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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사랑도둑] 준형이 너마저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5/29 [00:48]

연재소설 - [사랑도둑] 준형이 너마저

임서인 | 입력 : 2015/05/29 [00:48]

 

 
준형이 아스퍼거중후군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중3때였다.

사회성을 요하는 놀이에 준형이 기피를 하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지켜야 할 행동규범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초등학교 담임의 말에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림이나 글씨쓰기는 조금 서툴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이 잘 다루는 공을 서투르게 다루는 것을 보면서도 운동신경이 둔하다고만 생각했다. 괴짜 아들을 두었다고 스스로 자위했고, 한글과 숫자를 다섯 살에 깨우치는 것을 보고 혹시 천재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중 3때 슈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물건을 다 사고 계산대 앞에서 줄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줌마, 왜 그렇게 뚱뚱해요?”

하고 준형이 큰소리로 앞의 뚱뚱한 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순간, 수퍼마켓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자에게 쏠렸다. 여자는 브래지어에 담겨 터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유방은 준형의 엉덩이 한쪽만하고 상체와 머리를 구분하는 목은 붙어있고, 둥글둥글 금방이라도 굴러 갈 것 같았다.

“준형아, 그런 말 하면 안 돼!”

선영이 준형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뚱뚱한 거 사실이잖아요? 엉덩이가 우리 엄마 세 배만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인의 입에서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 아줌마 아니거든!”

“아줌마처럼 생겼는데 무슨 아줌마가 아냐? 그럼 시집 안 갔어? 소리는 왜 질러!”

준형은 여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화가나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표정으로 말똥말똥 쳐다만 보았다. 준형의 검은 눈동자 속에 여인의 모습이 가득차 준형으로서는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야, 땅꼬마 저 아줌마 정말 뚱뚱하지? 그렇지? 내 말이 맞잖아. 아줌마, 저 아줌마 뚱뚱하잖아요. 하마같지 않아요?”

자신은 여자가 뚱뚱하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듯이 줄 지어 서있는 어린 아이와 바짝 마른 멸치 같은 나이 지긋한 여자에게 물었다. 두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저 여자 덩치가 남산만하잖아요!”

답답한 준형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더 크게 소리쳤다.

준형의 큰소리에 여자는 울먹이며 물건을 팽개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바구니에 담겼던 물건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구르는 건지 걷는 건지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준형이 박장대소를 했다. 사람들은 험한 눈빛으로 준형을 바라보았다. 준형은 그런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선영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선영은 준형을 떼어놓고 여자를 쫓아갔지만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뚱뚱한 여자에게 뚱뚱하다고 대놓고 말하면 어떻게 하니? 중학생이 되어가지고 그런 것도 분별하지 못하니?”

준형이 나이 지긋한 여자에게 한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팔, 아줌마가 뭔데 나를 야단쳐. 뚱뚱한 거 맞잖아?”

준형의 말에 선영은 그만 제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아니, 어린놈이!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레 어른한테 욕을 해!”

여자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는 준형을 나무랐다. 준형은 여자의 엄한 소리에 문 앞에 서있는 선영에게 달려와 등 뒤로 숨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선영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살다살다 어린 것에게 욕을 얻어먹고 사네. 자식 교육 똑바로 시켜욧! 아님 정신병원에나 가 봐요. 눈동자가 평범한 애들 같지 않네.”

하고는 발을 탁탁 털고는 나갔다.

“엄마, 저 여자는 마른 나무줄기 같아. 그렇지 땅꼬마”

“나, 땅꼬마 아니거든요!”

준형이 땅꼬마라고 말할 때부터 입술을 툭 내밀고 있던 아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선영은 당황하여 아이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슈퍼주인에게도 죄송하다고 머리를 수없이 조아리며 간신히 계산을 했다. 준형은 여자들과 아이가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전혀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되레 이상히 여겼다.

준형의 손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선영은 준형의 바지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를 댔다. 어른들과 아이에게 기분 나쁘게 한 것이 사실이며 설사 뚱뚱하다고 해도 뚱뚱하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을 사람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종아리에 시뻘건 줄이 휙휙 그어져도 준형은 자신의 말이 사실인 것을 우겼다. 사실로 말한 자신을 때린 엄마가 나쁘며 자신은 억울하다고 울었다.

