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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리영훈,'8.15 광 복 절 없애자'

"광복렬사가 감옥살이 당했던 형량만큼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려증동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6/08/23 [11:29]

서울대 리영훈,'8.15 광 복 절 없애자'

"광복렬사가 감옥살이 당했던 형량만큼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려증동 칼럼니스트 | 입력 : 2006/08/23 [11:29]
▲한 TV 토론회에서 정신대 관련 망언의 주인공 서울대 리영훈 경제학과 교수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해 피해자 노인들에게 고개숙여 사과 하고 있다.자료사진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 8월 15일 광복절을 없애자고 했다. 리영훈은 광복렬사가 감옥살이 당했던 형량만큼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잃었던 나라땅을 찾는 것을 광복(光復)이라고 한다. 나라가 되는데 첫째로 되는 것이 나라땅이다. 심산(心山金昌淑1879~1962)은 광복하려고 만주땅에 가서 광복군을 양성하다가 왜놈 경찰에 체포되어 14년 징역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1945년 8월 15일 다음날인 16일에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했다. 왜놈 경찰이 만주땅에 있는 광복군 양성소를 알아내기 위하여 심산을 전기고문했다. 심산이 끝내 모른다고 하니, 두 다리를 끊기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 <광복절을 없애자>고 했으니, 리영훈이 광복렬사 심산선생을 배반했다. 리영훈은 심산이 살았던 감옥살이 14년에 반절인 7년 정도 징역을 선고 받고, 감옥살이를 해야만 심산이 리용훈을 용서하리다. 1948년에 제헌국회가 이룩되었다. 부왜역적 민족반역자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법률안 이름이 <반민족행위 처벌법률안>이었다. 9월 7일에 국회가 통과시켰다. 대통령 리승만이 서명하고 공포해서 법률 제3호로 등록되어 만세에 엄존하는 법으로 되었다. 1949년 5월 31일에 완용 손자 리병길(李丙吉)이 그 법에 채포되어 감옥에 들어갔다. 리영훈도 그 법에서 체포되어 감옥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법이름이 <반민족행위 처벌법>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자 리영훈(李榮薰1949~)이 2006년 7월 31일 동아일보 <동아광장>에 일본을 리롭게 하는 <일본간첩 행위>로 되는 글을 발표했다. 겨레정서를 배반하는 사람을 민족반역자라고 한다. 리영훈이 발표한 요지글을 고딕으로 뽑았다.

1945년 8월의 광복에 나는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 무궁화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자팬 왜왕이 라디오 앞에서 <우리 일본국은 련합국한테 조건이 없는 항복을 합니다>라고 하고는 울었다. 왜왕 방송을 듣고 윤치호(尹致昊1865~1945)가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윤치호는 伊藤博文 수양아들로 되어 伊東致昊(이동치호)로 이름을 바꾸었다. 1896년에 일본간첩 필립이 독립협회를 만들었다. 부왜역적단체로 출범했다. 독립협회 초대의장, 제2대 회장을 리완용이 했고, 제3대 회장을 윤치호가 했다.
 
윤치호 아비 웅렬(雄烈)이 넘작(男爵)을 받은 부왜역적 89명 가운데 하나였다. 치호는 아비 때문에 경술년에 작위를 받지 못했으나, 뒤에 작위를 받았다. 치호 역적은 완용급이었다. 부자(父子) 역적집이 나온 것이다. 실국시대(失國時代) 윤치호는 밤에 자고 일어나면 동쪽 일본왕을 보고 절을 올렸다. 이것을 윤치호 동방요배(東方遙拜)라고 했다. 그로부터 61년 뒤 2006년 7월 31일에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라는 사람이 윤치호 다음으로 광복날이 기쁘지 않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대학교 교수자가 되어서 대학생을 가르쳐서 되겠소이까.
 
