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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와 스승의 날에 대한 단상

교원평가가 이루어지고도 이 땅에 스승이란 단어가 존재 할까?

장윤호 기자 | 기사입력 2007/05/15 [08:30]

교원평가와 스승의 날에 대한 단상

교원평가가 이루어지고도 이 땅에 스승이란 단어가 존재 할까?

장윤호 기자 | 입력 : 2007/05/15 [08:30]
 
▲ 마음의 창     © 디자이너 이 철우
과학에 대해, 철학에 대해 필자는 거의 일자무식이다. 하지만 조금 주워들은 것을 바탕으로 조합해보면, 서양의 과학은 (수학에서의)미분처럼 분석하고, 잘게 쪼개는 반면, 동양의 철학은 적분처럼 통합하고, 묶어낸다.


오래전 서양의 과학 수준은 동양의 그것에 비해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분석하고, 계량화하다보니 중세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서양의 과학이 발전을 하게 되었다. 분석하고 계량화하는 서양의 과학은 대단했다.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테일러와 포드는 사람이 하는 일을 분석하고 계량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일의 표준화를 고안하고, 일을 분석하고 잘게 쪼개어 계량화하였다. 그 결과였는지, 공장에서의 생산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인간은 물질적으로 더욱 풍족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동양은 서양의 과학을 쫒아가려 애쓰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60~70년대 공업화와 근대화의 깃발을 내걸고 공업입국을 추구하였다. 분석하고 계량화한 덕분에 서양의 몇몇 나라처럼 우리 사회도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되었다. 


 분석하고 계량화하는 것! 
 
▲ 꽃     © 디자이너 이 철우

이제는 단지 물질적인 부문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정신과 생활에서까지도 분석하고 계량화하는 것은 일반화되었다. 분석하고 계량화하는 것은 평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평가는 경쟁을 유발하였다. 평가를 하여 잘못 평가한 것은 수정을 해야만 했고, 계량화된 수치는 평가라는 명목하에 경쟁을 촉구하였다. 물론 그 평가와 경쟁 덕분에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너무 억지로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에 끼워 맞추려다보니 부작용도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좋은 면만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랴’ 라는 말처럼 약간의 부정적인 것 때문에 좋은 점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부작용을 줄이려, 없애려 노력을 하였느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작용이 긍정적인 것보다 클 때에는 해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몇 년전에 본 영화(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음)가 생각난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정신지체의 아버지가 어린 딸을 혼자 키운다. 아버지는 아르바이트와 같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평화롭기만 하던 이 집에 딸이 점점 더 커지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신지체의 아버지가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무리라고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미 딸은 동화책을 읽을 나이가 지났지만 아버지는 매일 똑 같은 동화책만을 읽어준다. 그래서 기관(무슨 어린이 보호소 같은 곳)에서  딸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아간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여곡절 끝에 그 양육권을 되찾는다. 


영화를 보며 눈물 좀 흘려야 했다. 부성애를 그것도 정신지체 아버지의 부성애를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그 날 저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미국 사람들은 단지 정신지체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양육권을 빼앗아 가려고 했을까?’, ‘아이를 제대로 못 키울 것 같다고 아버지와 딸의, 그것도 좀 불편하지는 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것일까?’, ‘과연 그것이 정당한 것인가? 만일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 가족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그런 영화는 만들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적어도 아버지가 장애인이라고 딸에 대한 양육권을 국가가 빼앗아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 영화가 만들어질까? 
 
▲ 길     © 디자이너 이 철우

아마도 아버지라는 업무(?)를 분석하고 계량화하고 평가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가를 하다 보니 경쟁에서 뒤쳐질 것 같아 고맙게도(?) 미리 손을 쓴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 딸만큼은 경쟁에서 지지 말라는 배려의 차원에서 말이다. 


며칠전 졸업생이 찾아왔다. 학교를 다닐 때에 2년 동안이나 담임을 하였고, 적지않게 내  속을 썩게 했던 놈이다. 그런데 1년 사이에 아니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어른이 되어 있었다. 졸업생이 가고 난 후 나는 또 반성을 했다. ‘내가 너무 조급하게 누군가를 바꾸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저 놈을 내가 성급히 판단하고, 그것도 그 놈의 잣대가 아니라, 나의 잣대로 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는 분석하고 계량화하여 평가하고 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을 교육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르침과 보살핌의 영역에서도 적용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반대되는 의견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는다. 


며칠 후면 스승의 날이다. 몇 놈이 나를 찾아올 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또 삼겹살과 소주 값을 준비하고 스승의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교원평가가 이루어지고 A, B, C등급으로 분류되어진 후에 과연 졸업생들은 B나 C급짜리 교사에게도 스승의 날이란 것을 느끼도록 해줄지 의문스럽다. 과연 이 땅에 ‘스승’이란 단어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덧붙이는 글

아주 웃긴, 그리고 매우 도발적인 상상 


 교원평가가 이루어져 교사들이 A, B, C등급으로 분류되면 학부모들이 음성적으로 (자의던 타의던)교사들에게 주던 촌지도 A, B, C등급으로 나뉘어 질려나?

  오해를 살까봐 확실히 밝혀두지만, 아직도 촌지를 받고 있는 교사들이 100% 없다고는 솔직히 말 못하겠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선생님들은 촌지를 바라지도 않고, 또한 관심도 없어한다는 꼭 밝혀둔다.
 
*장윤호 기자는 현직 교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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