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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미파 이승만의 동상건립, 자격 있나?

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8/02/18 [18:45]

숭미파 이승만의 동상건립, 자격 있나?

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08/02/18 [18:45]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동상과 한국식 정원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처음 세워진다고 한다.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아메리칸대 국제대학은 2010년 신축될 대학원 건물 주변을 순 한국식 정원으로 조성하고 이를 코리아 가든으로 명명하고, 아울러 건물 좌측 잔디밭에 이승만 박사의 동상을 세우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비용은 100-300만불 소요되며 기금을 마련해 오는 조건으로 동상을 세울 방침이라며, 동상 주변에 터치스크린으로 이박사의 일생과 한국의 건국사를 소개하는 시설도 마련할 것이라 밝혔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한국의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동상을 세우는 건 한.미 관계의 역사성과 돈독함을 미국인에게 알리는데 큰 의미를 갖는다.”며 대학장은 강조했다. 

미국의 국부는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이고, 중국의 국부는 마오쩌뚱(毛澤東)이다. 모든 미국인과 중국인들은 자국의 국부(國父)로 두 사람을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승만 초대대통령을 대한민국의 국부라 할 수 있을까? 또 이승만은 그런 자격이 있을까?

본시 국부란 국민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아야 하거늘, 이승만대통령을 국부로 존경하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이승만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잘못으로 인해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할 인물이거늘,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국부라 하며 동상을 건립한다니 뭔가 대단히 잘못된 일 아니겠는가! 
 
▲  개인 집에 버려지고 부서진 이승만의 동상
* 민족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다 바친 백범 김구선생을 정적이라는 이유로 특무대장 김창룡을 시켜 하수인 안두희로 하여금 암살하게 한 배후이다. 몽양 여운형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 친일파를 척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자는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해체시키고, 미군정의 충견(忠犬)이 되어 오히려 친일파를 중용하는 반민족적 행위를 하였다.

* 국민을 보호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 중 가장 기본임에도, 6.25 전쟁 당시 이승만은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하지 않았다.
서울이 함락되기 하루 전인 6월 27일, 대통령은 이미 한강 이남으로 피난을 떠나고 서울에 없는 상태에서 라디오에서는 “수도 서울을 사수한다. 시민은 동요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승만의 육성 방송이 흘러나와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우리 국군은 계속 승리하고 있고 곧 북진통일을 한다고 국민을 속였다. 또한 이승만 정권은 피난을 떠나면서 한강다리를 폭파해 당시 다리 위에 있던 시민 600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서울에 남아있는 나머지 사람들의 피난길도 막았다.

* 집권 연장을 위해 자신의 손으로 제정한 헌법을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등과 같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개정함으로서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자신의 권력구축과 집권연장을 위해 헌법까지 고치고, 게다가 초법적인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 4.19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해외로 도망간 인물이었다.

가장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초대대통령이 오히려 불의를 조장하고 부정을 저질러 대한민국이 아직까지 온갖 부정부패와 흙탕물로 오염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필자는 제한된 지면이라 그의 정치적인 면은 접어두고 친일파를 청산하여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려 했던 반민특위를 탄압하고 무력으로 해체한 그의 행적을 알아보기로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자 그가 위임통치를 미국에 건의한 경력을 들어 반대하였다. 이승만을 향해 "나라가 독립도 되기 전에 나라를 팔아먹을 사람이고, 없는 나라마저 팔아먹어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 나쁘다”라고 말했다. 단재 선생이 단지 정적이라는 이유로 이런 말을 함부로 했을까? 그의 말대로 숭미주의자(崇美主義者)였던 이승만은 해방 후 미군정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다.