▲원폭 투하 직후 미 공군의 B-29 폭격기 승무원이 히로시마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일제는 항복했다ⓒ2005 미국문서보관소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잃었던 돈지갑을 찾아주는 사람을 보고ꡒ고맙습니다ꡓ라고 말하게 된다.ꡒ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아니했는데 당신이 건방지게 내 지갑을 주어서 나에게 주니 기분이 나쁩니다ꡓ라고 말하는 사람이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다. 경제사를 가르치는 대학교 교수자라고 한다. 잃었던 돈지갑을 찾았으면 하늘이 도운 일이라고 하면서 기뻐할 일인데, 리영훈은 찾으려고 <준비>한 일이 없는데 찾게 되었다고 하면서 돈지갑을 버려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리영훈이 <광복>이라는 말뜻을 모르고 있고, 또 <준비>라는 말뜻도 모르고 있다. 이런 사람이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자가 되어서 되겠소이까. 서울대학교는 교수자가 될 자질검사를 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되겠소이다. <광복에 준비>가 있어야 되는 것으로 말하는 이 사람이 어떤 경로로 교수자가 되었소이까. 광복회는 리영훈을 성토하고 난 뒤에 일본간첩으로 고발해서 감옥살이를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광복회는 제발 광복회 다운 일을 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통설적인 의미의 광복절에 별로 신명이 나지 않은 또 한가지 이유는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이전에 이 땅에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에 찾아왔다.

리영훈이 1949년생이다. 광복 5년 후에 태어났다. 부모형제로부터 왜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고 하면, 리영훈이라는 사람은 고아원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리영훈은 부왜역적 89놈 후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리영훈이라는 사람 말대로라면, 코리안 배달겨레가 임진왜란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나는 그 당시 사람이 아니어서 느낌이 없다. 그리하여 흥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머리가 고장난 사람이다. 머리가 고장난 사람이 대학교에 들어가고자 하거든 <곤충학과>에 들어가야 한다. 곤충학과에 들어가면 일본이 간첩짓을 하라고 유혹하지 않는다. 곤충학과에 들어가면 일본간첩이 되어 겨레를 배반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인명사전을 보니 리영훈이 대구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왜역적 89놈에는 경상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 뒤 부일협력자는 경상도에 있다. 리영훈은 어느 쪽일까.

해마다 8월 15일 광복절이 되면 나는 먼동이 털 때 국기를 건다. 그 다음으로는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 아침에 국기를 건다.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건국절이 개천절이다. 여기에 사용된 <開>자는 <처음 개자>이다. 일본간첩 무식쟁이 대학교 교수자가 <개천절>에서 <開> 자를 open, 열 개 字로 풀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무식쟁이 대학교 교수자가 또 <天> 字를 sky, 하늘로 풀이했기에 나는 <古朝鮮史記>라는 책에서 그 무식쟁이 일본간첩 교수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여기에 사용된 <天>자는 <나라 천> 字라고 가르쳐 주었다. 일본간첩은 머리가 나쁘다. 그러하기에 <아들딸 가운데 첫 번 째 혼례>를 <開婚>이라고 한다고도 가르쳐 주었다.

독자 여러분. 일본고정간첩으로 되고 있는 리영훈이 지은 글에서 광복절에 별로 신명이 나지 않은 또 한가지 이유는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라는 말이 나왔소이다.
 
 이 말은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급이 되는 바보소리로 되었소이다. 리영훈이 <광복>이라는 말에서 <빛광光자>를 보고 <광복>이라는 말뜻을 <광명한 빛>이라고 말했소이다. 이런 사람이 대학교 교수자가 되어서 되겠소이까. 리영훈에게 알리노라. <잃었던 나라땅을 찾는 것을 光復이라고 한다. 光復이라는 말은 차이나말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황제가 10만 대군을 보내는 국서에서ꡒ조선왕으로 하여금 光復舊物>시켜주겠노라ꡓ에서 나온 말이다. <선조실록>에 실리어 있다. 이것을ꡒ임진왜란에서 癸巳光復ꡓ이라고 부른다. 그 뒤 ꡒ경술실국에서 을유광복ꡓ이 또 이룩되었다. 이것을 알리는 책이 <려증동지음 배달문학 통사 2> 쪽362~364에 자상하게 실려있다. 또 <배달겨레 문화사>에도 실리어 있다. 감옥소 감방에 가서 100번 쯤 읽어주기를 바란다.

일본에 빌붙어 있다가 일본국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獨立>이라고 한다. 일본국회에서 그 찬반투표에서 <조선독립>이 결정되는 것이다. 일본국회가 조선독립을 두고 찬반투표를 했던 일이 없었다. <獨立>이라는 것은 <도꾸리쓰>로 소리내는 자팬 일본말이다. 배달말로 <獨立>은 두 살 짜리 젖먹이 아이가 거름마로 서는 것을 <독립>이라고 했다. 지난날 부왜역적 리완용이ꡒ청국에서 독립하여 일본에 붙자ꡓ는 독립협회 회장을 했다(려증동ː독립신문). 광복후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글을 지으면 일본돈이 연구비로 들어온다. 실국시대 <독립하련다>고 하면 출판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광복하련다>고 하면 <즉석에서 총살시켜도 된다고> 보안법이 만들어졌다. 광복후ꡒ광복이라는 말을 허물어뜨려라ꡓ는 비밀지령을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냄새가 난다는 말이다.
 

