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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국에 충격준 '동방족 요하문명'과 동북공정의 관계

지나국(現 中國)은 역사열등감에서 벗어나 진실에 순응해야 한다

윤복현 역사칼럼 | 기사입력 2009/12/11 [00:21]

지나국에 충격준 '동방족 요하문명'과 동북공정의 관계

지나국(現 中國)은 역사열등감에서 벗어나 진실에 순응해야 한다

윤복현 역사칼럼 | 입력 : 2009/12/11 [00:21]
▲ 요하문명권
 
자신의 나라와 민족, 그리고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자들은 국가주의를 떠나서 모두 천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국가주의를 떠나서 한국과 일본과 지나국에는 아시아평화를 위하여 지나국의 주은래(지나국 사회주의 혁명의 지도자)같이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의 식민사관과 일본의 역사왜곡행위와 지나국의 역사왜곡행위에 해당하는 '동북공정'행위의 부당성에 대해 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지성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  주나라이후  지나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황하유역)을 중심으로 동이.서이.남이.북이로 구분했다

지나의 문명은 지나인들이 오랑캐취급했던 동북방지역의 한국.배달.조선문명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밝해(발해=서해.황해)의 마고문명에서 비롯된 한반도.요서.산동지역의 동방(동이)문명은 지나지역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이주한 동방족이 건설한 황하.대문구.슈메르.인더스.이집트.잉카.마야.아즈택 문명 등 현인류문명의 시원문명이라 할 수 있다.그 동방문명의 주역이 바로 일찌기 청동기.철기.토기문명을 일으킨 코리족이라 할 수 있다. 코리족은 한민족의 머리종족으로 일찌기 유목수렵생활을 하면서 고대에는 최첨단기술이였던 철제조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에 한민족을 지배하는 머리가 될 수 있었다.

▲ 고구려 삼족오-온누리에 광명을 비추겠다는 고구려인들의 자주의식의 표출
지나국 문헌에는 단군조선.부여.고구려인들을 요서지역 청동기문명의 주역으로서 '맥족'으로 기록하고 있다. 광개토태왕비문에도 고구려인들 스스로가 '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맥'족은 바로 초원지역과 산악지역에서 유목수렵생활을 했던 한민족을 의미한다. '맥 알(아리.아이.얼)'가 없으면 개인이고 나라고 민족이고 기력을 상실하고 망하고 만다.
 
우리민족의 아리랑은 알이랑을 의미한다. '알(얼)'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광명이다.
 
[한단고기-한국본기]에는 "해(하=태양)을 신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태양으로 상징되는 광명을 환한님(하나님)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알이랑'민요는 어둠을 비추는 환함을 추구하자는 한민족의 주제가다. '환'은 '한'이다. 한(환)은 "환하다.해(태양),최고,으뜸,중앙,임금" 등을 의미하는 최고의 의미다. '한'은 지나로 이주한 한국인들에게 의해서 '안(지나)'으로, 몽골로 이주한 한국인들에 의해서 '칸'으로,중동지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에 의해서 '안'으로 불리워졌다. 한(환)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들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환)'의 건국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단고기-한국본기]는 기록하고 있어 동서2만리 남북5만리를 영역으로 했던 '한국'이란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고 배달은 '밝단'의 한자음으로 결국 '한단(=환한 땅=아사달)을 의미한다. 고로 '한(환)'과 '밝(지나음=배)'이 다른 의미인양 인식해서는 안 되겠다.
 
