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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호남장병들은 영웅이었다"

유석춘씨, 위기에 처했을때 목숨던진 호남을 모독말라

김환태 칼럼 | 기사입력 2010/06/26 [07:33]

"한국전쟁, 호남장병들은 영웅이었다"

유석춘씨, 위기에 처했을때 목숨던진 호남을 모독말라

김환태 칼럼 | 입력 : 2010/06/26 [07:33]
민족공멸 지역갈등 부르는 전쟁 안된다

2010년 올해 6월25일은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되는 날이다.3년 전쟁끝에 휴전이 되기는 하였지만 한국전쟁은 정전상태로 현재 진행형이다.그동안 남북간에는 첨예한 군사적 대치속에 크고작은 충돌이 되풀이되는등 첨예한 긴장상태를 유지해 왔다.이러한 남북간 군사적 긴장상태가 신뢰회복을 통한 화해 분위기로 바뀐건 김대중 정부가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햇볕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적 남북관계도 민족공멸적 이명박 가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끝나고 말았다.구체적인 대안도 없는 슬로건식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압박 기조아래 기다리기식 강경전략으로 남북관계가 파탄난데다 안보무능으로 자초한 천안함 안보국난 사태로 전면전 일보직전 상황이라는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 재발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말 안타깝고 통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정말 다시는 이땅위에서 피를 나눈 동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전쟁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호전적 전쟁광 지도자들의 그릇된 통일업적에 수백만 고귀한 인명이 희생되고 재산과 국가산업시설이 파괴되는등 삼천리 금수강산이 초토화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족공멸외에도 전쟁이 반화합적 지역차별로 악용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에서도 6.25와 같은 전쟁은 기필코 재발되어서는 안된다.지역차별을 그 이유로 든것은 6.25한국전쟁이 호남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등 호남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이용하는 해괴한 작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소위 6.25한국전쟁 참전비율을 지역적으로 분석하여 비호남인들의 호남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정당화시킨 장본인은 보수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다.

6.25참전율이 지역감정,차별로 작용했다는 유석춘

유교수는 <한국의 사회발전:변혁운동과 지역주의>(유석춘 저)에 실린 "한국전쟁과 남한사회의 구조화(유석춘,이우영,장덕진 공저; 1990년)라는 논문을 통해 6.25 전쟁 당시 지역별 참전율을 비교분석,전쟁에 참여하지 않거나 전쟁에 남쪽편으로 참전한 자들의 비율이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특히 그 차이가 영호남간에 매우 현저하다는 점이 호남에 대한 차별감정을 심화시킨것처럼 제멋대로 결론을 냈다.


유석춘은 "우선 영남지역 거주자(41%)와 호남지역 거주자(27%)의 남쪽 참전 비율이 현격하게 달리 나타나고 있다. 나머지 지역 거주자의 남쪽참전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남쪽 참전 비율과 거의 비슷한 35~36%를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참전하지 않은 비율은 남쪽참전의 비율과 대략 반대의 경향을 보여준다. 호남거주자(70%)가 가장 높고 영남거주자(55%)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따라서 해방당시에 영남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남쪽의 편에서 전쟁에 참여한 비율이 가장 높았고 호남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가장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유석춘은 이어 이러한 사실은 참전강도의 거주지역별 평균값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면서 덧붙이기를" 참전강도의 거주지역별 평균값이란 전쟁 당시의 소속에 따라 정규 국군(3), 경찰(2), 학도병-반공유격대-자위대(1), 의용군(-1), 공산유격대(-2), 인민군(-3)점의 점수를 부과하여 가중치를 두었을 경우의 평균값을 말하는데 참전강도를 보명 영남이 .3677로서 전국평균인 .3139를 넘어 가장 강력한 수치를 보이며 호남은 .2391로서 전국평균에 크게 못미치는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6.25 당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전라도는 70.1%인데 반해 경상도는 55.2%에 불과했고(전국 평균은 61.2%), 특히 남쪽편에서 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자의 비율이 경상도는 40.8%로서 전국 최고였던데 반해 전라도는 26.9%로서 전국평균인 35.1%에조차 크게 못미치는 전국 최저비율이었다는 말이다. 또한 남한의 편에서 참전한 참전강도에 있어서도 영남은 전국평균을 훨씬 넘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지만 호남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6.25한국전쟁은 영남인들이 피흘려 싸워 자유를 지켰고 이와 반면에 호남인들은 마지못해 몇몇 참전하고 나머지는 구경하다 영남인들이 지켜낸 자유 대한민국에서 공짜로 자유를 누리는 놀부인생들이라는 것이다.