▲  미국에게 충성을 다하여 훈장받는 이승만대통령
미군정은 조선총독부의 체제를 그대로 인수·답습했고, 업무의 공백을 우려해 일제 치하에서 공직에 있었던 친일파 인물들을 그대로 기용한다. 미군정 입장에서는 우리의 민족정신 수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 처리의 효율이 우선이었다. 그들은 미국인이기 때문에 친일파든 민족주의자든 일만 잘하면 되었지 그의 과거 행적은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런 미군정의 뜻에 따라 이승만대통령은 친일파를 중용한다. 게다가 친일파 척결의 기구로 국민들의 지지와 찬사를 받던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저지했다. 이로 인해 미군정과 제1공화국의 국가권력 기구가 고스란히 다시 친일파에 의해 장악된다.  

1948년 9월 국회에서 ‘반민족행위특별법’이 제정되고 반민특위가 민족의 이름으로 친일파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들에게 응징의 철퇴를 가하자, 이승만은 이를 견제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자중할 것을 요청하며 친일파들을 비호하였으나, 대부분 국민들은 특위의 과감한 활동에 찬사와 격려를 보냈다. 당시 서울신문 사설에서는 이렇게 평했다.

“민족정기가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의심했으나, 과연 민족정기는 죽지 않았다. 보라! 눈부신 특위활동을! 우리는 기대한다. 누누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반민족행위자의 처단은 결코 보복적 사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정신을 살리고 사리사욕 때문에 민족을 파는 반역자가 다시는 이 땅에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교훈으로의 의의가 크다고 본다.”

이승만은 처음부터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탐탁찮게 여겼다. 이승만은 국내에 정치적 기반을 가지지 못했기에 늘 불안했는데,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장기집권을 꿈꾸는 이승만에게는 반민특위로 위기에 몰린 친일관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 반민족행위자들은 이승만에게 찰싹 달라붙어 구원을 호소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온통 친일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없으면 그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이승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하여 민족정기를 되살리려는 반민특위를 공격한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 편이나 중립에 서지 못하고 친일파를 오히려 보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의 반민특위에 대해 그럴듯한 반대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친일파를 옹호하고 구해주려는 자신의 구실에 불과했다.

▲  숭미주의자  이승만대통령과 맥아더장군
첫째 시기상조론으로서, 처음엔 주권을 찾은 후에 처단하자고하여 선통일 후숙청을 주장하였다. 그런 다음에는 정부의 안정이 친일파 처단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둘째는 식민지환경론이었는데, 대다수 친일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친일행각을 벌였을 뿐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가혹성을 고려해 그들의 친일 행각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했다.

셋째 친일인재등용론으로, 이는 즉 국가건설에 친일 인재의 전문 기술과 능력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는 법적논리적불가론인데, 우선 미군정에게 우리 민족을 처단케 할 수 없고 정부수립 후 우리 손으로 처단해도 늦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에도 처단하지 않았다.)

다섯째 민족분열론이다. 다시 말해 친일파 처단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며 그 공백을 틈타 공산당이 쳐들어온다는 논리이다.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 활동이 한창 진행되던 49년 5월 18일에, 이른바 ‘국회 프락치 사건’을 공작하여 민족주의자 국회의원들을 그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전격 구속했다. 그리고 이들을 남로당의 프락치라고 발표했다. 한달 뒤 다시 제2차 국회 프락치 사건을 발표하며 13명의 의원을, 제3차 검거로 두 명의 의원을 추가로 구속하였다.

이들은 백범 김구의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소장파 의원들로서, 이승만 정권의 비정통성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젊은이들이었다. 국회프락치사건은 한때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로 주목받고 있던 헌병대 사령관과 서울시경 국장 등이 중심이 되어 엮어낸 치밀한 정치사건이었다. 김구선생의 암살은 이러한 반민특위와 국회프락치사건 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승만대통령은 반민특위가 경찰의 핵심 노덕술을 체포하자 급기야 경찰력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기습 습격하여 무력으로 수사관들을 잡아 가두고 결국 반민특위를 해산시킨다. 이로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국민 대다수의 절대 지지·성원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에게 공격받아 와해됨으로써 친일파 척결인 민족정기구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   악질 일제경찰 출신으로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체포되는 노덕술. 이승만의 그의 체포를 계기로 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와해시킨다. 이로서 민족정기구현은 실패로 돌아간다.
 