맥족 코리는 한민족의 뼈대다. 천해(북해=바이칼호수)지역에서 요서지역까지 분포했던 맥족은 하늘숭배신앙을 가지고 까마귀 등 새가 하늘을 연결해 준다는 새토템과 함께 푸른초원에 서면 시야가 3가지로 압축되는 하늘.땅.사람이 하나라는 3신1체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만주 요동지역의 예족은 호랑이 토템족이였고,만주 요서지역의 곰족은 곰토템족이였고, 농경생활을 했던 한반도인들은 비를 내려주고 빛을 비추어 주는 하늘과 태양에 감사하는 제천의식이 강한 탓으로 일찌기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과 가장 가까이 날 수 있는 새들을 하늘의 전령사로 인식한 탓으로 봉황으로 상징되는 새토템족이였다. 고구려의 삼족오가 전형적인 한반도인들의 새토템의 아이콘이다. 광개토태왕 군대의 깃발문양인 # 또한 태양과 우물을 상징하는 한반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고로 1만년전 마고문명이 바다속으로 들어간 이후 마고의 후예들인 한반도인들이야말로 고대 유라시아-아메리카 한민족의 조상이며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단군3조선 중에 한반도.일본열도를 마조선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고조선을 의미한다. 마고조선은 문명이 처음 시작된 의미의 '천일'이라고 [한단고기]이 기록되어 있다. 비옥한 한반도지역은 일찌기 농경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당연히 농사와 직결되는 하늘에 감사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코리(고리=구려=고려=구리=쿠리=후리:철제조기술이 뛰어난 한민족)족이 한민족의 지배집단이 되면서 하늘.땅.사람이 하나라는 3신1체 사상과 함께 밝음.환함을 의미하는 광명 환한님(하나님)사상때문에 태양숭배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고대 한국인들이 만주를 비롯하여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지역에 건설한 피라미드는 우주을 주재하는 3신1체 하느님께 제사지내는 제천단이였음을 알 수 있다.신시 배달국에서 한웅천황들이 거하시는 황성에 해당하는 신시는 피라미드 도시라는 의미가 된다.


     1부. 삼족오. 한민족의 코드로 부활하다                                 2부. 고대한류, 동방문명을 만들다




▲ 포항MBC영상자료-<삼족오, 고대 한류를 밝히다>

요하지역에는 수 많은 초기 피라미드유적이 있다.압록강지류의 환인지역에도 1만5천기의 피라미드 유적이 존재하고 있다. 압록강지역의 피라미드 연대가 빠른지 요하지역 피라미드 연대가 빠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대가 과학적으로 밝혀져 압록강지역의 피라미드 연대가 빠르다면 요하문명은 한반도문명을 계승한 것이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로 또 한번 역사는 바뀌게 되는 것이고,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문명의 시원지역으로 판명나게 된다. 대규모의 슈메르 지구라트나 이집트 피라미드,아메리카의 마야.아즈텍 피라미드는 모두 동북방 지역의 요하.압록강지역의 피라미드보다 연대가 후대라서 요하.압록강지역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현인류문명과 아시아 역사.문명의 주역으로써 코리족이 동북방지역(요서.몽골.만주.시베리아.한반도)에 건설한 나라들이 바로 한국.배달.조선.부여.고구려(대진국).백제(=일본).사로(서라벌=설부여).몽골.고려.조선이라 할 수 있다. 그 줄기나라들이 바로 고대한국어를 사용했던 흉노(스키타이.훈.신나라).선비(북위.전연.수.당.신라 등).돌궐(터키).거란.여진(금.청) 등 북방초원세력이다. 이들이 바로 아시아문명과 유럽.아메리카지역에 문명을 건설하고 지배한 주역이였다고 할 수 있다. 
 

▲  100년 전 고구려의 후예 청나라의 영토-지나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한족에게 선물한 만주족 청나라(주은래는 1960년대 북한을 방문하여 영토를 확장해 준 점에 대해 고구려의 후예인 만주족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으며, 광신주의적인 지나인들의 국수주의적인 역사왜곡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공개 사과했다). [만주원류고]는 100년전까지 지나영토를 지배한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다. 고려인 김함보(신라말기 마의태자 손자)를 선조로 삼고 있는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만주원류고]를 통하여 청나라는 고구려.백제.신라 모두를 자신들의 선조라고 보고 있다.
 
결국 모택동.손문 등 지나족의 부흥을 내세운 한족세력과 서양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서 나라가 무너지고 말았지만, 고구려후예 나라였던 청나라는 분명히 100년전까지 광대한 지나지역을 지배했다.

남한지역의 대한민국은 코리아.한국으로, 북한지역은 조선으로, 만주지역의 조선인들을 조선족으로, 중앙아시아 조선인들을 고려(코리)인으로 불리운다. 코리족의 알맹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다시 고대의 영광된 한민족사를 부활시키며 인류의 중심민족으로 부상할 것이라 확신한다.