영호남의 지역갈등 원인 분석차원에서 문제의 논문을 쓴 유석춘은 결론적으로 이러한 6.25 한국전쟁 참전율의 차이가 오늘날 영호남 지역감정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즉 종전 후 전쟁영웅과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영남이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했던 반면 전국에서 참전자가 가장 적었던 호남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권력질서가 30년 가까이 이어지자 마침내 호남이 이에 반발하고 일어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석춘은 그의 다른 논문 "지역감정의 사회심리학"에서 "광주사태로부터 출발점을 찾을 수 있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기존의 지배질서 즉 영남 중심의 참전세력에 의한 정권의 지속을 거부한 저항운동에 다름아니었다"라며 국가차원에서 숭고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천박한 권력투쟁으로 폄훼하였다.

객관적 전장상황과 전공을 도외시한 유석춘의 반화합적 황당주장

유석춘의 이러한 주장은 논문발표 당시 모든 일간지에 가감없이 보도된바 있다.언론보도후에 어느누구도 유석춘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유석춘의 왜곡된 주장은 사실로 받아 들여져 호남인에 대한 비호남의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데 일조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유석춘의 지역별 6.25참전비율은 비합리적 황당무계 그자체로 일고의 가치도 없을뿐 아니라 유석춘의 학자적 양심을 의심케 하고 있다.유석춘의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은 당시 전장상황과 전투공적을 도외시한 제멋대로식 자의적 숫자놀음으로 순진한 국민을 기망하고 결과적으로 국민화합을 저해했기 때문이다.

우선 유석춘의 영남지역민이 가장 많은 숫자가 전쟁에 참전,피를 흘렸다는 지역별 전쟁 참전율 분석이 가당찮은 것은 한국전 당시 북한군에 점령당하지 않고 끝까지 아군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영남지역 참전율이 높은건 지당만당한 것이다.국군이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삼아 영남지역으로 후퇴하여 대구 이남 영남지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었다.이를 모르지 않는다면 당연히 한사람이라도 더 참전하는게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 영남사람들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당시 국군이 금강 방어전략을 세우고 대전 이남으로 후퇴하여 금강을 최후 저지선으로 삼아 호남을 지켜주었다면 당연히 호남장정들의 참전율이 높았을 것이다.다른 지역과 비교해서도 마찬가지다.맥아더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과 수도권이 조기 수복되고 이어 국군의 반격작전이 경부가도를 통해 북으로 진격하게 되면서 인접 수복지역의 장정들이 우선적으로 징집될 수밖에 없었던 반면 호남은 변방으로 취급된데다 도주 북한군의 지리산 유격투쟁으로 행정력,치안회복이 늦어 상대적으로 징집등 병무업무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현실을 유석춘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문제는 또 참전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참전했어도 오합지졸로 제역할을 못했는지 참전숫자는 적었어도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 전공을 도외시했다는 점이다.영남출신이 피흘린 참전용사의 40.8%인 반면 호남출신은 26.9%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국전 전황을 뒤바꿀 정도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남출신 장군이 몇이나 될까.한국전 명장으로 손꼽히는 백선엽,정일권,김종오,이형근,송요찬,최영희,유태흥,장창국,장도영,김백일,채명신 모두 영남출신 아니다.경무대에 들러붙어 지당장관,눈물장관이란 별명에 주제도 모르고 대통령 명령만 있으면 평양,원산을 점령할 수 있고 당장이라도 밀고 올라갈 수 있다고 큰소리친 신성모 패전 국방장관이 경남의령 출신일 따름이다.

호남장병이 피흘린 다부동전투,전쟁영웅 호남출신 임부택,김점곤,박정모

동족과의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게 반드시 자랑스런일은 아니지만 당시는 민족을 떠나 적대관계로 싸운만큼 당시의 전투공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호남출신이 참전율은 낮았는지 모르지만 전투에 임했을때마다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한국전쟁 당시 전사에 길이 빛날 전공을 세운 부대는 백선엽장군이 이끈 제1사단과 김종오장군이 이끈 제 6사단이다.1사단은 호남에서 출발한 관계로 사단병력 거의가 호남출신 장병이었다.다부동을 빼앗기면 대구가 함락되고 부산까지 내줄지 모르는 백척간두 위기에서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 약 21,500명의 병력과 T-34전차 약 20대(후에 14대 증원)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격을 해온 북한군을 궤멸시켜 대구를 사수하는데 결정적인 공적을 세웠다.대구,영남을 지키기 위해 호남장병들이 피를 흘린 것이다.

