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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이상실 2008/02/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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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廷은 朝鮮의 정부를 뜻하며 朝貢이라는 말은 朝鮮에게 바친다는 말이다



    朝貢이라는 말은 朝鮮에게 바친다는 말이다. 朝廷은 朝鮮의 정부를 뜻하며 중국대륙에 있던 모든 족속들은 朝鮮의 屬民임을 나타낸다. 漢나라에 물건을 바치면 漢貢이어야 하는데 이 역시 朝貢이라 한다. 朝鮮의 위대했던 모습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말은 존환양호(尊桓攘胡), 尊(檀)朝攘胡를 고친 것이다.



    그러나 中土의 나라들이 君公 및 王에 봉해졌던 내내 우리나라 속국이었다. 百濟 皇帝를 君公에 봉할 수가 없어서, 皇帝보다 더 높다는 뜻으로 廣開土境好‘太皇’[高句麗가 계승한 北夫餘는 檀帝의 나라다. 中國 문헌으로 둔갑한 책에도 高句麗의 통치자는 皇帝로 기록되어 있다. 隋書에는 고국원왕(故國原王)은 소열제(昭烈帝), 대무신왕(大武神王)은 대무신열제(大武神烈帝)로 되어 있다. 날조하면서 빠트린 대목이다.


    李氏朝鮮 중기에 쓴 太白逸史 조차 廣開土境好太皇이라 했다. 채옹(蔡邕 : 132~192 後漢의 학자)도 "독단(獨斷)"에서 天子라는 호칭은 우리나라가 먼저 사용했다고 했다(天子之號稱始於東夷父天母地故曰天子). 太王으로 표기되어 있는 廣開土境大勳跡碑는 李成桂가 朱元璋과 濊貊族에게 黃河 이남을 주었을 때, 날조사에 맞춰 새로 만든 가짜 비다],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 문자호‘태열제’(文咨好太烈帝)라 했던 것이다.


    新羅 皇帝는 신하를 君公도 아니고 君王에 봉했다. 원성제(元聖帝)는 황위쟁탈전에서 패한 金周元을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했다. 王이 王을 封할 수 있나? 통치자는 君公이고, 신하는 君王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新羅의 최고통치자가 皇帝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하를 君王에 봉할 수 있었다. 新羅가 동아시아를 통일했을 당시 新羅는 天子國이었다. 그래서 日本이 植民母國 百濟를 멸망시킨 新羅에 서둘러 조공했다. 제1의 강대국이 天子國의 지위를 획득했던 것이다.


    고쿄 기요히코(吾鄕淸彦)는 일본 신대(神代)문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司馬遷의 史記 25 권은 檀君朝鮮이 中國 대륙을 지배 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中國이 檀君朝鮮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날 삼한 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간 것에 불과하다.

    최근 百濟는 동방의 로마(얼마 전에 열린, 학술대회 주제)라는 위치까지 끌어 올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百濟의 실체를 모른다. 로마가 서방의 百濟였던 것이다.

    高句麗가 廣開土境好太皇 이전까지 中國 대륙에서 南進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은 허구의 漢四郡 때문이 아니라, 百濟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高句麗는 5 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4 세기 까지는 百濟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百濟의 전성기는 高句麗의 전성기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百濟는 4 세기 까지 동아시아 제1의 강대국이었다.


    일식기록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淸이 後漢의 일식기록을 다시 베꼈다는 사실이나 日本이 1824 년 이후에 천문기록을 갖기로 날조 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저들이 우리나라 역사책 및 고문헌을 보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日本은 20 세기에 들어 와서도 우리나라 한단사(桓檀史)를 토대로 남연서(南燕書) 등의 날조 일본 역사책을 만들어 왔다. 일식기록의 가치는 이를 근거로 日本과 中國에 우리나라 역사책과 기타 문헌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부상수(扶桑樹)는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에 있다고 하는 신령스러운 나무다. 그 扶桑樹가 있는 나라가 동쪽에 있어 日出處라 했다. 우리나라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민족을 東夷族이라 했다. 그 원뜻은 오랑캐가 아니고 동쪽에 사는 어진 종족, 근본인 종족이다. 오늘날 옥편을 찾아보면 夷는 ‘오랑캐, 동방동족, 잘못, 상하다, 죽이다, 멸하다, 평평하다, 평탄하다, 깎다, 온화하다, 안온하다, 기뻐하다, 크다’라는 뜻이 있다. 정반대 되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랑캐, 잘못, 상하다, 죽이다, 멸하다 등은 中土의 미개 오랑캐 華夏族이 揚子江 이남으로 기어 나온 후에 玉篇에 추가한 것이다.

