며, 그 이전에 18분의 환웅이 다스린 1,565년의 역사를 가진 배달국과 환국이 더 있었다. 그리고 전기 단군조선이 중국 동부평야지대를 지배했으므로 한족과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같이 공유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나이가 1,908세라고 말한 근거도 다 밝혀졌다.

천손민족이었던 한민족을 일개 섬나라가 식민지배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 스스로 우매한 민족임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일본은 역사부터 조작하게 된다. 우선 조선과 중국에 있던 사서를 전부 수거해 20만권이 넘는 사서를 불태웠으며, 중요한 사료는 일본으로 다 가져가 버린다. 그리고 고대 사료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남겨 놓았고, 유일한 유물인 광개토태왕 비문을 훼손해 놓고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하고 우리 역사를 전부 위조한다.

삼국유사를 남겨놓은 이유는 위의 단군신화의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삼국유사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군신화를 교묘히 이용해, 우리 민족을 미련한 곰의 자손으로 만들고 찬란했던 고조선의 대역사를 이민족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로 위조한다.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세뇌교육용으로 <조선사 35권>이라는 위조 역사서를 편찬해 조선인들에게 가르친다.

이렇게 조작된 단군신화와 왜곡된 역사를 우리는 해방 62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로 알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국사교과서를 만들어 교육시키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  역사위조의 주범 이병도가 죽기 전 신문에 기고해 참회한 글

 
중화민족의 역사는 원래 없었다. 한족이 처음으로 통일제국을 세운 것이 漢나라이고, 宋나라와 明나라가 한족의 나라일 뿐이었다. 한나라도 전한과 후한으로 나누어지며, 송나라도 남송 북송으로 나누어져 300년 이상 국가를 유지한 나라가 하나도 없다. (진시황, 수나라, 당나라도 다 동이족의 후예이다)

그런 보잘것없는 중국이 고조선의 역사부터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더니, 이제는 우리 조상들까지 빼앗아가 자기네 조상으로 만들고, 또 고구려/발해의 역사까지 빼앗으려고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삼황이라는 신화의 인물을 역사상 인물로 만들어 제사를 올리고 있으며, 중화민족주의의 깃발아래 15억 인구의 대단합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중화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매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국기하기식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모여 경례를 하고 국가를 따라 부른다. 심지어는 오성홍기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중국인들이 많다. 

중국은 이러하거늘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우리 스스로 국조를 신화화하고, 찬란했던 대제국 단군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역사를 외침이 계속된 침탈의 슬픈 역사로 알고 있으며, 광활했던 대륙의 역사를 좁은 한반도 가두리 양식장에 가두는 반도사관으로 작성된 현행 국사는 민족의 자부심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국조 단군상의 목이 잘리기도 했다.

▲  일부 종교에 의해 단군상을 훼손되고 목이 잘리기도 했다. (단군은 종교가 아닌 국조이다)

 
현재 우리 국사는 일제가 조작해 만들어 준 <조선사 35권>을 바이블로 하여 철저한 반도사관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 교과서의 내용이 조금씩 개정되고는 있으나 아직도 <조선사 35권>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역사는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광복을 못한 실정이다.

그러나 앞으로 강단사학계가 민족사학과 힘을 합쳐 사관을 바꾸어 지금까지 잘못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밝힌다면 우리의 민족혼은 당연히 회복될 수 있을 것이고, 동북공정이 허구라는 것을 만천하에 충분히 밝힐 수 있다고 본다.

대명천지 인터넷 세상에 옛날과 같은 역사왜곡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100% 완전범죄가 없듯이 역사왜곡은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 흔적을 찾아 역사를 복원하는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 한국 역사교육의 현주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플러스코리아



중국으로부터 잃어버린 땅을 다시 되찾아 올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는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민족의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겨레여! 이러다간 중국과 일본에게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기가 막혀 07/11/17 [17:15] 수정 삭제  
  정말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우찌 이랄 수가....할 말이 없네요.
윤복현 07/11/17 [23:39] 수정 삭제  
 

쥐나 시조들의 족보=한웅의 신시배달국 신하후손들로서 동이출신들
(족보는 '환단고기'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바랍니다)
 
  동이문명과 동이족없이 쥐나문명과 역사는 있을수가 없습니다.환단고기를 아직도 위서라는 주장을 내세운 논문으로 국립대 서울대에서 아직도 박사학위를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병도 식민사관의 잔재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민족정기와 대한민국의 국가기강이 바로 설수 없습니다.역사는 조금도 왜곡되서는 안되며,고고학과 문헌들과의 비교을 통하여 있는 그대로 서술되야 그 진실이 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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