호남장병이 주축인 1사단은 50년 10월 19일 평양을 최선봉으로 입성하는등 전투에 임했을때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혼신을 다해 싸웠다.지금은 작고하였지만 필자의 지리산 자락 고향 아랫마을 출신 참전용사는 까막눈에 세상구경한번 해본적 없는 순진무구한 두메산골 촌사람이었지만 피의 능선 전투에서 후퇴명령을 받지 못한채 바께츠에 담아놓은 수류탄을 밀려올라오는 적을 향해 밤새 투척 홀로 고지를 사수한 공로로 충무무공훈장을 수상한바 있다.

또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전쟁영웅으로 유명한 임부택장군과 김점곤 장군이 호남 출신이다.태극무공훈장을 두번이나 받은 전남나주 출신의 임부택장군은 6.25전쟁 초기 남침한 북한군을 유일하게 격퇴하고 진격한 것으로 유명한 김종오장군이 지휘한 6사단 소속 7연대장으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면적인 불법남침을 도발했을 당시 춘천 정면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1949년 12월 19일 제7연대장에 부임한 임부택 중령은 부대 교육훈련과 38선 방어진지 구축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7연대는 북한군이 남침하기 이전에 대대 전투훈련을 완료하였으며, 당시 장교들이 기피하던 풍조를 깨뜨리고 대부분의 장교들을 보수교육인 고등군사반에 입교시켜 자질 향상에 주력하였다.
또한 춘천이 38도선에서 불과 13㎞ 남쪽에 위치한 사실을 감안하여 처음에는 38선 주요 접근로에 토치카 및 유개호를 구축하고 기성진지를 보수하였다. 그러나 48㎞의 광범위한 정면을 모두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춘천을 고수할 수 있는 주저항선의 진지가 없음을 착안한 임부택 중령은 춘천 주민과 학도호국단의 지원을 받아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변과 그 북쪽에 춘천 분지를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 구축작업을 시작, 개전 1개월 전인 5월 하순에 공사를 완료하였다.

1950년 6월 25일 04시경 38도선 전면에 걸쳐서 남침이 개시되어 북한군 제2사단과 제7사단은 국군 제6사단 7연대와 제2연대가 담당하고 있던 춘천 북방과 인제 남방지역을 동시에 공격해왔다. 적 제2사단은 제7연대 지역을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일부 병력을 북한강 계곡으로 침투시켜 제7연대의 퇴로를 차단해 이를 춘천 북방에서 섬멸시키려 하였다. 이에 제7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북한강 계곡의 제3대대와 소양강 북방의 제2대대에 각각 현 진지를 고수토록 지시하고 포병은 춘천 북방 산발리와 수리봉에 저지사격을 지향토록 지시하였다. 이후 통신이 두절되자 자신이 직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양강 건너 우두산에 연대관측소를 추진하였으며, 예비인 제1대대를 북한강 계곡에 투입하였다.

이러한 연대장의 효과적인 지휘로 제7연대는 병력과 장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하면서 진지를 고수하였으며, 포병은 화력을 집중하여 남진하는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6월 25일 14시경 춘천 북방 옥산포에서 방어하고 있던 제7연대 57㎜ 대전차포 제2소대장 심일(沈鎰) 소위는 57㎜ 대전차포로서는 적의 전차나 자주포를 파괴할 수 없음을 알고 특공조를 조직하여 화염병과 수류탄으로 SU-76 자주포 2대를 파괴함으로써 뒤따르던 8대를 북쪽으로 도주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임부택 중령의 제7연대 장병들의 피나는 저항으로 개전 당일 춘천을 점령하려던 북한군의 기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제7연대 장병의 용전분투로 적 제2사단의 춘천공격이 부진하자 적 제2군단장은 제7사단 주력을 인제 방면으로 전환하여 소양강 북안을 따라 춘천의 동측방 공격에 가담시키려 했으며, 적 제2사단의 진출이 지연될 경우 북한군 작전계획 전반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춘천 점령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서울 공격의 조공부대로서, 6월 25일 당일에 춘천을 점령하고 즉각 수원 방면으로 돌진시켜 서울 방어를 위해 집중될 국군의 증원부대를 차단함과 동시에 한강 이북의 아군을 포위.섬멸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만일 적의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유엔군이 참전하기 이전에 부산을 점령당할 확률이 높았다. 제7연대의 성공적인 방어는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투입된 국군 주력부대로 하여금 전열을 재정비하게 하여 한강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후 제7연대는 전선의 균형유지를 위해 축차 지연전에 들어가 음성 북방의 동락리에서 이천-장호원-충주 축선을 따라 남진중인 적 제15사단 48연대를 기습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격퇴함으로써 개전 이래 가장 통쾌한 국군의 승리를 가져왔으며, 부대원 전원이 일계급 특진하는 유례가 드문 대승을 기록하였다. 또한 이 전투는 전술적으로도 진천-음성-진천으로 이어지는 저지선을 형성, 아군의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음성 동락리전투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제7연대는 괴산.연풍.조령.옥녀봉 등지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아울러 문경.점촌을 거쳐 함창에서 적에게 타격을 가한 후 신령에서 최후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저지하였다.

