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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友好.. 위해서라도 새歷史 써야만 한다!

발로 뛰는 중국 재야 역사학자, 리광인 교수의 우리조상 흔적찾기

이대로 취재칼럼 | 기사입력 2008/12/25 [00:08]

韓-中 友好.. 위해서라도 새歷史 써야만 한다!

발로 뛰는 중국 재야 역사학자, 리광인 교수의 우리조상 흔적찾기

이대로 취재칼럼 | 입력 : 2008/12/25 [00:08]
▲ 중국 5대 진산 가운데 하나임을 알리는 회계산 표지석 옆에 서 있는 필자.  아래 사진은 필자와 리광인 교수가 함께 흔적찾기에 나사 촬영한 사진    ©이대로 논설위원(이하 취재사진)

▲ 용과 봉황 무늬가 있는 기와 조각을 살피는 리광인 교수.     ©편집부
2008년 12월 20일 필자와 같이 절강월수외대에서 중국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리광인교수와 함께 학교 근처에 있는 회계산을 찾았다. 중국 연변동포(중국명 조선족)인 리광인(55세)교수는 연변대 조문학부 출신으로서 어학도지만 학생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우리 조상의 역사 발자취를 연구하는 재야 역사학자다. 
 
리교수는 동북지방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와 일제 때 항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우리 유적과 조상의 숨결을 찾아 기록하고 책으로도 냈다. 연변일보사에 기자로도 오래 근무했는데 기록에 없는 유적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중국 중부지방인 절강성에 와서도 쉬는 날이면 산과 농촌마을을 찾아다니며 잃어버린 우리 조상의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이곳 소흥시 회계산은 역사 유적도 많고 역사책에 많이 오르내리는 유명한 산이다. 중국의 단군이라는 우왕의 무덤인 대우릉이 있고, 춘추전국시대 생긴 "와신상담, 회계지치"란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곳이다. 하나라 우왕이 중국 여러 지역의 왕을 모아놓고 그 공적을 헤아렸다고 해서 회계산이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고, 진시왕이 찾아와서 석비를 세웠다는 말도 있다.  그동안 혼자서 역사유적을 찾아 나선 리광인교수가 이 회계산 골골을 더듬다가 우리 조상의 숨결을 느낀 곳이 있다면서 나보고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날따라 회계산 입구부터 자동차가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사람들이 많이 와있다. 알아보니 동지 전날이라서 무덤을 찾아 성묘하는 거란다. 청명 때도 무덤을 찾아 술과 음식을 바치고 폭죽도 터트리더니 동지 때도 많이 찾고 있었다. 중국과 한국은 조상을 섬기는 문화는 닮은 데가 있어 보였는데 중국 북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했다. 제사는 잘 지내지 않는데 성묘는 열심이다. 회계산은 명당이라고 무덤을 많이 쓰고 납골당과 공동묘지가 여러 개 있다. 중국은 요즘 법으로 무덤을 못하게 했다는 데 이곳은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만 무덤을 만든다고 했다. 자가용차가 많이 주차한 것을 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향로선사란 절 앞에 가니 절을 찾은 중국인도 많았다. 본래 중국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데 최근에 절을 잘 단장하거나 새로 지은 곳도 많고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 중국인이 많다.
 