동방족(동이)에 대한 지나의 열등감표출사건-분서갱유

▲ 지나문명을 일으킨 만리장성 넘어 동방족의 요하문명(지나인들은 만리장성이북의 동방족을 오랑캐라 비하했다. 그 오랑캐인들의 땅에서 지나문명의 젖줄이 되는 요하문명이 발견되었으니 충격은 매우 컸고, 동북공정을 통하여 요하문명을 지나의 역사로 포함시켜 지나중심의 역사를 전개시킴으로써 한민족의 역사까지 집어 삼키겠다는 것이 동북공정의 진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오랑캐'로 대변되는 동북방지역의 한국인들에 대한 지나지역의 지나인들의 음해비방행위의 심리적 배경은 열등감에서 기인한다.주나라를 무너뜨린 개국한 진시황의 진(CHIN=차이나)나라부터 단군조선의 영향권에 있었던 지나지역은 완전한 독립된 지역이 되었다.진시황은 기원전 213년 동이로부터 벗어나기위한 몸부림으로 진나라서적을 제외하고 동이관련서적들을 모두 불태우는 분서갱유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그런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이 감추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였다.
 
초원.산악지역에서 유목수렵생활을 하며 천신숭배문화를 가지고 있던 코리족(맥족:하늘숭배)과 강가나 평야에서 농경.어로생활을 했던 곰족(곰토템)과 예족(호랑이토템)이 요서지역에서 만나서 결합한 후에 옥.청동기문명으로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요하지역에서 지나지역으로 이주한 동방족에 의해서 황하.대문구 문명이 일어났다. 지나인들이 숭배하는 용문화 역시 요하지역의 동방족의 문화임이 요하지역의 뱀토템과 관련한 유적(뱀모양의 돌무더기).유물(옥으로 만든 용 문양)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한국과 배달나라는 코리족의 나라요, 배달국의 제후국이였던 단허국(단국) 왕녀와 배달국 18대 거불단 천황(단웅)사이에서 낳은 단군한검천황의 단군한국은 21대 단군 소태천황까지 곰(검)족과.코리 한웅족의 나라요, 22대 단군 색불루천황부터 시작하는 단군조선.부여.고구려.대진국.백제(일본).사로(서라벌=설부여/사로국을 무너뜨린 신라는 흉노.선비족의 나라).몽골(몽고리)은 모두 코리족의 나라였다. 이들 나라와 후예가 바로 고대 세계문명의 중심으로서 하늘나라요 천상의 나라요 천제의 나라였던 한국.배달.조선.부여를 지배했던 황족으로서의 천손족이다. 그리고 그 후예의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한국.배달나라.단군한국조선의 통치자들을 천황.천제이라고 불리었다. 천황이나 천제는 수 많은 연방나라들을 거느린 최고의 통치자이며, 환한님(하나님)을 대신한 자리다. 빛을 태양계의 모든 생명들에게 비추어 주는 태양처럼 어진 임금들이었다. 창칼로 상징되는 무력보다는 어진 마음으로 사방을 다스렸던 것이다. 대한민국 통치자들과 정치집단이 표상으로 삼아야 할 민족사의 임금들이시다.

한국.배달.단군한국조선은 천상의 나라로 하늘나라였으며, 천상아래 지나지역은 천하지역으로 지나지역의 왕들은 천제의 제후라는 의미에서 왕이라 불리었으며, 지나지역의 왕들은 산동성 태산에 올라가 동북방지역의 하늘나라의 천제들께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지나지역의 나라들은 하.은.주를 거치면서 단군조선으로부터 분리독립하기위한 몸부림을 치면서 스스로 천자라고 칭했던 것이다.
 
▲ 산해관 만리장성 입구에 '천하제일문'이라는 문구가 보인다.지나지역은 천상아래 천하였던 것이다.
 