이후 9월 15일부터 반격에 나선 제7연대는 군위.의성.안동.점촌을 수복하고 문경.충주.원주를 탈환하며 북진을 계속하여 10월 4일에는 화천을 점령하였다. 이어 평강을 탈환한 연대는 험준한 낭림산맥을 이용하여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섬멸하고 성천.순천.개천.희천을 점령하는 등 북진을 거듭하였다. 초산지구를 점령하라는 유엔군사령부의 명령을 하달받은 연대는 풍장과 고장을 거쳐 10월 26일 초산의 압록강변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합창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급변하여 사단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은 제7연대는 10월 30일 압록강을 뒤로 하고 철수의 길에 올라 38도선 이남의 경기도 광주-여주선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4월 제6사단 부사단장으로 명령을 받은 임부택 대령은 사창리전투에서 중공군 2개 사단의 인해전술로 인해 용문산까지 후퇴하여 방어선을 구축하였다.제2차 춘계공세를 통해 가평을 점령한 중공군 제63군 예하의 3개 사단은 제3차 춘계공세를 개시하여 제6사단을 공격해왔다. 전 화력을 총동원한 협조된 탄막과 항공지원, 역습 등으로 적을 격멸하고 반격을 개시한 제6사단은 3,500여 명의 포로와 2만 명 이상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고 사창리전투에서의 실추된 명예를 되살렸다.

이러한 공로로 임부택 장군은 2차례의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소장으로 예편하였다.임부택장군과 쌍벽을 이루는 광주출신의 김점곤장군 또한 청사에 길이 빛나는 무적필승의 전공을 세웠다. 김 장군은 국방경비사관학교(現 육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군에 입문했다. 1946년 6월 '10115' 군번을 부여받고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했다.

개성 이서 지역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던 제1사단 12연대의 부연대장으로 임명된 김장군은 6.25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차 1개 연대로 증강된 북한군 제1사단과 제6사단에 맞서 개성, 문산, 파평산, 봉일천 일대에서 방어전을 전개했다. 그리곤 한강을 넘어 시흥으로 철수했다.이후 적 제15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고 지연시킨 음성지구전투를 비롯해, 제15사단을 기습하여 이들의 남진을 저지시킨 화령장전투에 참여했다.또한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전개하며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할 무렵 제6사단과 함께 전개한 영강전투에 참전, 북한군 제2군단의 침공을 저지하였다.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한 제1사단은 대구 북방의 왜관과 다부동 일대에서 제105전차사단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2군단의 8월 공세를 좌절시키고 대구를 사수한 다부동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파리를 지키기 위해 연합군이 펼쳤던 ‘베르뎅전투’에 비유될 만큼 처절했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였다.김점곤 중령이 지휘하는 제12연대는 특공대를 편성하여 적 전차 4대를 파괴하는 등 이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김장군은 6.25발발 초기부터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 압도적인 지휘력과 용병술을 보였다. 제1사단 12연대장으로 재임하면서 치열한 접전을 거듭했고 난공불락을 호언하던 평양을 함락시켰으며 평양에 입성한 제12연대는 재정비할 여유도 없이 북진을 계속했다. 10월 25일 청천강변에서 적 제1사단의 잔여부대 병력 2개 연대와 강계로부터 남하한 8로군 제71단 약 8,000명으로부터 반격을 받았다.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공격으로 전세의 불리함을 판단한 김 대령은 주도면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사단 공격제대로서 수차에 걸친 맹공격을 감행, 적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10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적을 연파하고 청천강을 넘은 제12연대는 안주를 거쳐 진격을 계속하여 태천에 도달하였으나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평양·사리원을 거쳐 38도선 이남까지 후퇴하였다.

이후 김점곤장군은 제1사단의 우익연대장으로서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부 임진지구전투에 참전하여 적의 제2차 춘계공세를 무력화시킨다. 이때 발휘한 탁월한 부대 지휘력과 임기응변의 기지 및 전략은,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 안개를 이용하여 침공해 온 적의 대병력을 포착해 섬멸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지척에 있는 수도 서울을 방어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김장군은 시종일관 진두지휘를 통해 적의 대병력을 섬멸했고, 인접부대인 미 제3사단 전차중대와 보전협동으로 적에 이중 포위된 영국군 42명을 구출한다. 제1사단은 임진지구전투에서 8,000여명의 적을 사살하고 42명을 생포하는 대전과를 거두어 적의 제2차 춘계공세를 무력화시키고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처럼 개전 초기부터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한 김점곤 장군, 문산전투를 시작으로 청주, 음성, 무극리, 화령장, 영강전투 등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무리없이 지휘한 후 낙동강방어선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다부동전투에 임하였다. 최후 보루로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작전이 혈전으로 거듭된 다부동전투에서 그가 보여준 지휘력과 용병술은 천부적인 그의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었다.이와 같이 철두철미하고 사려 깊은 지휘판단으로 그는 1953년 8월 27일 정부로부터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1962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김점곤 장군은 아직도 우리 곁에 6.25전쟁의 영웅으로 함께 하고 있다.

