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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6

임서인 | 기사입력 2016/12/06 [13:23]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6

임서인 | 입력 : 2016/12/06 [13:23]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6

 

 

며칠 후, 앵초는 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먼저 만나자는 말에 태진은 가슴이 설레었다. 학교 매점에서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유난히 눈이 크고 목소리가 고았던 여자애를 보는 순간, 다음해, 앵초와 한반이 되자 행복에 겨워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다. 앵초의 눈에 잘 들기 위해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 그에게 호감을 갖고 대하는 줄 알았던 그녀가 대학을 졸업을 해도 똑같은 행동에 실망을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여기고 기다렸다.

 

어느 날, 그녀를 기다리는 골목에서 해덕과 다정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절망하여 그길로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마음 속 정인은 오로지 앵초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내에게 미안해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아내를 매몰차게 위자료를 듬뿍 주어 떼어버릴 때, 아내는 그의 이유 없는 이혼에 저주를 퍼부었다, 그럴지라도 개의치 않았다. 해덕과 앵초가 헤어졌단 소식은 그를 들뜨게 했다.

 

논현동에 있는 임페리얼팰리스호텔에서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았다.

 

“너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지는구나? 이 호텔의 분위기와 정말 잘 아울린다.”

 

태진의 매끄러운 말에 앵초는 빙그레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태진은 가슴이 울컥거렸다. 저 여인에게 자신이 왜 목을 메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비리가 폭로 될 때,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며 칼럼을 썼던 해덕이 그녀의 연인인 것을 알았을 때의 분노, 절망으로 죽고만 싶었다. 수일 고뇌를 하며 반드시 앵초를 해덕에게서 떼어내리라는 결심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고마워. 한 가지 물을게. 땅을 어떻게 생각하니?”

 

“땅을 어떻게 생각하다니? 질문이 애매하구나. 음.”

 

그는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이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콧등를 만졌다. 직원이 갖다놓고 간 아이스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앵초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의도로 묻는지, 어떻게 대답을 해야 앵초의 마음에 맞는 답을 할 건지 궁리를 했다.

 

“너는 농사를 지어 봤어?”

 

“아니. 머슴이 많았고, 아버진 농사보다는 사업을 해서 돈을 모으셨지. 땅은 그냥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애. 조상에게 물려받은 토지라서 굳이 팔 필요가 없었던 것. 음, 땅이란? 많이 가지면 좋은 것이 아닐까? 땅의 소중함이 내겐 없어서인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평의 백제농장을 보면서 느낀 것은 가진 자의 농간에 가장 많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땅이란 것. 왜 묻지?”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낭비적인 오물 생산자다. 인간은 그의 손길이 닿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그 자신까지도 황폐화시켰다는 프랭클린 히람 킹이 말했어. 너의 야욕은 너를 파멸시킬 거야.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어. 너의 소식을 접하고, 너의 성공한 모습을 보고 흐뭇했지, 네가 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말에는 가슴이 뛰었어. 너를 생각하며 내 미래를 생각도 해봤어. 내 옆에 있는 너로 인해 내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미소가 피더라. 딱 잘라 물을게. 나무랑 꽃 네가 없앴니?”

 

“왜 나라고 생각하지?”

 

“엄마에게 전화했었어. 엄마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지. 엄마가 잠이 오지 않으셔서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어떤 사람들이 나무를 뽑으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 이름이 나왔대. 엄마는 며칠 고민을 했단다. 해덕이 나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꾼이 되려는 것이 못마땅했대. 딸의 앞날을 망쳤다는 생각에 해덕이 미웠지만, 혹시 좌절하고 시골을 떠나 다시 대학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엄마는 눈을 감고 해덕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거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어. 악한 일을 하고 탄로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야. 해덕 오빠에게 말하기 전에 네가 변상하고 정읍을 떠나. 땅은 농부가 소유해야지 사업가가 소유해선 안 돼. 그 탐욕은 결국 그 기업인을 파멸시킬 거야. 농부의 얼굴 뒤에는 좋은 옷이나 좋은 환경을 초월하는 고귀한 정신이 들어있어. 어제 밤에사 아버지를 생각하며 느낀 거야. 우리 아버지는 눈먼 손으로 더듬으면서도 농사를 지었어. 그 지은 농사로 내가 학교를 마쳤어, 우리 형제들을 키우셨어. 난 아버지가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밭과 논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가는 것을 보았어. 혼자서 말이야. 두 분이 나이가 들어 힘에 겨워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이웃에 하룻논으로 주었다. 그때 아버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어. 이제 농사를 못 짓는구나. 나는 다 살았구나. 내 모든 생을 농사를 위하여 바쳤는데 이제 농사를 짓지 못하면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하고, 그 소리를 이제야 다시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아버지에게는 농사가 전부였어. 삶의 의미가 농사짓는 거야. 날마다 흙을 만지며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들고 있었어. 내 아버지는 아주 정직한 삶을 사셨던 거야.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갈 줄을 아셨던 거야. 해덕 오빠가 새로운 희망을 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것을 미련하게도 이제야 깨달았어. 그런데 그 희망이 위협을 받고 있어. 해덕 오빠가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 내게 준 편지인데, 화가 나서 읽지 않고 내팽개친 것을 어제야 봤어.”