후한시대의 채옹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천자는 동방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 고 하여 천자제도가 동방족 문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군으로 칭송해 온 순(舜) 임금은 보위에 오를 때 태산에 올라 하느님께 천제를 올리고 '동방의 천자'를 찾아가 조근(朝覲)하는 예를 올렸다. 이 내용이 [서경]에 "동순망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고 기록되어있다.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를 지내고 마침내 동방의 임금을 알현하였다."는 뜻이다. '근(覲)'이란 "제후가 천자를 뵙는다"는 뜻으로, 하현상(下見上),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 뵙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진시황이후 지나지역은 단군조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는 분서갱유사건(진나라서적을 제외하고 동이와 관련한 모든 서적들을 모두 불태운 사건)을 저지르면서 하늘나라에 도전을 하니 역사왜곡이였다.그리고 춘추필법으로 대변되는 지나인들의 역사왜곡행위는 현재까지 동북공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왜곡 또한 진실규명을 통하여 정화시키는 진실의 바다로 흐르는 거대한 역사의 강물을 통하여 원상회복되고 마는 것이다.

 
[자료]고대 한국인들(동이)을 시조로 섬기는 지나인들






















지도자료출처-
중국의 삼황오제는 모조리 동이민족

* 앞으로는 지도나 내용표기에 있어서 중국이 아니라 지나국(단군조선에서 나온 곁가지 나라)이라고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의 중심'을 의미하는 진짜중국은 동북방(요서.만주.한반도)에 위치했던 한국.배달.단군조선.부여.고구려.대진국, 그리고 그 후예인 대한민국입니다.
 
[보도자료]지나국혁명의 지도자이며 지나국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주은래의 양심고백

1960년대에 북한을 방문했던 국의 지성인이면서 지나국혁명의 지도자 주은래는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지나국정부의 역사왜곡행위에 대해 한국에 공식사과했다.



지난 1963년 6월28일 지나국을 42일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행한 저우언라이 당시 지나국 총리는 지나국 국수주의자들의 움직임을 질타하며 역사침공 행위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공식사과했다.
 
우선 그는 한-지나 고대-중세사와 관련,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며 "이는 지나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국수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며,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였다"며 역사왜곡의 근본책임이 지나국에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구체적 실례로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선 고조선사와 관련해서도 "지나국 역사학자들은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기도 했는데 이것은 역사왜곡"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냐"고 고조선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했다.

그는 고구려사와 관련해선, "진, 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요하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분명 실패한 침략"이라며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때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며 고구려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했다.
 
그는 발해사와 관련해선, "징보(鏡泊)호 부근은 발해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며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민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라며 발해사를 한국고대사의 한 지파로 인정했다.
 
지나국영토를 크게 넓힌 만주족의 나라 청나라
 
주은래 총리는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시절 한국의 조상들이 지배했던 영토가 청나라의 영토 팽창주의로 크게 줄어든 데 대해 공식 사과하기까지 했다.
 
그는 "만주족은 지나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지나국의 영토를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지나국땅보다도 더 컸었다.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며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지나국의 영토 침탈을 사과했다.

주은래 총리는 사과후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지나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지나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라고 재차 중국학자들의 쇼비니즘을 재차 비판했다.
 
그는 "지나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고 역사왜곡 시정을 약속했다.

한 시대의 거목다운 깨끗한 역사인식이자 사과였다. 그런 면에서 <동북공정> 역사침공을 벌이고 있는 현 지나국 지도부는 주은래의 표현을 빌면 졸렬한 '쇼비니스트(개념없는 광신적 애국주의)'에 불과하다.
 
지나국이 고의로 은폐하려는 내몽골'흑피옥'유물의 진실은?

내몽골지역에서 출토된 흑피옥 유물은 1만년이전의 서해지역 마고문명(모계문명)을 계승한 1만년전후한 한국문명이라고 보여진다.
요서.내몽골지역은 동방족(코리=맥.예.곰족)이 문명을 꽃피운 동방문명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지나국이 황하.대문구문화의 젖줄이 되는, 9천년전까지 연대가 올라가는 요하문명에서 충격을 받은 바, 1만년을 전후한 만주.내몽골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문명의 실체가 드러나는 일이 두려운 모양이다.한국의 시원을 중앙아시아 천산지역으로 착각하는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12한국의 중심산이 되는 천산은 만주지역의 천산(오환산=흉노에 패한 선비족이 근거지로 삼았던 산)이다.