▲2004년 9월 리영훈 교수는  “정신대는 강제동원 아닌 자발적 참여”…서울대 이영훈 교수   국민일보 [사회 타이틀]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독자 여러분. 1945년 8월 15일을 패전 국치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일본사람이요, 왜놈이 저절로 달아나서 잃었던 나라땅을 찾았던 것인데도 기뻐하지 않았던 사람이 윤치호가 그 제 1호로 되었고, 제 2호가 리영훈으로 되었소이다. 리적행위자는 민족반역자로 되어 처벌되어야 한다. 그 법이름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이다. 그 법이 있기에 경찰은 리영훈을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

ꡐ광복절ꡑ을 없애고ꡐ건국절ꡑ로 바꾸자
초등학교 학생도 개천절(開天節)이 곧 고조선 건국절(建國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하건만 나이가 58세나 된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 개천절 뜻을 모르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왜놈이 물러간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국경일로 하지 말고, 광복절이라는 이름을 없애자고 글지어 발표한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은 코리안 배달겨레를 배반한 반역자이다. 민족반역자가 나오면 검찰이 그 반역자를 고발해서 나라를 지키게 된다.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1948년 9월 7일에 국회를 통과해서 대통령 리승만이 서명 공포했다.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영원히 살아서 반역자를 처벌하게 된다. 리영훈은 민족반역자․일본간첩자로 처벌되어야 한다. 광복회는 일본간첩 리영훈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리영훈이 <동아일보>에 발표한 글(2006년 7월 31일), 그 글 모두를 그대로 여기에 옮겨 둔다. 제목은ꡒ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ꡓ로 되고, 그 속에 <광복절>을 없애자고 외쳤다.

7월은 7월 17일 제헌절의 달이다. 8월은 8월 15일 광복절의 달이다. 7월과 8월의 경계에 서서 두 국경일을 생각한다. 연구실을 찾아온 두 학생에게 물었다.ꡒ제헌절과 광복절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ꡓ둘의 답이 같다.ꡒ광복절이지요ꡓ한 친구는 설명을 덧붙인다.ꡒ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이니까요ꡓ다시 물었다.ꡒ대한민국이 세워진 날은 언제인가. 다른 한 친구는 ꡒ제헌절 아니예요?라고 한다. 더 묻기가 두려웠다.
 
1948년 8월 15일 광복절, 그날이 대한민국의 건국절이라고 아는 학생이 별로 없다. 정부가 편찬한 중고등학교 역사책을 보면ꡐ대한민국의 건국ꡑ이란 표현이 아얘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족의 통일 염원에도 불구하고 강행된ꡐ남한만의 단독 정부의 수립ꡑ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치부되어 있을 뿐이다. 콩심은데 콩난다고 하였다. 젊은이들에게 언제 나라가 세워졌는지 바로 가르치지 않았으니 그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광복절의 기념식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리는 국민적 기억은 없다. 광복절은 어디까지나 일제로부터 해방된 그날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이다.
 
▲ 리영훈 교수. 연합뉴스사진 
1948년 국민주권 선포의 그날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우리 200년의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했고 국민 모두의ꡐ신체의 자유ꡑ를 보장하였다. 제헌 그것의 거대한 문명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반면 1945년 8월의 광복에 나는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감격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후대에 태어난 사람의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은 일제가 무리하게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미국에 의해 제국이 께어지는 통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떤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내가 통설적인 의미의 광복절에 별로 신명이 나지 나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이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듣기엔 그럴 듯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 몇 년전 미국 보스톤의 하버드대에 들른 그날은 우연히도 미국의 건국기념일이었다. 저녁이 되자 찰즈 강 양쪽 강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강에는 수많은 요트가 떠다녔으며, 커다란 배위에는 보스턴이 자랑하는 오케스트라가 펼쳐졌다. 국가가 울려 퍼지자 얼굴색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도 기꺼이 환호작약하였다. 그리고 선 갖가지로 도안된 폭죽이 보스턴의 밤하늘을 끝도 없이 수놓았다. 그렇게 남의 나라의 건국절을 넋 놓고 구경하던 내 입에서 무심코 새어나온 말이다.ꡒ우리에게도 한강이 있지 않은가ꡓ