 

앵초는 고이 접은 편지를 펼쳐 태진에게 내밀었다.

 

 

너는 어서 오너라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물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 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츰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불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돌아오고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기빨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비들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 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너는 뉠 뉠 뉠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태진은 시를 다 읽고 앵초쪽으로 종이를 디밀었다. 그리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박두진 시인의 너는 어서오너라야. 해덕 오빤 농촌의 황폐화를 막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 고달픈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것이었어. 그들이 내려오면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시설을 갖추려고 했던 거야.”

 

앵초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음이 섞인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나에게 와. 그럼 내가 문 선배보다 몇 수십 배를 보상할게, 그곳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도 끌어드릴 수도 있어. 내 아내가 되어 줘.”

 

그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앵초에게 건넸다. 앵초는 받아들고 뚜껑을 열었다. 묵직한 다이아반지였다. 그녀는 상자 뚜껑을 닫고 그에게 주었다.

 

“난 받을 수 없어. 땅을 사랑하지 않는 널 사랑할 자신도 없어. 이제야 내가 해덕 오빠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네가 내 아내가 되지 않으면 난 문 선배를 고향에서 더 있지 못하도록 쫓아낼 수 있어. 문 선배는 위험한 인물로 정보원 명단에 올라와 있어. 매도하고 매장하기 쉬워.”

 

태진이 앵초를 협박했다.

 

“태진아, 나를 잘 봐. 내 눈을 똑바로 봐. 난 정읍여인이야. 의지의, 한번 마음먹은 바 절대로 꺾지 않는 불굴의 정읍여인이야. 너도 정읍 남자지? 정읍남자는 의리가 있어.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동학정신이 있다고. 너에게 숨겨진 정의의 빛을 발견해 봐. 우리의 피는 순결하고 고상해. 정읍 농민회만큼 굳세고 활발한 농민회도 없을 거야. 불의에 가장 앞서서 깃발을 날려. 땅의 정직함을 외면하지 마라. 백제농장을 경영하는 네가 땅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은 거만하고 교만한 것이다. 땅은 너를 파멸시켜버릴 지도 몰라.”

 

“난 월급쟁이 사장이야, 망해도 우리 회장이 망하지. 난 겁날 것 없어. 난 오직 너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전부를 다 버려도 좋아.”

 

“난 너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난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절대 살 수가 없어. 천금을 준대도 나는 내 사랑하는 해덕이 오빠에게 가겠어. 네가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우릴 방해한다고 해도 우린 굴하지 않을 거야. 하늘과 땅이 우릴 도와줄 거야. 나는 네가 더 이상 무모한 짓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난 이미, 100억대의 재산을 가진 경수오빠한테 투자를 권유했어. 경수오빠와 며칠 있다 내려갈 거야, 그동안 말미를 줄 테니 잘 생각해라.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다오. 그럼 이만.”

 

앵초는 편지를 집어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호텔을 나왔다. 문 앞에 서서 서울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쾌청했다. 그녀의 긴 방황은 끝났다. 사랑하는 임의 품에 안기리라고 했던 그 마음을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고달팠던가? 바쁜 일상, 술잔을 주고받으며 온갖 세상 말을 주고받으며 헤프게 웃음을 날리고 그것이 행복이라며 우겼던 자신, 행복은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처럼, 어제의 앵초가 오늘의 앵초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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