또 빼 놓을 수 없는 호남출신 한국전쟁 영웅이 있다. 2010년 05월 06일(목)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한 박정모 해병대 예비역대령이다.전남 신안출신의 박 대령은 해병 소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전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장본인이다.해병 소대장으로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고인은 열이틀 만인 9월27일 오전 6시 10분에 숨어 있는 적의 저격 위험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중앙청 옥상에 걸려 있던 적의 인공기를 걷어 내고,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게양했다.

박대령이 태극기를 게양한 다음날인 1950년 9월28일 국군과 연합군은 적군을 내몰고 수도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당시 중앙청 태극기 게양과 관련해 해리 트르먼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공훈'이라는 내용의 표창장을 한국 해병대에 전해 무공을 치하했다.이후 고인은 최전선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해병의 상징이 되었으며 수도 탈환전투,금곡지구전투,원산상륙작전,화찬댐 탈환작전등에서 세운 공로로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1961년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국가운명이 백척간두 위기에 처했을때 목숨던진 호남을 모독말라

이처럼 호남 출신들은 그동안 영남중심 지배권력에 의해 6.25한국전쟁 당시 국체 보존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나라를 지키고 뛰어난 지휘통솔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활약을 펼쳤음에도 그러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이러한 상황하에서 연세대 교수 유석춘의 객관적 사실을 간과한 황당한 6.25 참전율을 지역감정,호남차별에 연계시켜 참전율이 높아 지배세력의 지위를 누리는게 당연한 영남인들 중심의 권력에 나라지키는데 가장 적게 피흘린 호남출신들이 저항하는건 부당하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5.18광주항쟁까지 이러한 권력투쟁의 연장으로 규정하였다는건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사실 영남의 대구 이남지역이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가족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여 오늘날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바탕을 마련하고 전쟁중 왕성한 사업활동으로 한국 유수의 재벌이 된 삼성,엘지,지에스,한일등이 누구 덕분이던가.다부동 대승으로 대구를 사수한 호남장병,수도권,충청등 비영남 지역 장병들이 낙동강 방어전투에서 목숨을 바친때문이었다.

국방수장의 책무는 소홀히 한채 경무대에서 살다시피하면서 대통령 이승만이 한마디하면"지당하십니다,각하" 방귀를 뀌면"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온갖 감언아부를 일삼고 이대통령이 부대 시찰시에는 수행하면서 이대통령이 한마디할라치면 감격스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 지당장관,눈물장관으로 유명한 영남출신 신성모장관이 자신의 책무소홀과 아군의 전력은 생각하지 않고 " 대통령 각하의 북진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 밀고 올라가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사리원 저녁은 평양에서 먹고 원산까지 점령할 수 있다"허풍을 떨었다.

이러한 신성모장관의 북진운운과 허풍에 놀란 김일성이 선제적 남침을 감행하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성모는 6.25전쟁발발과 패전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이처럼 신성모와 군 수뇌부 이승만정권이 자초한 전쟁에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바쳐 싸우고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전쟁영웅에서 보듯 불리하던 전세를 바꾸는 전공으로 영남수호에 크게 기여한 호남장병들과 농사지어 군량미를 조달한 호남인들을 전쟁 참전율이 낮기 때문에 정치,경제적으로 쪽박을 차는게 당연하다는 식의 후안무치한 엉터리 황당주장을 공개적으로 사실화하여 호남을 모독하고 분열을 조장한 먹물깡패 유석춘 같은자들과 어찌 해와 달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김대중의 민족평화를 종북으로 폄훼하고 전쟁불사를 외치는 사이비 보수 패권집단,호남으로 하여금 인내의 한계를 넘게 하는 이들의 어떠한 기도도 이제는 정말 정면 돌파하지 않을 수 없다.
[김환태 국민뉴스 발행인]
애국 10/06/28 [21:20] 수정 삭제  
  몇일전 300만명 남북민족이 숨진 6.25비극이 터진지 60년째되는날이다
과거 전범일본을 갈라야하는데 미국이 주도한 조선 강제분단때문에 만든 6.25같은 비극을 막기위해
평화통일로 향하던 김대중 노무현 국민정부때 평화통일의 걸림돌인 미군의 전시작전지시권을
자주국방위해 반환을 요구해 미국이 주겠다던 전시작전권까지



