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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인자 김종인을 구세주로 내세운 더민주당의 장래는?

영입 13일 만에 제1야당 1인자가 된 김종인, 하지만 해결 난제도 수두룩

임두만 칼럼 | 기사입력 2016/01/28 [10:40]

제1인자 김종인을 구세주로 내세운 더민주당의 장래는?

영입 13일 만에 제1야당 1인자가 된 김종인, 하지만 해결 난제도 수두룩

임두만 칼럼 | 입력 : 2016/01/28 [10:40]

 

당 이미지 ‘경제민주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 총선 핵심화두로 성공 노려

 

27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사퇴하면서 당의 전권을 넘겨받은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이란 이름과 함께 명실공히 당 1인자가 되었다. 이는 영입된 지 13일 만에 당을 장악했으므로 초 단기간에 제1야당 총수로 등극하는 기록도 세운 것이 된다.

 

▲ 김종인 선대위원장, 김상곤 인재영입위원장, 문재인 전 대표 .사진=더민주홈피     © 임두만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이날 박영선(서울) 변재일(충북) 우윤근(전남) 의원과 이용섭(광주) 전 의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등을 비대위원으로 인선하고 문 대표에게 전달하여 의결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들 가운데 변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대위원이기도 하다. 변 의원은 선대위에는 합류하지 않았으나 충청 출신 중진 몫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연직 최고위원이었던 이종걸 원내대표는 비대위원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명시적 친노(친문)계는 비대위원에 없다. 그러나 최근 복당한 이용섭, 문 대표가 영입한 표창원 김병관을 친문계로 본다면 7명의 비대위원 중 김 위원장 포함 과반수가 친문계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떻든 더민주는 이날 오후 2시 이들 비대위원에 대한 추인이 필요한 중앙위를 열어 의결하면 김종인 비대위는 구성 절차를 완료한다. 따라서 이날 퇴임하는 문재인 대표는 “김 위원장 체제가 안정되는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을 앞세운 더민주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세간의 추측대로 문 대표의 수렴청정일 경우는 또 그 경우대로, 그도 아니고 명실공히 김종인 1인체제로서 그가 칼자루를 마음대로 휘둘렀을 때 지금처럼 친노계가 순응할지도 미지수다. 김종인과 친노계의 패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든 ‘김종인 선대위’ 출범 후 박지원 의원을 제외한 탈당자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일부 여론조사 기관에서 당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공천이 진행되면서도 당이 이처럼 안정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태풍전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일단 문 대표 측근인 노영민 의원과 범친노(친노무현) 중진인 신기남 의원의 윤리심판원 당원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통한 공천배제, 더 나아가 “남은 인원 중에서 20%물갈이 진행”등의 언어 구사는 고강도 현역 교체를 애둘러 말한 것으로 들려 당 안에 폭탄 심지는 계속 타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혁신안을 만든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이 인재영입위원장으로 가세한 가운데 김 위원장이 혁신안에 명시된 공천룰에 대해 손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으므로 공천 과정이 마찰없이 진행될 것인지, 야권 연대 또는 후보단일화 등 문제를 두고 김 위원장이 어떤 스텐스를 취할지도 미지수다.

 

미세한 승부가 속출하는 수도권에서 야권 표를 두고 양측 모두 후보를 출진시킬 경우 참패는 정해진 수순이므로 이 문제나 곧 당의 앞날이나 야권 전체의 앞날을 좌우하는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단일화라는 것은 선거 막판에 가서 얘기할 문제”라며 야권 연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의 지난 정치적 행보를 보면 ‘희망’보다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아래는 2004년 3월17일 프레시안이 쓴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7일 민주당에 입당해 당 지도부는 여론반등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반기고 있으나 당내 일부에서는 '비리혐의까지 있는 5공세력'이라며 반발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전 수석은 선대위에서 조순형 대표, 추미애 상임위원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 김 전 수석은 17일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10년을 사회 외곽에서 한국사회의 변화과정을 지켜봐오다가 지금처럼 국론이 갈리고 상당히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무언가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입당의 변을 밝혔다.

 

3.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으로 지지도가 급락하는 중에 명망있는 경제전문가가 영입된 만큼 정책정당으로 거듭 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흡족한 분위기다. 이는 김씨가 ‘재벌개혁론자’라는 개혁적인 이미지에 안정적인 보수성도 함께 지닌 인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4.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김 전수석이 ‘5공부역자’로 ‘광주항쟁’의 원흉인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밑에서 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반발하는 분위기다. 특히 노태우 정권시절 비리사건 중 하나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실형까지 선고된 비리공직자라는 점도 반발의 이유로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 민주당에 영입된 김종인 위원장은 비례 2번을 받았다. 그러나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김기식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전국의 후보자 중 집중 낙선운동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비리전력자 등 국회의원 비적격자를 선정 발표했는데 그 안에 김종인이 있었다. 당시 총선연대는 “김경천, 김종인, 김홍일, 김휴섭, 장재식 등 새천년민주당 후보, 김종필, 박배철, 조희욱 등 자민련 후보가 선정됐다” 며 모두 8명을 ‘비례대표 부적격 후보’로 선정, 발표하고 집중낙선 대상자라고 했다.

