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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전설] 은혜와 보답의 꽃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15 [12:13]

[조선력사 전설] 은혜와 보답의 꽃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7/15 [12:13]

 

은혜와 보답의 꽃

 

옛날 어느 고을에 김양옥이라고 하는 선비가 살고있었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10여년동안 글만 배우다나니 집안에는 얼마 없던 재산이 거덜이 났다.

엎친데 덮치는격으로 처까지 세상을 떠나고 끼니도 끓일수 없게 되여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어느날 어머니는 옷장안에서 족자 하나를 아들앞에 꺼내놓으며 위로의 말을 하였다.

《이제는 집안에 이 족자밖에 남은것이 없다. 이것은 솔거라는 화가가 그린 명화인데 이것을 가지고 서울로 가서 팔아오너라. 그래서 물방아간이나 하나 사서 살아가도록 하자.》

김양옥은 이튿날 새벽 길을 떠났다.

사흘후 서울에 도착한 그는 남대문안에 있는 한 상점을 찾아가 은화로 150냥에 족자를 팔았다.

김양옥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길로 집을 향해 떠났다.

이튿날 저녁때 그가 수원에서 객주집에 들어 쉬는데 한밤중 옆집에서 녀자의 슬피 흐느껴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날이 밝자 객주집을 나서며 옆집을 바라보니 마침 중년의 감때사나운 사나이가 열대여섯살쯤 돼보이는 처녀를 끌고나오고 그뒤로 거의 50살가량 된 녀인이 뒤쫓아나오며 처녀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 사나이는 녀인을 걷어차며 지껄이였다.

《늙은것이 가만있지 못하고 왜 이리 등쌀이야! 나도 이 계집애를 데리고가고싶어 데려가는게 아니야. 돈을 못내니까 데려다 밑천의 절반이라도 뽑자는거야. 썩 놓아라.》

《여보시오. 세상없어도 이 애는 못데려갑니다. 외딸을 내놓고 늘구막에 홀로 누구를 바라고 살라는 말이요. 차라리 나를 죽이고 데려가오.》

그래 김양옥은 이 광경을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사연을 알아보았다.

사연인즉 처녀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빚을 내여 뙈기논을 풀었는데 그것이 랑패를 보고 리자에 리자가 붙어 은화로 120냥이나 되게 붙었다 한다.

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빚으로 꽃같은 처녀가 꺾이게 되고 녀인 또한 이 세상을 하직할것은 뻔한 노릇이였다.

김양옥은 주저없이 은화가 든 보따리를 풀어 120냥을 내여주었다.

그러자 어머니와 딸이 김양옥의 옷소매를 붙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김양옥은 지금 자기 집에는 늙으신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 밥 지어줄 사람조차 없이 홀로 계시므로 빨리 가야 한다고 하면서 길을 떠나려 하였다.

그런데 처녀의 모녀는 은인을 따라가서 밥이라도 끓여드리고 심부름이라도 해야겠다면서 따라나서는것이였다. 하는수 없이 그들모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소행을 못내 기뻐하며 칭찬하였다.

그후 쓸쓸하던 이 집에 가끔 명랑한 웃음소리가 새여나오고 삯방아, 삯빨래, 삯바느질로 부지런히 일해 살림도 어느 정도로 펴이게 되였다.

그런데 뜻밖에 이듬해 봄 김양옥이 심한 열병에 걸려 앓게 되였다.

모녀는 은인을 모든 정성을 다해 간호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다.

처녀가 가지고온 미음을 마시고나서 감사의 정으로 미옥을 쳐다보던 김양옥은 처녀와 속삭이듯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미옥이, 고맙소. 내가 살아나게 된것은 미옥이가 밤잠도 자지 않고 정성껏 간호해준때문이요. 과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의 모녀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는것은 오로지 은인께서 구원해주신 덕분이 아닙니까. 그 은혜를 생각하면 앞으로 일생을 두고 시중을 들어도 다 갚지 못할것이예요.》

《일생을 두고 나를 시중을 들다니? 시집도 안가고?》

 《녜, 은인의 일이라면 한평생을 두고 도와드릴 결심이예요.》

《아니 그것이 진정으로 하는 말이요?》

《네, 한평생이 아니라 백평생까지도…》

《미옥이!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러며 김양옥은 벌떡 일어나 미옥을 와락 끌어안았다.

양미옥은 부끄러움보다 정이 더 격하여 스스로 얼굴을 김양옥의 가슴에 푹 파묻으며 흐느껴 울었다.

《끼럭! 끼럭!》

 밤하늘로 날아가는 기러기도 그들의 장래를 축복하였다.

그해 가을 김양옥과 양미옥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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