오사카태생 뉴라이트회원인 친일파정권이 고향도 속이고 선거법위반 당선된뒤
일정때 일본에 충성하던 친일파들이 해방후 미국에 충성하듯 미군이 도로가지시고
한국군을 식민지처럼 계속 통솔하란 군사정권이 변한 사대매국정권의 매국행위가 너무 한심해 이글을올린다

요즘 천안함을 빙자해 남북전쟁위기만드는 오사카정부와 뉴라이트매국세력의 준동과
자기들 이익위해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고가는 미국과 일본의 음흉한 흉계를 물리쳐야하며

여론조사에서도 어떠한일이있어도 민족간 전쟁은 막아야한다는 국민여론이 90%였듯이
요번 지방선거에서 방송장악 편파방송과 선관위장악 부재자표 바꿔치기등 불법저질러도 한나라당 냉전세력에 철퇴를가한것이며



국가와 국민은 동급이고 국가를 위해선 목숨걸고싸우고 북한이 이유없이 침략한다면 맞서싸워야겠지만
지금처럼 미국과 일본이 짜고 친일파 뉴라이트정권을 이용 전쟁위기만들듯이

헌법에 기본이 평화통일인데 평화통일 방해하는 외국위해 반국가 반민족 매국행위하는 정부는 국가가 아니므로
국민들은 냉정히 판단해 누가 한국을 망치려는지 철저히 분석하고 행동해야할것이며
뉴라이트 매국정권에 무조건 추종하며 전쟁불사한다는 일부 똥별들보다 진정 국가와 국민위한 애국군인이되어야한다



과거 미국의 조종받는 친일파가만든 군사정권에선 미국이만든 이념싸움으로
반공이란 이념무기로 평화통일원하는 애국국민이나 부패정치에 반대국민을 빨갱이나 간첩으로조작하다가
김영삼과 군사정권이 야합후 민주화는 조금 발전했지만 여전히 평화통일보다는 남북냉전을 요구하였고



전두환불법쿠테타 당시 군대이동권과 총기학살권을 미군이 쥐었는데
미군이 허가해줘 불법쿠테타 반대하던 애국국민 학살후 군사정권이 집권했다고
다른나라선 미군이 기지임대료내는데 우린꺼꾸로 매년 2조원 미군월급등 주둔비와
중국견제 미국이익주둔인 서해안기지건설비로 30조바치기로했는데 이명박이 50조로 더퍼주고



전두환 노태우는 외국빚끌여다 지금 고장잘나는 미국서 당시 폐기처리하던 F5기종등
뒤로 뇌물받고 고철무기와 멀쩡한 발전기를 수입교체하는둥 차떼기당과 부정축재로 마구써
김영삼때 외채만기와 뇌물받고 부패기업에 부정대출로 외국빚 못갚아 IMF국가부도만든뒤



김대중씨 당선후 남북냉전을 평화교류로 바꿔 한반도평화이뤘다고 노벨상까지줬는데
친일파가 변신한 수구보수세력이 노벨위원회에 북한에 돈주고 남북교류한다는둥
음해하며 노벨상못타게 방해로 외국인들도 같은민족간 싸우는 이상한 국민이라 욕먹었듯이
군사정권과 김영삼이 망쳐논 IMF를 극복하였고 김대중 임기중 남북교류협력기금이 총 50억원 정도 금액으로 남북냉전 국방비지출을 엄청줄였으며 남북교류 물꼬터



노무현정권들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만들어 북한을 시장경제주의로 이끌듯 평화통일로 향하였고
서해어업평화협정만들어 서해안 어부들 평화롭게 어업에 전념할수있게 만들었듯이
남북간 평화통일로 향하는 한반도 평화시대를 만들었고 경제도 많이살렸는데



그러나 이를 시기하는 나라가있었으니 해방후 전범일본에게 조선서 약탈한 금괴와
731부대살상무기 정보받은 미국이 일본과 짜고 일본대신 조선을 가르기로 하였고
당시 독일처럼 일본을 가르자한 쏘련을 미국이 힘으로 누르고 조선을 강제분단시킨 미국과 일본이



독립군이 처벌하려던 친일파의 매국정신이용하려고 구출후 우파라 변신시키고 미군정과 군경 요직에기용
조국분단반대와 미쏘군철수 요구하던 김구선생님등 독립군과 애국국민을 전국서 암살과 학살하여 미국의 강제분단을도왔고
남북이념싸움만들어 6.25비극과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 분명한 책임이 미국 일본에 있으며


