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에 문하시중을 지내신 행촌 이암선생이 쓰신 <단군세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고기(古記)에서 말한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의 왕녀이며, 신묘(B.C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밝달나무(檀木) 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했다. 14세 되던 갑진(B.C 2357년)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하다 함을 듣고 그로써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무진(B.C 2333년)년 제요도당(帝堯陶唐) 때에 단국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가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까지 사셨다” 행촌 이암선생은 고려 말에 문하시중(국무총리)를 지내신 분으로 대학자셨다. 오늘 5월 2일(물론 당시에는 음력이었다)은 우리의 국조 단군께서 태어나신 날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단군을 곰인 웅녀가 생산한 신화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 5월 2일이 단군탄신일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사를 하지 않았다. 원 세상에! 어찌 이렇게 나쁜 후손들이 있을 수 있을까?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인 성탄절과 석탄일은 법정공휴일이라고 온 나라가 축제로 떠드는데, 정말로 우리 민족이 축하해야할 국조 단군이 태어나신 날은 언제인지 국민들 대다수가 전혀 모르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정부이고 우매한 민족이고 무지한 국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불효막심한 후손에게 무슨 하늘로부터 축복이 있겠는가!!! 그런데 꼭 단군탄신일이 되면 하늘에 제사지내는 분이 계시다. 4선 국회의원으로 지금도 90 노구를 이끌고 매일 원구단을 108번 도신다는 <원구단 천제 봉헌회> 총재인 박영록씨로 5년 째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천제가 올려진 곳은 1897년 고종께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하늘에 제사지내신 원구단이다. 먼저 대다수 국민들이 원구단과 천제가 무엇인지 모르니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 민족은 천손민족으로 하늘에 제사지내던 민족 원래 우리 민족은 천손민족(天孫民族)으로 하늘에 제사지내던 천제(天帝)의 후손이었다. 단군은 정치적으로는 임금인 동시에 하늘에 제사지내던 제사장이었다. “단군 왕검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B.C 2333년 조선을 개국하자 백성들은 단군을 천제(天帝)의 화신이라 했고, 단군은 하늘의 뜻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무오 51년(B.C 2283년) 임금께서 운사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짓고 제천(祭天)의 단을 마니산에 쌓게 하였고, 시월 상달이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들은 모두 기쁨에 넘쳐서 환호하며 스스로 즐겼다. 배달국의 신시 이래로 하늘에 제사지낼 때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크게 모여 함께 노래 부르고 큰 덕을 찬양하며 서로 화목을 다졌다.”고 <단군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이러한 제천행사는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삼국사기 잡지 제사>에 보면 “고구려는 항상 3월 3일에 낙랑의 벌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가 10월에 하늘에 제사하는 대회가 있는데 명칭을 동맹이라 한다.”라고 적혀있다. 채부원구에 이르기를 “백제는 매년 봄 사중월(2월.5월.8월.11월)에 왕이 하늘 및 오제(五帝)의 신께 제사지낸다.”고기에는 “온조왕 20년 봄 2월 (원구)단을 쌓아 천지(天地)에 제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물로는 광개토태왕비에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주몽)는 북부여 천제(北夫餘 天帝)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즉 하늘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록과 유물에서 보다시피 본시 우리 민족은 태양 즉 하늘을 숭상하고 하늘에 제를 지내던 민족이었다. 이렇듯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천손의 후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러한 제천의식은 고려 때에도 계속되었다가,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집권하면서 잠시 중지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태조 때에는 제후국의 예에 준하여 조선의 동방신인 청제(靑帝)에 제를 올리기 위한 원단(圓壇)이 설치되었다. 세종 때 실시된 원구제(圓丘祭)도 오랫동안 계속되던 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기우제로 일시적으로 시행했다. 세조 때에는 매년 천제를 지내다가 10년(1464년)부터 그 권리를 명나라에게 빼앗긴다. 천자가 아닌 제후국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명나라의 압력과 이를 추종하는 사대주의자들의 주청에 의해 1464년의 ‘원구제’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고종 34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언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원구단을 세워 즉위식과 함께 명나라에게 빼앗겼던 천제를 433년 만에 지내고, 이어 열성조를 전부 황제로 추존한다. 비록 기울어져가는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이었지만, 독자적인 제국을 선포하고 천제를 주재함으로서 우리는 천손민족이라는 자긍심을 만방에 알리신 것이었다.
