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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기술 독립의 날이 있었던가?

내년의 8.15도 이렇게 맞을 수 없기에..이제는 하나여야 한다

한규용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06/08/17 [19:46]

서울,과학기술 독립의 날이 있었던가?

내년의 8.15도 이렇게 맞을 수 없기에..이제는 하나여야 한다

한규용 객원기자 | 입력 : 2006/08/17 [19:46]
매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에겐 뜻 깊은 날이다. 양력 8월 15일은 광복절로, 음력 8월 15일은 한가위 명절로 기리고 있다. 양력 8월 15일엔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린다. 조국이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됨을 기리는 행사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요구를 담은 집회와 시국관련 집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진다.

광복 61주기를 맞이한 지난 8월 15일 역시 서울에서만도 여러 집회가 열렸고, 저녁 무렵, 서울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8.15 과학기술 독립 선포식’ 집회를 가졌고, 같은 시각 전남 광주의 (구) 도청 앞에서도 ‘특허수호 및 과학기술 독립선언’ 집회가 열렸다.

광화문 집회에는 황국연 전국의 지역연대와 아이러브 황우석, 황지연, 어게인 황우석, 난기모, 황지불, 점프리맨, 서프라이즈, 로드러너 차량 동호회, 황우석 자봉단, 국토 대장정 차량행진대 등의 여러 단체회원들 200여명 이상이 모여 차량행렬과 삼보일배를 하였고, 특허수호 및 과학기술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홍보지 배포를 비롯한 선전전을 가졌다. 지난 3.1절에 몇 만 명이 운집했던 것에 비하면, 소수의 인원이지만 광화문 집회는 일당백의 기운으로 여전히 생동감을 뿜었다.
 
한 시간 반가량 광화문 집회를 끝내고 서울역까지의 행진이 있었는데 그 사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는 정해준 열사의 노제가 진행되었다.

6개월 전 정해준 열사가 황 박사의 연구재개를 외치며 한줄기 불기둥으로 산화해 간 그 자리에는 무타스님이 흔들어대는 열사의 초상화 깃발이 힘차게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앞에서 하염없이 절을 하는 미망인의 모습이 무심히 질주하는 차량들 속에서 처연한 빛을 발했다.

유족을 뒤로 한 채 서울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의 고비마다 온몸 던져 산화해 가는 열사들이 존재하는 한, 이 땅을 사는 우리 모두는 부채를 짊어지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진실의 역사를 이룩해 가야 하는 과제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집회 광경     © 플러스 코리아


중형 태극기를 휘두르며 “연구재개, 특허수호”를 외치는 민중들은 광화문을 지나 시청을 향해 걸었다. 시청 광장을 지나는 동안 수 많은 시민들과 눈이 마주쳤다. 시민들 대부분이 무표정 한 채 광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어떤 이는 지지회원들이 건네는 전단지를 아무런 말도 없이 받아 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노골적 거부를 보이기도 했다. 수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있었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도 월드컵의 후유증으로, 아니 불과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군작전 통수권 문제로 서로 날을 세우며 시끌벅적하던 광장은 어느새 내리깔린 어둠과 함께 적막감에 쌓여 있었다. 길가 나무 밑에 나뒹구는 작전통수권 관련 격앙된 어조의 피켓문구들과 쓰레기들이 피로해 질대로 피로해진 이 나라의 시국을 대변하는 듯했다.
 
시청광장을 지나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자 태극만장을 광장 바닥에 내려놓고 그 주위를 강강술래를 돌며 ‘특허수호 및 황 박사의 연구재개’ 염원을 다졌고, 과학기술 독립 선언문을 복창하는 것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집회 사이사이 혼자서 반주와 노래를 도맡아 목이 터지게 불러댄 닉네임 ‘기타맨’의 열과 성을 다한 헌신은 너무도 컸지만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상황임이 분명하기에 무척 안스럽기까지 했다. 10월 3일에 또 만나 ‘황 태풍’을 거세게 몰아쳐 보자는 사회자의 멘트를 끝으로 집회는 해산되었지만, 광복 61주년을 맞아 개최된 ‘8.15 과학기술 독립 선포’ 서울 집회는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집회였다.

이 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지 61년이 지났건만 친일의 잔재는 청산되지 않았고,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며 식민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2차 대전의 주범 독일은 자신들의 과오를 명백히 인정함과 아울러 역사 청산과 사죄를 명확히 한 반면, 또 하나의 전범 일본은 아직도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시키는 짓을 버젓이 행하며, 마침내는 총리란 자가 전범들을 합사해 놓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현실에서, 오늘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일제 식민의 시대는 과연 말끔히 청산되었는가?

또 하나의 제국주의 미국에 의한 식민지배는 FTA로, 과학기술 강탈로 우리의 목을 죄고 있는 현실에서 ‘오늘의 집회는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은 “첫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둘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라고 부르짖었다.

일제로부터 독립한지 61년이 지났건만 이 나라 국민은 대체 언제까지 독립을 부르짖으며, 살아야 하는가! 광화문에서 서울역 광장에서 ‘과학기술 독립 선언’이라 외치는 민중의 외침은 왜 그리도 허허로웠던가! 왜 그리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느껴지는 것인가! 참여 숫자가 적어서도 아니였고, 황 박사 지지자들의 의지가 많이 쇠퇴해져 그런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치밀어 오르는 울분은 가시지 않고, 왜 이리 가슴을 답답케 하는가? “어쩌면 우릴 이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실체가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집회에 참석한 한 지지자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특히나 광주와 서울 양쪽 동시에 이루어진 이번 집회에서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들 다수가 광주 집회에 참가했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동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서로 의견이 다르고 방법이 달라 서로 원하는 쪽을 택해 집회를 갖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순수하게 정말 운동의 ‘운’자도 모르는 새내기 지지자 입장에선 아니 이를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왜 서울과 광주로 나뉘어 집회가 치러지는지’, 이는 단순히 거리상의 이유로 치러지는 집회를 가지고 하는 문제 제기가 아닐 것이다. 왜 집단화된 지지세력 내에서조차 지도부 형성이 안 되는지, 무엇 때문에 의견의 일치를 못 보고 갈라서는지 이제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쳇말로 ‘황까’ 중의 한 사람인 지인이 하는 말대로 과연 황 박사 사건을 둘러싸고 지지세력 내부에 어떤 이권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번 서울 집회를 취재하며 내내 든 생각은 “가시적 효과나 행사성에서 벗어나 좀 더 힘 있고 내실 있는 집회가 되기 위한 방향 모색을 심도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8.15는 지나갔고, 내년에도 8.15는 돌아올 것이다. 광복 62주년 8.15를 맞이하며, 우리는 또 어떤 소용돌이를 앓으며 8.15를 치룰 것인가! 바다 건너 북동 쪽 사할린 동포들은 8.15광복절에 한가위 명절을 함께 지낸다. 일제 때 강제로 사할린에 끌려간 동포들이 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이하며 ‘조국이 광복된 날이 바로 명절 아니냐’하여 그때부터 한가위를 함께 새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도 언제쯤 8.15광복절을 명절처럼 기쁘게 맞이할 날이 올까?
연극인, 연출가,
choonsam7 06/08/18 [09:36] 수정 삭제  
  우리의 생명공학이 세계선두가 되어서 전세곌를 이끌 시대가 도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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