리광인 교수가 쓴 조선족 항일 전사들 214명 기록을 쓴 5권 책 중 두 권 표지     © 편집부


우리는 회계산 8부 능선까지 올라서 다른 골자기로 내려갔다. 중간쯤 내려가다 보니 큰 바위아래 굴이 하나 있는 데 입구엔 돌로 쌓아놓은 흔적이 있고 굴안 10여 평 되는 방과 같았다. 리광인 교수는 "지금 이렇게 나무숲에 버려졌지만 오랜 옛날에 사람이 이용한 발자취가 있는 곳이 분명합니다. 2000년 전 춘추전국시대부터 회계산에 얽힌 인물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더 좋은 바위가 있고 거기 더 좋은 역사 흔적이 보입니다."라면서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50미터 쯤 내려가니 더 큰 바위가 두 개가 있는 데 하나는 흔들바위처럼 떨어질듯 걸쳐있고 다른 바위아래엔 촛불을 밝힌 흔적이 보이는 게 암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위 주위에는 옛 기왓장 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다. 리 교수는 그 기와 조각을 모아놓고 살피다가 기와에 용과 봉황 무늬가 있는 걸 보면서 "용과 봉황무늬는 아무데나 쓰는 게 아닙니다. 이 근처에서 월나라 왕 구천이 '회계지치'를 했다는 터가 있는지 모릅니다. 조금 내려가면 왕궁터나 절터로 보이는 곳이 있고 그 조금 아래에 이 교수님이 깜짝 놀랄만한 유적이 있습니다."라면서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가파른 산을 50미터 쯤 내려가니 산허리를 300평 쯤 깎아 만든 옛 집터로 보이는 평평한 곳이 보였다. 지금은 나무와 가시덤불 속에 계단식으로 돌로 석축도 쌓았던 흔적이 있고 주춧돌 같은 돌과 기와 조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마당 같은 터에 달래가 많은 걸 보면서 "달래는 사람이 사는 근처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다시 50미터 쯤 내려가니 내 고향 충남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처럼 바위에 조각한 불상이 있었다. 위에 불상이 하나 따로 있고, 조금 아래에 두 불상과 아기동자상이 옆에 있고 그 아래 삼존불이 있는데 최근에 지방 문화재로 지정해서 비각 안에 보호하고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문틈으로 사진을 찍었다. 리광인 교수는 "이것은 분명히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우리 조상이 와서 만든 걸로 보입니다. 저기 노천 바위에 조각한 동자상 옆에 글씨가 보이는 데 사람 이름으로 보이는 글에 김(金)자가 보입니다. 본래 중국엔 김씨가 없는 데 이곳 절강성 지역에 김씨 집성촌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옛날에 자기 조상이 다른 곳에서 이주해 살은 거만 알고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이곳 말투는 꼭 우리 조선말 소리와 비슷합니다. 길을 가다가 뒤에서 조선 사람들 말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면 소흥 사람이고 중국말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숱한 조상의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라면서 흥분한다.
 
그 계곡 지형이 밖에서 보기보도 깊고 넓으며 입구만 막으면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 요충지였다.


▲ 한국의 마애삼존불상을 떠오르게 하는 삼존불(무량수불,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을 비각 안에 보호하고 있어 문틈으로 사진을 찍어서 밝지 않다.   

▲ 노천에 있는 두 불상과 그 앞쪽 그늘진 곳에 있는 동자상을 살피는 리광인교수.    © 플러스코리아

 
▲     © 플러스코리아


▲     © 플러스코리아
우린 답사를 마치고 양지바른 바위에 앉아서 싸 가지고 간 도시락과 술을 한잔 나누면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 교수는 " 중국 동북지역의 우리 역사 유적을 저는 발로 다니며 확인한 사람입니다. 이제 이 중국 화동지방에 우리 조상들이 활동한 고대발자취를 다 찾아서 책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이미 지장보살 김교각님 발자취를 따라 많은 역사자료들을 수집했고, 고려명승 의천 대각국사 발자취도 꾸준히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 때도 지금도 저는 월급을 타서 역사 유적 탐사에 다 씁니다. 회계산은  조선반도(한반도)와 인연이 깊은 곳이 분명합니다. 중국에 있는 우리 조상의 유적은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당나라때 신라방 답사도 시작했구요, 이제 복건, 절강일대의 고려김씨 답사에도 나설 겁니다. 저와 같이 겨레 역사를 찾고, 겨레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합시다. 가흥에 가서 백범 김구선생님 발자취를 찾아보고 싶다고 했지요. 제가 다음 주에 안내하리다. 최근에 재건한 항주에 있는 고려사도 가봅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필자도 남다른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리 교수의 삶과 생각이 감동시킨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꿈을 가지고 겨레를 생각하며 사는 멋있는 '배달겨레'다. 일찍 그와 친했더라면 같이 우리 유적 찾기에 나섰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필자도 그가 마음에 들어 요즘 자주 대화를 하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의 부인도 이 학교의 한국어과 교수로 있어서 부인 월급으로 살림을 하고 그의 월급은 몽땅 유적 답사에 쓴다니 말이다. 저런 열정을 가진 사람을 한국 역사학계나 기업인이 연구비를 주면서 함께 일을 할 길은 없을까 걱정을 해본다. 한국의 한 역사학자가 글에서 회계산에 있는 불상은 우리 조상이 만든 거라는 글을 보았는데 혹시 우리가 본 불상이 그 불상이 아닌가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리 교수는 “앞으로 우리 학교의 ‘회계산연구소’의 원구원들과 이 불상에 대해 연구해 보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중국과 한국은 수천 년 동안 깊은 인연과 관계가 있는 이웃나라인데 최근 근 100년 동안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문이 활짝 열려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 어울려 잘 살 길을 찾고 함께 발전하는 새 역사를 쓸 때가 되었다. 
 
[1차 수정: 2009. 1. 6. 17:18]




이대로 08/12/26 [10:29] 수정 삭제  
  오늘 저는 리광인교수와 항주에 있는 고려사를 답사하러 갑니다. 고려사는 의천대각국사와 관련이 있는 절입니다. 이곳 중국 화동지방에는 신라방, 고려방, 고려사 들 중세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 많은 곳입니다. 항주 고려사는 올해 초에 중국 정부가 재건했습니다. 다음에 가 본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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