국민이 함께하는 생일잔치로

내후년이면 대한민국이 새갑자를 맞는다. 그해에 들어서는 새정부는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60년 건국사를 존중하는 인사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그해부터 지난 60년간의ꡐ광복절ꡑ을 미래지향적인 ꡐ건국절ꡑ로 바꾸자. 그날에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한강에 배를 띄우고 선상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애국가를 연주하게 하자. 잠실에서 노들길까지 드넓은 강변은 건국을 제 생일처럼 기뻐하는 국민으로 가득 그워지리라. 그러고 함께 대한민국을 노래하고 춤추자. 누가 이 나라를 잘못 세워진 나라라고 하는가. 누가 이 자랑스러운 건국사를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이었다고 하는가. 그런 망령된 소릴랑 훠이훠이 밤하늘로 물리치자. 그런 참람한 자들이 다시는 활개 치지 못하도록 한목소리로 외치자.ꡒ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대한민국ꡓ

리영훈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친구>라고 말하고 있다. 아들을 보고 <아범>이라고 부르는 미친 늙은이가 있다. 뒤죽박죽 말하기를 사기꾼 말하기라고 한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보고 <친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조직폭력배 우두머리로 된다. 리영훈은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 <한강 선상에서 오케스트라로 하여금>이라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넋을 놓고 구경하던 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넋>이 책가방으로 되고 있다. <참람한 자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참람(僭濫)이란 말에서 <참>은 거짓참이고 <람>은 넘칠람이다. 거짓말을 넘치게 하는 사람이 참람자로 된다. 누구가 거짓말하는 사람인지. <국민적 기억은 없다>라는 말을 사용했다. 무슨 소리인지. <신체의 자유를 보장했다>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소변을 보지 못하도록 하면>, <신체의 자유>가 없게 된다.ꡒ광복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ꡓ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ꡒ광복을 준비한다ꡓ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미친놈으로 된다.

각설. 나에게 손자가 넷이 있고, 손녀가 둘이 있다. 끝손자 인기(14세)가 올해 중학교 1학년인데,ꡒ잃었던 나라을 찾게 된 것을 광복이라ꡓ고 알고 있다. 내 손자 모두가 사용하는 말이 왜놈이다. 내가 늘 그렇게 가르쳐 왔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은 올해 나이가 58세이다.ꡒ광복절에 별로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은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ꡓ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리영훈(58)은 나의 끝손자 인기(14) 보다도 지식이 많이 모자란다. 부끄러울 정도로 무식하다. 나라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을 무식쟁이라고 한다. <광복> 뜻을 <빛>이라고 말한 리영훈은 학생을 가르칠 교수자가 될 수 없는 자질 문제에 걸린다. 서울대학교는 교수채용 때 자질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 자질검사는 글짓기를 시켜보면 불가자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일본간첩 대학 교수자가 국토회복(國土恢復)에서 <恢復>이라고 적어여 될 것을 <回復>이라고 썼기에 내가 그것을 가르쳐 준 바가 있었다. 일본간첩 짓을 하는 대학교 교수자들이 지닌 공통점이 차이나 글자(漢字)를 모르는 무지인으로 되고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일본돈을 먹고 간첩짓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머리가 나쁜 돌대가리들이 일본돈을 먹고 간첩짓을 하게 된다.
 
▲ 2004년 9월 100분토론에서 '정신대 위안부는 공창'등 발언한 리영훈 캡쳐 사진   © 플러스코리아


리영훈이 했던 말뜻을 헤아려 보니 '나, 리영훈은 1949년에 태어났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15일, 그 기쁨을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는 1945년 8월 15일에 흥분하지 않는다'였다. 리영훈은 1948년 8월 15일에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1948년 8월 15일에 이르러서는 그 리영훈이 말하기를 "1948년의 제헌, 제헌 그것의 거대한 문명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했다. 1948년, 이 때도 리영훈이 태어나지 않았는데 '거대한 문명사'라고 했으니, 리영훈은 앞뒤가 맞지 않는 뒤죽박죽으로 말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뒤죽박죽 말하기를 사기꾼 말하기라고 한다. 리영훈이 지은 글은 뒤죽박죽이 되어서 읽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그 가운데서도 <광복>이라는 말뜻을 <태양 빛>이라고 하는 것에는 한심, 한심 소리가 연달아 나온다. <復> 자는 풀이하지도 못하고 말았다.