특별재판부 역시 반민특위의 출범 당시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해 강한 의지를 보였었으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는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불행히도 우리 민족은 영토적으로 인근 강대국에게 늘 침략 당했던 관계로, 사대사상이 물든 것도 양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민족을 돌보지 않고 자기 한 몸의 영화를 위하여 일제에 아부하고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는 것이니만큼, 어디까지나 사심 없이 법에 따라 엄정한 재판을 할 것”

반민특위가 기소한 건은 221건이며, 특별재판부가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이다. 그러나 죄질이 극악한 악질친일파라도 그나마 대부분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나서 실제로 처벌받은 민족반역자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김덕기가 사형을 확정 받았지만 한국전쟁 직전에 감형으로 석방되었다. 이승만의 방해로 우리나라의 경우 친일파에 대해 단 1건의 사형집행도 없었다. 

이에 비해 2차대전 후 프랑스는 짧은 나치 독일 점령 아래서 부역했던 자들을 2,071건의  사형을 집행했으며 39,900 명이 징역형 판결을 받았다. 또한 벨기에는 55,000건, 네덜란드는 50,000건 이상의 징역형을 내렸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수만 명에 이르는 부역자들을 처단하여 다시 그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였다.

나라를 팔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포를 짓밟은 친일파들을 한 명도 제대로 척결하지 못한 것은 해방된 민족의 수치였다. 이로써 우리는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 반민특위의 해체는 곧바로 국가의 미래에 어두운 먹구름이 뒤덮여지게 된다.  

또한 친일파들의 돈과 권력이 자손들에게 그대로 세습됨으로써, 그 자손들이 입법·사법·행정부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대학총장·장차관·군과 경찰의 수뇌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상층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승만은 매국노 이완용과 송병준의 자손들을 정부 요직에 중용한다. 이완용의 질손으로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마니시 류의 충견으로 일하면서 민족혼을 말살한 역사왜곡의 주범 이병도를 국사편찬위원, 서울대대학원장, 문교부장관으로 기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매국노 송병준의 사위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여 시신을 소각한 구연수의 아들인 구용서를 초대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의 총재로 기용한 정신 나간 노인네였다. 


▲   매국노 이완용의 가계. 이완용의 질손 이병도. 이병도의 두손자. 이장무 서울대총장. 이건무 전 국립박물관장. 매국노의 가계는 대를 이어 정부에 중용된다. 후손이 잘되려면 매국을 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일제잔재 청산과 함께, 친일파 척결문제를 해방 이후 시급히 해결하여 새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정신·혼·얼을 되찾는 기본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의 방해로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우리 현대사는 계속 파행과 불안을 거듭하며 부정과 불의로 가득찬 사회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친일파 척결 실패로 인해 한국 사회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친일파들은 면죄부를 받고 어깨를 활짝 펴고 다시 거리를 활보하며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기득권 축적의 날개를 달게 된다. 친일파들이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지위를 되차지하면서, 이 나라엔 반민족세력이 민족세력을 짓밟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제1공화국 정치체제 안에서는 반민족 반민중·반민주에 의한 부정과 불의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이는 결국 이승만의 장기집권과 독재정치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사회는 민족정신에 입각한 철학이나 사상이 형성되지 않아서, 그저 한탕주의·황금만능주의와 부정부패와 무책임이 만연하는 병든 사회로 변해 버렸다.

▲   새로운 대통령은 이승만 초대대통령과 같은 전철을 안 밟아야 한다. 똑같이 숭미의 길을 가고 민족정기를 세우지 않는다면 최후는 좌측 사진과 같이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반민특위의 해체는 민족의 주체성과 자존의 회복을 어렵게 하였고, 사회정의와 민족의 양심 등과 같은 좋은 의미의 단어는 교과서에만 써있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더구나 일제의 잔재는 정치·경제·교육·문화·예술 등 각 방면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자주국가의 발전과 민주화를 오랫동안 가로막아 왔다. 

