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인의 중편소설 ] 곳고리2
“장님은 마을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노기 띤 이장의 큰소리에 맏상제가 이장에게 다가갔다.
“형님,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가 이 동네에서 궂은 일은 마다하지 않았는데 동네에 들어갈 수 없다니요? 아버지의 부탁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장지로 곧장 가지 누가 시체를 들고 마을로 들어온단 말인가? 장지도 멀지 않으니 그리로 가게나.”
이장의 말은 단호했다. 망자의 딸 설앵초도 지팡이를 탁탁 치면서 큰 눈을 더욱 치켜뜨며 이장에게 대들었다. 한바탕 상제들과 이장의 옥신각신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말없이 상제들 뒤를 따르던 늙은 남장 차림 여인이 다가왔다.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선소리를 할 테니 이장은 길을 비끼시게.”
“어르신, 여자가 선소릴하는 법이 어디답니까?”
“여자라고 하지 말란 법이 어딨는가? 내 손자 해덕이가 당부를 해서 내 미리 남정네차림으로 오지 않았는가? 보아허니 상두꾼 중 두 사람도 여자 아닌가? 내 이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 내가 이끌고 싶네. 이 사람만큼 그 수많은 망자를 이끈 사람이 또 어딨단 말인가? 그런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요령잡이도 없이 보내면 쓰겄는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창 임 여사의 말인지라 이장은 고분고분하게 물러섰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해덕은 가방에서 요령을 꺼내 외할머니 임 여사에게 건넸다. 앵초는 그런 해덕의 배려가 고마웠다.
상두꾼들이 다시 상여를 맸다. 임 여사는 상여의 앞머리를 잡았다. 그의 늙은 입이 열렸다.
(선소리) 정든님을 두고 어이가나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간다간다 나는 간다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북망산천 고갯길로 나는 간다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가세 가세 어서를 가세 우리 고향 어서를 가세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떴다 봐라 종달새는 천 질 만 질 구만 장이나 떴다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잘도나 헌다 잘도나 헌다 우리 당군들 잘도나 헌다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못 가겄다 못 가겄다 노자가 적어서 나는 못 가겄다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어렵구나 어렵구나 여기 가기가 어렵구나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선소리) 다 왔구나 다 왔구나 우리 고향 다 왔구나 (상두꾼) 어~허~ 어~허~ 못가겠네
그녀의 선소리는 명성에 맞게 상제와 상두꾼, 만장을 들고 가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망자가 들었나? 상여가 부르르 떨며 상두꾼들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인다. 살아생전 이런 꽃에 둘러싸여 누워보았는가?
꽃상여가 마을을 돌아 장지인 톱재에 도착했다. 듬성듬성 소나무며 밤나무가 멀찍이 서서 망자를 맞는 휘파람을 불어댔다. 상여를 내려놓고 무화(無花)의 꽃상여 헐어내니 망자는 하늘보고 누워있다. 언제 날아왔는지 까마귀떼 솔가지에 앉아 까윽까윽 검은 눈망울로 애달아 울어댄다. 상두꾼들이 준비한 삽을 들어 한 삽 한 삽 망자의 하늘 집을 만든다. 붉은 해는 더 붉어졌는데, 푸른 녹음은 더 푸른데, 상제의 통곡소리는 더 애닮는데, 망자는 아는가 모르는가. 망자를 뉘어 칠성판 덮어주고 상제들 순서대로 흙 한두 삽 떨궈 내니, 산자들은 망자의 모습이 흙에 덮일 때마다 하늘이 무너져라 더욱 자지러지게, 아이고 소리 꺼억꺼억 억장이 무너진다. 상제들 흙 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죽자 기절할 듯 발버둥을 쳐 댄다. 이승과 저승이 바로 흙 한 삽인 것을,
취토를 하고 나서 맏상주 석회를 섞은 흙을 한자쯤 채워 회다지한다. 상두꾼들 대나무를 가지고 임 여사의 소리에 발을 맞추며 돌면서 다진다. 광중에 나무뿌리나 뱀, 쥐 같은 동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더욱 꾹꾹 눌러 다진다.한바탕 축제가 끝나고 상제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섬주섬 물건을 챙겼다.
삶이란 생성의 한축에서 왔던 것이니, 육체는 흙으로 가되 혼은 또 하나의 생성을 가져오는 축복이니 애닮다 마라는 임 여사의 위로가 들릴 리 없는 상주들은 망자의 그리움으로 또 한바탕 목 놓아 울었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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