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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8/03/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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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왜.가야.신라.임나 문제
    대륙 3조선이 해체된 후 마한지역인 한반도로 들어온 고조선 유민들이 마한에 양해를 얻어 남부지역에 변한과 진한을 건국하게 된다.

    고대 중국문헌 '삼국지 동이전'에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 接, 方可四千里..."'한(한반도 삼한)'은 '대방(여기서 대방은 한반도 북부 황해도 지역)'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하며, 사방 사천리이다.".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 祠祭鬼神有異, 施 皆在戶西. 其<瀆盧國>與<倭> 接界. "'변진'은 '진한'과 섞여 산다. 역시 성곽이 있으며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과 풍속은 서로 유사함이 있으나 귀신에 제사함은 다른데, 부엌 신을 문에서 서쪽에 두는 것이다. '독노국'은 '왜'와 접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독로국은 아마 지금의 부산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고대 철의 생산지이기도 하는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출토된 동복 등 북방유목민족관련 유물들은 바로 고조선의 유민인 변한계 사람들의 유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이 대성동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일본 큐슈지역에서도 대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그리고 큐슈지역의 일본천손강림설화는 구지.9간 등 가야신화와 동일합니다. 아무튼 '왜'는 백제가 멸망한 후 새로 정한 국호[일본]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문명을 건설한 변한.진한 사람들이나 가야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변한.진한.가야인들이 일본열도에 건주한 변하인들이나 가야인들과 함께 공동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신라(고조선 유민들<진한>이 보기에 조금 이질적인 김알지 흉노세력)을 자꾸 공격하려하니 이에 시달린 신라의 김알지 세력들이 고구려에 구원요청을 해서 변한지역을 점령하니 한반도 남부의 변한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모조리 건너가 자꾸 신라를 공격한데서 왜라는 용어가 문헌에 자주 등장하지 않나 싶다. [삼국지전]에 보면 "변한과 진한은 서로 섞여 '변진'은 '진한'과 섞여 산다. 역시 성곽이 있으며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고 할 정도로 동족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김해 대성동 고분과 경주 황남대총의 유물들이 증명하듯이 북방 흉노(훈)족들이 유입되다 보니 고조선 유민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변한과 진한(석씨왕조 포함)세력들이 북방 흉노(훈)족에게 몰살당하거나 세력에 밀려 일본열도로 많이 건너 갔다고 보아야 한다.흉노족 김알지세력에게 멸망당하여 일본열도로 밀려난 가야인들까지 포함하여.

    따라서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는 역사적이고 심리적인 배경은 그러한 한반도 남부지역의 고대사와 백제멸망의 연관성에서 오는, 아직도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자신들을 멸망시킨 원수의 나라 신라로 인식하는 적대심에서 온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한반도 지배의 정당성으로 내세우는 '임나'(광개토태왕비에는 '임나가라')는 '임의 나라' 가야를 의미함으로써 일본의 역사왜곡을 인정해 준다해도 일본열도로 건너간 가야인들(왜)이 살고 있는 가야멸망 후 한반도 남부지역에 세운 무역본부로서 일본 열도의 변한인들(가야인들)이 회복하기위해 무역도 하고 정보도 수집했던 총본부 정도로 이해해 주면 될 것이고, '임나가라'와 관련하여 일본이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왜곡한 부분의 실체는 [5만을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한 왜(倭)를 물리치고 왜(倭)를 추격하여 왜(倭)의 근거지인 임나가라(任那加羅:대마도)를 점령하고 이어서 대화왜(大和倭)와 구주왜(九州倭)로부터 항복을 받은 부분이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비극은 어찌보면 흉노(훈)족 김알지 세력에게 밀린 변한.진한.가야인들(총칭='왜')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역사적으로 모색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서기 29대 킨메이(欽明) 條에 보면 [임나일본부]에 관련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1) 킨메이(欽明) 2년 7월에는 ‘일본부 하내직이 왜와는 별도로 신라와 통했다.’
    2) 킨메이(欽明) 5년 2월에는 ‘일본부는 안라에 대한 왜의 계획을 백제.신라에 가서 들었다.’
    3) 킨메이(欽明) 5년 3월에는 ‘일본부는 안라를 아버지로 삼아 오직 그들만을 따른다’
    4) 킨메이(欽明) 9년 4월에는 ‘일본부가 안라를 위해 고구려와 내통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의 북쪽에 바다가 있다고 일본서기에 나온다...임나일본부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연결해주는 [대마도]다. 광개토태왕비문 내용은 바로 [대마도]를 포함하여 일본열도를 정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내용처럼 일본부가 왜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안라국왕의 통제 하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안라국왕]이란 당시 왜(가야+백제계)의 왕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흉노족인 김알지 세력에게 밀려난 사람들의 나라 왜는 가야나라이기도 했다.



