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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진실 2009/10/0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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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해상제국 백제(백가제해)
    우리가 백제라고 할 때는 요동지역의 어하라(소서노가 개국한 비류나라)에서 분가하여 배를 타고 한반도 인천(미추홀)으로 들어와 마한의 진왕에게 거주지를 분양받아 경기도 땅에 정착한 고추모 아들 온조의 <십제>로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던 구태의 100가족이 발해만을 건너와 한반도 평안도지역에 세운 백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여의 정통성을 놓고 만주지역에서부터 고구려와 패권을 다투다가 후한과의 연합작전에 따라 고구려 후미를 치기위해 구태가 100가족을 데리고 발해만을 건너 한반도 평안도지역(대방)에 백제(100가족의 나라)를 개국한 구태세력이 서울 한강변의 온조의 십제(발해만에 위치한 비류나라 어하라지역에서 10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와서 개국한 온조나라)를 통합하고 고이왕때부터 법령을 반포하여 국가기강을 확립한 후에 근초고왕부터 본격적으로 요서지역에 진출하여 동성왕때에 이르러 중국지역을 지배한 강성대국을 실현한다.

    수도이전은 개로왕때 400년 도읍지로 삼았던 서울지역의 한성백제 고구려 장수왕때 고구려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개로왕이 죽자, 수도를 서해와 연결된 곰나루(웅진=공주)에 이전한 백제가 한반도 본국을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지역을 점유하고 일본열도와 동남아열도를 점유하니 22담로를 가진 해상제국 백제였던 것이다. 백제는 아시아 바다를 지배하면서 인도까지 해상무역을 했다.

    해상제국 백제가 있기까지 일찌기 단군조선이전시대부터 항해술과 선박제조술이 뛰어난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마한세력의 도움이 컸다.광개토태왕비문에 구태백제를 지원했던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해상세력을 왜로 기록하고 있다. 왜의 중심세력은 북방세력의 한반도유입으로 일본열도로 이주했기 때문에 일본열도세력을 왜라 불리웠던 것이다. 일본열도을 점유한 세력은 순차적으로 마한세력,가야세력,백제세력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일본왕실은 가야계에서 백제계로 혈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백제는 한반도에 본국수도(서울=>공주=>부여)을 두고 중국요서지역에 중국지역을 통치하기위한 부수도를 두었다. 요서지역의 백제수도에는 본국에서 황제의 가족이나 친척으로 중국지역의 태수들을 총괄하는 총독을 파견했을 것이다. 백제본국이 당나라와 신라의 협공으로 멸망하자, 대륙백제도 붕괴되어 중국지역의 백제인들은 고구려와 돌궐로 흡수되어 버렸다. 신라는 중국지역의 백제땅을 당나라에 넘기고 한반도이남만 챙긴 것이다. 그래서 백제멸망후에 산동지역의 백제인들의 거주지를 신라방이라고 했는데, 그건 신라방이라기보다는 백제방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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