일본은 남북전쟁이용 전쟁물자판매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듯이 한국인 죽건말건 전쟁부추기는것이며

미국도 남북분단이용과 친일파변신 매국정권이용 100조원이상 한국돈 펑펑쓰면서 중국 러시아견제 미국이익위해 한국에 주둔했는데
평화통일되면 분단이용한 한국에 공짜주둔도 힘들겠고



일본역시 친일파이용 싸구려배상한 한국과
철저히 침략배상하라는 북한이 뭉친 통일강국에 독일처럼 철저히 배상해야겠고 독도도 못침략하고
미국과 일본이 조선을 강제분단시킨 책임배상도 해야할테니 죽어라 평화통일방해하는것이며



그래서 미국이익이면 통킹만조작처럼 타민족과 타국을 침략하거나 학살한 미국이
의회에서 통과시킨법이 평화통일방해와 냉전조작세력 지원법인 북한인권지원법을 통과시켰다



그배경을보면 미국과 일본이 자국의 이익위해 평화통일방해하려고
냉전조장위해 우리도있는 북한원자력발전소를 핵무기만든다고 협박해
핵발전소 가동대신 중유와 중유발전소 지어주기로 제네바협정을 맺었는데
미국일본이 깨트리고 북한을 경제압박 한국보다 잘살던 북한동포들 굶주리게하고
선제공격위협에 참다못한 북한이 2006년 처음 핵실험하였고
3년전엔 핵실험공장 파괴하면 경제봉쇄 풀어준다 꼬드긴후 북한이 파괴하자
또 다른핑계만들어 북한을 탄압하는 미국과 일본의 더러운 속셈이며



이에 국민정부가 평화통일위하고 외세에 만들어진 6.25같은 민족비극을막기위해
유엔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북한탄압에 중간자적 입장을취하자
해방후 친일파양성처럼 미국이 남북간 평화통일방해와 남한내 친일파같은 매국세력양성하려고
북한인권지원법이란 이상한법을만들어 친일파가만든 한나라당을 지원하였고 친일파 뉴라이트가 급부상하였으며



친일파가만든 조중동과 재벌개독교신문지원과 일부탈북자를 돈주고 매수하고
한국내 수구꼴통인 신해식과 서정갑과 민족간 전쟁하라는 사이비부패목사인 김홍도와 비슷한 사이비목사들을 초청
남북냉전조장하고 평화통일로 향하는 김대중과 노무현정권을 비난하라고 미국간첩처럼 공작비를 주어

서정갑과 신혜식이 노무현 김대중씨를 쌍욕과 살해협박하였고 툭하면 불법인 까스통에 방화에
탈북자들도 정부비방과 국제비방금지법위반인 삐라에 미국서 받은 딸러넣는둥 외환관리법 위반저질러도
미국이 한국정부에 압력 미국간첩들을 체포못하게하였고 결국 미국작전이 성공하여



노무현도 집권말기에 항복하듯이 한나라당과 연정하자는둥 김구선생님을 실패한 지도자라고 미국편들고
증거가확실한 BBK회사 특검도 이명박편들어 한나라당이 승리하게만든 일등공신으로
한나라당이 도로와 하천등 잘꾸며준 봉하마을서 한나라당 보호받으며 편히살려했는데


믿을당을 믿어야지 결국 만만한 노무현에게 이명박이 잘못한 행정까지 뒤집어씌우자
노무현이 반발 한나라당비리를 다까발린다하자 자살인지 타살시킨것이다



오사카태생이 포항이라 사기쳐 선거법위반 불법당선된 아키히로 맹박상은 뉴라이트회원으로
당선후 곧 일본건너가 독도를 일본땅으로 조금기다리다 올리라하였고
일본이 침략 배상이나 사과를 한국에 할필요없다고 충성서약하고온뒤
친일파매국단체인 뉴라이트를 청와대와 정부내각과 한나라당에 많이 기용하였고



실제로 일본서 간첩처럼 역사왜곡자금받은 뉴라이트를 교과서편찬직에 앉혀
일본침략미화하고 독립군 테러범몰고 유관순누나 삭제등 역사조작시켰고
국방부지도에도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에 일본미사일기지를 표기하는둥 일본앞잡이정부를 노출시켰고



친일파후손인 유인촌 장악 문광부이용 군사독재처럼 방송국장악 여론조작과 남북냉전조장물 제작지시와 방영하고
냉전조장영화 포화속으로에 동해를 일본해로표기 고치라해도 고의로 않고치고 미국서 시사회갖는둥 노골적인 일본앞잡이 행위를하는 친일파 일본앞잡이 오사카정권이