    <=김해지역에서 출토된 4세기 철제갑옷


    <=나라현 가시하라박물관소장 5세기 철제갑옷

    고대국가의 우열은 바로 철기문화에 있었다. 당시 철은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고대국가들에 있어 철정(鐵鋌.덩이쇠)은 화폐 기능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부와 권력을 상징했으며 농기구.무기.말투구.말갑옷 등을 만드는 강력한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가야지역 왕릉급 무덤에서 예외없이 발견되듯이 권력의 상징인 부장품으로도 사용되었다. 가야는 동아시아국가들 중 철을 가장 많이 생산한 ‘철의 왕국’이었다. 옛 가야지역인 함안. 창녕. 곡성. 김해 등 곳곳에서는 철 생산지가 산재해 있고 가야의 수도 ‘金海’란 철이 바다를 이룬다는 뜻으로 철 생산이 많이 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또 가야지역 마갑총에서 출토된 거대한 철제말갑옷은 당시 가야가 철이 풍부하고 문화가 굉장히 발달돼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실제 한반도에서 출토된 철제갑옷은 70여 개로 그 중 90%가 가야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 가야가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반도에서 백제.신라와 함께 정치적으로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이러한 사실은 3세기 경의 기록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조>에서는 ‘가야지역에서 철이 생산되는데 한, 예, 왜인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민족사학자 2008/03/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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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와 가야와 왜는 한반도에 없었어요.
    삼국사기 일식분석에 보면 최적관측지가 고구려는 몽고, 백제는 북경, 신라는 양자강 중류 그리고 일본서기의 왜는 남지나해상이나 대륙 남부(현 광동성) 일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서의 기록에 의해 추정하건데 고구려는 내몽고와 하북성, 백제는 산동성, 신라는 안휘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한반도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였지, 백제 신라와는 무관한 땅이었습니다. 나중에 하대 신라(800년경)의 일식은 한반도로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가야도 한반도에 없었고 대륙에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현 김해 에서 발견되는 철제 갑옷 등은 고구려의 유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가야의 철을 중원의 한나라에서 한반도까지 와서 사갈 이유가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대륙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 역시 허구인 것입니다. (일식분석이라는 과학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더 이상 삼국과 가야 역사를 한반도로 몰고가려는 강단사학계의 이론은 거짓말이니 믿지 않도록 하십시오. 최근 최인호씨가 가야의 비밀을 벗긴다는 프로그램이 KBS에서 방영되던데 가만히 들어보니 가야가 반도에 있었다는 반도사관을 추종하는 강단사학계의 이론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우리 공영방송에서 역사의 진실을 방영할지.....
  • 뜨네기 2008/08/0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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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훈칼럼님 힘내세요
    님의 글을 읽어가면서 많은 역사적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노력 부탁립니다.
  • 자유인 2011/05/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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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네요.
    태왕사신기 일본 자본과 시청율에 눈먼 드라마였군요. 다시 생각해봐도
    MBC 태왕사신기 드라마 보다는 KBS 역사스페셜 광개토태왕 정복 루트를 가다.
    이 몇편의 다큐가 훨씬더 광개토태왕을 잘 알려 주었습니다. 배울점도 많고요.
  • 김준혁 2018/01/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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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이글쓰신분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사실 태사기나 주몽 , 대조영 , 연개소문 그리고 신라를 띄우는 사극들 ... 한국사기 , 대왕의 꿈 , 정도전 , 육룡이 날샤 등 모두 마찬가지이지요. 제대로 된 내용이 극히 드물고 ... 식민사학 , 중화사관 , 서양 의 일부 극단개신교 실증주의가 판을 치니 그런 일들이 일어난것이라고 봅니다. 하다하다 ... 인기있는 역사강사인지 하는 자는 독립영웅들이 기생집에서 술먹었고 기생과 놀아났다 란 표현해도 그걸 비난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공격하는 사태이니 오죽하겠습니까 ... 역사소설이란 ... 특히 고구려나 광개토태왕을 그린 것들도 역사왜곡을 심심치 않게 합니다. 글쓴이의 심정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백에 하나라도 이해하면 좋겠네요. 특히 엠비정권과 이은 적폐정권들어 더 그런 일들이 심해지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그렇게 반발하는 이상한 태사기 옹호론자들에게는 일침을 지속적으로 가해주세요. 사실 역사드라마 카페란 곳들도 그런 이상한 데가 많아서요. 참 문제이지요. 늘 건강하시고 늘 옳은 역사의식에 대해 태왕의 열정에 대해 그의 포용력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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