원구단은 조선 최고의 길지에 조성되었다. 옛 남별궁(南別宮) 터에 둥근 원형의 단을 만들어 단지를 조성하였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3층 석조 담장을 쌓고, 그 위에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우람한 원추형 3층 황금색 건물을 축조했으며, 그 뒤 단지 내에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를 건축 하였으며, 돌로 만든 북인 석고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이러한 원구단 3동은 천.지.인 3합 일체를 의미하며 우주의 빛인 황금으로 장식하여 온 천하를 밝혀 인류 최고의 장엄한 제천 성지로 새롭게 등장 하였다. 일제에 의해 파괴되는 원구단 서울대 한영우 교수는 "일제강점기 왕조의 유산이 무참하게 파괴된 것이 어찌 하나둘인가! 그런데 대한제국이 자주독립을 위해 몸부림쳤던 유적처럼 철저하게 파괴된 것도 없다. 제국의 법궁이던 경운궁이 그렇고, 을미사변 때 일본군과 항쟁하다가 산화한 영혼들을 위해 지은 장충단이 그렇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황제가 즉위식을 거행한 원구단의 처참한 모습"이라며 가슴 아파했다. 일제와 친일파들에 의해 “천제는 일본 천황이 지내는 것이지 천한 조선족이 지내는 것은 하늘에 대한 불충”이라며 강제 폐지되어 일본에 상납되어 아직까지 일본에서 일왕이 단군의 제천권을 111년간 행사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1911년부터 원구단의 건물과 터는 조선총독부가 관리하였는데, 만행을 부려 1913년에는 황궁우만 남기고 제단인 원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건평 58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을 지었다. 이때부터 황궁우는 조선호텔 후원의 장식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곳인 이곳에 유흥업소(호텔)가 들어서고 술에 취한 일본 고위관리들은 호텔에서 조선의 여자들을 성욕만족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게다가 철도호텔은 각 전선으로 떠나가는 정신대 위안부들의 출발 전 최종집결지였다.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일본군을 몸으로 잘 모실 것인지 최종 정신교육을 받던 곳이기도 하다. 하늘에 제천행사를 지내던 신성한 곳을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이렇게 무참히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랬던 곳이 해방 62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내려오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나라이고 못난 민족이고 우매한 국민들인가!!! 정말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방 후 조선호텔의 역사
원구단을 파괴한 장본인은 정부와 삼성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돌북) 만이 남아 있고, 원구단이 있던 장소에는 조선호텔이 아직도 버젓이 서있다. 현재 황궁우는 조선호텔의 후원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이 되어 있다. 그것이 무슨 건물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유는 정부 스스로 이곳이 우리가 천손민족으로서 천제를 지내던 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알고도 알리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과 호텔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황궁우가 어디에 있는지, 원구단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호텔을 찾는 사람들은 황궁우가 호텔에서 세운 옛날 정자쯤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고풍스러운 후원도 있는 낭만적인 최고급 5성급 호텔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재 중국 장군인 관우가 있는 동묘에는 많은 예산을 들여 대대적으로 보수를 하고 관리사무소까지 따로 두어 관리하면서, 원구단은 관리인은커녕 보수조차 하지 않아 현재 황궁우 둘레 난간에는 군데군데 균열이 생겨 언제 붕궤될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동묘는 거액을 들여 보수하면서 왜 원구단은 쓰러질 때까지 방치하고 있는가!!! 이러고도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의 지방정부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은 원래 이름인 대안문(大安門)으로 왜 아직도 수정하지 않고 있는가? 이러고도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의 지방정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한문은 이등박문이 조선의 민족정기를 영원히 말살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고건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삼성생명으로부터 원구단의 시청광장쪽 부지 246평을 약 250여억(?)원을 주고 사들여 보행통로를 내고 70그루의 나무그늘과 인공폭포, 화강석 기둥을 조성, 시민공원을 만들어 원구단을 내,외국인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명소로 꾸며 놓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원구단이 어디 있는지를 찾기에는 아직도 어려운 편이다. 이렇듯 대한제국의 국태민안을 기리며 천손민족으로서 하늘에 제사지내던 원구단이 일제의 파괴 이후 아직까지도 신음하고, 지하는 두더지 굴로 전락된 채로 방치되어 국민의 자존심에 먹칠을 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정부관계자가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삼성(신세계)은 원구단의 의미도 모르는 채 오늘도 돈만 벌면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원구단이 어디 있다는 안내도 전혀 없다. 하루는 후배를 데리고 원구단을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원구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필자는 후배에게 “시청역에서 혼자서 원구단을 찾아가면 내가 점심을 사고, 못 찾으면 네가 사라.”고 내기를 걸었다. 후배는 자신 있게 시청역에 내려 주변안내도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거기에는 원구단의 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원구단 가려면 어디로 가요?”라고 물으니 대부분이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기를 반시간 가량 하더니 한사람이 알려주기를 “조선호텔 쪽으로 가라”고 한다. 