물이여러번새 언재죽을줄모른다던 실종중사부인 증언처럼 4대강죽이기 예산위해 낡은배교체않고 훈련투입
물이새 얕은곳으로 피항중 암초나 잠수함과 충돌등 4줄로 길게 그어진 충돌자국과 역회전하다 바닥에휘어진 스크류등
여러증거가많은데도 폭팔시 날라간다는 퍼런매직글씨하나쓴걸 북한으로몰며
민족간 전쟁을 외국의 이익위해 만들려는 오사카 일본앞잡이 정부에 국민은 속지말아야하며



당장 일본앞잡이정부의 냉전만들기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피해도크지만
평화통일되려면 독일처럼 교류만들어 북한을 시장경제국가로 끌어내 발전시켜야 통일비용도 절감되고
또 유럽중국아랍직행철도와 풍부한지하자원도 이용하고 미국에 바치는 국방비절감하면 엄청난 경제부국을 이룰것인데



전쟁나면 중국 러시아가 자동개입 생명체못사는 완전 폐허로갈것이고
중국도 동북공정 과거 북한이 중국땅이라는둥 역사조작하듯이 북한경제봉쇄로 붕궤시 북한을 흡수하려할테고
요즘 북한과 중국이 긴밀히 협력을 더하고 북한지하자원개발에 중국이 착수하듯이
일본정치권도 북한을 중국이 흡수하라듯이 친일파정부가 일본위해 한반도 영구분단 망치기하는것이며



독도를 조금기다리다 올리란때가 요런위기때인지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올린다 발표하였고
한국에 독도해역조사하지말라고 협박해도 일본앞잡이정부는 모른척하며
일본네티즌 한국비하발언이 엄청 더많은데도 조중동이용 일본이 한국응원한다 왜곡하며
박지성이용 일본도 16강진출하라고 정치적쑈까지하며 은근히 일본을 미화시키는것이며


우리가 수출한만큼 대체수출해야함에도 일본위한 불공정무역만들어
한일무역적자 매년 30조만드는 친일파정권과 친일파후손 정치권 실세의 매국행위를 주시해야하며



조국분단을 도운 사대매국노들이 일본이나 미군정에 충성 매국댓가로 돈이많아
일부 딴나라당같은 정치권과 조중동과 일부 사립학교와 일부재벌등
사회서 기득권을 차지하여 자기들 기득권자리를 지킨다고 보수라하고

보수의 반대가 사회부조리를 없애며 현재보다 발전해나가자는것이 진보로
보수와 진보가 좌우파개념이 아니며 한국의 수구보수는 진정한 우파가 아닌 친일파등 사대매국파가 많은 가짜우파인것으로


친일매국노가 만든 조중동과 군사독재처럼 방송장악후 평화통일세력을 좌파로 몰아부치며

민족간 6.25같은 비극막기나 나라위해 바른말하는 애국자나 애국단체를 떡검시켜 언론탄압하며
그동안 군사독재가 써먹던 안보장사로 좌파를 무조건 나쁘게몰지만 좌우파 실체를 밝혀보면



원래 우파란 다른나라 지배나 간섭을물리치고 자기나라를 제일로 여기는 국수주의와
자기민족을 제일로 아끼는 민족주의를 우파라하며 시장경제주의를 선호하며
좌파란 사회공동체정신으로 재산과 소득많으면 세금많이내 학교와 병원 주택에 많이투자
부자나 서민이 같이 잘살자는정책이 좌파사상으로 좌우합작 선진자유민주국가들이 그모델이며
현재 한국은 진정한 민주국가가아닌 미국의 반공국가로 전락하였고



독일도 민족간 평화교류로 평화통일이뤘고 중국도 대만과 평화교류를하고있는데
여러민족이 뭉친 중국의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않고 화해로 뭉치는게 최고의 승리라하였듯이
더구나 자기민족과 싸우려는 친일파후손이 변신한 한국의 수구세력 자칭우파는 반국가 반민족성으로 가짜우파들이며
돌려준다는 전시작전권도 미국이 계속가지시고 한국군을 지휘하라는 매국노들이다



나도 김일성과 김정일 세습독재와 공산당 일당독재가 싫고 박정희 전두환 처럼 일인출마 간접투표 독재도 싫으며
선진국처럼 국민직접비밀투표로 좌우공동집권 잘사는 선진복지국가로 만들어야하며 그것이 진정한 자유민주국가로
현재 공산당이 쇄퇴하며 북한인구도 남한보다적고 북한서도 공산당말고 다른당 선호하는 사람도있으니 평화통일되어도 공산당이 집권하긴 힘들다
111 10/07/01 [00:27] 수정 삭제  
  같은 민족을 학살한 게 그리 자랑스러운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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