 

이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은 지역구 5석 비례 4석 등 총 9석만 당선되는 미니정당으로 전략했다. 당대표 조순형, 사무총장 강운태, 선대위원장 추미애, 옥쇄싸움의 이유가 된 박상천 등 모두 낙선했다. 당은 할 수 없이 현역 위주로 개편되었다. 그래서 무안신안 당선자인 한화갑이 다시 대표, 해남진도 당선자인 이정일이 사무총장, 화순 곡성 담양 당선자인 김효석이 정책위 의장, 영광함평 당선자인 이낙연이 원내총무, 목포 당선자인 초선 이상열이 대변인 등으로 꾸려졌다. 비례2번 당선자인 김종인은 부대표로 임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김종인은 당무는 소홀히 한 반면 계속 자기 정치는 상당히 열심히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비례대표 당선자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 선거법에 의해 당적은 버릴 수 없지만 당의 어려움은 상관없다는 자세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특히 당시 한화갑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구속시도(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같이 했던 대선후보 경선자금 수사목적)라는 탄압을 받았으나 이 저항 대열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비례대표 당선자는 1번 손봉숙, 2번 김종인, 3번 이승희, 4번 김홍일 등 4명이었는데 김홍일 의원은 신병으로 의정활동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당 활동도 저조했으나 손봉숙 이승희 의원이 맹렬하게 당 활동을 했다. 하지만 김종인 의원은 당무는 거의 손을 놓고 경제문제에 대한 자기 소신 발언은 열심이었다. 특히 당의 회생이나 영역확장 등에 대해 기여한 것이 없었다.

 

총선에서 참패한 당시 민주당은 현역들과 지지자들의 맹렬한 당 살리기 노력에 의해 4월 총선 2달 후에 치러진 전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박준영 후보를 당선시키므로 회생의 길을 찾았다. 또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전남지사의 당선은 물론 광역의원, 시장군수 기초의원 선거 등에서 광주와 호남만은 열린우리당을 압도했다. 이런 가운데도 김종인 의원의 당 활동 행보는 보이지 않았다.

 

당시 김종인 의원의 당직은 당 부대표… 하지만, 자신 의사가 당 정책이나 당 활동에 반영되지 않으면 갑자기 며칠이고 당에 출근하지 않으므로 한화갑 대표와 당 실무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소리들이 들렸다. 또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는 2008년 5월23일 나온 서울신문 기사 한 줄이 잘 말해준다

 

“4선인 김종인 통합민주당 의원은 4년 동안 ‘법안 발의’가 1건도 없었다.-[서울신문-08-05-23]

 

다만 언론을 통해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 비판이라든지, 행정수도 이전 반대라든지 등에서는 선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즉 김종인은 노무현 경제정책의 대표적 반대자였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기사 각각 하나…

 

김종인 의원 “행정수도 이전 정책검증 안됐다” (2004-06-03 동아일보 기사 요약발췌)

 

민주당 김종인(金鍾仁) 의원은 3일 “행정수도 이전은 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성 통일 국토관리 등 전반에 걸친 정책적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기초적인 비용분석조차 안된 졸속공약이었다”고 비판했다.

 

김종인 “여당 토지공개념은 궁여지책” (2005/07/20 연합뉴스 기사 요약발췌)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20일 “열린우리당이 검토하는 토지공개념은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비판했다. 김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경제학에도 없는 개념”이라며 “국유지, 사유지는 있을 수 있어도 토지공개념은 소설 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토지초과이득세 등은 절대로 부과할 수 없는 세금으로 위헌소지가 있으며 개발이익환수제도 결국 토지값으로 전가되게 된다”고 강조하고 “현 정부가 경기부양을 한다면서 은근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해놓고 세제로 투기억제를 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됐다”며 “실패한 경제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런 김종인을 영입하고 그에게 당의 전권을 맡긴 뒤 총선을 그의 주장대로 치르라고 한 것은 아무리 살펴도 여우 무서워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래도 문 대표는 “김종인 체제의 안정을 위해 돕겠다”고 말했는데 그의 이런 퇴진이 정치사에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즉 “국보위 참여 후회 안 한다”는 노무현 반대자가 휘두르는 공천의 칼날을 맞은 노무현 키즈들이 공천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킬을 계속 용인할 것인지, 그래서 그 체제가 계속 순항할 수 있을 것인지가 그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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