리영훈 이력서를 보니, <1992년 일본 京都大學이 리영훈을 초빙교수로 모셨다>고 적혀 있다. 50대 나이에 <초빙>이라는 말에 수사가 필요하다. 일본을 자주 다니는 것으로 추리되었다. 리영훈이일본에 가서 강의한 것을 압수 수색해야 한다. 국정원은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1945년 8월 15일이 자팬 일본사람한테는 기억하고 싶지 아니한 패전 국치일이다. 1945년 8월 15일이 코리안 배달겨레한테는 가슴이 터지도록 즐거움이 가득찬 경사스러운 국경일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자팬은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코리안을 <안중근계렬>로 분류했고,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이등박문계렬>로 분류했다. 일본은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코리안 대학교 교수자에게 일본돈을 주는 일을 국책사업으로 하고 있다. 일본은 이등박문 보호를 국책사업 제1호로 삼고 돈을 뿌리고 있다.

독자 여러분. 일본간첩이 사용하는 말은 <개항> <갑신정변> <갑오경장> <을미사변> <을사보호조약> <을사조약>, <이토 히로부미> <고종황제> <명성황후>, <한일합방> <한일병합> <한일강제합방>, <독립> <독립운동> <독립운동가>로 된다. 이런 말을 사용하면 일본돈이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은행통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광복>이라는 말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코리안이 나오면, 일본정부가 그 코리안을 지난날 리완용 급으로 대접한다고 되어 있소이다. 리완용이 받은 돈만큼 일본돈을 준다는 계략이다.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 8월 15일 광복절을 없애자고 했다.

리영훈은 광복렬사가 감옥살이 당했던 형량만큼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감옥살이를 마치거든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으리다. 코리안 배달겨레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이 일본간첩이 되어 2006년 7월 31일에 동아일보에 발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8월 15일 광복절을 없애자고>. 광복후 매국노 일본간첩은 <광복>이라는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아니한다.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그날로부터 연구비가 끊기게 된다.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일본돈이 연구비로 나오게 된다.

저승에 계시는 하루빈(河淚濱) 선생과 심산(心山) 선생이 광복절을없애자고 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면서,ꡒ리영훈, 저놈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ꡓ고 호통치는 꿈을 꾸었다. 그날이 8월 1일 밤이었다.
 
© 플러스코리아
짐계(斟溪) 려증동(呂增東) 선생 프로필
● 1933년 경북 성주 출생
● 경북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국문학)
● 경상대 국문과 교수·인문대학장
● 現 경상대 명예교수. 前 배달말교육학회장
● 저서 : ‘배달문학통사’ ‘고조선사기’ ‘나라 잃은 시대’외 16권 등
지촌 06/08/23 [14:39] 수정 삭제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이런 일본간첩놈은 돌로 쳐죽여야 합니다
진주리영훈 06/08/23 [15:13] 수정 삭제  
  아직도 더러운 일제 간첩이 판치고 언론에서 취급하다니...
우리는 잊지말아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박사 문제도,왜 죽이려 하는지도, 바로 이런 역적같은 리영훈 새끼때문입니다.
개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야 06/08/23 [18:26] 수정 삭제  
  미국 건국 기념일 보스턴에서 남의 나라 기념일에 본 느낌으로 "8월 15일 광복절을 없애자"고 부끄럼없이 짧은 생각으로 쓴 글이 동아일보에 실리게 되어 "넋나간 자"로 되어버렸다.
청송 06/08/23 [18:33] 수정 삭제  
  나라꼴이 뒤범벅이 된 느낌이 든다.
사리 분별이 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 못하는 무리들만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옛 말에 선 백정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렇게난 지껄이는 그 알량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설쳐대는 꼬락서니에 순진한 우리 겨레 정신 다 멍들겠다.
궐한 06/08/24 [09:40] 수정 삭제  
  아직도 이 나라 기득권들에 다수 있다는게...이 나라의 수칩니다.
저런 버러지들을 아직도 교수로 대접해 주는 이 나라 국민들...등신입니다.
궐한 06/08/24 [09:42] 수정 삭제  
  역시 같은 버러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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