한국사회가 흙탕물로 얼룩진 근본 이유는 ‘역사의 쓰레기’인 친일파를 제 때에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들을 처벌하지 못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정의를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반민특위의 해체로 우리의 민족정기는 흐려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올바른 가치관의 판단이 흐려지게 되었다. 즉 한국사회는 양심과 정의가 설 땅을 잃어버렸고, 대신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면서 급속히 황금만능으로 대변되는 가치전도 현상을 겪게 되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온통 만연되기에 이르렀다.

반민특위가 우리 역사를 도살한 민족반역자 이병도를 그 때 제대로 처단했더라면 오늘날 우리 강단사학계에 만연된 이 기막힌 역사왜곡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동북공정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국민들의 우리 역사 사랑도 컸을 것이다. 결국 이승만대통령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역사의 진실조차 못 찾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역사의 진실을 모르고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보니, 결국 10만원권 화폐에 대동여지도가 들어가고, 국보 1호 숭례문이 홀랑타는 참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주체성이 결여되다 보니 영어로 전담교육을 하자는 망국적인 발상이 숭미주의(崇美主義) 엘리트 집단에 의해 제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원초적 잘못인가?

숭례문의 직접적인 방화범은 70대의 최노인이지만, 방화를 하도록 방치한 사람은 당시 서울시장으로 전시행정을 위해 숭례문을 개방하고도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은 이명박 당선인이며, 사실상 대한민국이 불타도록 밑불을 놓은 사람은 이승만 초대대통령이다. 


▲   불타버린 국보 1호 숭례문의 참상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 때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으로 모범을 보이고 이 나라 역사를 바로 잡아 민족정기를 구현했더라면, 방화범인 최노인이 떳떳하게 말하듯 “다 남의 잘못이고 내 잘못은 1%이다. 인명 피해가 없으니 되었고,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는 기막힌 논리가 국민들에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방화범 최노인이 역사를 아는 사람이었고 세상에 자기의 억울함을 알리려고 어차피  어딘가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면 아무 죄 없는 숭례문보다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갈아먹는 동묘(東廟: 신설동에 있는 관우사당)를 불질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랬으면 아마 최노인은 자기주장도 하면서 방화범이 아니라 민족정기를 구현한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보니 숭례문을 택하게 되었고 결국 국보 1호를 태운 중죄인으로 중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전반에 짙게 깔려있는 거대한 모든 흙탕물이 바로 이승만대통령의 작품이다. 재임기간 중 정치에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온갖 부정과 술수로 권력에 집착하고, 국가정의(國家正義)를 제대로 실현하지 않아 흙탕물과 오물로 뒤범벅된 대한민국의 초석을 깐 초대대통령의 동상을 세워야 하는가? 그의 동상을 세움은 그의 치적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세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도 결코 옳은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침산 08/02/19 [00:08]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최훈영 08/02/19 [19:04] 수정 삭제  
  질손이 무슨말입니까?
성훈 08/02/19 [23:10] 수정 삭제  
  이병도의 할아버지와 이완용과는 친형제간입니다. 해서 이병도는 이완용의 질손입니다.
손자는 손자인데 한다리 건너 손자이지요. 우리 말에 질녀, 질부란 말이 있습니다. 질녀란 조카딸을 말하고, 질부란 조카며느리를 말하지요. 질손을 조카손자로 말하기는...
윤복현 08/02/20 [16:16] 수정 삭제  
  민족사를 올바르게 교육하는 일이 결국은 국민과 국가와 민족을 발전하고 보존하는 일임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승만의 전철을 밟으려는 자들은 뇌가 없거나 식물인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은 사대할 나라가 아니라, 자주적으로 민족공동체차원에서 이용해야할 나라입니다. 사대는 국론분열과 망국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논리정연하시고 민족의식이 투철하신 성 선생님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강건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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