[보도자료]1만4천년 전 유물로 추정. 지나국 역사로 규명이 안돼....




1)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만년옥석문화전에 전시된 흑피옥 유물.
김희용 씨가 내놓은 남녀 흑피옥 조각상(사진 뒤쪽)은 높이가 120 Cm에 달한다.

2) 2006년 8월 김희용 씨가 흑피옥을 발굴한 네이멍구자치구 우란차부시
화더션 현장(위)에서 2009년 9월 22∼23일 다시 다시 확인 발굴(아래)이 진행됐다.


[흑피옥, 숨겨진 비밀] 발견된 인골 보호 않고 무덤 다시 덮어…

유적지 보존 공개적 발굴해야

제작 연대 1만4300년 전후 추정… 인류문명사 밝힐 '비밀의 열쇠'인가?

한 달 전인 9월 22일과 23일, 중국 북부 국경지대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우란차부시(烏蘭察布市) 화더셴(化德縣)에서는 한 무덤에 대한 발굴이 비공개적으로 이뤄졌다.우란차부시박물관 관계자와 화더션 문화국 관리 등이 참여한 가운데 후샤오농(胡曉農) 박물관 부관장의 지휘 아래 인부 3명이 무덤을 파고 발굴에 나섰다.

화더션 류즈젠썅(六支箭鄕) 따징고우춘(大井溝村)에 위치한 이 무덤은 3년 전 한국의 고미술품 수집가 김희용(59) 씨가 고고학적 논란이 되고 있는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을 한 옥) 31점과 인골을 발굴한 곳이다. 김씨는 흑피옥 31점과 인골 가운데 골반뼈만 꺼내어 모처에 보관 중이다.

흑피옥은 중국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유적지에서 공식 발굴된 적이 없고 조각상이 너무 정교해 학자들은 인근의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B.C.3000)를 모방해 만든 가짜라는 입장이 많다. 반면 베이징의 저명한 옥기 수장가인 주젼(朱震)을 비롯, 최초로 '흑피옥'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옥기 전문가 바이위에(伯岳)전 길림대 교수 등 민간 옥기 전문가들은 다년간의 경험과 실측 자료를 바탕으로 흑피옥이 진짜일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희용 씨가 16년 추적 끝에 2006년 한 유적지에서 다수의 흑피옥과 인골을 발굴하면서 흑피옥 진위 논란이 가열됐다. 게다가 서울대학교 공동기기원의 시료 분석 결과 흑피옥의 제작 연대가 무려 1만4300년 전후로 추정되면서 흑피옥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과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시료 분석대로라면 흑피옥은 구석기시대 후반에 해당되며 기존의 4대 고대문명보다 거의 1만년 이상 앞서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시료 분석을 의뢰한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는 "그러한 분석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한민족의 고대사를 포함해 종래의 인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라면서 "흑피옥 조각상의 정교함으로 미뤄 1만4000여 년 전의 '초(超)고대문명', 또는 '제1차 인류문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흑피옥 논란의 최대 관건은 제작 연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문제이다. 흑피옥을 깊이 탐구해온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는 "엄밀하고 과학적인 연대측정을 통해 실제 흑피옥의 제작 시기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흑피옥 출토지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하면 연대측정은 보다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9월 22일 오후 4∼5시쯤 확인 발굴해 수습하고 있는 인골 사진(왼쪽).

그러나 발굴을 주도한 우란차부시박물관 후샤오농 부관장은 인골을 파낸 후 무덤을 흙으로 덮어 발굴 현장을 훼손(오른쪽)하고 인골 발견 사실 등을 극비로 할 것을 현지인들에게 요구했다.