그 후로도 자신의 방안에 수북이 쌓아놓은 학용품과 물건들을 보면서 바이러스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면서 손을 계속해서 씻어대는 행동이 나타나고, 책을 읽어도 책속의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놀랄 정도로 말이 정확하거나 현학적일 때가 있을 때는 선영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뉴스를 듣다가, 인터넷을 보다가 특정한 주제가 있으면 며칠이고 그 주제를 탐독하고 그녀가 귀찮을 정도로 말해주었다. 그 관심사에 관한 정보나 통계를 지나칠 정도로 수집하여 방안에 쌓아두기도 해 준형이 누울 자리만 비어있었다. 방이 지저분하다고 물건을 치우기라도 하면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변화거나 자신이 예측했던 것이 변하면 몹시 흥분하여 화를 냈다.

결국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았으며 담임이 병원에 가보라는 말에 준형을 데려가 진찰을 받으니 듣도 보도 못한 아스퍼거중후군이라는 것이다.

암이라든가 백혈병이라고 했으면 펑펑 울고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안달을 했을 것이지만,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에 멍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전반성 발달장애 중의 한 종류로서 비교적 언어기능과 인지기능의 손상이 없는 자폐증상을 보이는 군을 말한다는 의사의 설명에도 한동안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초리를 수없이 들었던 것을 후회했다.

선영은 혹시 남편도 아스퍼거중후군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남의 기분과는 아무 상관없이 말과 행동을 하는 남편으로 인해 얼마나 힘이 들고 서러웠는지 모른다. 남편이 현재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과 잘못은 선영의 탓이었다. 천하에 재수 없는 년이 아내였다.

준형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또래 친구들에게 고립을 당한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에도 가고 독서실에 가기도 해 조금 방심을 하고 있었는데 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으면 웃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욕을 다발적으로 한다.

고2때 준형이 상형문자처럼 써놓은 낙서를 훔쳐 본 일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마음먹고 사람들의 눈을 보아야 한다. 짧은 순간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만 코만 보일 때가 있고, 눈만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친구들 얼굴을 오래도록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친구 얼굴 저 너머를 투시하고 있을 뿐이다.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게 얼마나 참기 어려운 고통인지 엄마는 이해할까?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을 보기 힘든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나는 얼마 전에서야 내가 사람을 볼 때나 그림을 볼 때 전체를 보지 않고 한 부분만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낙서를 보면서 선영은 준형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섧도록 울었었다. 그 뒤로 가엾은 준형을 위하여 손발에 쥐가 나도록 뛰어다녔다. 남편은 그녀에게 생활비만 건넬 뿐이었다. 준형에게 관심을 가지라 하면 -네 년이 좋아서 퍼질러 낳았으니 거두는 것도 네 년이 알아서 해 - 하고 고함만 질렀다.

아스퍼거중후군을 지닌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본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당황해한다. 왜 마음 속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 왜 진심이 아닌 말들을 많이 하는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사람들이, 각종 시간표, 가로등에 새겨진 표시들, 여러 종류의 채소들 혹은 행성의 움직임 같은 흥미진진한 수백 가지 것들에 대해 말할 때 왜 사람들은 지루해하고 못 견뎌하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빛, 소리, 냄새, 촉각 그리고 미각 같은 혼란스러운 감각들을 참아낼 수 있는지? 왜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는지? 왜 사람들은 그토록 복잡한 감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회적 신호들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다 이해하는지? 결국 사람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사람들에 비해 왜 그토록 불합리한지?

그저 이상한 아이, 좀 모자란 아이였다. 유전적 성향이 강하며,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폐아는 1,000명 중 2명 정도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자폐아는 그보다 10배 정도는 많다고 한다.

선영이 준형을 이해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여 알아 낸 아스퍼거중후군이었다.

푸앵카레추측을 풀어낸 수학자로 세상이 가둔 천재 페렐만 이야기를 듣고, 준형의 뛰어난 수학문제 풀이를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다.



준형의 아스퍼거중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그때를 생각하니 슬픔이 급격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자신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 눈을 후벼 파내라! 자기의 손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손을 끊어 내라! 자기의 혀가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 혀를 찢어내라! 자기의 이성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카톨릭이 되라는 말을 실천은 하지 못 할망정, 법이 그녀를 옭아매지 못할 것이며, 세상을 재단할 줄 아는 천재성은 없어도,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

이팔청춘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정원에서 놀고 있던 왕자나 공주들이 숲속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잊어버린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로 만든 목걸이가 아닐까? 별의 그림자나 태양의 물방울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던 세상이 차츰, 불쌍하고 보잘 것 없는 벌레가 길바닥에 기어 다니고 있는 꼴처럼, 불쌍한 벌레 한 마리 거울 속에서 울고 있었다.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 보석에서 벌레로 탈바꿈 해버린 준형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남편에게 당하는 홀대보다 더 가슴 미어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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