    倭奴王이 소유하고 있다는 족보책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815)은 중국의 문물을 전수 했다고 날조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졌다. 중국계 가문 109 개는 모두 중국에 있던 百濟, 新羅系의 가문이다. 高句麗系 역시 百濟系, 新羅系 가문이다[날조 日本史에서 新羅의 문물 전수는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 中國倭에게도 新羅는 원수같은 나라였다. 추잡의 절정 기모노(きもの)섹스, 혼욕(混浴), 요바이(よばい) 풍습 때문에 新羅 땅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천문기록 27쪽)
    하기야 家門이라는 말이 日本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中國倭가 저 땅에, 기모노섹스, 混浴, 요바이의 性文化를 전파한 이래로 천 년 동안 가문 해체를 경험한 나라다. 그저 다른 나라 보기에 창피해서 家門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히로히토(裕仁)는 다이쇼(大正)의 섭정으로 있으면서 南淵書라는 희대의 僞書도 창작해내고, 倭奴王이 된 후에는 花郞世紀 (화랑세기)날조에도 관여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新撰姓氏錄 역시 히로히토가 날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南淵書는 벌거벗고 흙구덩이에서 뒹굴던, 百濟의 군사식민지로 출발한 日本이 “太古 이래로 동아시아 제국을 예속했으며 당연히 예속시켜야 한다.”가 핵심 내용이다. 5 세기에도 日本은 원시 그대로의 아담과 이브였다.
    南淵書는 日本의 순수창작이 아니다. “太古 이래로 동아시아 제국을 예속”한 것은 배달, 朝鮮, 高句麗였다. 배달과 朝鮮, 高句麗를 日本으로 바꿔치기 했을 뿐이다. 이 땅의 사학자들은 결단코 배달도, 朝鮮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데, 日本은 배달과 朝鮮이 동아시아를 지배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王朝의 모든 正史書와 온갖 역사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李氏朝鮮의 역대왕들이 숨겨놓았던 한단 역사서 51 종 마저 日本으로 빼돌렸다.

    倭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리나라 역사서를 분서하고 개서해서 韓國史 말살에 광분 했다는 것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韓國史 抹殺은 倭奴의 最大 國策事業이었다.

    중국이 4대 발명품으로 자랑하는 것 중에 이미 한국이 元祖이자 종주국으로 밝혀진 인쇄술[앨 고어 前 美國 부통령은 2005 년 5 월 19 일 "서울 디지털 포럼"에 참석하여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Gutenberg : 1397~1468)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한국(李氏朝鮮)을 방문한 이후 얻어온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된 것"이라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때 敎皇의 사절단과 이야기 했는데 그 사절단은 Corea를 방문하고 여러가지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였다"고 전했다. 2005.5.19.연합뉴스]
  • 열심히 2008/02/2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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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역사공부를..
    쥐나(시조=황제헌원=동이족)와 일본(왜=가야)은 혈통적으로 조상들이 조선인들이기에 동생뻘 되는 민족들임으로 그들의 역사왜곡이라는 것도 다 열등감에서 기인함으로 나중에 잘 가르쳐 주고 역사논쟁에서 논리적으로 승리하기위해 조선인들이 부지런히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 플코독자 2008/02/2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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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의 현주소...
    위 어이상실님의 인용글(상선약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 보다는 패거리와 개인이익을 앞세우는 개독들과 얼빠진 국민들이 판을 치는 즐비한 세상에다(관심을 가지고 상선약수님이 쓰시는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애독하는 자들도 거의 전무해보였음) 기막히는 모함과 해코지를 겪으시는 가운데 아무도 위로도 하지 않아 결국 상선약수님의 역사칼럼이 2006년 8월에 중단이 되고 말았으며 또한 비공개로 설정되고야 말았습니다.
  • 전준성 2008/02/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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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블로그에 선생님 글을 옮깁니다.
    http://blog.hani.co.kr/jaychun/에 한번 방문하시어 조언 부탁합니다. 조만간에 박노자씨가 쓴글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올릴 에정입니다만, 제 공부가 미약하여 잘 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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