이에 김희용 씨는 2008년 중국 당국에 자신이 소장한 흑피옥 전부를 기증하는 대신 한국과 세계 각국 학자를 포함시킨 조사단의 공식발굴을 제안했다. 바이위에 전 교수도 김씨의 18년에 걸친 흑피옥 출토지 추적 노력을 높이 사 국가문물국 단지샹(單霽翔) 국장에게 국가 차원의 공개 발굴을 건의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국가 문물국은 김 씨가 구체적인 지점을 공개한다면 정식으로 발굴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26∼27일, 김 씨를 포함한 11명의 민간인과 중국중앙방송(CCTV) 기자 4명 등이 응웨이다(應偉達) 중국수장가협회옥기수장위원회 부주석을 단장으로 하여 흑피옥이 발굴된 현장을 확인하였다.

이후 공식 발굴이 계속 늦어짐에 따라 9월 23∼24일, 우란차부시박물관 후샤오농 부관장 주도 아래 김 씨가 발굴했던 무덤에 대한 재발굴이 비공개로 이뤄졌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서 비학술적인, 학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했다. 발굴된 인골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고, 발굴 후 무덤을 다시 흙으로 덮어버렸으며, 인부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모든 것을 비밀로 하라고 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인 이다.

김 씨의 부탁으로 현장을 안내한 이는 정황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남모르게 발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안내인을 통해 소식을 접한 김씨는 9월 말 후샤오농의 비학술적인 발굴과 현장 은폐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귀국했다. 김씨에 따르면 후샤오농은 발굴된 인골을 국가문물국이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네이멍구공작대 등 상급기관에 보고하지도 않고 연락이 안 되는 상태라고 한다.

김 씨는 "동북아, 나아가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유적지, 진위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유적지를 훼손한 이번 사건은 학자적 양심으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것으로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인골을 시급히 회수해 정확한 연대측정을 실시할 것과 공개적인 발굴과 연구를 거듭 촉구했다.
 
▲내몽골지역에서 1만년이전의 흑피옥 유물을 발견한 김희용씨

"인골 회수해 과학적 연대측정 해야" 흑피옥 유적지 최초 발견자 김희용씨 인터뷰

고미술품 수집가인 김희용 씨는 1990년 어느날 일본 간다(神田) 지역의 고서점에서 1940년대 중국 동북부(만주)에 거주한 적이 있는 한 일본 노인으로부터 '검은 칠을 한 옥기' 이야기를 듣고 이를 추적했다.

그리고 16년 만인 2006년 8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우란차부시 화더현의 한 초원지대에서 흑피옥 31점과 인골을 발굴했다. 이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공개 편지를 써서 이 사실을 알리고 공개 발굴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07년 8월 중국 신화사 통신의 자회사인 '신화미통'에서 김 씨가 최초로 찾아낸 흑피옥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김씨와 흑피옥이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 최근 흑피옥 유적지 발굴에 문제를 제기했는데..

"인류 문명사적 범죄행위로 학자적 양심으론 도저히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 우선 후샤오농을 비롯해 중국 당국이 인골을 회수해 과학적인 연대측정에 나서야 한다."

- 16년간이나 흑피옥을 추적하고 현재도 흑피옥에 전력하는 이유는

"처음엔 개인적인 '흥미'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흑피옥이 인류 문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계사적이라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을 갖게 됐다. 중국인도 모르는 흑피옥 유적지를 한국인으로 최초로 발견했다는 자부심이 흑피옥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세계에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 학계에서는 흑피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데

"무덤에 들어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인골과 주변에 장식된 흑피옥들, 그리고 고대 무덤 형식 등. 그리고 30년 넘게 유물을 다루다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심안(心眼)이랄까 하는 직감이라는 게 있다. 몇몇 과학적인 분석도 흑피옥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 흑피옥이 출토된 지역을 정천문명(井泉文明)이라고 명명했는데

"현장 주변에 우물과 샘이 많아 그렇게 이름 붙였다. 또 화산폭발을 추정케하는 커다란 호수의 흔적들이 보이는데 고도로 발달된 흑피옥 문명(초고대문명)이 지각변동으로 멸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 흑피옥과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

"흑피옥이 나오는 지역은 중국만의 고대문명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나아가 인류 최고의 고대문명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서 중국, 한국, 몽골 등 인접국가의 학자들과 세계적인 관련학자들이 참여해 발굴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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