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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통사(12)-대한제국 고종시대사의 재조명을 위하여

소위 '민씨정권'의 특징과 이해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5/06/29 [11:15]

대한정통사(12)-대한제국 고종시대사의 재조명을 위하여

소위 '민씨정권'의 특징과 이해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5/06/29 [11:15]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안재세] 1945년 8.15 이후 한국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한국 근현대 역사서들이 한우충동(汗牛充棟)할 정도에 이르건만, 민족정통성의 시각에서 집필된 것은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근현대 관련 역사서는 물론이고, 논문들의 대부분도 정통성의 맥락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일종의 '개화사관(開化史觀)'이라고나 할만한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한 민족의 존립근거를 제시해 주는 역사적 정통성을 떠나서 그 민족의 역사적 흐름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다고 할 때,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대단히 심각할 수도 있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정통성에 대한 민족구성원들간의 의견차이나 충돌로 인하여 민족적 구심력이 깨어지고, 민족분열과 허무주의적인 민족도덕성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현대사가 스스로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증명을 해 주고 있지 않은가? [서문 중에서]


     

소위 '민씨정권'의 특징과 이해

  흔히 조선의 멸망 원인을 척족들의 세도정치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져 왔다. 어린 임금 순조의 등극과 함께 시작된 척족정치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그리고 다시 안동 김씨로 이어졌다가, 대원군의 집정으로 한바탕 정리되었으나, 대원군이 물러난 후 고종의 척족인 민씨들이 다시 세도를 부렸다는 관점이다. 그리하여 온갖 부정부패를 동반한 민씨 세도정치로 인하여 마침내 조선이 피폐화하고, 급변하는 세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여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볼 때 민씨 척족이 세도정치를 했다는 것은 심한 편견의 소산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세도란 상대적으로 허약한 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세를 일컫는데, 민씨 척족은 결코 고종의 절대적 권한보다 위에 군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고종의 의지를 충실히 실천하는 친위적 존재였을 뿐이다. 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의 부족이라는 면도 너무 일방적으로 폄하된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조선의 실정에 맞는 동도서기적 개화정책의 선두에서 추진한 게 바로 민씨 척족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반 민중은 물론 광범위한 사회지도층이었던 유림보다 너무 앞서간 까닭에 임오군란 등에서 보듯이 국내에서 많은 비판,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가?

  또 한가지 민씨 정권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고종이 집권하면서 민중전이 자신의 친척들을 일시에 대거 등용하여 척족 정권을 탄생시킴으로써 대원군의 세력에 맞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씨 척족의 등용은 민중전때 개시된 게 아니라, 대원군 집정기에 대원군의 의지에 의하여 그 기초가 다져졌다. 즉, 대원군의 모친(따라서 고종의 할머니)와, 대원군의 부인도 모두 여흥 민씨였는데, 대원군은 고아였던 민중전이 궁궐 내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너무 외롭게 지내지 않도록 배려하여 민중전의 오빠뻘되는 민 승호·민 규호·민 겸호·민 태호 등을 차례차례 정부요직에 배치했던 것이다.

 민중전의 부친이었던 민 치록은 대원군 부인 민씨의 숙부뻘이었으므로, 민중전은 대원군의 며느리였을 뿐만 아니라 대원군의 처제이기도 했다. 민 치구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민 치록의 형제인 민 치구의 아들인 민 승호가 민 치록의 양자로 입적되었으므로, 민 승호는 곧 민중전과 남매지간이며, 따라서 민 승호의 다른 형제들도 민중전과는 남매뻘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대원군이 그들 민씨 형제들을 등용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능력위주의 인사정책을 단행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원군의 성향으로 볼 때, 그들은 일단 대원군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정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조직이 취약했던 대원군 자신의 심복조직으로 만들고자 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고종집권 초기에 많은 활약을 하는 민 영익은 민 태호의 아들로서 민 규호의 양자로 들어 갔으므로 민중전에게는 조카뻘이 된다. 민 태호의 딸은 나중에 고종의 아들인 순종의 비가 된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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