시청역 출입구를 나와 조선호텔 근처로 와서 안내표지판을 보았으나 거기에도 원구단은 없었다. 그 후배 하는 말 “원구단이 전철안내판에도 없고 여기도 없는데 원구단이란 것이 있기는 있는 거요?” 그런데 조선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원구단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으니 역시 대부분이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필자가 봐도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원구단을 처음 가는 사람이 시청역에서 원구단 찾아 가기는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보다 어려웠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안내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게 몇 개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걸 보고 찾아가기란...) 원구단에 도착한 후배는 일단 구청에서 세워놓은 설명표지판을 읽어보더니 “원구단이라더니 환구단이네! 환구단은 뭡니까? 형님이 잘못 안 것 아니에요?” 이 대목에서 필자는 완전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도대체 정부가 이렇듯 원구단을 감추고 푸대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상적으로 하려면 조선호텔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일제 때 파괴되었던 원구단을 세워야 당연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1년에 1번 직접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건 우리만의 전통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것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해야하고, 당연히 일반 시민들이 찾아오기 쉽게 길안내판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5공 쿠데타 정부와 결탁해 삼성이 불법적으로 할양받은 조선호텔이다. 신세계와 삼성은 이제는 민족정기를 파괴한 조선호텔을 국가와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마침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을 사회의 좋은 일에 쓴다 했으니, 그 돈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원구단을 복구하는 길이 진정한 속죄라고 본다.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천제를 올린다. 그러나 정작 천제를 주도해야 할 한국은 544년 동안 하늘을 등지고 살아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못난 민족인가! 원래는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천제를 지내야 하나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은 아직 천제를 지낸 적이 없다. 스스로 중국 일본의 제후국이라고 느꼈기 때문으로 본다. 지금까지 집권한 한국의 대통령 모두가 역사인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 대통령 하나 국민들로부터 마음속의 지지를 못 받은 것이다.
이번에 물러난 삼성 이건희회장은 자신의 차명재산을 원구단을 복원하는데 써야 한다. 국가의 얼과 조상을 짓밟은 후손은 결국은 하늘의 심판을 받는 법이다. 이회장은 자기 재산을 사회의 좋은 일에 쓴다 했으니, 그 돈으로 국가와 국민의 자긍심을 세워 줄 원구단을 복원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솔직히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원구단이 뭔지도 모르고 또 그런 것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또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다. 그것은 그간의 정부들의 역사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돈만 벌면 되지 그런 것 찾아 뭐하냐는 황금만능주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천제를 올리고 있는 같은 시각에 원구단시민공원에서는 강남구민 1,500명 이상이 버스를 대절해 몰려와서는 대모산에 아파트를 낸다고 한 서울시장을 성토하는 데모를 했다. 필자가 집행부에 가서 “오늘 저 위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내는 거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원구단이요? 거 뭐하는 뎁니까? 우린 그런 거 모르는데요.”하기에 “원구단이 뭐하는 곳인지 집행부에서 가서 보시고 여기 모이신 분들에게 좀 알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시위는 그냥 계속되고 아무도 원구단에 올라오지 않았다. 자기들의 이권(돈)이 걸린 일에는 저렇게 큰 목소리를 내며 일체감을 보이는 시민들이 민족의 원천을 찾는 ‘원구단 천제행사’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100명이 채 안 모인 행사지만 행사를 치르려면 그대로 수백만 원이 드는데 정부나 조선호텔의 지원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서울시청에서 의자 100개 빌려준 것이 전부였다.
천제를 지내는데 초헌관이 제복(祭服)도 없이, 재물도 일반 회사의 고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원래는 종묘대제나 사직대제를 지내기 전에 천제를 먼저 지내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종묘대제와 사직대제는 국가가 진행하는 행사이고, 원구단 천제는 개인이 지내는 고사로 되어 버렸다. 이러다 곧 맥이 끊길 지도 모른다.
원구단 행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왕이 헌배하는 국가적인 제천 행사인데, 왜 개인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지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의 대통령이 관심을 안 가지면 서울시장이라도 관심을 가져 1년에 1번 지내는 천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성대하게 지내 원구단을 433년 만에 부활시키신 고종황제의 뜻을 기렸으면 하는 것이 박총재의 평생소원이라 한다. 이 행사를 취재하러 온 언론은 통일뉴스와 당사 두 군데 뿐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정부와 언론, 못난 민족, 우매한 국민들이란 것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국가란 것이 과연 존재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가진 하루였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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